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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꼭,
특수전 게시판에 올릴 글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올리고 싶다. 이 글은 남베트남
정찰중대의 전투를 담고 있다. 이 정찰중대의
작전은 '지옥에서의 한 철'과 맥락이 비슷하다.
무력정찰이란 이런 것이다...
이 내용에는 베트남 전쟁 게시판에서
언급된 남베트남과 북베트남 병사들이
전사자와 부상자를 다루는 태도도 담고 있다.
본인이 번역 도중에 중단을 할 수 없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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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정찰, 혹은 위력정찰은 은밀히 적을 정찰하는
것이 아니라 적과 조우하기 위해 하는 정찰이다.
교전이 발생하면 본대는 적의 위치와 규모를 판단
하고 본격적인 전투기동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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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 RO BU
by: Charles Schwiderski
글쓴이 본인 사진이다.
MACV Advisory Team 24, 1967-1968
Chi Ro Bu - 남베트남에는 남베트남군 제24특수전술지역
(Special Tactical Zone)이란 것이 있었다. 또한 그곳에 남베
트남군 정찰중대 403중대와 406중대가 있었고, 난 그곳에서
다른 고문관들과 함께 군사고문으로 근무했다.
우리가 받은 임무는 광대한 치 로 부 산악에서 북베트남군 24
연대의 위치를 찾는 거였다. 지역은 남베트남 중부 고원지대
플레이쿠 북쪽으로 콘텀 주(州)와 경계선 부근이다. 콘텀과
플레이쿠를 잇는 제 14번국도 동쪽이다.
이 정찰중대 전 대원은 몬타냐드 산악족이고 장교는 베트남
인이었다.이 정찰대는 경무장으로 M-16과 수류탄, M79 유탄
발사기와 M72 LAW 두 개가 전부였다.
8월 19일 이른 아침, 우린 트럭을 타고 콘텀의 정찰대 막사를
떠나 14번국도로 들어서 산악으로 향했다. 두 정찰중대는 각각
의 목표를 받았으나 서로가 수평으로 진행했고, 한 중대가 문제
가 생기면 다른 중대는 지원하기로 했다. 우리 고문관들은 406
중대에 속해 있었다. 406중대장은 거만했지만 훌륭한 장교였다.
월맹군 24연대는 콘텀 시를 공격할 계획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남베트남군은 이 연대를 찾으려고 무던히 애썼다. 닥 아코이 강 계
곡 북쪽에서 공격할 것으로 예상만 했다. 공격이 예상되자 남베트남
군은 이아 타워 계곡으로 이동해 치 로 보 산악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정찰중대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찾아야 했다. 찾으면
콘텀을 향한 공격의 예봉이 밝혀진다.
출발 전 정찰중대 병사와 장교 모두 초초해하고 날카로웠다. 닥
아코이 계곡에 들어간 남베트남군의 소식은 좋지 않았다. 정찰대
고문관 근 1년을 했지만 그들이 그렇게 불안해하는 건 처음 봤다.
정찰대원들은 평상시 휴대하는 것보다 많은 탄약을 군장에 채웠고
힘든 작전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영향을 받아
무전기 배터리, 예비탄약과 수류탄을 더 챙겼다.
트럭은 오전 10시 정도 목적지에 도착했다. 두 중대는 하차해
장비를 챙기고 각자의 목표를 향해 출발했다. 첫 2km 정도는
비교적 평탄지였다. 우린 버려진 마을 두 개를 지났는데, 왠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나만 느낀 게 아니다.
점차 가파른 산악이 시작됐고 수풀이 무성한 산악의 우림숲이
나타났다. 거길 지나며 사람이 빈번히 지나다닌 길을 발견했는데,
길은 산악과 14번 국도 양쪽으로 모두 나 있었다. 아마도 월맹군은
콘텀과 플레이쿠를 잇는 도로에서 미군과 남베트남군 차량행열을
매복할 생각인 것 같았다. 산악에 더 들어가자 월맹군이 잠시 머물
렀던 장소를 발견했고 완벽한 벙커와 참호들이 있었다.
불안감이 정찰중대에 퍼졌다.
두 중대는 조금 떨어져 평상시처럼 야간방어를 구성했고 포병에게
제원을 통보했다. 난 위에 판초를 달고 나무에 햄먹을 설치한 다음
하늘에 별을 봤다. 하늘의 별은 경외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고 밝았으
며, 또한 이 산악에서 내가 살아나갈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햄먹에 누워 잠을 자다가 난 사람 목소리에 깨어났다. 월맹군 몇 명이
어둠 속에서 우리 정찰중대에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그러나 경험상,
그 말에 응대해서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 우리 위치를 알려고 하는 것
이다. 그 월맹군들은 영어도 조금 해서 “You die soon Yankee,”라고도
소리 질렀다. 정찰중대 안에 미군 고문관 둘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우리 야간 위치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난 그 고함소리를 멈추게 하기
위해 포병지원을 요청했다.
[잇빨 주: 베트남 혹은 동남아시아 산악족은 기본적으로 공격적인 성향의
종족이 아니다. 이들은 도심이나 평야지역의 사람들에 비해 선하고 약간은
배타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시골의 착한 사람들처럼 도와준 사람들에게
신의 같은 것이 있다. 또한 정글의 모든 걸 알고 있는 전투원이기도 하다.
이 글의 정찰중대원들이 모두 산악족임을 기억하시라.]
작전 2일차
동이 트자,
밥을 지어먹고 각 중대는 치 로 부 산악을 향해 출발했다.
406정찰중대는 약 소총수 75명과 장교 두 명으로 되어 있었다.
당시 최고로 치는 3개 정찰중대가 그 산악에서 적을 찾고 있었다.
치 로 보 산은 1,128미터로 해발로는 3,700피트(약 1km)였다. 교전
은 없었고 월맹군은 우릴 주시하는 것 같았다. 이어 곧 3중차폐정글
로 들어서 사방이 1미터 밖에 안 보였다. 월맹군이 1미터 앞에 있어
도 모를 정도다. 정말 깊고 으슥한 우림숲이며, 정말, 정말 조용했다.
