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3. 05.
프리츠커(Pritzker)상.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상이다. 건축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최고의 영예다.
프리츠커상은 1979년 하얏트재단 프리츠커 부부가 창설했다. 제1회 수상자를 발표한 이래 일본은 2019년까지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8명이나 배출했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프리츠커 상을 배출한 나라다. 이소자키 아라타(2019), 이토 도요(2013), 안도 다다오(1995), 마키 후미히코(1993), 단게 겐조(1987)…. 한국은 아직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 르 코르뷔지에
근대 3대 건축가로 미스 반데어로에, 르 코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세 사람을 꼽는다. 우리는 '이케아와 바우하우스'편에서 미스 반데어로에(1886~1969)를 잠깐 만나보았다. '적을수록 더 커진다'(Less is More)는 디자인 철학을 구현한 사람이 미스 반데어로에다. 이화여대 ECC를 설계한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미스 반데어로에 상'을 수상한 바 있다.
프랭크 L. 라이트와 1923년 제국호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는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인해 국내에 널리 알려진 미국 건축가다. 프랭크 라이트는 지난여름 세계 미디어에 또 한 번 화제에 올랐다. 구겐하임 미술관, 낙수장, 유니티 교회, 텔리에신을 비롯한 설계 작품 8곳이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어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선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라이트는 개방적인 평면구성, 건물 내외부 공간의 통합성, 콘크리트나 강철 같은 소재의 과감한 사용 등으로 '유기적 건축'을 보여주었으며 이것은 유럽의 현대 건축에도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
▲ 임페리얼 호텔(1967년~현재). / 홍지형 제공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임페리얼 호텔'(1923~1967). / 조성관 작가
나는 '파리가 사랑한 천재들'을 쓰면서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를 포함할지 여부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그러나 '파리편'에 들어갈 천재들이 너무 많다 보니 르 코르뷔지에는 경쟁에서 밀렸다. 몇해 전 르 코르뷔지에 전시회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려 관객들의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을 직접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건축학도나 건축에 관심이 많지 않으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일상에서 르 코르뷔지에를 수시로 경험하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는 아파트, 공공건축물, 다세대 빌라 등에서 쉽게 르 코르뷔지에가 창조한 구조개념을 확인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옆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다. 두 학교는 1층을 기둥만 남겨 두고 비워두었다. 그래서 주말에는 이곳에서 학생들이 운동하거나 단체로 춤 연습을 한다. 바깥 날씨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말이다. 벽면 없이 하중을 견디는 기둥으로만 설치된 개방형 구조가 필로티(piloti) 공법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1931년 사보아 저택을 설계하면서 이 공법을 창조했다. 왜 건축물은 항상 지면에 붙어 있어야 하느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아예 지상에서 띄워버린 것이다.
일본은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8명이나 배출했는데, 왜 우리는 한 명도 내지 못했을까. 이 사실은 일본 공학의 깊이와 수준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뜻한다. 건축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그 재능을 발전시키려면 건축적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 어려서부터 훌륭한 건축물을 많이 보고 경험해야만 좋은 작품을 설계할 수 있다.
도쿄 중심가 히비야 공원 앞에는 임페리얼 호텔(제국호텔)이 있다. 도쿄를 찾는 세계적 명사들이 단골로 찾는 호텔이다. 현재의 임페리얼 호텔은 세 번째 건물이다.
임페리얼 호텔은 메이지 시대인 1890년 11월, 문을 열었다. 일본의 기업가 에이치 시부사와는 일본을 찾는 세계적 귀빈을 영접할 수 있는 품격 있는 영빈관의 필요성을 느끼고 세운 게 제국호텔이다. 독일식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3층 건물로 태어난 제국 호텔은 스위트 룸 10개를 포함해 60개의 객실을 갖추었다.
