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중국왕조의 외교사를 획일적으로 그 성격을 규정시키는데 바로 조공책봉주의인데
자국이 고구려보다 강대하여 고구려와의 외교에서 자국이 우위에 서서 고구려의 조공을 받고 고구려왕을 책봉 했다고
하는 중국 사료의 고구려 중국 외교 기록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하여 대다수 학자들도 고구려 중국 외교를 논할때에 이런 용어들을 많이 사용하고 합니다
그러나 고구려가 자국보다 아래의 하위적인 위치로 조공외교를 했다는 중국 사료의 기록이 과연 사실일까요
고구려가 중국 사료의 기록대로 조공책봉이나 받는 국가였다면 어찌하여 수백년간 중국과 전쟁하여 중국영토를
공격하거나 점령하는 공세적인 외교를 취할수가 있으며 또한 자국이 천손이라는 천하중심주의라는 국가관을 추구할수가 있는지
이런 고구려의 사실들을 미루어 본다면 중국 사료의 고구려 조공 기록이 객관적인 신뢰성을 가질수가 있는지 의심스럽고
고구려 당대의 고고학적 자료에서도 중국과의 조공 외교에 대한 고구려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을 것을 보면
중국 사료의 기록이 일방적인 성격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수가 있지요
그리고 중국 사료의 고구려 조공외교 기록을 비판적 여과없이 맹목적으로 신뢰한다면 그런 동일한 기준으로 일본서기에 백제 신라 가야 등 한반도 국가들이 자국에게 조공 바쳤다는 일본측의 기록이 사실이라고 보는 결과를 낳을수가 있지요
또한 19세기 근대에 서구 열강이 중국과의 외교에서 자국을 능가하는 서양 국가들이 자국에게 조공 바쳤다고 일방적으로 기술하는게 중국이라 이런 중국 사료의 외교 기록을 무작정 신뢰할수가 없는 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