우린 잠시 쉬면서 통신을 체크하고 지도를 본 다음,
다시 산 위로 출발했다.
우리 뒤에 월맹군이 붙어서 감시하고 있으며, 우리가 어딜 향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더 가파른 곳에 도착하자 경계가 전파되고 대열이
섰다. 난 앞으로 나갔다. 중대의 첨병제대는 중대가 이미 덫 속에 들
어왔고 앞에 어마어마한 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고 앞에 부비트랩이나
매복이 있을까봐 발을 못 떼고 있었다. 산 아래로 흐르는 야전통신선
도 발견되어 중대장은 전술지역본부에 보고했고, 본부는 계속 진행하
라고 명령했다.
중대는 마음 내키지 않는 상태로 앞을 향해 다시 가기 시작했다.
계속 올라갔고 적은 느껴졌으나 교전은 없었다. 우린 결국 시간이
걸려 거대한 치 로 부 산의 정상 측면에 도달했다. 이 고지의 사방
으로 이어진 능선 형태였다. 최근에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있었고
야간방어로 머문 흔적도 있었다. 중대는 능선에 정지해 휴식했다.
중대원들은 아침밥 해먹을 때 만든 주먹밥을 먹었다. 휴식이 끝나
자 우린 다시 더 올라갔다.
그렇게 능선 왼쪽에 도달했을 때 어딘지 가까운 곳에서 누가 총을
한 발 쐈다. 그 총알은 내 머리 1인치 부근을 지나갔다. 중대가 방어
를 취했으나 더 이상 일은 없었다. 우리가 월맹군 소로 감시병을 통
과한 것 같았다. 그는 기다리다 좋은 목표인 나, 미군을 보고 쏜 것
같았다. (난 키가 180이 넘어 대열에서 위로 불쑥 튀어나온 상태였고
네온사인처럼 두드러져 보였다) 몇 분 지나자 내 흥분이 진정되었다.
우린 계속 전진했다.
우린 몰랐지만, 내게 총격이 있은 후, 약 두 시간이 지나서, 우린
영리한 월맹군의 매복 속에 들어갔다. 누구도 월맹군이 우리에게
U-자 매복으로 3면에서 공격할 줄 예상을 못했다. 당시 첨병제대
는 뭔가 이상해서 대열을 정지시켰고, 첨병 두 명이 앞을 점검하기
위해 나갔다.
둘이 이동을 시작하자 사방에서 사격이 폭발했다. 우림숲은 적의
사격으로 깨어났다. 우리에게 쏟아지는 총격의 강도는 믿을 수가
없었다. 소총과 자동화기, 수류탄 B-40 로켓이 날아왔다. 그 사격
속에서 앞으로 나간다는 건 불가능했다. 앞 첨병제대 첨병 세 명은
전사했고, 슬프지만 우린 그들을 돕거나 시체를 회수할 수도 없었
다. 도울 수 없었다. 중대원들은 세 명이 죽었으며 적이 가매장해서
구천을 영원히 떠돌 거라고 생각했다.
적 매복은 적의 예상보다 일찍 개시되었고 우린 전멸하거나 뒤로
후퇴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월맹군은 무리로 이동했고 우릴 차단
할 수도 있었다. 사격이 시작되자 난 곧바로 포격을 요청했으나 포
로 월맹군 사격을 잠재울 수 없었다. 우린 밑으로 내려가면서 우릴
추적하지 못하도록 후방을 때려달라고 FDC에 요청했다.
결국 우린 능선으로 후퇴했으나 어디로도 갈 수가 없었다. 우리의 방법
은 하나. 일단 높은 데로 가서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는 것. 알 수 없는 이
유로 월맹군은 곧바로 공격하지 않았고, 정찰중대는 최대한 참호를 파며
꽤 괜찮은 방어를 형성했다. 그 동안 두 명이 더 전사했고 경상자도 있었
다. 그 두 전사자 시체는 끌고 왔다. 의무헬기를 요청했으나 숲이 삼중차
폐정글이고 근처에 랜딩존으로 쓸 만한 곳도 없었다. 사실 헬기가 온다고
해도 그 엄청난 사격에서 버틸 수는 없었다. 호버링하다 당할 게 뻔했다.
[잇빨 주: 당시 베트남인들은 동료가 죽을 경우, 그들이 시체를 회수해서
염을 하고 직접 매장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방황하는 영혼이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와도 비슷한 다 인지상정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시체가 발견되기 전에 제사를 지내지않던 과거 문화와 그렇게 많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 얘기를 하는 건 나에게 매우 어렵다. 이후 3일 동안 점차 최악이
되어갔기 때문이다. 일부 전사자는 나와 매우 친했고, 그들을 떠올
리면 내 마음에서 감정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난 오랫동안 그걸 꺼
내지 않으려고 고통스럽게 노력했다. 이 일을 떠올리면 그때로 내가
회귀하고 항상 눈물이 흐른다.
중대장은 산 측면에 공중지원을 내게 부탁했다. 중대장은 부중대장
과 다른 미군 고문관을 보내 남쪽에 방어구성이 가능한지 알아보러
보냈다. 내가 있던 곳은 커다란 나무 뿌리가 땅에 드러나 있어 시야
도 좋고 머리 위가 안전했다. 내 무전기와 부중대장 무전기를 가진
병사가 같이 그 뿌리 밑으로 들어왔다. 무전기의 휩 안테나가 사격
의 표적이 될까봐 풀을 달아 위장했다.
그때 멀리서 박격포 포구에서 포탄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고, 난
뿌리 밑으로 다이빙했다. 포탄은 우리 경계선 안쪽에 떨어져 폭발
했다. 다른 박격포탄이 주변에 떨어지면서 적이 소총을 쏘기 시작
했다. 우리 경계선은 거대한 산을 마주보고 있었다. 이어 소규모
탐침 공격이 시작됐다. 그들을 물리치자 박격포도 사라졌다.
