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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째가 되었습니다. 오늘(20191231) 중등한문교원임용후보자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면접과 수업실기라는 관문이 또 남아있습니다. 합격자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설혹 오늘 발표자 명단에 없다 하더라도 다시 출발할 것을 다짐했으면 합니다. 수험생이 되면 걱정이 많습니다. 1) 내년에는 얼마나 뽑을까, 2) 합격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 3) 무엇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하난?, 4) 내가 보고 있는 책에서 얼마나 출제될까?, 시험이 다가오면 5) 출제위원으로 누가 들어갈까?, 6) 시험문제 패턴이 바뀌는 건 아닐까? 등등..... 시험에 합격하는 확률을 높이는 방법? 그런 것이 있으면 정말 좋겠지요. 분명히 있긴 있습니다. 수험생활의 원칙이랄까? 그 첫째를 꼽으라면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이 책이 좋을까 저 책이 좋을까 크게 고민하지 말고, 대체로 정평 있는 교재나 읽을 거리가 몇 권 정해지면, 그냥 반복해서 보는 겁니다. 2019년 한 해 마지막날을 보내면서 새해에는 다 같이 큰 결실을 거두자고 기원해봅니다. 한문 임고생 여러분 힘내세요.
글쓴이 : 신용남
유공(兪公)이 젊었을 때에 같이 공부하는 친구 예닐곱 명과 함께 충청도에 내려왔다가 해가 저물어 주막에 묵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나자 친구들이 우르르 일어나서 왁자지껄하게 주먹질 발길질로 힘겨루기를 하며 서로 농지거리를 하고 있었다.
이때 쉰 살쯤 되어 보이는, 텁수룩하게 수염이 난 한 장님이 방 구석에서 짚신을 삼고 있다가, 갑자기 혀를 차며 웃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장님을 잡아끌며 왜 웃느냐고 물었으나 장님은 대답을 하지 않고 다시 웃기만 하였다. 젊은이들이 다그치자, 장님은, "보아하니 자네들은 부잣집 자제들 같은 데, 그래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하고는, 오른팔을 굽혀 방바닥에 세우면서, "그대들이 함께 내 팔을 눕혀 보시게. 그러나 만약 팔을 눕히지 못하면 술을 한턱내야 할 것이네." 하였다.
한 두 젊은이가 먼저 장님의 팔을 눕혀 보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장님의 팔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모두 함께 장님의 팔을 뉘워보려고 서로 맥이 빠지도록 안간힘을 다하였으나 장님의 팔은 우둑 선채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주막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크게 놀라 실색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장님은 한바탕 크게 웃고 나서 술을 가져 오도록 독촉하고는, "내가 여러분들을 위하여 젊은 혈기를 꺾어주려고 하였던 것뿐이니 너무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게." 하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숨을 진정시키고 나자, "안됐구먼, 참으로 장사인데!" 하며 쑤군거렸다. 이때 장님은 크게 한숨을 쉬더니 눈을 비비면서, "가래 때문에 이렇게 되었지. 정녕 가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하고 중얼거렸다. 술이 얼큰해지자 장님은 젊은이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나는 본래 충청도 사람으로 나면서부터 힘이 세었소. 원래 집안이 가난하여 먹고 살 길도 없는 터라 남에게 품을 팔며 살았소. 웬만한 농사일은 보통 사람이 이틀에 할 일을 아침나절이면 해치웠고, 나 혼자 열 사람의 품을 하였다오. 이 때문에 이웃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얻으려고 아우성을 쳤지요. 아무튼 이렇게 몇 해가 흘렀다오.
