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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로봇을 연구하는 센터에서 테스트 중인 로봇 마주치기란 사막에서 모래 찾기, 바다에서 바닷물 찾기 뭐 그런 흔한 일이었다. 당장 산책하려고 내려오면서도 실전 테스트 중인 동글이 로봇들도 마주치고, 아직 미완성인 로봇들이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걸 몇 번이나 마주쳤다.
그러나 이건 아예 사람의 외형과는 다르게 생긴 -소위 말하는 '로봇'들처럼 생긴- 로봇들의 얘기고. 우리 센터의 야심작이자 최신작인 저 모델은 워낙 사람 같아서 불쾌한 골짜기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워낙 보안이 철저한 새로운 프로젝트 모델이기 때문에... 담당 연구원들을 제외하면 마주치지도 못한다.
그런데 내 눈앞에 이렇게...
떡하니 서있는데.
내가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선배님들도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무 말 없는 고요한 대치가 계속되던 때, MARK는 감정 없는 눈으로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저, 저기...."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목이 콱 막혀 덜덜 떨리는 볼품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등에서 식은땀이 도르륵 흐르는 게 느껴지고, 나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일단, 일단 가서 보고를 해야...
MARK는 내게 천천히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고 했다.
탕-!
날카롭게 귀를 찌르는 총소리와 함께 MARK의 몸에서 자잘한 스파크가 튀며 맥없이 쓰러졌다. 검은 옷과 함께 무장한 보안요원들이 전기총으로 MARK를 쏴버린 것이다.
나는 겁에 질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달달 떨었다. 입사한 지 일주일 만에 어째서 내게 이런 시련이....
의식을 잃어 쓰러진 MARK는 보안요원들에 의해 끌려나갔다. 그 모습을 보니 왜인지 마음이 불편하긴 했다. 아무리 봐도 너무 사람 같아서...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혹시 내가 보안을 어기고 MARK와 고의적으로 만난 거라고 의심하면? 아니면 내가 기술을 빼돌리려고 온 산업 스파이라던가 그런 의심을 한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온갖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게끔 만들었고, 그 결과는 딱 하나였다.
"저, 저는 그냥 퇴근하기 전에 산책하고 있다가... 우연히, 진짜 우, 연히 마주쳐서...!"
두 손까지 싹싹 모아가며 최대한 의심을 사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변명했다. 생각해 보니 입을 열면 열수록 의심만 사는 것 같아 곧 입을 다물긴 했다.
내 난리부르스에도 불구하고 미동이 없던 보안요원들은 무전을 받았는지 나에게 다가왔다.
"정여주 연구원 맞으시죠?"
"네, 네헤...?"
"센터장님이 찾으십니다."
오 이럴 수가. 입사 일주일 만에 퇴사 각인 썰 푼다.
**
센터장실에 오는 건 아주아주 먼 미래에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당장 다가오는 지금일지도 모르고....
으리으리한 문을 똑똑 두드린 보안요원은 센터장님의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리자 나를 안으로 안내했다.
겉모습과 같이 센터장실은 번쩍번쩍하고 세련됐다. 깔끔하게 정돈된 화이트톤 대리석 책상에 앉아있던 센터장님은 내게 웃어 보이며 보안요원들을 물렸다. 천천히 물러나는 보안요원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여기에 날 두고 가지 말라고 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된다면 내가 이 회사를 나가는 계기는 퇴직이 아니라 해고로 변할 것 같아 조용히 있었다.
넓고 쾌적한 센터장실엔 센터장님, 센터장님 비서, 그리고 내가 있었다. 센터장님은 잔잔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히려 온화한 그 모습에 오금이 저렸다. 미친, 저 은은한 얼굴로 웃으시면서 쫓아내면 어떡하지. 그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주마등이 스쳤다.
"앉아서 얘기할까요?"
"네에........"
그냥 서있어도 되는데. 이 분위기에서는 적당히 푹신한 소파도 가시방석처럼 따끔따끔했다. 센터장님은 얼어붙은 내 모습에 호탕하게 웃으시며 손사래를 치셨다.
"허브티 좋아해요? 남아있는 티백이 다양하지가 않네."
"아, 네네.. "
내 대답에 비서님은 테이블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잔 두 개를 내려놓았다. 센터장님은 웃으면서 먼저 잔을 들었다.
"따뜻한 거 마시고 진정 좀 해요, 놀랐을 텐데. 긴장도 풀고."
"가, 감사합니다."
"커피도 있긴 한데 일부로 안 줬어요. CCTV 보니까 이미 마시고 있길래."
컥, 겨우 들이키고 있던 차가 센터장님의 말에 목구멍을 정확하게 강타했다. 콜록거리며 그 와중에 사과는 했다. 죄송, 컥, 합니다, 콜록, 사레가... 콜록. 이런 식으로. 그 모습에 센터장님은 또 웃으셨다.