403중대에 무전기로 연락해서 지원해달라고 했지만,
그들 역시 강력한 교전에 들어가 이동이 불가능했다.
우리 406중대는 혼자였다.
작전 2일차 밤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우린 야간방어를 위한 제원을 FDC에 전달
했다. 우리가 포격 요청을 하면 준비된 제원으로 쏴주고 우리가
수정을 한다. 나 역시 이제 고문관이 아니라 방어선의 병사였다.
미 공군의 FAC 소형 정찰기가 나와 무전기로 연결되어 필요하면
지원을 해주겠고 말했다. 이제 거대한 산에서 대구경 자동화기들이
날아왔고, 추측한 위치를 정찰기에 통보했다. 2분이 지나자 정찰기
가 내가 말한 그곳에 연막 로켓을 발사했고, 이어 제트기가 으르렁
거리며 날아와 폭탄을 투하했다. 그러자 밤 동안 대구경 기관총은
쏘지 않았다. 난 정찰기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후 몇 시간 동안, 적은 대규모 공격은 안 하고 탐침해왔다. 적은
한 번에 몇 발 씩 해서 계속해서 엄청난 박격포탄을 날렸다. 그러나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월맹군은 우리 경계선 동/북쪽에서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중박격포들이 우리 안쪽에 떨어지고 B-40 로켓들
이 날아왔는데 이것들이 나무에 맞아 폭발하면서 뜨거운 파편이
사방에 날렸다.
북쪽의 공격은 강력했고, 그런 건 내 베트남 참전 시절에서 처음
목격했다. 월맹군은 나팔과 호각으로 병사들을 통제하고 지시했다.
난 유리한 위치에서 포격을 계속 유도했고, 마침내 적은 고지 측면
에 많은 전사자와 부상자를 남기고 후퇴했다. 정찰중대원 4명이 더
전사하고 수도 없이 다쳤다. 동이 터오는데 양쪽에서 들리던 부상자
의 비명은 끔찍했다. 의무병은 최선을 다했지만 헬기후송이 불가능
했다. 일부 부상자는 후송이 되지 못해 전투 도중 죽었다.
엄청난 적의 공격을 막느라 중대의 탄약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정찰
중대 부사관들은 전투가 뜸했던 방어선 남쪽과 서쪽의 병력에 가서
탄약을 모아 모자란 곳에 전달했다. 탄약이 가장 큰 염려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중대장은 탄약과 물을 빨리 재보급해달라 요청했고, 적은 다시 공격했다.
이번엔 바로 내 앞의 전면이었다. 난 포병에게 최대한 가깝게 때려달라고
요청했다. 월맹군들은 걸어서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전진하며 계속해서 위로 올라왔다. 정찰대원들은 수류탄을 밑으로
던지고 소총을 쐈다. 공격하는 적의 소총 기관총 B-40도 강력했다. 무연화
약의 연기가 안개처럼 주변을 덮었다. 다시 나팔을 불고 호각이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월맹군 한 무리가 우리가 있던 나무 밑의 구멍을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
왔다. 우린 탄약이 부족했으므로 최대한 대상을 골라 조심스럽게 조준
해서 사격했다. 한 발도 낭비할 수 없었다. 난 내 쪽으로 오던 월맹군 한
명을 조준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내 총알을 맞고 격렬하게 몸이 뒤틀
렸으나 계속해서 다가왔다. 난 다시 쐈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 상태로 계속해서 내 쪽으로 오는 걸 멈추지 않았다. 난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발을 쐈다. 쓰러졌다. 그런데 또 기어온다.
결국 그가 죽었을 때는 거의 내 자리까지 도달했고, 그의 눈은 날 보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은 곁눈으로 씩 웃고 있었다. 그 고지에 계속 있는
동안 난 그 섬뜩한 미소를 계속 봐야 했다.
우리 포병은 계속 포격했으나 월맹군이 너무 다가오자 효과가 떨어졌고,
정찰대원들과 백병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중대원들은 다가온 월맹군
들을 쓰러트렸으나 계속 올라왔고, 그러자 경계선 다른 측면의 중대원
들이 뛰어와 보강했다.
정찰기가 나타나 도울 게 없냐고 물었다. 난 고지 밑부터 예상
접근로를 모두 폭격해달라고 했고, 이어 제트기들이 나타나 그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월맹군 공격이 주춤하더니 결국 사라졌다. 산 측면에 월맹군 전사자
와 부상자들이 널려 있었다. 우리 방어선 안쪽과 바깥의 무성하던 풀
과 나무가 사라지고 해골 같은 골격만 남았다. 정찰중대는 3명이 더
전사하고 더 다쳤다. 일부는 계속 전투를 할 수 있었으나 일부는 그럴
수 없었다. 정찰대 의무병이 최대한 노력했다.
재보급품을 실은 헬기 한 대가 상공에 나타났으나 월맹군 사격이
강력해 내려오지 못했다. 그러자 헬기는 우리 주변을 빠른 속도로
날면서 탄약 상자를 발로 차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탄약 박스는 방
어선 밖으로 떨어졌고, 안쪽에 떨어진 박스도 터지면서 총알이 낱개
로 사방에 퍼졌다. 그걸 주우려고 정찰대원들이 뛰어가면 월맹군 저
격수가 쐈다. 수습된 실탄은 최대한 분배했다. 그렇게 모은 탄약은
도움이 되었으나, 월맹군의 공격을 막기에는 모자랐다.
마지막 공격이 끝났을 때는 이미 오후 중간이었다. 이어 박격포도 탐침
도 없는 섬뜩한 고요가 찾아왔다. 정찰대원들은 최대한 참호를 보강하고
부상자를 보살피며 휴식도 취했다. 부상자들이 자기 참호를 지키는 모습
은 굉장히 놀라웠다. 참호에서 방어할 수 없는 부상자들도 여전히 총을
쥐고 사격 준비했다. 부상자들이 동료 부상자들을 돕기도 했다.