그러던 어느 해 여름, 큰 비가 내려서 논과 밭이 모두 물에 잠켜버리고 말았소. 어느날 나는 제방의 둑을 터서 물을 뽑아내려고 한밤중에 큰 가래를 메고 나갔지요. 일을 마치고 둑위에 올라가 쉬고 있노라니,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달빛만 훤한데, 가래날이 달빛을 받아 번쩍거리고 있었지요. 이때 마침 지나가던 나그네가 있었는데 갑자기 지고 가던 짐을 길가에 벗어 던지고는 허둥지둥 어디론가 도망을 치는 것이 아니겠소. 하도 괴이한 일이라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아침이 되어 살펴보니, 그 짐 속에는 백냥이나 되는 돈이 들어 있지 않았겠소. 그때서야 나는, '경상도·충청도에 흉년이 들어서 요즘 길거리에 도둑이 날뛴다고 하더니, 아마도 그 나그네가 번쩍거리는 내 가래에 놀라서 나를 도둑으로 잘못 여긴 모양이구먼.' 하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나는, 내가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저절로 굴러들러온 것이므로 가져간들 무슨 잘못이 있으랴 하고는 그 돈을 가지고 돌아 왔지요. 그 돈으로 집도 짓고 장가도 들었으며, 그 돈으로 술과 고기며, 여기에 도박까지 하면서 나날을 보냈지요. 그러나 오래지 않아 돈은 바닥이 나고 맙디다. 그래서 나는 다시 가래를 메고 일어서며 이렇게 말했지요. '가래야. 네가 나와 함께 남의 집에 품을 팔며 고생하는 것보다는 이번 한 판으로 편안한 생활을 누려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그 후로 매일 해만 저물면 으슥한 곳에서 사람을 기다려 가래를 휘두르며 나아갔고, 가래를 휘둘러서 뜻대로 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오. 오늘 이곳에서 여의치 않으면 내일은 다른 곳으로 가서 가래를 휘둘렀소. 그 당시에는 이 세상에서 내 힘을 당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아! 그러나 혹시라도 힘을 뽐내려고 해서는 안 되오. 글쎄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겠소. 어느날 나는 들에서 한 나그네를 만나게 되었지요. 그의 행색을 보니 마치 부유한 장사꾼 같았는데, 그의 의복과 행장은 매우 호화로웠으며 용모는 곱상했지요. 나는 그 사람을 하찮게 여기고 그의 짐에 눈독을 들였지요. 그래서 곧 말 머리를 툭치면서 큰 소리로, '여보시게, 말과 안장은 놔두고 가시지.' 하였지요. 나그네는 아래 위로 훑어 보더니, 말에서 내려 말고삐를 건네주며 '예, 예' 합디다. 나는 또 옷도 벗으라고 을렀다오. 나그네는 갖옷을 벗어들고 허리를 굽혀가며, '장사 어른, 날씨가 이렇게 차가운데 속옷이야 어떻게 벗겠소. 더구나 이 갖옷은 백냥은 넉넉히 될 것이니 이것을 받으시고 목숨만은 살려 주시오.' 하는 것이 아니겠소. 나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가래를 휘두르며 더욱 위협을 가했지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는 그 사람의 발길에 채여 십여 걸음 밖으로 나가 떨어져 정신을 잃고 말았소.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자 나그네는 큰 소리로, '이놈아, 옷과 말이 네놈의 욕심에 차지 않는다고 기필코 사람을 죽여서 속옷까지 빼앗으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냐? 이미 네놈의 가래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으며, 또 앞으로 당하게 될 사람은 얼마나 많겠느냐. 너를 죽여야 마땅하겠지만, 다만 네놈의 눈을 뽑아서 오고 가는 길손들에게 사죄를 시켜야겠다. 네놈을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네놈도 어느 곳에서 죽게 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고, 나를 잡아 일으키며 손으로 뒤통수를 치자 나의 두 눈은 빠져 땅 위에 떨어지고, 나는 드디어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기절하고 말았소.
이튿날 아침에 이웃 사람이 나를 발견하여 집에 업어다 놓았지요. 겨우 죽음은 면하였으나 두 눈을 잃고 말았소. 그 후로 20여 년을 저자를 떠돌며 짚신이나 삼아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모두 내가 자초한 일이니 남을 탓한들 무엇 하겠소.
그러고 보면, 내가 비록 늙었으나 힘은 여러 젊은이보다 열 배는 더할 것이오. 하지만, 그 나그네를 나에게 비해보면 내가 여러분에게 비하는 정도가 아닐 것이오. 그러니 천하에 있는 나그네의 힘과 기량을 어찌 쉽게 헤아릴 수 있겠소." 여러 젊은이들은 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찬탄하면서 그의 이름을 물었으나, 그 장님은 빙긋이 웃기만 할 뿐,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원문>
書鍤瞎(恩誦堂集文卷二 李尙迪惠吉 / [文])
