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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오래전 어느 밤
구름 한 점 없는 밤은 빨아들일 것 같은 어둠을 배경으로 품 안 가득히 별을 안았다. 그 속에서 안개처럼 희뿌연 별무리들이 은하수를 휘감고 돌았다. 거대한 하늘의 강은 어느 부분에서는 급류처럼 사방으로 빛을 뿌리며 휘몰아치다가도, 어느 곳에서는 얌전한 몇 가닥 선의 모습을 하고는 다소곳하게 내려앉곤 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하지만 별빛은 시리도록 차가웠고, 별의 강을 굽이치는 하얀 안개빛 별무리들은 탄식마저 얼리는 차가운 입김처럼 냉혹했다. 그리고 전투 직후 들판을 가득 메웠던 죽어가는 이들의 아우성들이 그 안에서 얼어붙어갔다. 아름답고도 차가운 밤이었다.
추념식을 준비하면서 가장 싫은 것 중 하나는 모든 것을 혼자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전장을 떠도는 죽음의 악취도, 부상당한 이들의 마지막 한숨도 여럿이 아닌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상황은 아무리 익숙해지려 해도 쉬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마지막 전투는 이틀 전에 끝났다. 영주들은 데이터 저장소에 대한 권한을 나누기로 합의하고 전투를 끝내기로 결정했다. 그들도 이런 추운 날씨에 시시한 규모의 데이터 저장소를 두고 전쟁을 계속하기는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최고재판소에는 별로 안 좋은 소식이겠지만 당분간 ‘토-우덴’ 지역에서 전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추념식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뭐 하는 거죠?”
그녀의 물음에 상대방 여자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쪽도?”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여자 옆에는 부상으로 마지막 한 숨을 몰아 쉬는 ‘병사’가 누워 있었다. 배에 난 상처에서 나온 피가 옷자락에 말라붙어 피딱지가 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다시 새로운 피가 조금씩 베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여자는 병사의 상처와 그 상처에서 나는 악취에도 상관 없이 신음하는 병사의 입가에 물을 가져갔다. 바짝 마른 입술이 물을 찾아 달싹였다. 물을 마시는 것이지, 물을 흘리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새긴 했지만 어쨌든 죽어가는 병사는 만족한 듯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여자의 얼굴과 그 뒤에 펼쳐진 밤 하늘 속 가득히 자리잡은 별의 강을 번갈아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마치 자신의 영혼을 그 강 속에 던지려는 듯한 깊은 시선임을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여자는 병사가 숨을 거두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병사 주변에 널린 상자와 물품들을 이리저리 뒤졌다. 그녀가 보고 있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버려진 가방을 뒤져 이것저것 꺼내 보더니 별다른 것을 찾지 못했는지 가방을 –휙- 하고 옆쪽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부서진 군수품 상자들로 몸을 돌려, 상자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은 없었는지 이내 흥미를 잃고 돌아섰다. 그제서야 그녀가 아직도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눈치챈 듯 시시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별 거 없네요. 여긴 그쪽한테 양보할게요.”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죠?”
그녀가 다시 묻자 여자의 얼굴에서 시시하다는 표정이 조금 사라졌다. 약간은 흥미롭다는 눈빛을 빛내며 여자가 말했다.
“물건 뒤지러 온 것 아니었어요?”
“여긴 적이든 아군이든,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출입 금지 지역이에요. 당신 발각되면 사형이란 것 모르시나요?”
그녀의 반문에 여자가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채고 말을 재고 있는 듯한 기색이었다. 여자 뒤에서 불탄 나뭇가지에 묶여 있던 노새가 작게 발굽을 굴렀다. 노새의 등에는 짐이 실려 있었다. 그녀가 추념식을 열기 위해 등에 진 짐보다 훨씬 큰 짐이었다.
“사형인 것은 잘 아는데, 여기서 그걸 일깨워주는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어요. 다들 죽을 생각보다는 살 생각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요……”
여자는 말을 잠시 멈추고는 탐색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그쪽은 군인은 아닌 것 같은데……여기 왜 왔는지 물어봐도 돼요?”
“난 순례자입니다. 내겐 전장의 출입금지 규칙 따윈 적용되지 않아요.”
추념식을 열러 왔다는 말은 뺐다. 추념식. 일명 수확의 밤이 오늘 있을 것이란 것을 알려줘 봤자 좋을 것은 없었다.
“순례자? 순례자님이셨어요?”
그녀의 대답에 눈앞의 여자가 –피식- 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안심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다행이네, 난 또 다른 동업자인 줄 알고 긴장했네……이봐요, 순례자님. 여긴 당신이 추념식을 열어줄 돈 많은 귀족들도 없고, 그나마 죽은 인간인 군인들도 모조리 가난뱅이들이구요. 그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추념식을 열어주려고 오신 건 아니겠죠? ‘아인’인 병사들은 순례자님의 추념식조차 받을 자격이 없으니 아예 빼구요. 순례자님이 왜 여기 계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좀 봐주세요. 난 그저 밀린 외상값도 떼먹고 제 멋대로 죽어버린 군인들한테서 후불이라도 돈 좀 건져볼까 하는 가난하고 행상이라구요. 그러니까 제발 부탁인데, 나 못 본 척 해주고 그냥 가세요. 어차피 며칠 후면 전장분해탄 떨어져서 다 싸그리 먼지가 될 텐데 밀린 돈 좀 챙긴다고 문제될 건 없잖아요? 안 그래도 이번 전쟁이 빨리 끝나서 벌이도 안 좋은데.”