다시 탄약과 물을 요청했다. 1-2시간 후에 건쉽헬기 두 대와 함께 보급
헬기가 나타났다. 그러자 월맹군은 다시 강력한 대공사격으로 가했고
헬기는 물러났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헬기는 빠른 속도로 날면서 물과
탄약을 밑으로 투하했다. 너무 높은 곳에서 투하해 물통은 대부분 파열
해 버렸으나 간신히 터지지 않은 물은 부상자들의 생명수가 되었다.
탄약 박스는 또 대부분이 경계선 밖으로 떨어지고 안으로 떨어진 것도
파열해 사방에 흩어졌으나, 첫 번째보다는 수습한 탄약이 약간 더 많아
나쁘지 않았다. 탄약이 약간 보강됐지만 여전히 위험수준이었다.
오후가 땅거미로 바뀌고 여전히 월맹군은 우릴 그냥 놔두지 않았다.
분명히 그들도 피해가 만만치 않았으나 재편성해 다시 공격했다. 여전
히 앞에 월맹군 전사자들과 부상자들이 널려 있었고 일부 부상자는 비명
을 지르고 울었다. 다시 어둠이 내리고 우리 포병이 조명탄을 쏴줬는데,
그 조명탄 불빛은 참 무시무시하고 기괴하게 고지와 우리 방어선을 비췄
다. 그래도 조명탄은 적 접근을 볼 수 있어 환영이었다. 조명탄이 떠오르
자마자, 월맹군은 우릴 향해 박격포를 쐈다. 조명탄 한 발 당 2-3발의 박
격포를 쐈다. 그러나 참호에 직격하지 않는 이상 피해는 없었다.
서쪽 구역에서 적 소총사격이 점차 증가했다. 월맹군은 우리 방어선
에 작은 부분에 공격을 집중하려고 북쪽 구역으로 이동했다. 월맹군
은 다가와 우리에게 총을 쏘며 방어선의 약한 곳을 찾으려 했고, 우리
가 쏘면 그들은 사격을 멈췄다. 이어, 박격포 외에는 다시 조용해졌다.
난 무전기로 스푸키 건쉽을 요청했다.
스푸키는 AC-47 건쉽으로 세 정의 미니건 아니면 다중총열 기관총
이 달려 있어 지상군 근접 화력지원에 최고다. 스푸키는 한 시간 이상
머물지 못했으나 그래도 적을 압박하는데 정말 훌륭했다. 스푸키에서
3초만 미니건 세 정을 당겨도 풋볼 경기장 정도는 초토화된다. 30cm
마다 한 발이 떨어진다.
몇 분이 지나 스푸키가 나타나 무전기에 등장했다. 난 현재 박격포만이
우릴 때리고 있다고 말했고, 그러자 스푸키는 박격포 발사섬광을 보고
쏘겠다고 했다. 월맹군이 다음 박격포를 쏘는 순간 스푸키가 그곳에 미
니건을 퍼부었고 박격포가 제압되었다. 난 스푸키에게, 아마도 월맹군
은 다시 공격하려고 우리 앞 어딘가에 모이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월맹군은 당시 스푸키가 얼마나 두려운 무기인가 깨달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전기에 “Spooky, Spooky”라고 하는 말이 들렸는데,
분명히 베트남 악섹트가 있었다. 월맹군은 우리가 그걸 스푸키라고
부르는 걸 알고 있었고, 우리 교신주파수를 찾아냈고 다시 위장해서
“Spooky, Spooky”라고 무전기로 불렀다. 스푸키 조종사가 나에게 말
했다. “조그만 친구들이 우릴 부르고 있는 것 같은데 말야.” 그는 웃으
면서, 필요하면 조명탄을 투하해주겠다고 했고, 재급유가 필요할 때
까지 계속 주변을 날겠다고 했다.
밤이 그냥 지나가는 듯하더니 다시 공격이 시작됐다. 고요가 끝나고
우리 중대원들이 남쪽에서 던지는 수류탄이 적막을 깼다. 남쪽 구역
에서 적이 올라오는 소릴 들었다. 수류탄이 터지자 적은 즉각 소총과
B-40을 쏘면서 공격했다. 알고 보니 적의 공격 선발제대는 이미 우리
경계선 1미터 앞까지 기어와 있었다.
기어온 그들은 아마도 월맹군의 특별한 새퍼(sapper)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은밀한 침투를 위해 특수훈련을 받은 자들이고 공격
직전까지 발각되지 않는다. 스푸키가 즉각 조명탄을 투하하며 사격
을 시작했고, 미니건의 시냇물처럼 고지 측면에 날아와 떨어졌다. 순간
월맹군이 다시 조용해졌고, 아침까지 침묵했다. 스푸키는 무전기로 재
급유를 위해 돌아간다고 하고 필요하면 또 오겠다고 했다.
작전 3일차
태양이 떠오르면서 정찰중대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지만
도대체 언제 여기서 나가야 가는지 불안했다. 당시, 우린 부상자
숫자를 세지 않았지만 셀 필요도 없이 정말 많았다. 탄약은 떨어
져갔고 식량과 물은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곧 물이 탄약
처럼 중요해졌다. 우리 대부분이 탈수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중대장은 최대한 빨리 재보급을 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했다.
아침은 박격포 없이 조용했고 소총 사격만 약간 있었다. 전투지역 황폐
화는 우리에게 유리했다. 이제 앞은 벌판처럼 서 있는 나무 외에는 적이
숨을 곳이 없었다. 적이 공격하려면 그 일대를 건너와야 한다. 또한 아군
포탄에 맞지 않는다면. 북베트남 병사들은 쓰러진 나무 뒤에서 남베트남
군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우리 정찰대원들도 욕설로 응답했다. 정찰대원
들이 밑으로 수류탄을 던지면 월맹군들은 모욕적인 비웃음을 웃었다.