兪公某少時 偕同業生六七人 南歸湖中 日暮止店舍 飯訖諸生羣起譁 拳踢角其力 相與侮謔 時有一瞎者年可五十許 鬚如蝟磔 隅坐織屨 遽曰唉 旣哂之 諸生拉瞎者問何哂也 瞎又哂而不答 固强之 曰公等綺紈子耳 何力之有 因詘其右臂竪之地曰請諸公撓而蹶之 否者醵飮我 一二生先試無如何 諸生亟交手抑按 衆力盡而臂故屹不可動 一店人無不錯愕變色自失者 瞎大笑 趣呼酒曰吾爲公等 欲挫少年習氣耳 幸無恠 諸生稍稍斂氣息 相謂曰惜乎 眞健兒也 瞎太息揩其目曰鍤負汝鍤負汝 已而酒酣 告諸生曰某湖鄕人 生而有力 貧窶無以自食 爲人傭 凡畊稼力作 一朝而辦兼日之役 一身而專十夫之直 以是其隣之農者 皆願得我矣 閱數歲 夏大雨 田野荒沒 一日荷大鍤夜出 決瀦堰而洩之水 登壠而憇焉 時晨光未出 月星滿地 鍤閃閃光射人 頃之有行旅過之 忽卸其擔路左 倉皇却走 殊疑恠不測 朝而視之 乃百金裝也 於是自念嶺湖荐饑 剽掠載途 彼無乃㥘於鍤而認我爲賊也耶 然非我也 物自來而取之何傷 遂挈而歸 構屋於斯 娶婦於斯 酒肉賭博於斯 日以無賴爲事 亡何金已罄矣 復荷鍤而起曰鍤 余及汝與其勞於傭作 無寧玆一擧手而亨逸樂乎哉 自後每昏暮 伺人於僻處 揮鍤而前 未有不靡然被劫者 故今日劫之不足 明日又顧而之他 當是時 自以爲武力一世 無可當意者矣 然嗟乎嗟乎 力不可以或售也有如是夫 吾嘗遇客於野 行色類豪商 服御甚都美丰姿 藐其人而豔其裝 卽拍馬首厲聲曰客留鞴馬去 客上下視 下馬授其轡曰唯唯 偪之使解衣 客脫貂裘揖曰 壯士天寒如此 褻衣何可相遺也 此裘直百金 願以此易性命 某勿許 揮鍤以威之 俄某猝被其踢 仆出十步外 昏而復甦 客大叱曰奴 裘馬寧不足以充溪壑 必欲戕人命而奪之衣何哉 前後客旅之死於鍤者 豈有旣乎 殺之固當 但抉若目 以謝行路人 弗然若不知死所耳 客捽余起 手批腦而兩目俱逬於地矣 遂一呼而絶 詰朝隣夫見之 舁返于室 僅無死 失目且二十年餘 流落市肆 業屨以餬口 禍實自速 人何尤焉 蓋由此觀之 某雖頹朽 力十倍於公等 而客之於某 不趐若某之於公等矣 天下之客豈易量哉 諸生爲之咨嗟 詢其姓名 笑而不答
술은 소인중에 소인
글쓴이 : 이승창
「주보(酒譜)」에 의하면 옛날 애주가들이 술을 아주 사랑한 나머지 맑은 술을 성(聖)에, 빛이 노란 전내기 술을 현(賢)에 비유했다고 한다. 나 역시 매우 술을 좋아하였으므로 성에 또는 현에 비유하곤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술은 성도 현도 아닌, 바로 진짜 소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체로 술이 입술에 닿으면 그 시원한 기운과 맑은 빛깔, 그 향기로운 맛이 마른 목을 축여 주고 답답한 가슴을 확 트이게 하여 정신을 새롭게 해 주고 기운을 샘솟게 해 주는데, 이것은 이를테면 은(殷) 나라 고종(高宗)이 어진 부열(傅說)에게 충정어린 인도를 받는 것과도 같고 또, 술이 뱃속에 들어가면 기분이 온화해지고 체력이 충만해져서 근심 걱정이 절로 사라지고 즐거움 흥취가 절로 발동되어 진득해지고 화락하게 되는데, 이것은 마치 온화한 봄기운에 만물이 소생하는 듯하던 안자(顔子)의 기상과도 같으니, 이것이야말로 성현다운 교화가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술기운이 살갗에 배고 뼈속에 스며들어 점차 중독되어 그 기운을 없애고자 하나 없앨 수 없어서 날마다 정신이 흐리멍텅하게 되면, 입술에 닿는 것은 모두 저 간교로 임금을 속이고, 권력을 휘두르다 결국 안록산(安祿山)·사사명(史思明)의 난을 유발했던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꿀맛같던 아첨과 같고, 배에 가득찬 것은 모두 유빈(柳玭)이 자제들을 경계했던 바로 그 사람을 미치게 하는 약일뿐이다.
그리하여 듣고 보는 것이 모두가 그 술에 사역되어, 밤낮 없이 주악을 베풀고 잔치만 즐기는 것은, 바로 남북조시대 강총(江總)이 정무를 돌보지 않고 연향만을 베풀어 진후주(陳後主)를 망하도록 인도했던 행위와도 같고, 잠자리에서 방탕함은 월왕 구천(句踐)의 미인계에 빠진 오(吳)의 태재(太宰) 백비(伯嚭)가 오왕 부차(夫差)를 미혹시켜 멸망하게 만든 것과도 같다.
심지어 심성을 상실하여 미치광이 같은 말과 행동을 마구 해서 가정을 어지럽히고 공무를 포기하기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옛날 위(韋) 나라와 고(顧) 나라가 하걸(夏桀)의 포악을 돕고, 주(周) 나라의 태사(太師) 윤씨(尹氏)와 경사(卿士) 포공(暴公)이 난정과 참소로 주 나라를 쓰러지게 하고, 환시(宦侍) 홍공(弘恭)·석현(石顯)이 참소로써 어진이를 배척하여 한나라를 기울게 했던 것과도 같다.
뿐만 아니라, 끝내는 오장·육부가 손상되고 온갖 병마가 틈을 타 발생하고 원기가 날로 깎여 명을 재촉하고 몸을 망치게 되어서는, 간신 비렴(飛廉)·악래(惡來) 부자가 은주(殷紂)를 망하게 만들고, 이사(李斯)·조고(趙高)가 진(秦) 나라를 망하게 만들고, 장돈(章惇)·채경(蔡京)이 송(宋) 나라를 넘어지게 했던 것과도 같다.
또한, 술병이 든 사람이 때로 뉘우쳐서 혹독하게 자책하고 경계하여 여러 날 술을 안 마시기도 한다. 그러나 갑자기 술맛이 생각나면 저도 모르게 군침을 흘리게 되는 것은 바로 위(魏)와 화약(和約)을 맺어 나라를 기울게 한 소인 주이(朱异)를 못 잊어 했던 양무제(梁武帝)와도 같고, 정치를 문란시켜서 나라를 어지럽게 한 노기(盧杞)를 생각하던 당덕종(唐德宗)과도 같다.
