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후배가 보내 준 칡즙 한 박스 중에서,
오늘 마지막 남은 한 봉을 컵에 따라 마시다가,
어릴 적 칡을 캐던 생각이 문득 났다
칡은 봄에 캐야 겨우내 땅 속에서 삭아서
연하고 향긋했다
그리고 동그랗게 알이 찬 알칙이어야 맛있고
진흙이 아닌 모래땅에서 캔 칡이어야 맛있는데
아직 다 안 녹은 땅에서 칡을 캐는 것은
어린 아이들에겐 좀 무리한 일이기에,
우린 형들의 심부름을 했다
괭이 달라고 하면 괭이 집어주고
삽 달라고 하면 삽을 집어주면서
달콤한 칡의 뿌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탄성을 지르는 게 형들에 대한 예의였다
그렇게 힘들여 캔 칡을 자르고 쪼개서 입에 넣고
쭉쭉 빨다 보면 입 주위가 시커멓게 되고
입었던 옷들은 다 흙투성이가 되곤 했지만
흙속에 묻혀있던 생명을 찾아냈다는 성취감은
우리를 뿌듯하게 만들곤 했었다
칡뿌리 한 입 먹기가 그렇게 힘들던 때를 생각하면,
깨끗하게 걸러진 칡즙을 거저 먹고 있는 오늘날은,
잘 살아도 너무 잘 사는 세상이다
내가 이런 행복과 평화를 누릴 가치가 있는지,
그걸 생각하면 자꾸 겸손해진다
이건 반칙에 가까울 정도로 행복한 거다
첫댓글 "왕초"님은 참 福 많이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 귀한 칙즙을 보내주는 후배님이 계시니 말입니다.
그간 살아오며 받기보다 주길 많이 하신 결과 아닐는지요 ?
맑고 향기로운 나날이시길 祈願합니다.
아휴, 부끄럽습니다
베푼다기보다 그저 주고 받습니다
좋은 시선으로 늘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위정자가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아름다운 삶으로 만드는 것이기에,
함께 아름다운 삶으로 좋은 세상을 열어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