한번은 또 욕설을 하기에, 내가 다른 중대원 밑으로 기어가 그 지점으로
수류탄을 던졌다. 그놈의 소리가 사라지자 다른 놈이 나타나 또 욕하기
시작했다. 월맹군은 수류탄 사정거리 밖에서 욕설을 퍼부었다. 난 다시
수류탄을 던졌다. 왜냐면 내가 훨씬 체구가 크기에 수류탄을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던질 수 있었기 때문. 수류탄이 터지고 욕설이 사라지자 우리
중대원들이 그들을 조롱하며 욕을 소리쳤다. 거기가 조용해지자 다시 다
른 곳에 나타나 적이 또 욕설을 했다. 그러면 난 또 그리로 가서 수류탄을
던졌다. 그 아침에 한 15-20개 정도를 야구공을 던지듯이 던졌는데, 팔이
아주 욱신거렸다.
다시 재보급 헬기가 날아왔는데, 이번에는 조종사가 볼 수 있게 연막탄
으로 우리 위치를 표시했다. 헬기는 빠르게 날면서 보급품을 밖으로 차
냈는데, 이번에는 거의 다 우리 경계선 바깥쪽으로 떨어졌다. 우린 탄약
과 물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걸 잡아오려고 경계선 밖으로 뛰어가
목숨을 걸고 들고 왔다.
헬기가 사라지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그러자 잠시 후, 다시 우리
경계선에 엄청난 박격포탄이 떨어졌다. 이어 우릴 내려다보는 높은
곳에서 자동화기와 B-40이 날아왔다. 난 정찰기에 무전으로 연락해
포병에게 고지를 때리라고 했다. 포병이 때려도 적 사격은 줄어들지
않았다.
정찰기가 도착하자 바로 그때 월맹군의 강력한 공격이 남/북/동쪽에서
개시되었다. 그 공격은 우리가 거기 있는 동안의 이전 공격보다 훨씬
강력했다. 난 정찰기에게 스푸키나 제트기를 부를 수 없냐고 물었고,
정찰기는 30분 정도 걸린다면서 포병화력을 수정해줬다.
포격을 수정하면서 일부 경계선의 병력은
방어진 중간으로 와서 뚫리는 곳을 대비해 기동대 역할을 했다.
그때, 월맹군은 우리 고문관팀 무전기 주파수에 들어와 송수화기를
부르고 베트남 음악을 틀었다. 메인 주파수를 사용할 수 없었다. 한
시간 동안 계속해서 주파수를 교대로 사용했고, 그러면 그 주파수를
찾아 월맹군이 또 들어와 혼신을 넣었다.
무전기를 사용할 수 없고, 이어 우리 중대장 무전기 주파수에도
들어와 재밍을 했다. 다른 고문관은 우리가 적에게 전멸할 때를
대비해 통신 SOI를 파기했다. SOI는 작은 소책자로 그 안에는 통신
암호와 비밀통신문 약자와 함께 각 부대 주파수/호출부호들이 있어
월맹군에게 넘어가면 큰일 난다.
난 주파수를 돌려 최대한 아군 교신을 찾으려고 연결하려고 했다.
결국 플레이쿠 남쪽에 있던 정비부대와 교신에 성공했다. 그들에게
내 상황을 확신시키기 너무 힘들었다.
난 그들에게 인정되어야 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날 믿고 내 전문을
중계해주기 시작했고, 결국 상부와 난 새로운 주/예비 주파수를 설정
하게 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도 않아 월맹군은 우리 주파수를 발견
해서 다시 혼신을 시작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 예비 주파수는 그
들이 발견하지 못했고 방해받지 않았다.
월맹군은 가진 모든 것으로 우릴 때렸다. 사실 월맹군도 죽느냐
사느냐였다. 강력한 압력 속에 중대원들은 참호에서 버티고 있었다.
탄약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고, 중대원들은 모두 단발에 놓고 한
발씩 사격을 했다.
내 쪽을 공격하는 월맹군이 가장 극단적으로 힘들었다. 정찰기에
무전으로 잘 지켜봐달라고 부탁하고 난 올라오는 월맹군을 가늠자를
통해서 집중했다. 난, 바로 그 이후, 두 시간의 전투를 최대한 노력해서
시(詩)로 써봤다.
아래는 그 시다:
형상들(Shapes)
오 하느님, 저 들이 또 몰려옵니다!
난 너무 두렵습니다... 난 죽고 싶지 않아요!
난 참호의 갈라진 틈으로 그들을 본다
저 아래 회색의 형상들이 부유한다
형상들이 나무와 나무 사이에 움직이고
형상들이 고지로 올라오고 있고
형상들이 나를 죽이려 하고
형상들이 내 모든 꿈을 빼앗으려 한다
난 총을 들어 저 아래 부유하는 형상들을 조준한다
좀 더 가까워져라.... 자 이제 좀 더 가까이
난 방아쇠를 당기고 형상 하나가 땅에 쓰러진다
다른 형상들이... 계속 날 향해 온다
날 쏜다
나에게 수류탄을 던진다
나에게 오고 있다
난 그들의 소총에서 나오는 연기를 볼 수 있다
가깝게 통과하는 총알을 난 느낀다
수류탄 폭발의 진동이 느껴진다
로켓이 날카로운 소리로 통과한다
나팔들이 소리 내어 울고
호각들이 날카롭게 운다
난 비명을 지르고 공포로 떨린다
그러나
난 저 아래 형상들을 조심스레 조준한다
방아쇠를 당긴다... 계속, 계속해서
놓치면 안 된다... 탄약이 없다
놓치면 안 된다... 한 발을 낭비한다
사방에 형상들이 가득하다
형상들이 너무나도 많다
하느님 저를 도우소서
난 방아쇠를 바짝 당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 하느님, 총알이 떨어졌습니다!!!
난 탄창을 빼내고 다른 탄창을 찾는다
난 찾았다. 그러나 하나도 없다. 패닉. 패닉. 패닉.
