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설화에 의하면
최후의 설법을 마치신 부처님은
마침내 두 그루의 사라수 아래서 머리는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 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시고 누우셔서
80년 동안 끌고 다니시던 육신을 버리시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설화에 의하면
그 때에 사라수 동서 두 쌍이
가지와 잎이 한데 합하여 하나가 되고,
남북 두 쌍도 서로 합해서 하나가 되어
부처님의 누우신 몸을 덮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무는 흰빛으로 변하더니
가지와 잎과 꼭과 열매가 다 말라버렸다고 합니다.
대지는 진동하여 바닷물이 치솟다가 얼마 후에는
마치 허공처럼 고요해졌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자
일주일 동안은 육식 그대로 모시고
향과 꽃으로 공양을 올렸고,
7일이 지난 뒤에는 성체를 전단향탕에서 목욕을 시킨 후에,
전단형 나무에 금을 입힌 금관에 모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관을 다비茶毘장으로 옮기려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을 들은
쿠시나가라 성 안 밖의 모든 남녀는 다 같이 참여하여
세존의 관을 다비茶毘장으로 함께 모셔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주는 운구행렬의 질소를 생각해서
대신과 의논 끝에 성중에서 가장 힘센 장사 네 명의 장사는
영구에 예배하고 힘을 다하여 금관을 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금관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성주는 다시 여덟 명의 장사를 뽑아서
관을 들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관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한 분인
아니룻다가 앞으로 나서서
그 여덟 장사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들 여덟 장사뿐 아니라
온 성안의 남녀들이 다 동원하여도
세존의 금관을 든다 해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오.”
그러자 금관은 저절로 공중으로 올라가
허공에 둥실 떠 있다가 몇 바퀴 돌고는
미리 마련한 다비茶毘장에 내랴 앉았습니다.
그 곳에서 다시 칠일을 지내게 되어
먼 곳에 있는 제자들이라도 다 와서 공양하도록 하였습니다.
다비茶毘장에 모신 일 주일이 되자
드디어 화장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다비茶毘장에 향나무 섶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그 위에 영구를 모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국왕 대신 귀족 백성들이
향과 꽃으로 예배한 후에 구소라는 대신이
횃불을 들어 향나무 섶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불은 붙지를 않았습니다.
향나무 섶에 불이 붙었다가는 곧 꺼져 바리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이나 연이여 불을 붙였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니룻다가 아난에게 말했습니다.
“불이 붙지 않음은 하늘의 뜻이다.
부처님의 수제자인 장로 마하가섭이
5백 제자들을 거느리고 마갈타국을 떠나서
이 곳으로 오는 중인데
부처님의 영구라고 참배하고자 하므로 불에 타지 않는 것이다.”
그 때 가섭존자는 5백 제자들을 거느리고
부처님이 계신 곳을 행해 오고 있는 중이었는데,
도중에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다비茶毘장에 도착하였습니다.
가섭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성체는 금관에 있었고 다비 직전이었습니다.
가섭은 아난에게 아직 금관 속에 성체가 계시니
관을 열고 부처님의 열반한 모습을 보여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아난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가섭은
“아, 슬프다!
부처님의 금색신은 이제 영영 다시는 뵈올 수 없게 되었구나.”하고
크게 탄식을 했습니다.
그 때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올리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일이다.
2024년 07월 28일 오전 08:25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운월야인雲月野人 진각珍覺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