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들의 사함을 얻는 계명 (세번째)
죄(sin)는 마음의 죄며
죄들(sins)은 행위의 죄들이다
죄(sin)는 사망 나무이고
죄들(sins)은 그 나무가 맺은 열매이다.
죄(sin)는 사람 육신 안에 있기에 죄(sin)가 없는 빈그릇과 같은 같은 성질의 육신에 옮겨 담고 옮겨진 죄를 대신하여 예수가 심판 받아 사망을 당하고 전에 지은 죄들(sins)은 그의 계명을 행함에 의해 하나님 기억에서 삭제된 사면을 받는다 (히10:17)
성경에서 제일 중요한 단어는 "죄"이다.
죄로 인하여 사람들이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과 끊어져 사망이 왔고 그의 아들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하나님과 끊어진 사람의 죄 때문에 오셨고 사람 몸의 사망과 애통이나 아픈것이나 곡하는것(사별)도 죄로 인하여 온것이다. >>갓태어난 아기도 전에 지은 죄들로 인한 하나님과 끊어진 상태로 (속사람)
구원도 죄에서 구원이고 영생도
죄에서 벗어나야 영생이고 모세 율법의 계명들도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한 계명이고 새 언약도
죄사함을 얻게 하기 위한 약속이고 이와같이 사람의 죄로 인하여 성경도 있고 사람의 죄가
없다면 성경이 있을 필요가 없다.
사람의 죄 때문에 성경이 있기에 그 성경을 통해 죄를 쪼개 보고 그 속이 무엇인지를 깊이 알아야
한다.
한글 성경은 심판 받는 죄와
사함 얻는 죄들을 쪼개 볼수 없도록 성경의 핵심인 죄와 죄들을 죄라는 하나의 문자로 번역되어 죄에서 구원 얻는 믿음 방향을 잃게 만든다.
죄(sin)와 죄들(sins)로 쪼개어 보기 위해 폰에 에스라 성경 어플을 받아 한글 성경 한절 마다 영어 성경이 써있기에 영어 sin과 sins으로 단수 죄와
복수 죄로 나누어 죄와 죄들에 대하여 깊이 알아 갈수 있다.
나눔이 없다면 과거,현재,미래의
죄가 다 사함 받았고 죄가
하나도 없다며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을 세워 스스로 믿으려 하는 비슷한것 같지만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죄에 대한 주먹국식 믿음의 구원을 단수와 복수로 나누어 깊이 파헤쳐 보면 그 믿음은 그날에 다른 길에서 땅이 꺼지는 후회가 있음이 보여진다.
이러한 구원을 믿는 자들은 지은 죄들과 지을 죄들에 대하여 (=복수죄) 예수의 죽으심으로 대신 심판 받아 다 끝났다고 믿기에 그 믿음은 성경말씀과 반대 방향으로 가기 때문이다.
(앞으로 짓게될 행위의 죄들도
스스로 죄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니 죄를 행하여도 미안함과 반성이 없는 양심의 감각을 잃어 버림)
죄를 나누어 보면 단수의 죄는 "심판" 받을 대상이고 복수의 죄들은 "사함"받을 대상이기에
나눔의 잣대로 그 구원교리를
보면 정 방향이 아님을 쉽게 알수 있다.
심판은 이미 이루어진 과거이고 사함은 앞으로 이루어질 미래 약속이다.
초림 예수로 보면 단수 죄는 심판 받은 과거이고 내 마음에 죄는 현재 진행이다.
과거형 실상의 죄가 심판 받은 사실을 믿음으로 현재 진행형 마음의 허상 죄를 벗겨 버림으로 죄에 종노릇 하는 마음이 해방된 자유를 얻는다.(내 의지와 상관 없이 이루어지는 죄와 사망의 자동 법칙에서 벗어남)
또한 사함의 대상인 복수의 죄들(sins)은"피"를 통해서 사함 받음을 알수 있다.(히9:22)
과거의 기록들인 죄들(sins)의 사함은 피로 이루어진다
(마26:28,엡1:7,- sins로 기록)
다른 것은 모를 지언정 하나님과 끊어진 죄와 죄들과 하나님과 다시 이어지는 피에 대해서 성경 말씀 밭을 파고 파서 더욱 깊고
넓게 나아 갈수록 믿음의 화살을
영생 구원 과녘의 10점 만점을 향해 힘껏 날릴수 있다.
영생을 향하여 정확히 달려가는 화살과 같은 내 인생에 대하여
방향을 잃었던 두려움이 끝나고 그날을 소망하며 쉼을 얻는다.