하나가 있다... 마지막이다. 빠르게 끼워넣는다
조준하고 쏘고, 조준하고 쏘고, 조준하고 쏘고
형상들이 더 땅에 쓰러진다
사방에 시체다
죽음이 내 사방에 있다
형상들이 온다
형상들이 사방에 있다
형상들이 나에게로 온다
그 많은 형상들이
나를 도와줘!!
우린 탄약이 극단적으로 바닥났다. 그러나 행운인가, 재보급
헬기가 바로 그때 우리에게 오고 있었다. 스푸키는 오지 않았고
제트기가 나타났다. 정찰기는 산측면을 때리기에 바빴다.
재보급 헬기는 빠른 속도로 아주 낮게 날면서 보급품을 발로 차냈다.
헬기는 총알에 맞으면서 낮은 고도에서 시도했고, 대부분의 보급품이
이번에는 우리 경계선 안쪽에 떨어졌다. 그러자 부상당한 중대원들이
나서서 그걸 수습해 참호의 동료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희망이
생겼다. 정말로 그 헬기 조종사에게 감사한다!!
월맹군은 다양한 구역에서 우리 경계선을 돌파했고 그러자 중앙에
있던 기동병력이 뛰어가 경계선 안으로 들어온 월맹군을 사살했다.
기동병력은 필요하면 구멍 난 장소를 메웠다. 결국 고지에는 물론
우리 경계선 안쪽에서 월맹군 전사자와 부상자들이 쓰러져 있었다.
난 무전기로 정찰기에게 포격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danger close”
하게 때리라고. 우린 월맹군에게 중대하게 위험할 정도로 월경당
하고 있었다.
포탄은 우리 경계선 안쪽에서 떨어졌으나 월맹군은 공격은 지옥
처럼 더욱 거세졌다. 그리고 바로 그때 스푸키가 극적으로 상공에
나타났다. 스푸키는 즉각 미니건을 쏘기 시작했고, 스푸키가 사격
할 동안에는 포격을 중단했다.
총알이 부중대장의 무전기를 메고 있던 대원의 머리를 때려 전사했고
나무뿌리 밑 구덩이엔 그의 피로 낭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불쌍한
대원의 피가 점차 구덩이 바닥에 범람했다.
그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적의 공격에, 우리 B-52 폭격기가 가까운
능선을 폭격했고, 우린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그 폭격의 결과에 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폭탄이 떨어져 터지자 마치 땅 전체가 이리
저리로 이동하는 듯한 지진처럼 느껴졌고, 폭발로 산소가 빨려 들어
가자 우린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도착한 스푸키의 미니건은 월맹군 공격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꿔버렸다.
월맹군은 퇴각하기 시작했고 미니건은 그들이 퇴각하는 소로에 대고 다시
쐈다. 건너편 거대한 산에서 여전히 강력하게 우릴 쏘고 있었고 이는 제트
기가 날아가 때려주었다. 늦은 오후였고 적 공격은 기본적으로 종료되었다.
양쪽의 부상자들이 지르는 비명은 너무 소름끼쳤다. 우리 방어선 안쪽에도
부상당해 고통으로 울부짖는 월맹군들이 있었다. 정찰대원들이 사살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허나 우리 정찰대원들이 부상당한 월맹군을 쏴 죽이
는 걸 나도 그때 처음 봤다. 움직일 수 있는 부상자들은 참호에 있었고, 전사
자/부상자들은 방어선 중앙에 모였다.
정찰대원들은 마치 좀비 같았고, 포탄 쇼크와 극단적 피로로 간신히 움직
이고 있었다. 아마 나도 같은 모양새였을 거다. 나도 느끼는 건 같았으니까.
걸을 수 있는 부상자들은 죽은 자들과 움직일 수 없는 대원들의 실탄을 수거
해 참호의 동료에게 가져다주었다.
스푸키와 제트기들은 계속해 월맹군이 있을만한 곳을 공격했지만, 우리
위치는 조용했다. 그때 중대장이 무전기를 받았는데, 403중대가 우리 쪽
으로 오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의무헬기가 다가와 케이블로 부상
자를 들어올리려 했으나 월맹군 사격으로 다시 기수를 돌려 돌아갔다. 주
변에 월맹군은 여전히 있었고, 우리가 부상자를 후송시키려면 안전한
랜딩존으로 이동해야 가능했다.
다시 재보급 헬기가 건쉽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건쉽 헬기들이
고지 측면을 공격하는 동안 보급헬기는 최대한 호버링하면서
물자를 밑으로 투하했다.
이번 재보급품에는 C-레이션과 물이 있었다.
대원들은 물과 레이션을 먹으면서도 403중대의
것은 따로 떼어 남겨두었다.
작전 3일차 밤
오후가 다시 땅거미로 변해 제트기는 이미 떠났고 정찰기와 스푸키
가 재급유를 위해 돌아갔다. 중대장은 403중대가 거의 다 다가왔으니
사격을 금지시켜달라는 말을 무전기로 들었다. 잠시 후 저 밑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고, 우린 환호성을 지르며 올라오라고 했다.
403중대가 도착했다. 그들은 1열로 올라왔고, 403중대도 자신들 전사자
와 부상자들을 급조 들것으로 나르고 있었다. 403중대도 8명이 전사하고
15명이 다쳤다. 403의 전사자와 부상자들은 우리 406의 전사/부상자와 합
해졌다. 우리 중대는 여분의 탄약과 물과 음식을 403에게 주었고, 403은
방어선 북쪽과 서쪽을 맡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해가 지고 밤이 되자, 다시 월맹군 박격포탄이 우리 방어선 안쪽에 떨어
졌다. 난 박격포 발포지점을 예상해 포격을 유도했고 박격포탄 낙하율이
하강했다. 그러나 밤동안 박격포탄은 산발적으로 계속 떨어졌다. 두 번의
탐침 공격이 있고나서, 적은 다시 북쪽 구역을 강하게 공격했으나, 결국
우린 물리쳤다. 이제 우리가 빠져나갈 시간이었다.
