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설화에 의하면-2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올리겠습니다.
그 때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굳게 닫혀 있던 금관의 문이 열리면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이 밖으로 튀어나왔던 것입니다.
가섭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세 번 절을 하고 나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게송을 읊었습니다.
이 신비로운 광명을 목도한
여러 비구, 비구니, 국왕 등 모든 대중이 다들
부처님의 발아래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향나무 섶을 세 번 돌고 한쪽으로 물러섰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의 발은 다시 관 속으로 들어가고
관은 저절로 닫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곧이어 향나무 섶에
저절로 불이 일어나서 타기 시작했습니다.
아난존자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어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였습니다.
안락이 깨끗하신 부처님,이 세상에 몸을 받다 나타나시어
거룩하온 그 일을 다 마치시고
이제 열반으로 나가시었네.
32종 장한 모습 다 버리시고
나고 죽는 길이 여윈 안식처에로
불 속에 그 성체가 사라지지만
생멸 없는 진리의 몸 영원하오리.
항나무가 타고 난 뒤에
부처님의 몸에서는 수많은 영골靈骨과 사리舍利가 나왔습니다.
아난존자는 금 항아리에
그 영골靈骨과 사리舍利를 담아서 간직했습니다.
장차 쿠시나가라 성에
사리탑을 세우고 봉안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난존자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부처님을 존경하던
여덟 나라의 왕들이 모두
부처님의 사리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쿠시나가라의 성주도
결코 사리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의 사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국왕들의 욕심은 마침내 근대를 동원해서
전쟁까지도 불사하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행성’이라는 바라문이 중재에 나섰습니다.
향성바라문은
여러 국왕을 대산한 각국의 대산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부처님의 계를 받고
입으로 부처님의 법문을 외우면서도
모든 중생을 이익 케 하고 안락하기를 생각해야 허거늘
어찌하여 부처님의 유골을 차지하기 위하여
서로 인명을 살해 하려합니까?
사리가 여기에 있으니 골고루 나누어 가도록 합시다.”
여러 대신들도 다 좋다고 하였습니다.
향성바라문은 쿠시나가라 왕의 이해를 얻어서
사리를 여덟 나라에 골고루 나누어 주었습니다.
여덟 나라에서는
각기 그 사리를 가지고 가서 사리탑을 세웠고,
필발촌 사람들은 다비장에 남은 재를 거두어 탑을 세웠고,
향성바라문은
최초에 사리를 담은 병을 가지고 가서 탑을 세워 모셨습니다.
《보살처태경菩薩處胎經》에는 사리를 3분하여
1분은 하늘에,
1분은 용왕이,
1분은 여덟 나라의 국왕들이 나누어 가졌다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부처님의 위대한 열반상에 대해서
여러 경전을 근가로 비교적 사실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이 가운데는 부처님을 더 위대하게 보이기 위해서
꾸며진 신화적인 면도 있을 겁니다.
관이 저절로 다비장으로 행했다든지,
관 밖으로 발이 튀어 나왔다든지 하는 설화는
사실이라기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깊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과 같은 위대한 분에게 있어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승(珍覺)은 확신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부처님의 열반상을 통해서
한 가지 의문을 느끼게 합니다.
그 의문은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올려 보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일이다.
2024년 07월 29일 오전 05:41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운월야인雲月野人 진각珍覺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