이렇게 된 뒤에는 온갖 좋은 약으로도 그 증세를 낫게 할 수 없고 맛 좋은 팔진미라 하더라도 그 위장을 조양(調養)할 수가 없다. 죽이나 밥이 눈 앞에 가까이만 와도 구역질을 참지 못하게 되지만, 만일 천천히 밥알을 한 알씩 입안에 넣고, 억지로라도 한 술씩 떠 먹어서 점점 밥기운이 술기운을 이겨 술힘이 밥힘에 밀리게 되면 그때부터는 정신이 살아나고 의지가 안정되어 자연히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을 잊게 된다. 이것은 이를테면 제선왕(齊宣王)이 맹자(孟子)에게 인의(仁義)에 관한 말씀을 들어 깨우침이 있던 것과도 같고, 노래를 좋아하는 조열후(趙烈侯)가 상국(相國) 공중련(公仲連)의 충간을 들어 노래하는 자에게 주려던 농토를 주지 않은 것과도 같은 것이다.
아! 밥과 술은 다 곡식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밥은 곡식의 성질을 온전하게 보존하여서 그 맛이 담담할 뿐 감칠맛이 없다. 그러므로 하루에 두 끼니만 먹으면 그만이고 일생 동안 늘 먹어도 물리지 않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건강히 오래 살게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군자가 천성을 온전히 보전하여 그것으로 임금을 섬겨 서로 미워하거나 싫어함이 없이 덕을 높이고 어진이를 높여서 나라를 이롭게 함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술은 곡식의 성질을 어지럽혀 누룩으로 띄우고 술을 빚어 그것을 걸러 마시는데, 더러는 소주로 만들기까지 하면서 반드시 독한 것을 미주(美酒)로 여긴다. 사람마다 모두 그 맛을 좋아하여 백 잔이고 천 잔이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퍼마셔대어, 마침내 사람의 오장·육부를 상하게 해서 명을 재촉하고 있으니, 이것은 바로 소인이 천성을 해치고 그 잘못된 천성으로 임금을 섬기되 서로 헐뜯고 미워하며, 덕 있는 이와 어진 이를 멀리하게 해서 나라를 해롭게 하고 제 집을 망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이래서 우(禹) 임금이 술을 싫어하여 술을 만든 의적(義狄)을 내좇은 것이며, 「서경(書經)」에 주고(酒誥)편을 넣고 「시경(詩經)」에 빈지초연(賓之初筵)편을 두게 된 것이다.
나는 젊어서부터 술을 매우 좋아하였다. 그러다가 근래에 와서야 비로소 술을 멀리 하나 아직도 끊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이 글을 지어 내 자신을 경계하는 한편, 나라를 다스리고 가정을 가진 이들을 경계한다.
<원문>
酒小人說(壺谷集卷之十八 / 雜著 )
古之飮者 愛酒之甚 至比於聖賢 余之愛亦甚 故亦謂聖謂賢矣 今乃大覺酒非聖非賢 乃眞小人也 蓋酒之入於唇也 其色冽 其味香 渴喉以滋 煩胸以豁 惺惺潑潑 如得傳說之啓沃也 酒之入於腹也 其氣和 其體充 憂愁自消 歡興自發 皥皥煕煕 有若顏子之春生也 此之有聖賢之比 而至其淪肌浹髓 漸漬沈湎 欲罷不能 連日昏冥 則入唇者 林甫之口蜜也 滿腹者 柳泌之躁藥也 以至耳目之官 皆爲所使 留連於絲管 則江摠之導陳主也 放肆於袵席 則伯嚭之迷吳君也 甚至喪心失性 狂言妄作 壞亂家政 抛棄公務 則韋顧之助桀 尹暴之蹶周 恭顯之顚漢也 終至臟腑受傷 百疾交乘 眞元日斲 促壽亡身 則飛惡之覆紂 斯高之夷秦 惇京之僨宋也 且病酒之人 時或悔悟 刻責痛戒 數日停觴 而忽思其味 不覺流涎者 梁武帝之不忘朱异 唐德宗之猶思盧杞也 當此之時 百藥不能救其證 八珍不能調其胃 粥飯近前 不禁嘔吐 而若能徐徐進一粒 勉勉添一匙 漸使食氣勝而酒力退 則神蘇志定 自然忘酒 此則齊王遇孟子之曝 衛侯止歌者之田也 噫 食與酒 皆出於穀 而食能全穀之性 淡無滋味 故一日再食而不加 一主長食而不厭 能使人壽而康 此非君子全天賦 以事君無斁無惡 而利人國家者乎 酒則汨穀之性 麴之糵之釀之漉之 或至燒之毒之 必以酷烈爲美 人皆悅其味 而千鍾百杯 晝夜無量 能使人傷而夭 此非小人之戕天賦 以事君以浸以潤 而凶于國害于家者乎 此大禹所以惡之 而書之酒誥 詩之賓筵所以作也 余少甚愛之 近始疏之 而猶未絶之甚 故著此說以自警 仍以爲有國有家者之戒
벙어리 저금통
글쓴이 : 서기종
① 정사년(1737) 가을에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시장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위는 둥글고 아래는 평평하며 속은 텅 비었는데, 이마에는 일자(一字)모양으로 가늘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내가 종복을 돌아보며,
"이게 무슨 물건이지?“ 하니, 그는 "벙어리입니다." 하였다. 내가 그 말을 알 수가 없어서 또 묻기를, "이게 무슨 물건이냐?" 하니, 또 다시 "벙어리입니다." 하였다. 나는 그가 농하는 줄 알고 화가 나서 "내가 이 물건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벙어리라고만 대답을 하니, 도대체 무슨 소리냐?" 고 꾸짖으니, 그는, "소인이 감히 농한 것이 아닙니다. 이 물건의 이름이 벙어리이기 때문에 벙어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였다.