“돈 좀 건지는 것 치고는 손이 많이 가는 듯 한데요?”
그녀가 방금 숨을 거둔 병사를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여자는 그녀의 손짓에 병사를 바라보고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물컵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생각하던 여자가 계면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버릇이에요. 밀린 외상값 값아 줘서 고맙다는 마지막 인사쯤으로 이해해 주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죽은 병사를 바라보는 여자의 입가에서 씁쓸한 연민이 느껴졌다. 여자는 이내 표정을 풀고는 가볍게 말하면서 발을 옮겼다.
“영주 아들이 이번 전쟁에서 죽었어요. 추념식을 열어줄 순례자를 찾을지도 몰라요. 여기서 저기 북쪽 방향으로 하루 나절 거리에 아직 군대가 주둔하고 있으니 거기 가시면 좋을 것 같네요.”
여자와 노새의 발걸음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별의 강이 새벽빛에 스러지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그렇다고 여자의 밀린 외상값을 다 채울 정도로 충분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여자는 전장에 버려진 각종 물품들에서 값이 될만한 것을 챙기다가도, 아직 미처 숨이 끊어지지 않은 군인이나 병사를 발견하면 그들에게 마지막 선물로 물을 한 모금씩 먹여주었다. 때로는 피투성이가 된 그들의 얼굴을 작은 손수건으로 닦아주기도 했다. 물론, 그 다음에 그들의 품을 뒤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보기에는 품을 뒤지는 것은 죽어가는 이들에게서 값나가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마지막 물 한 잔의 값을 잊지 않으려는 형식적인 행동에 불과했다. 오히려 물을 주고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목적인 듯한 행동. 그건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다. 생명의 스러짐을 애도하고 그리고 그 추모의 값을 챙기는, 마치 추념식과도 같은 의식이었다.
“언제까지 여길 돌아다닐 거죠?”
그녀의 물음에 앞서걷던 여자가 태평한 어조로 대답했다.
“내일까지만요. 내일 모레면 여긴 전장분해탄이 떨어질 테니 안 죽으려면 내일 저녁에는 떠나야 해요.”
“전장분해탄은 내일 오후에 떨어질 거에요. 영주에게 들었어요.”
그녀의 지적에 여자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그리고 말을 들을 수 없는 노새가 느릿느릿 여자 곁으로 다가가 설 때까지 한동안 여자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노새가 여자 옆에 서서 잠시 투렛질을 하자 그제서야 여자는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그럼 새벽까지 최대한 챙길 수 있는 것은 챙겨야겠네요. 저 좀 빨리 걸을 거니까 계속 따라오실 생각이시라면 순례자님도 힘 좀 들 거에요.”
여자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작게 가로저었다. 동이 트고 여자가 떠나간 다음에 추념식을 열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밖에는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점점 멀어지는 여자와 노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전장의 죽은 이들을 뒤지는 행상의 뒷모습에서 익숙한 향기가 풍겼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리운 향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돌을 쌓고, 등짐에서 추념식에 필요한 물품들을 꺼내 조정하고 배치하는 데 꽤 시간이 흘렀다. 머리 위에서 빛나던 별의 강은 어느새 반쯤 하늘 아래로 넘어가 있었다. 그녀는 저 하늘의 강으로 영혼들을 돌려보내는 대신, 로크랜드의 정보 순환 시스템이라는 인간이 만든 강 속으로 밀어 넣는 의식을 묵묵히 준비했다.
멀리서 여자가 다시 노새를 몰고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이제 여자를 살릴 방법은 없었다. ‘스스로 일어선 자’가 아닌 이상, 여자는 오늘 추념식의 밤에서 죽어간 이들과 함께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녀는 충분히 기회를 줬고, 그걸 거부한 것은 여자 쪽이었다. 물론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수확의 밤’을 여자에게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여자를 따라오는 노새에 실린 짐을 보니 아까와는조금 달랐다. 큰 꾸러미 대신에 사람이 하나 실려 있었다. ‘아인’인 병사는 아닌 듯 했고, 부상당한 군인인 것 같았다.
“물건 챙기는 것 그만뒀는가보죠?”
그녀가 묻자 여자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는 살짝 웃었다. 그리고는 노새 위에 실린 남자를 가리켰다.
“더 좋은 것을 챙겼어요. 부상당한 군인. 살아있는지 미처 몰랐나봐요.”
