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스토리문학 2016년 겨울호(통권97호)
고래의 지느러미가 잘린 일에 대해선 외 1편
조희진
지느러미가 잘려 나간 당신의 옆구리에 대해 닫힌 입이 더 굳건해지는 일요일에 대해
담배꽁초 까맣게 타버린 부분에 대해
라이터만 들이 댈까요
불을 다시 붙여볼까요
더욱 모호해진 나는,
빈 바구니를 옆에 끼고 사랑하는 나의 개 해피와 함께 마트로 갑니다
내가 기르는 해피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합니다
멈춰서,
나를 앞서 가던 개는 가던 길을 멈추고 쫄랑쫄랑 되돌아옵니다
뜨거운 보도블럭 작은 웅덩이에는 벌레들이 웅크린채 말라가고 있습니다
껌 딱지에 들러붙은 시커먼 햇볕들은 느슨해져 고스란히 붉어가고 있습니다
‘밀착’이라는 단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마트 이층으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트는 다중의 사람들과 해피와 나를
한꺼번에 감아올립니다
각자의 가능성으로 각각의 기도를 다룹니다
조용한 대화
눈으로 너의 말들을 잘라 뒤통수로 흘려보낸다
빛 속을 빠져나온 밤 고양이가 늑골 안에 울음을 감추고 눈빛만 허둥댄다
덤불 안, 낙숫물 떨어지던 소리들이 얼어붙어 잘디잔 꽃 입들을 게워낸다
잘디잔 입들을 더 잘게 쪼개어 갇혀 있는 고양이를 불러낸다
안 무서워, 이리와.
덜 마른 주방 칼날에 걸려든 달빛의 단면들이 매끄럽게 빛난다
한 개의 눈이 뜬 수억 만개의 달빛 퍼포먼스!
자성을 가진 단어들이 자유롭게 흩어져 밤하늘에 박힌다
뒤통수로 흘려보냈던 말들이 방사된 달빛으로 들어와 다시 뜬눈이 된다
조희진
본명은 조희자
2013 <시산맥> 등단
첫댓글 조용한 대화에 고개 끄덕이며~~
제각기 다른 밀착에 대하여... 감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