내가 이상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으니, "이 물건은 입이 있으나 말을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름을 '벙어리'라고 붙였습니다. 민가의 어린 계집아이들이 이것을 사다가 동전이 생기면 그 속에 넣는데, 가득차면 이것을 부수어 동전을 꺼냅니다. 아마 동전을 헤프게 쓰지 않으려는 것일 겝니다." 고 대답하였다.
나는, "아, 무릇 입을 가지고도 말을 못하는 것이 어찌 이 물건뿐이겠는가. 병, 동이, 단지, 항아리도 어찌 입이 없겠는가마는 이런 그릇들이 말을 못한다 하여 '벙어리'라고 부른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다. 그러니 이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였다.
곁에 있던 여관 주인이 이 말을 듣고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네, 모르는가? 이는 사람이 붙인 이름이 아니고 조물주의 희극일세. 조물주는, 사람에게 말소리와 웃는 얼굴은 보이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입을 통해 동요를 전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물건을 꾸며 각종 그릇들을 만들기도 하니, 이것은 모두가 사람들로 하여금 듣고 모아서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 물건이 나온 지 10년이 못 되었는데, 그것이 가진 뜻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람이 벙어리 같음을 비웃는 것이며, 하나는 사람이 벙어리 같아야함을 경계한 것이다. 무엇을 비웃는다는 것인가. 말을 해야 마땅한데도 말하지 않는 사람을 비웃는 것이니, 벙어리와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경계한다는 것인가. 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도 말을 해서 화를 자초하는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니, 이 때는 벙어리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순(舜) 임금이 무슨 허물이 있었기에 고요(皐陶)와 익직(益稷)이 말하기를 마지않았으며, 무왕(武王)이 무슨 허물이 있었기에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말하기를 마지않았겠는가. 한(漢) 나라의 문제(文帝)와 당(唐) 나라의 태종(太宗)은 모두 몸소 태평성대를 이루었으나, 가의(賈誼)는 탄식하기를 마지않아 통곡을 했으며 위징(魏徵)은 십사소(十思疏)에서 멈추지 않고 십점소(十漸疏)를 올렸다. 대개 신하의 마음가짐은, 우리 임금을 이미 성군이라고 여기지 않고 혹시라도 잘못이 있을까 염려하여 온 힘을 다해 곧은 말 하는 것을 꺼리지 않아서, 임금에게 허물이 있으면 곧장 간쟁하고 다스림에 잘못이 있으면 논하기를 마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임금은 성군이 될 수가 있고 신하는 그 직분을 저버리지 않게 된다. 지금 성상께서는 요 임금처럼 어질고 순 임금처럼 공순하며 문왕처럼 공경스럽고 무왕처럼 의로워서, 말할 만한 허물이 없으나, 그러나 신하의 의리로는 어찌 이 정도를 만족히 여겨 여기에서 그쳐서야 되겠는가. 비록 어질더라도 그 어진 것을 무궁하도록 하고 비록 공순하더라도 그 공순함을 무궁하도록 하며 그 공경과 의로움도 모두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임금을 위하는 지성스럽고 갸륵한 뜻이다. 그런데, 조정에 있는 신하들은 모두 말하기를, '우리 임금은 이미 성군이 되었고 우리나라는 이미 잘 다스려졌다.'고 하여 한 달이 되어도 한 사람도 임금의 덕에 대해 논하는 자가 없고 한 해가 되어도 한 사람도 나라의 정치에 대해 논하는 자가 없으니, 이것이 어찌 벙어리와 다르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비웃는다'는 것이다. 말이란 우호를 맺기도 하고 싸움을 일으키기도 한다. 자제들과 말할 적에는 효를 이야기하고 신하들과 말할 적에는 충을 이야기해야 한다. 만약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서 국정의 장점과 단점을 논하거나 그 책임을 가지지 않으면서 조정의 잘잘못을 맡기며, 심한 자는 공론을 저버리고 자기 당파를 위해 죽거나, 눈을 부릅뜨고 논란을 하다가 끝내는 임금을 배반하는 죄과에 빠지면서, 자신이 세화(世禍)에 죽는 것을 깨닫지 못하니, 이것을 이른바 '경계한다'는 것이다. 이제 만일 그 '비웃음'을 알아서 반성한다면 장차 조정의 명신이 될 것이며, 그 '경계함'을 알아서 본받는다면 반드시 처세에 능통한 자가 될 것이다. 자네, 이런 것을 알겠는가?"
나는 그 이야기를 기이하게 여겨 이름을 물었으나, 주인은 입을 가리키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의도를 알아차리고 물러나와 이것을 기록하여 스스로 명심하고, 그리고 집권자에게 올리고자 한다.
② 무릇 입이 있으면 울고 입이 있으면 말을 하는 것은 천하의 바른 이치이다. 입이 있어도 울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면 정상을 벗어난 요물이다. 이 물건이 나오고부터 조정에서는 해야 할 말도 하지 않고 이 물건이 나오고부터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경계하니, 이는 온 천하를 벙어리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요망한 물건이다. 성세에 있을 바가 아니다. 드디어 부수어 버린다.