그녀는 여자의 말에 흥미가 생겨 노새 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아직 상처가 깊지는 않았지만 전장에 오래 버려졌던 탓인지 정신을 잃은 채였다. 아직 젊은이였다.
“왜 이런 짓을 하죠? 행상이잖아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요? 이 사람 데려가면 전장에 갔다온 게 들킬 수도 있는데.”
그녀의 말에 여자는 대수롭지 않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말씀 드렸잖아요? 밀린 외상값 받는 것이라고. 순례자님의 추념식처럼 벌이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돈이 돼요. 산다는 게 다 그래요. 아인이니, 인간이니 구분하다간 굶어 죽기 딱 좋아요. 전장에서 저에겐 하나만 있으면 돼요. 살았는지 죽었는지요. 살아 있으면 살려서 돈을 벌고, 죽었으면 그 품을 뒤져요. 살아 있으면 기뻐해주고, 죽었으면 슬퍼해줘요. 살아 있으면 앞으로 더 행복해질 날을 기대할 수 있으니 도와주고, 죽었으면 더 불행해질 날이 이 세상에서는 없을 테니 가는 길을 애도해줘요. 그게 ‘인간’이든 ‘아인’이든간에요. 순례자님은 뭐라 하실지 모르겠지만 그게 이 로크랜드를 사는 제 방식이에요.”
여자는 떠나갔다.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느적거리지도 않는 걸음걸이로 노새를 몰고 떠나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설 후인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긍정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발자국을 내딛으며 한 발 한 발 이 땅을 긍정하는 표시를 지면에 남기고 있었다. 기쁨도 슬픔도 모두 여자 자신의 것이었다. 결코 하늘 바깥에 두고 온 세계를 그리며 탄식하는 화석같이 삭은 푸념 따위는 없었다. 땅에 깊게 자신의 발자욱을 새기는 여자의 등을 보면서, 어쩌면 저 여자야말로 추념식이니, 궤도엘리베이터이니 하는 것들과는 상관 없이 진정한 스스로 일어선 자이며, 이 땅을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밟고 살아가는 이일지도 모른다고 설 후인은 생각했다.
규칙적이긴 하나 거친 흔들림에 ‘파-두난’ 십인장은 잠시 정신을 차렸다. 부상을 입고 쓰러진 땅바닥이 마지막 기억이었던 관계로 머리속이 혼란스러웠다. 상처에서는 여전히 지독한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출혈과 추위 탓에 목소리마저 얼어붙어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귓가에 소리가 들려왔다. 노래 소리였다. 나직한 노래였지만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노래 소리에 정신을 붙들어메어 간신히 눈을 뜰 수 있었다. 무엇인가에 실려가는 듯 하늘은 규칙적으로 흔들리며 별의 강을 눈앞에서 아른거리게 했다. 고개를 들려고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조금 힘을 써보려고 하다가 파-두난은 이내 포기하고 그저 귀와 눈에 남은 정신을 모았다. 이상한 광경이었다. 마치 안개 같은 희뿌연 무엇인가가 하늘의 강으로 노래 소리에 맞추어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파-두난은 자신이 누워 있던 전장이 다시 눈앞에 나타나는 것 처럼 느꼈다. 수많은 영혼들이 귓가의 노래에 맞추어 하늘로 올랐다. 현실과 환상의 어스레한 경계에 서서 파 두난은 정신을 잃지 않으려 더더욱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지만 노래는 그의 머리 안쪽에 깊은 자욱을 남기면서도 계속 정신을 붙들어 매주진 못했다. 파-두난은 힘없이 저항하다가 노래의 가락 속에서 무너지듯 다시 정신을 놓았다. 너울거리는 영혼들은 말이 없었다. 하늘에 걸린 별의 강이 노래와 어울려 영혼들을 품에 안았다.
여자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본 순례자에게서 어딘지 모를 익숙함을 느껴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 심어놨던 노래가 문득 들려와서였을지도 몰랐다. 정말로, 멀리 자그마한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별빛을 받은 순례자의 모습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실제로 들리는 것인지, 아니면 들린다고 느끼는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지금 들려오는 노래는 여자가 아쉬워하던 마지막 조각을 채워주었다. 아주 오래 전, 여자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시절, 이름 모를 순례자가 들려주었던 노래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래고 은은한 향기 같은 노래이자 빠진 부분을 채우지 못해 못내 아쉬워하던 노래였다. 그 마지막 조각을 비로소 채웠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여자는 나지막하게 완성된 노래를 불러보았다. 입 안에서 노래가 마치 향기처럼 감돌았다. 그리고 그 향기에 취한 듯 주위의 공기들이 아직 지지 않은 별의 강을 향해 부드럽게 휘돌며 올라갔다.
“돌아가면 ‘숨’에게 가르쳐주어야겠다.”
여자는 아직 천막에서 꿈나라에 가 있을 어린 딸을 생각하면서 중얼거렸다.
조용한 밤이 모든 생명을 위한 추념식의 노래를 들으며, 별빛 아래에서 저물어갔다.
대지를 딛고 여명이 밝아왔다.
20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