絶交
오늘아침
마당가 늙은 감나무들마저 그예
한꺼번에 절교를 선언 하고 다 떠났다
지난 밤 어지럽던 꿈
성큼성큼 멀어지는 뒷모습의 단호하고 차가움
그들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어렴풋 짐작 해 오던 모호한 이유들
퇴락한 빈집 마당 한구석에 던져진 낡은 가구 한 점처럼
나는 볼품없이 폐기 되었다
오래된 친구가 느닷없이 화를 내거나
짧은 편지를 주고받던 몇몇 여인들에게서
시나브로 잊혀져가는 것쯤이야
대수롭지도 않은 일상이었지만
결국 그 버려짐의 절정은
연모하던 나무들에게서 버림을 받는 것
이제 어디에 기대어 서서 울 것인가
이것은 내 생애 마지막 절교의 편지이다
버려짐에서 새삼 무슨 이유를 찾을까
비로소 가슴을 치며 검은 피를 토하는 아픔
그 고통으로 외로움을 이겨야하는
듣던 대로 가을은 무서운 것
다 나의 탓 아니겠는 가
나의 탓이다
나의 탓인 것 어디 이뿐이랴
모두가 나를 떠난 오늘 아침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쩌릿쩌릿한 전율
등을 대고 기댈 곳이 없으니
오히려 텅 빈 하늘이 보인 다
다들 잘 가시오
나는 이제 갈 곳이 없소이다
희미한 여운으로 남은 여름의 발자국 소리
몇 잎씩 떼 지어 구르는 낙엽들과 함께
꽃도 열매도 없고 이름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한 그루 나무로
이 무서운 계절에 남아있겠소
2001-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