<원문>
啞器說 丁巳(順菴先生文集卷之十九 / 說)
丁巳秋 余赴試入京 市上有器 上圓下平 中空而頂穿細穴 如一字形 前所未見也 余顧僕夫曰 是何器也 曰啞也 余未解其語 又問曰 是何器也 復曰啞也 余怒其言之戱也 詰之曰 余問是器 而答曰啞何也 僕夫對曰 小人非敢戱也 是器之名啞 故對以啞也 余怪而問其故 對曰 是器也有口而不能言 故人命之曰啞 閭家小女兒 貿是而得錢則投其中 滿而後撲而取之 盖不欲其妄費也 余曰 噫嘻 凡有口而不能言者 奚獨是器也 甁罌甕缸 獨無口乎 未聞甁罌甕缸之以不言而名以啞也 是必有以也 傍有逆旅主人聞而笑曰 子不知耶 是非人所命也 乃造物之戱劇也 夫造物之於人 雖不以聲音笑貌視 而或播於兒童之口而爲謠 或形諸什物之間而爲器 莫非欲人聞見而覺之也 是器之出未十年 其義有二 一以譏人之如啞 一以戒人之當啞 譏者何 譏人之當言而不言 無異啞者矣 戒者何 戒人之不當言而言 只足以取禍 是當如啞者矣 虞舜何嘗有過 而皐益言之不已 武王何嘗有過 而周召言之不已 漢之文帝 唐之太宗 皆身致太平 而賈誼大息之不已而痛哭 魏徵十思之不已而十漸 盖人臣之心 不以吾君之已聖 而恐有遺失 明目張膽 直言不諱 過在于君 則爭君不暇 害在于政 則論政不已 是以君不失爲聖 而臣不負其職矣 今聖上堯仁舜恭 文敬武義 未嘗有過之可言 而然而爲臣之義 豈欲以此爲足而止於是耶 雖仁而欲其仁之無窮 雖恭而欲其恭之無窮 其敬其義 莫不如是 是其爲君至誠惻怛之意 而在廷之臣皆曰 我君已聖矣 我國已治矣 浹月而不聞一人論君德 浹歲而不聞一人論國政 是何異於啞者乎 是則所謂譏也 惟口出好興戎 與人子言 依於孝 與人臣言 依於忠 若無其位而論國政之長短 非其責而言朝廷之得失 甚者背公死黨 瞋目語難 末乃歸于反君之科 而不自覺殞身世禍 是則所謂戒也 今若知其譏而反之 則將爲朝廷之名臣 知其戒而法之 則當爲處世之通人 子知是耶 余奇其說 問其名 主人指其口而不言 余解其意 退而記之以自警 且欲以獻于當路者
분수를 지킨 도둑
글쓴이 : 강대걸
태창(太倉) 옆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장사를 하거나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날이 저물 무렵에 나갔다가 밤이 으슥하면 돌아 왔는데 언제나 쌀 닷 되를 가지고 왔다.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으므로 가족들도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수십 년간을 넉넉한 음식과 번드레한 옷으로 살았으나 집안을 살펴보면 언제나 비어 있었다.
어느날 그가 병으로 앓아누웠다. 병세가 위독해지자 은밀히 아들을 불러놓고 일렀다.
"창고 몇 번째 기둥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하나 있을 것이다. 그 작은 구멍으로 손가락만한 나무를 넣어 후비면 쌀이 조금씩 흘러나올 것이다. 쌀을 하루에 닷 되씩만 꺼내오고 절대로 그 이상은 가져오지 마라.“
아비가 죽자 아들은 아비가 일러 준대로 하여 예전과 같이 넉넉히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조금씩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구멍을 조금 크게 뚫고 하루에 서너 말씩을 가져왔다. 그러자 쌀이 없어지는 것을 안 창고지기한테 발각되어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도둑질은 본래 나쁜 일이지만 그래도 만족할 줄 안다면 그 아비의 경우처럼 큰 화는 면할 수 있다. 그러나 아들처럼 분수를 모르고 욕심을 부리면 죽음을 자초하게 되는 것이다. 도둑질도 그러한데 더구나 군자가 만족할 줄 알 때 그 결과가 어떠하겠으며, 천하의 큰 이익을 얻고도 만족할 줄 모른다면 그 결과는 어떠하겠는가.
<원문>
倉氓說 (石洲外集卷之一 / [文] )
氓有室于太倉之傍者 不廢著 不耕收 每夕出而夜歸 則必持五升米焉 問所從得 不告 雖其妻兒 莫覺也 如是者積數十年 其食粲如也 其衣華如也 而視其室則空如也 氓病且死 密詔其子曰 倉之第幾柱 有窽焉 其大客指 米之堆積于內者 咽塞而不能出 爾取木之如指者 納于窽中 迎而流之 日五升卽止 無取嬴焉 氓旣死 子嗣爲之 其衣食如氓時 旣而 恨窽小不可多取 鑿而巨之 日取數斗 猶不足 又鑿而巨之 倉吏覺其奸 拘而戮之 噫 穿窬 小人之惡行 苟能知足 亦可以保身氓是也 升斗 利之細者 苟不能知足 亦可以殺身 氓之子是也 況君子而知足者耶 況取天下之大利而不知足者耶 高靈申貿夫 爲余言
면래(眠來)·무명(無名)·어상(禦霜)
글쓴이 : 서기종
1. 면래(眠來)
면래꽃은 담홍색이며, 잎은 갈래가 많고, 줄기는 매우 쓰다. 잘 삶아서 깨끗한 물에 하루나 이틀쯤 담가두면 그 맛이 아주 아름답다. 그러나 이를 많이 먹으면 잠을 졸다가 쓰러지는데, 쓰러지면 일어나기 힘들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설령 백 세를 산다고 하다라도 낮에는 활동하나 밤에는 자게 되므로 잠자는 시각이 절반을 차지하나다. 잠을 잘 때는 구규(九竅)와 사체(四體)가 모두 정지된 상태이므로 지각(知覺)과 운동을 깨달을 수 없으니, 비록 살아있는 시각이기는 하나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렇다면 살아있는 세월이 백 세라고 하더라도 활동애 사는 것은 오십 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오십 세 가운데 십 세 이전에는 어린 시절로 아무 일도 할 줄 모르며, 80∼90세 이후에는 늙어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없으니,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각은 과연 몇 년이나 될까. 더러는 밤새도록 자고 그 이튿날까지 자는 때도 있고 보면 그 활동한 시각은 실로 얼마되지 않는다.
