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정(1648년~1717년)은 1696년 황해도(해서 지방)으로 암행어사를 다녀온 인물이다.
그가 암행어사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60여일 동안 겪었던 일들을 기록한 것이 [해서암행일기]다.
원문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원문을 읽은 것은 아니고,
윤세순 번역으로 서해문집에서 200쪽도 안되는 가벼운 분량으로 나온 것을 읽었다.
박문수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고,
단지 춘향전에서 나오는 '암행어사 출두요!"로 대표되는 이미지만으로 기억되는 암행어사
이 책을 읽으면 막연했던 암행어사의 실체는 물론, 조선시대 내부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박래겸의 [서수일기]도 있지만, 먼저 박만정의 [해서암행일기]를 선택해 읽은 것은
박만정이 암행한 1696년은 조선에 을병대기근(1695~1696)이 들었던 때이기 때문이다.
경신대기근(1670~1671)과 더불어 수많은 아사자를 냈던 최악의 상황에서 기근의 피해가 극심했던
해서지방을 암행한 박만정의 눈을 통해 그 때 조선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식량이 부족해 손님을 대접하기 조차 어려웠던 사람들이지만, 이 마을을 통과하면 잠을 잘 수 없다는
안타까운 박만정 일행에서 어쩔 수 없이 방을 내준 조선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내일은 굶주릴 수 밖에 없어 친척들에게 식량을 꾸러 다니거가, 정부의 구휼미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흉년이 드니 화폐 유통도 제대로 될 수가 없어, 박만정도 식량을 갖고 다녀야 했다.
잠자리를 제공한 집에서 양식을 꿰달라고 박만정에게 요청하지만, 박만정도 본인도 궁핍하다며 거절가고 대신 조기3마리를
꺼내 준 사연을 접하기도 했다. 당시 암행어사는 풍족한 돈을 받고 암행한 것이 아니라, 겨우 며칠 여행할 경비만을 받고
여행했다. 그래서 암행하다가 친구들에게 곡식을 빌리고 암행하다가, 객사에 들어서야 비로서 제대로 먹고 마셨다.
그에 비한다면 요즘 공무원들은 너무 편하게 출장을 다니는 셈이다.
그가 암행한 지역의 수령들에 대해 서게를 올린 것을 보면,
연안부사, 안악군수, 문화현감, 광산만호, 황해감사 등은 백성들의 진휼에 힘쓰고, 백성을 편하게 해주었지만,
백천군수, 신계현령, 송화현감, 소강첨사, 산산 첨사, 신당 만호 등은 가혹하게 세금을 걷고, 구휼활동도 소홀히 하고,
우금령을 핑계로 백정들을 협박해 돈을 뜯고, 아전을 동원해 자신의 선정비를 세우도록 하면서 돈을 걷고,
기생에 빠져 해주까지 들락거리다 보니 가는 길에 역참의 사람과 말을 힘들게 만들고, 부하들에게 거친 벼 한 섬주고 백미 여섯말 가져오라며 삥(?)듣고, 한마리도 일진, 조폭 같은 놈들이 절반 가량 되었다.
암행어사가 한 고을에 출두하자, 이웃 지역에서 미리 소식을 듣고 어사에게 대접한다며 백성들에게 말라버린 시냇가에서 쏘가리를
잡아오라고 시키는 관리들까지 있었다. 박만정 일행은 홍문관서리 1명과 역졸 4명. 가노 1명 총 6명에 불과했다. 춘향전처럼 출두해서 사또를 때려잡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박만정은 비리 관리 가운데 일부에게는 수령 업무를 정지시켰지만, 당장 물고를 내고 혼내는 모습은 없었다.
해서암행일기를 읽다보면, 당시 사람들이 군역과 환곡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교생으로 있다가 낙제해서 양반임에도 군역을 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박만정에게 자신이 양반임에도 억울하게 군역을 한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1627년 정묘호란 직전에 양반 자식들은 향교, 사부학당에서 낙제해서 군역에 가도록 하는 것을 막는 법이 통과되었다.-> 양반이 군대 안가도록 만든 법) 이런 사레를 보면, 실제로는 기록과 달리 법 집행에서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도 있다.
박만정의 해서암행일기는 당시 백성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자들이 박만정 일행에게 사납게 소리친다거나, 홀로된 형수가 손님을 대접할 수 없자, 시동생이 나서서 박만정 일행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모습, 관상을 잘 보는 사람, 밤에 너무 똥을 싸는 손자 때문에 손님을 맞이하기 어렵다는 집, 52세와 51세 부부가 뒤늦게 아이를 본 집, 황해도 앞바다에 황당선(중국배)의 불법 조업 문제 등 다양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그의 일기에서 드러난다.
기록문화만큼은 정말 훌륭했던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남긴 일기를 통해 조선시대의 속살을 들여다보시기를 권합니다.
첫댓글 서평만으로도 얼마나 좋고 중요한 자료인지 알수 있어서 좋네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