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9일 베드로 바오로 축일 (마태16,13-19)
“배신한 후에도 용기를 내어 다시 주님께 돌아섰던 베드로처럼”
오늘이 성베드로,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베드로라고 하면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최초로 고백한 첫 사람으로...
그리고 바오로는
그 풍요로운 신앙에 깊이를 더한 은총의 사람으로서,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이렇게 전 세계로 퍼져나가도록
교회 기초를 놓은 사람이라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올해 깐느에서 남자주연상을 받은
배우 송강호가 전에 주연을 맡았던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는
5.18 혼란을 겪는 광주까지 택시 손님으로
독일 기자를 실어다 준 다음,
‘이런 혼란에 휩싸이면 큰일이다’ 싶어
홀로 서울로 도망가던 주인공 만섭이
다시 핸들을 돌려 다시 광주로 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는 영화의 이 장면을 보면서 스승을 배반하던 베드로를 떠올렸습니다.
배신이 좋은 건 아니지만,
그러나 배신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때로는 배신이 우리를 성장하게 합니다.
베드로 역시 배신을 통해 진정한 사도, 성인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변하는 건 큰 병을 앓거나,
자기가 굳게 믿었던 내면의 어떤 신념이
비참하게 부서지는 좌절을 경험했을 때,
그때 변하는 것입니다.
자만했던 자기 자신에게 자기가 걸려 넘어졌을 때
자신이 누구이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게 됩니다.
바오로의 ‘다마스쿠스 사건’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런 엄청난 시련 앞에서
그동안은 마주하지 못했던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에
스스로의 비루함,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핸들을 돌려 유턴을 해야겠다고 ‘용기’ 내는 것입니다.
그럴 때 부끄러움은 도리어 힘이 되기도 합니다.
온전히 ‘부끄러움의 힘’으로 내가 달아났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후, 그렇게 다시 돌아온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베드로, 바오로는 아니지만
나 역시 살면서 여러 번 배반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런 유혹들을 겪으며 깨닫는 것은
나 자신이 아주 약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누가 칼을 들이댄 것도 아니었고
힘으로 제압한 것도 아니지만,
눈에 보이는 폭력이 아닌,
주님의 보이지 않는 그 어떤 힘이
그분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베드로, 바오로와 같은 이런 체험이 분명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