잠이란 마치 우주에 낮과 밤, 가을과 겨울이 있는 것처럼 폐지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억지로 면래같은 것을 먹여서 잠을 더 많이 자게 할 필요가 있을까. 이 때문에 면래초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동산 가운데 자라고 있기 때문에 제거하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원문>
眠來(旅菴遺稿卷之十 / 雜著[四] 淳園花卉雜說)
眠來花淡紅 葉多岐街 莖甚苦 而爛烹浸宿一二日 則味極佳 然多食則睡倒 不能強起 夫人生於世 雖得百歲 百歲之間 晝則起 夜則睡 睡之時居半 方其睡也 九竅混沌 四體委頓 冥然無少知覺運動 是雖生而與死何甞異乎 然則人壽百歲 可謂生者不過五十歲 五十歲之間 幼而十歲以前 顓蒙不足有爲 老而八九十以後 耄勌不能有爲 可有爲之時 果餘幾歲哉 有或終宵沉眠 晝以繼之者 其餘歲將無幾矣 嗟呼 人之有眠 若天之有陰有夜有秋冬 雖不可廢者 而何苦強食草莖以益之乎 故余遇眠來之草 常不喜焉 而以其適生於園中 亦不必除云
2. 무명(無名)
동산에 이름 없는 꽃들이 많다. 사물이란 스스로 이름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름을 지어줄 수밖에 없다. 이름이 없는 꽃이라면 내 스스로 이름을 지어줄 수 있겠으나 반드시 이름을 지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사물에 대해 사람들은 그 이름보다는 이름 밖에 있는 그 무엇을 더 사랑한다. 비유하건대 음식에 있어 어찌 음식의 이름을 사랑하며, 옷가지에 있어 어찌 그 옷가지의 이름을 사랑하겠는가. 맛 좋은 생선구이가 있다면 배불리 먹을 뿐이며, 가벼운 털옷이 있다면 그 옷을 입어 몸을 다습게 할 뿐이다. 무슨 고기인지, 또는 무슨 짐승의 털인지, 그 이름을 모르면 어떠하랴.
내가 본 꽃에 이미 사랑을 느꼈다면 그 꽃의 이름을 모르면 어떠하랴. 그 꽃에 대해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 없다면 아예 이름을 지을 것조차 없겠으나 그 꽃에서 사랑을 느낄 만한 것이 있어 이미 그 사랑을 내가 느꼈다면 구태여 이름을 지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름이란 피아(彼我)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피아만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라면 길고 짧은 것, 크고 작은 것, 푸르고 누런 것, 붉고 흰 것, 동쪽과 서쪽, 남쪽과 북쪽 등등 이름 아닌 것이 없다. 이것, 저것도 이름이며, 무명(無名)을 무명이라고 한 것도 모두 이름일 것이다. 부질없이 이름을 지어 꾸밀 이유가 없지 않는가.
옛날 초나라에 한 어부가 있었다. 초나라 사람들은 그 어부를 사랑하여 죽은 뒤 사당을 짓고 굴대부(屈大夫)를 배향하였다. 그 어부의 이름은 과연 무엇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굴대부는 자신이 지은 가사에서 자신을 정측(正則), 또는 영균(靈均)이라 이름하여 자찬하였다. 정말 굴대부의 이름은 아름다웠으나 그 어부의 이름이 없어 다만 어부라고만 불렀다. 어부라는 이름은 천하였지만 굴대부의 이름과 함께 백세토록 전해오고 있으니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 어찌 이름에만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름은 아름다워야 하지만 천해도 괜찮을 듯하며, 있어야 하지만 없어도 괜찮을 듯하다. 천해도, 없어도 괜찮을 듯하다면 반드시 이름을 아름답게 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또 반드시 가질 필요가 없지 않은가, 혹자가 말하기를, "꽃마다 이름이 없지 않은데 그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고 이름 없는 꽃이라고 하면 되는가." 하기에, 답하기를 "본디 이름 없는 것들도 있겠으나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것들도 이름이 없는 것들과 마찬가지다." 하였다. 어부는 초나라 사람이므로 초나라 사람들은 그 어부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초나라 사람들이 그 어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이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랑해야 할 점만 전하고 그 이름은 전하지 않은 것이다. 이미 지어진 이름도 이처럼 전해지지 않는데, 더구나 전하지 않을 이름을 기어이 가지려 하는가.