제국 호텔이 일본의 대표 호텔로 명성이 높아지면서 고객들이 몰려들었다. 호텔 확장이 불가피해졌다. 이때 임페리얼 호텔 측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설계를 의뢰한다. 세계 최고의 호텔을 설계해달라. 1905년 처음 일본을 방문해 일본 미술에 빠져 있던 라이트는 이 제안을 수락했다. 라이트는 설계를 위해 1915년부터 4년간 도쿄에 머물며 설계를 구상했다.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설계도. / 조성관 작가 제공
용암석으로 지어진 두 번째 호텔은 1923년 6월 공식 개관했다. 제2세대 제국호텔이 문을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관동대지진이 일어났다. 도쿄 시내의 건축물 상당수가 무너지거나 불에 탔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국 호텔은 끄떡없이 살아남았다. 이후 제국 호텔은 '동양의 보석'으로 그 명성이 세계로 퍼져 나갔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 배우 마릴린 먼로를 비롯한 세계적 명사들이 '라이트 건축'을 경험하려 호텔을 찾았다. 라이트의 제국호텔은 40여 년간 일본의 대표 영빈관으로 명성을 유지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 기간 중 공식 만찬행사가 대부분 제국호텔에서 열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라이트의 제국호텔은 너무 낡고 규모가 작아 확장 신축이 불가피해졌다. 세 번째 제국호텔이 1967년 태어났다. 그게 현재의 제국호텔이다. 제국호텔 측은 호텔 내에 '라이트 건축'을 느낄 수 있는 벽돌, 의자 등을 전시 중이다.
▲ 국립서양미술관 본관 전경. / 조성관 작가
르 코르뷔지와 1959년 우에노 공원
도쿄에는 우에노(上野)공원이 있다. 지하철 노선 두 개가 지나는 우에노 공원은 미술관· 박물관, 호수, 동물원 등으로 사계절 도쿄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다. 우에노 공원에 가면 르 코르뷔지에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국립서양미술관 본관이 1959년 르 코르뷔지에 설계로 탄생했다. 한국인 대부분이 르 코르뷔지에가 누군지도 모를 때다. 국립서양미술관은 그가 설계한 유일한 미술관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립서양미술관 본관은 천장 높이를 낮게 해 미술 작품에 대한 관객의 집중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그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국립서양미술관은 일본의 기업가 마쓰카타 고지로(松方幸次郞 1866~1950)의 개인 컬렉션을 기반으로 문을 열었다. 가와사키 조선소 사장이었던 마쓰카타 고지로는 조선업 호황으로 거액의 성과급이 들어오자 그 돈을 종잣돈으로 1920년부터 서양 미술품을 본격적으로 수집한 것이 마쓰카타 컬렉션이다. 개인 컬렉션을 국립서양미술관으로 명명해도 손색없을 만한 수준이고 규모다. 모네·고갱·세잔·르누아르부터 조각가 로댕·부르델에 이르기까지 작품이 다양하다. 수집가 마쓰카타의 인문교양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 국립서양미술관 앞마당에 전시된 앙투안 부르델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 / 홍지형 제공
▲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 / 조성관 작가 제공
국립서양미술관 앞마당에는 세계적 거장인 조각 작품이 여러 점 전시 중이다. 로댕의 작품 5점과 앙투안 부르델의 작품 한 점이다. 로댕의 작품은 '칼레의 시민들' '생각하는 사람' '아담' '이브' '지옥의 문'이고 앙투안 부르델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다. 부르델은 로댕의 조수로 조각을 시작해 로댕 사후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은 조각가다.
로댕의 대표 작품들을 감상하려면 프랑스로 가야 한다. 예컨대, '칼레의 시민'을 보려면 파리의 로댕 미술관이나 오르세 미술관, 혹은 칼레 시청 앞으로 가야 한다.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를 보려면 파리 부르델 미술관으로 가야 한다. 프랑스에 가려면 시간도 돈도 많이 든다.
그러나 도쿄 우에노 공원에만 가면 세기의 거장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마쓰카타가 거액을 들여 70~100년 전에 사거나 주조(鑄造)한 덕분이다. 도쿄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보고 배울 게 많다.
일본의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은 어려서부터 라이트의 제국호텔과 르 코르뷔지에의 국립서양미술관을 직접 경험하며 그 정신을 느꼈을 것이다. 모든 발전은 남이 이뤄낸 앞선 것을 인정하고 배우려는 자세에서 출발한다.
조성관 / 작가 author@naver.com @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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