"하하하,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놀랐다면 미안해요. 테스트 중인 마크가 밖으로 나가버렸길래 경로를 좀 보려고 CCTV 돌려봤더니 마침 여주 씨가 커피 들고 있는 걸 봐서."
"CCTV를 이미 보셨어요...?"
"봤죠, 그럼. 여주 씨 의심은 절대 안 하니까 걱정 말고."
다행히 퇴사할 일은 없겠다 싶어 살짝 안도했다. 그러나 그 안도감은 센터장님의 다음 말에 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도 여주 씨가 테스트 중인 마크와 마주친 이상 저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요."
"......"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할까 하는데. 위험한 거는 아니에요."
"무, 무슨 제안을..."
센터장님은 씩 웃으며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고 다리를 꼬았다.
"여주 씨가 마크를 테스트하는데 도움을 줬으면 해서요. 아, 마크 알죠? 아까 여주 씨가 마주친 로봇 이름이 마크예요."
"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여주 씨가 한 달간 마크와 생활해줬으면 해요."
예나, 선정이 딸이에요. 를 들은 것처럼 머금고 있던 차를 주르륵 내뱉을 뻔했다. 내 귀가 틀렸길 바랐다. 뭐, 누, 누구랑 생활을 해요...?
"마크, 마크랑요...? 한 달간...?
"너무 부담 가지지 말아요. 아무래도 마크와 같은 모델들이 이제 일반 가정용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데 테스트할 사람이 마땅치가 않아요. 여주 씨가 도와줬으면 하는데."
"다른 연구원분들도 계시지 않나요..?"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연구원들은 워낙 소수정예라 마크가 얼굴을 모두 익혔을 거예요. 테스트하려면 익숙하지 않은 페이스가 필요한데."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센터장님은 기밀사항과 같은 마크를 마주친 나에게 오히려 자비로운 딜을 해주는 것과 같다. 보통 그런 기밀사항을 마주하면 센터는 꼬치꼬치 캐묻던가 의심을 하던가 가만두지 않을 것인데. 이 정도면 아주 호사지...
"아, 추가 수당은 지금 될 거예요. 지금 계약서 확인해 볼래요?"
게다가 돈까지 줘? 이건 반드시 해야 한다. 이게 0이.... 몇 개야..? 게다가 계약서 내용도 단순하다. 비밀유지, 정해준 숙소에서 한 달간 머물 것, 최대한 마크와 많은 대화를 나눌 것, 마크의 특이사항은 꼼꼼하게 기록해 둘 것, 최대한 일상생활과 같이 자연스럽게 생활할 것. 이게 끝이었다. 그리고 출근도 안 한다. 이게 일하는 셈이니까.
"어때요. 기밀사항 하나 마주쳐버린 거 치고는 너무 가혹한가요?"
"아뇨, 아뇨..! 그러면 저는 당장 내일부터 숙소로 들어가면 되는 건가요?"
"여주 씨 보기보다 화끈하네요. 네, 오늘 가서 짐 싸면 되고, 필요하거나 집에 두고 온 물건 있으면 배달해 줄 거예요. 그냥 좀, 특별한 휴가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이게 우리한텐 중요한 테스트니까."
중요한 테스트. 중요한 테스트...
더 이상 고민할 길은 없었다.
계약서에 완벽하게 사인했다.
****
다음 날.
"중요하거나 위급한 일이 있으면 즉시 인터폰 번호 1번을 누르시거나, 저장된 번호로만 연락을 취해주세요. 다른 번호로 연락이 가 이 일이 노출되면 안 됩니다."
"네..."
"두고 온 물품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시고, 필요한 물건은 즉시 배달됩니다."
"네...."
"커피포트나 TV 등 가전제품은 간단한 설명서가 동봉되어 있습니다. 더 필요한 것 있으십니까?"
"네... 아, 아뇨."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희 테스트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비서님은 형식적으로 인사를 하고 문을 닫고 나갔다. 또다시 나 혼자인 집. 고요하지만 넓고 깨끗하고 쾌적하다. 가구나 전자제품들은 모두 최신식이다. 넓은 방이 4개나 되고, 화장실엔 번쩍번쩍한 욕조와 샤워부스도 구비되어 있었다. 이게 휴가지 뭐야. 그런데 조금의 불안함을 곁들인...
비서님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띠링, 하는 맑은 도어록 소리가 들렸다. 마크는 아무 표정이 없는 얼굴로 집 안에 발을 들였다. 당연하지, 마크는 로봇이니까.
그런데 아무 표정이 없는 저 얼굴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너무 사람같이 생겨서 그런가, 음....
"여주 님. 앞으로 여주 님과 생활하게 될 마크입니다."
"아, 응, 네... 아니, 응.."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모를 단어들이 마구 튀어나갔다. 마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뚝딱거리는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말씀은 편한 대로 해주시면 됩니다."
"아, 응. 그런데 너부터 좀... 말을 편하게 해 주면 안 될까? 내가 좀 불편하고 그러네..."
