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영어능통자를 하려면 얼마나 영어를 잘해야 하느냐"이다. 답답한 것은 영어는 시험을 보기 위한 기초적 조건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 조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어 잘한다고 무조건 능통자를 볼 수 있는게 아니며, 결국 승부는 2차 실력에 달려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럼 능통자의 영어실력에 대해 술해보면,
첫째, 학술내용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해야 한다. 2차 영어면접에서는 지나치게 학술적 내용은 다루지 않지만, 그래도 외교관의 기초적 소양이나 시각 등을 물어보는건 당연히 예상되겠다. 이때 상당히 세련된 영어를 구사하면서 설득력있는 논리를 펼치면 당연히 좋은 점수를 받는다. 머릿속에 하고싶은 말은 뱅뱅 도는데, 한국어가 먼저 나오고 영어는 뒷전이라면 곤란하다. "생각이 영어로 직결되어 말로 바로바로 튀어나오는 수준"이 돼야 한다.
둘째, 학술내용에 대한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해야 한다. 특히 논술에서는 어감과 주장과 선호와 시각과 찬반 등을 매우 미묘한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해야한다"와 "해야한다고들 한다"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과 논리와 논지가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고스란히 영어표현으로 옮겨져야 한다. 외국 학자들이 쓴 논문을 많이 읽어보라. 거기서 매끄러운 표현과 섬세한 어감을 살펴보고, 같은 수준은 불가능해도 최소한 흉내는 낼줄 알아야 한다. "생각이 영어로 직결되어 글이 바로바로 왜곡없이 흘러나오는 수준"이 돼야한다.
셋째, 말하고 글쓰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훨씬 설득력있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한국사람 중에도 한국어로 된 글을 정말 재미없고 두서없이 쓰는 사람이 있음을 생각해보고, 영어를 아무리 잘하더라도 답안을 쓰거나 말을 할 때도 재미있고 논리정연하게 전개하지 않으면 안됨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재주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보길.
넷째, 상기 조건을 갖추더라도 그건 큰의미가 없다. 영어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건 2차시험을 치르기 위한 "하나의 조건"을 갖춘 것에 불과하다. "나는 외국생활 오래 했으니 능통자로 시험봐야지"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오히려 "나는 2차 과목을 잘 치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대략 다섯배는 더 중요하다. 능통자의 2차 성적은 일반보다 오히려 높을 가능성이 큼에 유의하라.
거듭 말하지만, 영어는 결정적 요소가 아니라 기초적 요소이며, 비장의 카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갖고있는 공용화기일 뿐이다.
다음, 2차 영어시험에 대하여. 영어는 쓰기가 50점, 회화가 50점입니다. 2차 말하기 시험은 "영어"를 평가하는 것이지 다른 전문지식을 평가하는게 아닙니다. 가장 큰 초점은 역시 말하기 실력에 있습니다. 제 생각으론 '쓰기'보다는 '말하기'에서 큰 점수 차이가 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말하기가 쓰기보다 더 다이내믹하고 평가요소가 다양하거든요. 단적으로 '말하기'에서는 상대방과 직접적 육체적 접촉이 이뤄지죠.
제가 시험볼 때는 다음 질문들을 순서대로 받은걸로 기억하네요. (물론 영어로)
"본인 소개 좀 해보세요."
"본인의 어학실력을 말해주세요. (몇개 국어하는가 등)"
"왜 외교관이 되려고 합니까?"
"통일을 대비해서 가장 시급한 과제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FTA에 찬성하십니까?"
"인생의 좌우명이 무엇입니까?"
기타 등등...
분명한 것은 "말하기" 실력은 묻는 것이지 전문지식을 묻는게 아닙니다. 예컨대 FTA에 대한 견해를 물어봤으면 개괄적 수준에서 "유려한 영어를 사용하여" 답하면 되는 것이지, 영문과 교수님들을 앞에 앉혀두고 "자유무역은 후생삼각형을 증대시키며 전체적 효용은 증가하지만 국내 계층간 불평등한 배분의 문제가 발생합니다."는 식의 말을 하면 안되겠죠.
