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구 분 | 낙랑군의 위치 (+고조선왕검성) | 임나일본부의 위치와 그 실체 | 실제 요수의 위치 | 비 고 |
1 | 현,강단사학계의 핵심 통설 | 현,평안남도 평양 [고구려 평양 포함] | 현,(전남+경남)의 중간 [실체 : 연락사무소 정도?] | 현,요녕성 요하 | 대체로 현,(중고교)역사교과서에 채택되어 있음 |
2 | 재야사학계의 진취적인 주장들 | 현,하북성 일원 [일부 : 현,요하일원] | 현,(전남+경남)의 중간 [일부 : 일본열도분국설] [실체 : 연락사무소 정도?] | 현,요녕성 요하 [일부 : 현,하북성난하 or 현,하북성영정하] | 매우 다양한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으므로 전혀 통일되어 있지 못함 |
3 | 본 '참된한국통사'에서 주장하는 주된 내용
과 간단한 설명
| 현,산서성남부 [고구려평양=현,하북 성천안(遷安)]
[참고 : 한서의 낙랑해(樂浪海)에서 (시기와 관계없이) 차명되어 왜곡된 지명임] | 현,안휘성 일원 [실체 : 대화인(大和人)의 난민수용소에 일시적으로 파견된 대화국의 관리] [임나(任那)=현,일본의 전신인 대화국의 왕이 대화국 난민의 안전을 (산동백제의) 왕에게 맡겼다.'는 의미임] | 현,(진섬황하+현,분하)
[참고 : 현,하북성영정하는 '7말8초 역사왜곡' 과정에서 지명이동된 것임 => 이 때의 역사왜곡에 따라 모든 한중일 역사서가 동시에 변조되었음] | 대화(大和)=현,일본의 전신[390년 응신이 건국]
[참고 : 현,한반도에는 현,일본과 관련된 임나는 아예 없었음(삼국사기에 기록 전무함) => 임나가량인(任那加良人)인 강수(强首)는 양(梁)나라사람] |
'낙랑'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낙랑군(郡)은 그 실체가 없음 [즉, 통치행정체가 아니라 (낙랑지역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 한나라에서 파견한 소수의 행정고문단을 '거창하게' 군(郡)으로 역사왜곡한 것임] | '임나(任那)'란, 산동백제24동성왕이 암살당한 후 그 전에 현,산동성 및 현,안휘성 일대에 진출했던 현,일본의 대화인들이 난민이 되었는데, 대화국왕의 귀환명령을 거부하고서 유랑하여 말썽을 일으키게 되자 대화국왕이 일단 산동백제왕에게 그들의 안전을 의탁한 것임 | {물론,역사왜곡이지만} '영정하(永定河)=영원히 고정시키는 하천=즉, 역사왜곡의 기준이 되는 하천(요수)'이며, '보정(保定)=(영원히) 고정시켜서 지킬 곳=즉, 고조선평양(滿城)으로 왜곡된 곳인데 고구려남평양이라고도 하였지만, 역시왜곡'임 | 1차로 역사왜곡(지명이동)되었던 '현,하북성보정(保定)=즉,고조선평양=즉,고구려남평양'이 한번 더 '역사왜곡'되어 현,대동강평양으로 지명이동된 것임 [따라서 현,대동강평양 부근의 고분들은 고구려의 왕들이 아니라 고조선의 단군들을 모델로 해서 왜곡한것] |
1 및 2에 대한 필자의 총평 | 1은 '일제의 식민사관'에 의해 역사날조된 것이며.
2는 '7말8초 역사왜곡' 과정에서 조작되어서 한중일 역사서가 동시에 왜곡기록한 것임. [즉,'역사왜곡의 중간상황'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역시 실사(實史)가 아님] | 원칙적으로 스스로 '가야(加耶)' 혹은 '가라(加羅)'라고 호칭되었던 실체가 아예 없었음, 즉, 모두 '7말8초 역사왜곡'의 과정에서 신라에 병합된 주변소국들을 그냥 '가야 및 가라'라고 통칭한 것임. [따라서, '가야연맹'이란 애당초부터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현,한반도로 이동한 세력은 '금관국(金官國)' 하나 뿐임] | 1과 2의 '현,요하'는 명나라가 15C초에 현,만주지역을 병합하면서 추가로 왜곡(즉,지명이동)시킨 것임,
2의 '현,영정하'는 '7말8초 역사왜곡의 기준점'으로서, 모든 한중일 왜곡역사서에 통용되었던 것인데, 1과 2의 '현,요하' 때문에 혼선이 생기게 된 것임. | 보정(保定) 및 영정(永定)이라는 지명은 '7말8초 역사왜곡의 기준지점'임을 시사하는 지명으로서, 이 곳을 기준으로해서 다른 기록들을 참조하여 위치를 비정해 들어가면 '현,영정하=요수'로 볼 수 있도록 설정(왜곡)된 것임. [참고 : '735년의 패강'은 현,하북성백양정의 한 지류를 모델로하여 현,청천강으로 지명이동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