우리의 교전이 촉매제가 되어 월맹군 24연대는 점차 다른 미군과 남베트남
군과도 전투가 확대되었다. 남베트남 42연대 2개 대대, 미 보병 4사단, 남베
트남 레인저 부대가 이 월맹군 24연대와 계속해서 교전했다. 그러면서 결국
월남 육군 42연대가 점차 우리와 가까워졌다. 하늘에는 헬기와 건쉽과 다른
지원항공기들로 가득 찼다. 그걸 보니 우리 아군이 바로 저 앞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싸우면서 우리에게 오고 있었다.
밤은 산발적으로 박격포탄이 떨어졌고 대원들은 잠이 필요했다. 나도 포함
해서. 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지쳤지만 살아났다는 게 행복했다.
작전 4일차
아침이 되면 우리 자리를 떠나 돌파해 아군 쪽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남베트남군 42연대 선도제대가 약 2km 서쪽에 있었는데, 정말 멀어 보
였다. 우리 두 중대는 아군포병 차장 속에 이동을 계획했다. 헬기 건쉽은
우리 앞서서 앞쪽을 공격했고, 제트기(Fast mover)들은 우리가 떠나온
고지를 폭격했다.
적은 우리가 아군과 연결되기 전에 차단할 게 분명했고 우리도 저 앞에
혈전을 예상했다. 우리가 떠나고 나서 후송헬기가 한 번 더 접근했으니
적 사격으로 인해 다시 돌아갔다. 월맹군은 정말 포기하지 않았다. 우린
정오 정도에 이동을 시작했고, 406중대가 앞에 서고 403은 후미에서
지원했다.
그 이유는 그래도 우리보다 403중대가 급조-들것을 들 힘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린 모든 전사자와 부상자를 들었다. 난 복부에 총을 맞은 젊은
대원을 앞에서 들었는데, 난 무전기와 소총을 사용하기 위해 들것과 내 몸
을 묶었다. 출발하고 얼마되지 않아 월맹군이 소총을 마구 쏘기 시작했다.
난 앞으로 나가 포격을 요청했다. 그 교전은 20-30분 이어졌고 이후 월맹
군이 사라졌다. 다시 부상자가 더 생겼다. 우리 앞의 강철 커튼을 향해 정찰
대원들은 돌파를 계속했다. 방어선에서 우리 병력이 반 정도 빠져나갔을 때
월맹군은 박격포와 B-40을 쏘기 시작했다. 건쉽헬기가 이들을 공격해줬고,
우린 이제 방어선에서 모두 빠져나와 서쪽의 아군을 향해 행군했다. 적은
우릴 차단하려고 했지만 제트기가 고지를 폭격하자 더 이상 다가설 방법
이 없었다.
지형은 거칠었고 우린 천천히 이동했고, 적의 차단은 포격으로 인해 사라
진 것 같았다. 내가 들것으로 나르던 병사는 들것이 약간만 움직여도 고통
스럽게 신음했다. 그가 피를 흘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피는 들것 밑에 깐
것을 적시고 내 등을 타고 적셔왔다. 의무병을 찾았으나 아군을 보기 전
까지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아군 쪽으로 계속 진행하자 월맹군은 점차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늦은
오후가 되었을 때, 우리 일렬종대 대열에 남쪽에서 월맹군이 소총으로
쏘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응사했고 난 앞의 지형에 포격을 요청했다.
결국 몇 분 만에 교전은 끝났고 우린 계속 이동했다.
우리가 이동하는 방향의 아군이 벌이는 거대한 교전 소리가 우리 귀에
들렸고, 우리도 점차 저격수의 사격권 안으로 들어갔다. 난 남베트남
42연대 미군 고문관을 무전기로 연락해 가까워져가고 있으니 사격을
조심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30분 뒤, 우리 대열의 선두가 42연대와 만
났다. 우린 천천히 42연대 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우린 42연대의 한 중
대본부에 들어갔는데 그때 월맹군은 그 대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 42연대 구역 중간에 랜딩존이 있었고 우린 전사자와 부상자들을
랜딩존으로 옮겨 우리 의무병과 그곳 중대 의무병이 같이 보살폈다.
내가 들것으로 옮긴 젊은 병사도 여전히 살아 있었고 내가 땅에 내려
놓자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후송헬기를 불렀고 곧 랜딩존에 헬기가 날아와 앉았다. 먼저 부상자
를 후송하고 그 다음에 전사자를 날랐다. 헬기는 착륙해서 물과 식량
을 내려놓았다. 부상자 후송이 끝나자 우리 정찰중대를 콘텀으로 데려
갈 헬기들이 날아왔다. 42연대 고문관은 고맙게도 날 돌봐주고 누워
쉬게 해주었다.
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한 대원이 내 무전기를 내가 누운 곳에 가져다 놓았다.
고난의 스트레스를 같이 겪은 사람끼리 하는 포옹이 어떤 것인지
난 그때 이해했다.
우린 살았다!
작전이 끝나고...
우리 406중대장과 대화를 나눴다. 중대는 50%가 죽거나 다쳤
다고 한다. 406중대는 작전 시작에 장교 두 명과 대원 77명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19명이 전사하고 21명이 다쳤다. 그리고 부상자
중 6명은 부상으로 인해 결국 죽어 사망자는 25명이 되었다.
[77명 중, 46명이 전상이다. 잇빨 주]
403중대는 총 9명 전사하고 17명이 다쳤고, 부상자 세 명은 결국
부상으로 후에 사망했다. 끔찍한 대가였고 난 막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꼈으며, 그 아름다운 사람들을 더 돕지 못했다고 마음
이 아프다. 내 정찰대원들.