그냥 편하게 대화하듯이 말씀하세요. 우리가 흔히 "그 사람 말 참 잘한다"라고 할 때, 그 말하기 능력, 그게 필요한 겁니다. 단지 영어로...
그냥 FTA에 대해 좋은점 나쁜점 유의할점... 얘기를 하되 산만하게 이 얘기 저 얘기하지말고, 자신의 논점과 관점을 뚜렷이 드러내면서 그 결론을 향해 모든 말들을 이끌어가세요.
유려한 영어 이상으로 중요한건 말의 논리겠죠. 논리정연하게 자기 주장을 펼쳐야 됩니다. 아무리 발음과 문법과 어감을 잘 살리는 영어를 구사하더라도, 논리도 뒤죽박죽이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수없다면 좋은점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물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세우는게 중요합니다. FTA든 자유무역이든 한미동맹이든 통일이든 북한문제든 다자안보든 세력균형이든 뭐든... 찬성/반대 또는 비판/지지 또는 건의/개선 등등 자기가 하고싶은 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평소 공부할 때 자기 가치관을 세워야합니다. 교과서에서 배운대로의 뻔할 뻔자 답변만 하는 것도 좀 매력이 없고, 지나치게 튀기만 하고 타당성이 떨어지는 말만 하는 것도 보기 안좋고, 물어보는 질문마다 아무 생각이 없거나 이 답과 저 답이 모순되는 것도 문제가 크죠.
적당히 온건하고 개혁적이며 보수적이고 열정적인 답변이 좋습니다. 거기에 반드시 체화된 자기 가치관과 살짝 독창적인 경험 내지 견해가 양념처럼 덧붙여지면 좋겠지요.
...물론 너무 어린 나이에, 수험서 몇권 읽은 식견 가지고서 가치관을 급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더 우습겠죠. 교수님들 보시기에 어린 녀석이 벌써 머리는 굳고 마음은 닫혔으면 얼마나 같잖겠습니까.
말하기 시험은 기본적으로 교수님과의 대화입니다. 때로 교수님을 설득시킬 필요도 있고, 때로 따뜻한 교감을 나눌 필요도 있고, 때로 억지 또는 모욕(?)을 주면서 압박을 가할 때 부드럽게 응수할 필요도 있고, 때로 교수님 지적에 수긍하며 웃어줄 필요도 있고, 때로 젊은 예비 외교관의 열정으로 교수님을 감동시킬 필요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평소 자기 가치관이 바탕이 되고 영어 실력이 충분히 유려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며 대화하는 습관이 갖추어진다면... 무슨 암기 과목 식으로 말하기 시험을 준비할게 아니라, 시험당일 시험현장의 그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수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2차 영어 말하기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말해본다. 시험직전에 난 머릿속의 두뇌회로를 한국어에서 영어로 전환시키기 위해 한국말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하고, 모조리 영어만 사용했다. 영화와 뉴스를 수시간씩 쉬지않고 청취했고, 생각도 영어로 하고, 중얼중얼 혼잣말도 계속 영어로 했다. 내 영어에 묻은 된장을 모조리 닦아내고 버터를 발랐다.
물론, 2차 영어 말하기는 다른 2차시험의 맨마지막에 치러진다는 점에서, 사실상 준비할 여유가 별로 없기도 하다. 그러나 가능한 한도까지는 노력해보길.
그리고 교수님이 물어볼 질문들을 예상하고, '주제별 모범답안'을 작성하고 그것을 연습하는 분들도 있는데, 완전한 '답안지'를 만들고 그걸 외울 필요는 없을거 같고, 그냥 여러가지 다양한 주제가 나오면 '내 생각'이 무엇인지, '말할꺼리와 논지'는 무엇으로 할지를 머릿속으로 구상해놓아도 충분할거 같네요.
첫댓글 안녕하세요~영어능통자 전형은 많은 정보가 없어서 애먹고 있었는데..이 후기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근데 제가 43회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데요..아직도 쓰기50점 말하기50점으로 진행됩니까? 만약 그럴 경우 쓰기는 어떤식으로 나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