<원문>
无名(旅菴遺稿卷之十 / 雜著[四] 淳園花卉雜說)
園之花無名者多 夫物不能自名而人名之 花旣無名 則吾名之可也 而又何必名乎 人之於物 非愛其名也 愛之者在於名之外 人愛食 豈以食之名可愛也耶 愛衣豈以衣之名可愛也耶 有美膾炙於此 但當食之 食則飽而已 何傷乎不知某魚之肉 有輕裘於此 但當衣之 衣則煗而已 何傷乎不知某獸之皮 吾於花 旣得其可愛者矣 何傷乎不知花之名乎 苟無可愛者 固不足名之也 有可愛者而苟旣得之 又不必名之也 名者出於欲別者也 如欲別之 無非名也 以形而長短大小 無非名也 以色而靑黃赤白 無非名也 以地而東西南北 無非名也 在近而曰此 此亦名也 在遠而曰彼 彼亦名也 無名而曰無名 無名亦名也 何甞復爲之名 以求侈美也哉 昔楚有漁父 楚人愛之 作之祠 配屈大夫 漁父之名 果誰也 屈大夫甞作辭以自贊其名字 而曰正則 曰靈均 屈大夫之名誠美矣 而漁夫無名 直以漁號漁 賤穪也 而得與屈大夫之名 並傳於百世之下 烏在乎其名 名固美之可也 賤之可也 有之可也 無之可也 可以美可以賤 則不必思乎美 可以有可以無 則無之固可也 或曰 花未始無名也 子獨不知而謂之無名可乎 余曰 無而無者無也 不知而無者亦無也 漁父亦非素無名者 而漁父楚人也 則楚人固宜知其名矣 然而楚人之於漁父 其愛不在於名 故傳其可愛者 而不傳其名 名固知之而猶且不有 况不知而必欲有之乎
3. 어상(禦霜)
국화에게 서리를 이겨내는 높은 절개가 있기 때문에 진(晉)나라 도잠(陶潛)이 이 꽃을 사랑한 것이다. 도잠이야말로 은일인(隱逸人)이다. 이 꽃을 가르켜, 주무숙(周茂叔)이 은일하다고 하였기 때문에 은일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이지, 국화 자신은 실로 은일하지 않다.
왕궁, 귀인 부호가로부터 여염의 천사에 이르기까지 뜨락이나 동산에 심어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고금의 시인 문사들이 가사나 서설을 지어 훌륭히 찬양했으며, 또 화가들은 아름답게 그 모습을 그렸다. 심지어 유몽(劉蒙), 범지능(范至能), 사정지(史正志), 왕관(王觀) 등은 그 종류를 빠짐없이 모아 국보(菊譜)를 만들었으니, 과연 국화를 보고 바위와 숲이 어울린 험한 빈터에 깊숙이 숨어 삶으로써 사람들이 그 이름을 모르는 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혁혁한 그 명성은 모란보다 더 높다. 그러니 참으로 꽃 중에서 은일은 어상(禦霜)이라 하겠다.
이 꽃은 담홍색으로 송이가 많으며 잎은 국화와 같은데 줄기가 약간 가늘다. 늦가을에야 비로소 피며, 서리가 내릴수록 그 빛깔이 더욱 선명하니, 아마 도잠이 이 꽃을 보았다면 그 사랑이 국화보다 못하지 않았을 것인데, 어찌된 연유로 지금토록 아름다운 빛깔과 높은 은일의 덕을 홀로 간직하고 세상에 그 이름을 숨기고만 있을까.
내 역시 이제야 이 꽃을 보았으니 이와 같은 종류가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필시 깊숙한 산 언덕 쑥대와 넝쿨이 엉킨 사이에 절개를 가진 꽃들이 어상처럼 숨어 살고 있을 것이다. 참답게 산야에 숨어 사는 선비들은 이런 꽃들을 알겠지만 설령 알고 있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이런 꽃들은 도잠처럼 글을 지어 이름을 널리 드러내 주기를 바라랴.
<원문>
禦霜(旅菴遺稿卷之十 / 雜著[四] 淳園花卉雜說)
菊有凌霜之節 故晉陶潛愛之 陶隱人也 周茂叔指菊謂隱逸 菊遂擅隱逸之名 而然而菊實非隱也 自王宮貴第富豪之家 下至閭閣賤士有階圃者 莫不封寵之 今古騷人文士 歌詠銘讚 序敍誦說 揄揚奬褒者 煥然輝映 而畫者又從以丹靑之 若劉蒙,范至能,史正志,王觀輩 譜其族 無遺餘焉 菊果幽棲潛居於嵁林邃絶之墟 而人不知名者耶 其燀爀華貴 殆有甚於牧丹也 噫 花之眞逸者 唯禦霜乎 花淡紅而千葉 與菊類而莖少脆 秋晩始開 霜降色逾鮮 使陶潛見之 其愛豈下於菊乎 何苦含光晦德 逃名於世 至於此久也 余今見之 而未知其族有幾也 又未知山阿之幽 蒿藜榛莽之間 花之有介操而隱 如禦霜者有幾也 遐遁之士 樵採於山野 雖或有知之者 而豈必著書播傳 如陶與吾之煩也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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