월맹군이 입은 피해는 훨씬 더 엄청났다. 정확한 추산할 방법은
없지만 내가 내 눈으로 직접 봤다. 고지와 경계선 부근에만 250
-300구의 시체를 목격했다. 우리가 보지 못한 그 산의 여러 곳에
월맹군 전사자는 더 있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월맹군은 거기
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어두워질 무렵, 42연대 고문관이 마지막 헬기가 온다고 했다. 나와
다른 고문관, 두 중대장과 마지막 정찰대원 3명을 콘텀으로 태우고
갈 헬기였다. 우린 올라탔고 헬기는 하늘로 치솟아 기수를 북으로
돌려 콘텀으로 향했다. 406중대장은 우리 손을 잡아 악수하며 자신
들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고문관들 덕이라며 고마워했다. 우린
헬기 밑 그 지역을 바라봤다. 중대장은 비통한 표정이었다.
우린 콘텀의 정찰대 막사 근처 헬기장에 내렸다.
부대에는 남아 있던 정찰대원들이 정렬해 있었고
대원들의 가족들이 남편과 아버지를 만나러 와 기다리고 있었다.
전사자의 아내들도 있었고, 다른 가족들도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큰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이미 들은 것이다. 다른 아내의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은 그 산에 남겨진 전사자의 가족이었다.
[형체가 심하게 훼손된 시체는 두고 온 듯함. 잇빨 주]
그들의 울음소리는 처절했고 끝도 없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자기 남편의 시체를 가져와 매장하고 싶어 했다.
406정찰중대 막사 밖에서는
하루 종일 울음소리와 탄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중대장이 나가서 그들을 위로하려고 감동적인 연설을 했지만,
산에 시체를 두고 온 대원의 아내와 아이들이 중대장을 둘러쌌다.
다른 고문관과 나는
지프차에 우리 군장을 벗어 던지고,
차를 MACV 막사로 몰았다.
It was over!
Charles Schwiderski (출처: 베트남 미군 보병4사단 35연대 홈페이지)
첫댓글 업로드 수정이 이상해서 리플에 답니다.
이 전투의 핵심은, 부대 1/2이 전상이면 퇴각이나 뒤로 빼야 한다.
그러나 이 정찰중대는 이런 포위된 상황에서 4일이나 전투했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 정찰중대는 결론적으로
일종의 미끼 역할과 쐐기목으로 일부러 남겨둔 느낌도 든다.
특히나 이 두 정찰중대는 장교 빼고는 모두 산악족 대원들이다.
잘 읽었습니다.
월맹군 24연대나 월남군 정찰중대 모두 강력한 전투의지를 보여준 사례군요.
특히나 월맹군이 통상의 인원/화력 집중만이 아닌 통신 교란을 시도한 점은 인상적입니다.
미군을 상대로 하여 자동화된 재밍 장치가 아닌 통상 장비로 효과를 본 것인지 모르겠지만 놀랐습니다.
생각보다 FM무전기 주파수대는 넓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FM 주파수 대역에서
잘 되는 주파수 잘 안 되는 주파수가 있습니다. FM-무전기 네 대만 있으면 제가
30분 안에 찾는다에 한 표. 송수화기 보이스 통신 무전기는 근처에서 키만 누르면
먹통 됩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 고참 중사들이 (작전이 끝나고 대대가 모였을 때)
음악을 송수화기에 대고 틀곤 했죠. 그 키를 누르는 방식과 기초 재밍은 사실 같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 전투장면이 머리에서 스크린으로 상영되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본 통사의 어설픈 군생활 조각들을 회상해 봅니다...^^
1. 실탄의 포장이 너무 무겁고 겹겹(나무상자+ 탄박스)포장 되서 너무 무거워 소모사격? 사역병을 할때 투덜이스머프가 된적이 있었습니다...
헬기에서 집어던지려면 아무래도 그정도는 되었어야 헀군... ㅎㅎㅎ ,^_^
2.FM무전기가 통달거리가 제원보다 훨 짧았다는 기억... 체널이 000개 밖에 않되어 엉뚱한 통사들이 가끔씩 낑깁도 경험... 본 통사의 무전기 송수화기 연결컨넥터 불량으로 배속된 대대망을 1분간 먹통으로 만들었고 중계차의 통신병의 dogy-Song을 들었던 기억,, ^_^
북베트남군은 소련의 제파전술과 구일본군의 무엇이 오묘하게 섞여있다는 느낌입니다.
비록 퇴각했지만 북베트남군의 전투의지도 대단하군요.
경찰,119의 무전도 간혹 견인차나 장의업자가 가로채서 영업합니다.
예전 선임들 이야기로는 한참 한총련이 날뛸때 무전에 침입해서 별별욕을 다하고 기동대망을 먹통으로 만들기도 했답니다.
감청된후 식사추진차량이 도중에 털렸다는 황당한 이야기까지 +_+
북베트남군이 박격포탄 한발을 보급하기 위해서 사람이 등짐으로 개인식량 25Kg과 박격탄 2발을 약한달에 걸쳐서 폭격을 피해서 남쪽 사이공근교까지 지고 왔다고 합니다.
자신보다 10배이상의 화력과 보급력을 가진 적과 10명이 죽어가면서 1명의 적을 죽인 전쟁이 었습니다....
전경기동대의 식사추진차량을 털었다면 그거슨 반칙~! 입다... ㅋㅋㅋ^^
월남전에서 미군하고 한국군만 용감하게싸우고 월남군은 무기력한것으로 그동안알았는데-- 여기카페를알고나서 월남군이나 현지인으로구축된 산악족들도 월맹군들이두려워하는 존재라는것을알수있네요, 월남군지휘관이 직접 적의소굴로들어가 스스로 미끼가된다, 정말용감한군인입니다, 자신들보다 몇배나되는 적군의포위속에서도 용감하게 위치를사수하는 용감한 군인들----
얼마 뒤에, 북베트남에 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지원에 관한 글을 올릴 것인데, 꼭 한번 읽어 보십시오.
실화라는 것은..결코 영화나 드라마가 흉내낼수 없을 만큼 뭉클하고 비정하고 묵직한 감동이 있는거 같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이빨중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