성경과 찬송가 속에 예수의 피를
믿음으로 구원 받음을 증거 하고
있기에 신앙을 하는 자들의 기본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 피는 상상 속에 피가 되고 현제 나와 관련된 실상의 피가 되지 못하니 믿음의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아니 하기에 예수의 피는 현실에 이것을 의미한다고
여기 저기 서로 다른 견해를 말한다
한 성경을 가지고 수백파로 나누어진 각자가 주장하는 서로 다른 구원의 교리를 세우기 때문에 자기가 전하는 증거를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서로 같은 주장을 한다.
그렇다면 어떤 구원을 믿을까
하여 제비 뽑기로 믿을수도 없고 여기 저기 주장하는 많은 구원론을 한번에 다 믿을수 없고 막막하다.
이사람 저사람이 증거하는 구원을 잠시 뒤로 던지고
하나님이 직접 증명하는 성경 말씀 밭을 헤집으면서 하나
하나 찾는 길이 제일 현명한
길이다.
많은 시간 동안 자세히 살펴 보니 요한은 요한 복음 6장 56절에 내가 예수 안에 들어가고 예수가 내 안으로 들어와 하나 됨을"예수 피"로 기록하였고 또 그 요한은 요한 일서 3장 24절을 기록하면서 내가 예수 안으로 예수가 내 안으로 들어와 하나 됨을"예수 계명"으로 기록하여 예수《"피가 계명"》임을 말씀이 증명해 준다.
하나님 사랑을 많이 받는 요한은
예수피가 예수 계명을 의미 하고 있음을 알기에 예수 계명을 믿어
지킴으로 죄들의 사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을수 있는 비결은 예수의 계명(=피)을 요한복음 14장21절에 기록하고 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 예수의 두번째 심령 속으로 오시는 나타남(첫번째 보이는
땅으로 두번째 보이지 않는 땅으로) -알사람이 없도다. 본인만
피가 계명이란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할수 있는것 중에 하나를 설명하여 보면 이와같다
옛언약을 맺을시 제단에 놓인
모세 율법 두루마리 책이라고
모든 신앙인이 알고 있으나
그 피가 뿌려진 책의 내면을 보면 모세가 받아 기록한 약 613가지 계명들이다.
즉 계명들에 생명 약속의 피를 뿌린 것으로 피를 뿌림으로 피와 계명이 하나 됨으로 죄들의 사함을 얻는 피 계명, 죄들의 사함을 얻는 생명의 계명이 됨을 말할수있다.
옛언약은 새언약에 대한 실상을 그려주는 그림자와 같다.
하나로 완성한 죄들의 사함을 얻는 예수의 계명은"서로 사랑 하라"이다.
그러나 정확한 영생 구원의 10점의 과녘을 향하여 사랑이란 문자를 잣대로 세우고 나의 사랑을 통해 죄들의 사함을 얻는 것이 맞는지를 성경을 자세하게 살펴 보아야 한다
죄들의 사함과 이어진 문자는 사랑이란 문자가 아닌 "용서"란
문자 임을 알수 있다.
사람의 죄와 죄들에서 구원을 위해 아들을 보내고 한사람도 사함을 주지 않으려고 하나님 한분에게 있고 사람에게 없는 선한 사랑을 행하라고 사랑 문자의 계명을 주신다는 것은 모순이 될뿐이다.
주께서 가르쳐준 기도 속에서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용서"한
것과 같이 우리 죄들의 사함을 주옵시며 라고 기록함과 같이 죄들의 사함을 얻는 계명의 원래 문자는 용서라는 문자임을 알수 있다.(눅11:4)
일만달란트 탕감 받은자의
비유한 다음 그 비유를 사람과 연결시켜 용서에 대함을
기록하고 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18:35)
이외에 여러 곳에서 "죄사함"과
연결된 문자가 사랑이 아닌
"용서"라는 문자임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마귀의 사람이 용서라는 문자를 감추어 버리고
그 위에 사랑이란 문자로 덮어
버려 믿음의 계명이 아닌 행위의
계명으로 나아가 죄들의 사함을
얻지 못하여 성령도 받지 못하고
영생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올가미(덫)를 놓은 것이다.
그럼 원래 용서라는 문자를
넣어 죄들의 사함을 얻는 하나로
완성한 예수 피의 생명 언약 계명을 다시 씀은 이와같다.
내가 너희가 행한 죄들을
용서하여 주는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잘못한 죄들을"용서 하라"
너희 몸이 죄들을 행하면 스스로
벌을 주지 않고 몸이 행한 죄들을 천번 만번이라도 용서 하는 것과 같이 네 이웃을 이와같이"용서 하라"
죄들(sins)의 용서의 계명을 믿고 지킬수 있는 자는 예수 십자가에 죄(sin)가 소멸의 심판을 받아 없어진 사실을 믿고 내 안에 용서를 막는 원인되는 없는데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미움의 거짓 허상을 벗어 버린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