"제가 여주 님께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십니까? 죄송합니다. 여주 님의 요청을 시행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죄송할 건 없는데... 마크는 손에 들고 있던 내 짐을 내려놓고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여주야."
"..... 어?"
"왜 두려워하고 있어?"
"... 내가?"
"너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혹시 내가 널 두렵게 하고 있는 걸까?"
이럴 수가. 마크는 무표정한 표정과 정반대인 나긋나긋한 어조로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다. 마크는 누구보다 완벽하게 로봇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괜찮아. 너 때문에 두려운 게 아니야."
"숨기려고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줘. 나는 사람과 감정을 기반으로 한 소통이 가능해진 모델이야. 너의 솔직한 말은 나의 알고리즘을 발전시켜 줘."
"그런 거 절대 아니야. 고마워, 너 덕분에 혼란한 게 좀 없어졌어."
마지막 말은 진심이었다. 마크는 다정하게 나의 상태를 살펴봐주었다. 비록 표정은 변함없이 무덤덤했지만.
"알겠어. 너의 솔직한 표현 덕분에 나의 프로그램은 좀 더 발전했어. 앞으로도 너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게 노력할게."
".. 응. 혹시 짐 옮기는 걸 도와줄 수 있을까? 좀 무거워서."
"물론이지. 나에게 줘."
마크는 내 짐을 한 손으로 가뿐하게 들고 내 방으로 날랐다. 음, 이 정도면 첫 만남은 완벽했다.
****
정우는 퇴근하자마자 차를 몰아 127-25 마을로 들어섰다.
끼이이익-. 요란스러운 브레이크 소리를 끝으로 정우는 삭막하고 고요한 마을에 발을 내디뎠다.
정우의 발걸음은 나름 느긋했다. 적막한 마을에 울려 퍼지는 찢어지는 듯한 동혁의 울부짖음을 듣기 전까지는.
그 소리에 정우는 황급히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문을 쾅 열었다. 켜져 있는 TV, 허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제노, 새어나가는 소리를 막으려 입을 틀어막고 우는 동혁, 미간을 팍 찌푸린 채 소파에 앉아있는 재현까지.
정우는 재빠르게 사태를 파악했다. 오늘은 오전에 센터장의 신형 모델 쇼케이스가 있던 날. 이미 TV로 다 봤구나.
".... 이미 다 본거야?'
"보다시피."
재현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표정은 평온해 보여도 꽉 쥔 주먹에는 핏줄이 가득 솟았다. 겉과 다르게 속은 타들어가는 중이겠지. 정우는 태블릿을 켜 신형 모델링 보고서를 열었다.
"공개되지 않은 신형 모델이 하나 더 있어. 오늘 쇼케이스에 나온 게 너희들이 찾던 사람 중 하나라면... 아마 나머지 한 명도 이 모델일 가능성이 크지."
정우는 태블릿을 셋에게 건넸다. 잽싸게 태블릿을 낚아챈 동혁은 보고서에 있는 사진을 확인하곤 다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민형. 이민형 맞네, 씨발..."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무서울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 팔과 몸에 가득한 기계장치까지... 그러나 확실할 정도로 동혁이 알던 그 이민형이었다. 더 이상 소리가 새어 나가면 위험하다며 동혁은 입을 틀어막고 끅끅댔다.
제노는 텅 비어버린 눈으로 태블릿을 힐끗 쳐다보고는 말았다. 정우는 순간 무서워졌다. 이대로 포기해버릴까 봐. 포기하면 마지막은 똑같았다. 민형과 지성, 마크와 앤디처럼.
정우는 제노의 어깨를 부여잡고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이제노. 여기서 포기하면 안 돼. 포기하면 딱 두 가지 방법밖에 없어. 여기서 살다가 끌려가는 거. 아니면 도망치다가 잡혀서 끌려가는 거. 너도 알고 나도 알잖아. 센터 놈들 집요한 거."
"......"
"이렇게 쉽게 포기하라고 내가 위험 무릅쓰고 여기랑 센터 들락날락하는 거 아니야. 재현이도 그렇고. 심지어 재현이는 프로젝트에 아예 참가된 연구원이잖아. 이거 들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정우는 눈을 질끈 감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잠깐 식혔다. 숨을 한 번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정재현, 알고 있지? 센터장이 테스트한답시고 여주보고 같이 생활하라고 시킨 거."
"알지."
"센터장이 뭘 꾸미고 있는 것 같아. 나도 거기는 못 들어가니까 네가 해야 돼. 너 나름 거기서 신뢰 쌓은 연구원이잖아. 마크 충전해야 한다고 하고 이틀에 한 번씩 가서 보고와."
"충천하면서 이 약도 주사하고?"
"그렇지.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는 않아. 계속 꾸준히 약을 주입하다 보면, 언젠가..."
"......"
".... 정신 차리는 날이 오겠지. 마크, 아니 민형이도."
지금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저 불가능과 불확실함에 모든 걸 걸어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