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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려 토론방 공민왕암살의 원인은 토사구팽에 대한 불안감에서
선구자 추천 0 조회 58 24.03.26 21:51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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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3.27 21:52

    첫댓글 왕조 국가에서 최고 지존인 국왕을 암살하는건 자신과 가문 구성원들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 자제위들이 토사구팽에 대한 불안감으로 왕을 암살했다는건 현실성이 희박할수밖에 없지요 왕이 살해되면 국왕의 주변 시종들인 내시 궁녀 호위 군사들은 당장 참수감인데 자제위가 거기에서 무사할수가 있겠나요 그렇게 불안하면 궁궐을 탈출해서 지방 초야에 숨으면 그만이지 게다가 국왕 주변에 호위병들이 있는데 왕을 살해 하려다 호위병들에게 먼저 저승갈 일을 섣불리 할수가 있습니까? 고려사의 기록대로 동성애 집단인 자제위들이 어떻게 무기 소지가 금지된 궁중에서 무기를 갖고서 왕의 처소에 가서 살해할수가 있는지요 게다가 왕 주변 처소에 호위병들이 둘러 쳐져 있을 것을 어떻게 뚫고서 살해할수가 있는지요


    그럼으로 범인은 자제위들이 아니라 권문세족들이라는 설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중국 사료 명사에서 이인임이 공민왕을 시해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원사에서는 우왕 즉위후 집권한 세력들에게 공민왕을 죽인 죄를 용서한다는 외교적인 통보를 한 기록을 한것만 봐도

    공민왕 암살이 친원파들이나 권문세족들에게 좌우되었을 것이지요

  • 작성자 24.03.27 22:24

    자제위가 동성애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라는 것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는 바이고 그에 따라 자제위는 왕의 호위무사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자제위가 권문세족들일 가능성이 자연 높아지는 것이죠.

  • 작성자 24.03.27 22:26

    이인임이 공민왕을 시해했다라는 것에 대해서 이 말이 신빙성이 있스려면 조선왕조설립후 편찬된 사서에서는 확실히 이인임을 공민왕시해범으로 기록해야 정상입니다. 이인임은 최영과 이성계에 의해서 숙청되었고 신진사대부들 입장에서도 사이가 나빴기에 명나라측 기록이 그리되었다면 당연히 이인임을 확실히 사서에서 공민왕 살해범으로 기록해야 정상입니다. 사이가 나빴던 정적관계라면 없는 혐의도 뒤집어 씌어서 기록을 하는 경우도 적지않은데 명나라측 기록에서부터 그런 근거가 있는 이상 고려사기록에 안들어가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 24.03.29 20:49

    자제위가 사료에 나온 동성애 집단이 아닌 호위 군사 집단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러나 사료에서는 자제위가 호위 군대라는 구체적 단서가 나오지 않아 자제위가 군사 집단이라고 단정짓는건 신중해야 될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인임이 명나라와 사이가 안좋은 인물이라 명이 이인임에 악감정으로 그의 시해를 날조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러나 이인임이 직접 시해에 가담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시해 세력들과 공조하는 형태로 묵인 방조했을 가능성이
    크지요 특히 시해의 핵심 주범인 자제위 홍륜은 공민왕의 모친 명덕태후의 조카 증손자라 사료 기록대로 홍륜의 범행을 진짜로 본다면 홍륜이 국왕 시해라는 엄청난 일을 자신의 증고모 할머니이자 궁중 안 최고어른인 명덕태후와 상의 없이 했을까요

    게다가 시해 당시 명덕태후가 보인 태도도 이상해서 살인 현장에 와서 참혹하게 살해된 아들의 시신을 목격하고도
    충격을 받아 오열하는 모습도 없이 차분하게 국왕인 아들의 사망을 숨기라고 엄명을 내리고 범인 색출 지시를 내리지 않은채 평소처럼 하라고 일하라고 하는 등의 아들인 국왕의 모친인 태후답지 않게 남의 일처럼 취급했지요 국왕이 사망할시에 태후가 모든 것을 지휘하는게 관행이니까요

  • 작성자 24.03.27 22:29

    이인임세력측에서 공민왕을 시해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래야 할 동기가 있서야 합니다. 이인임이 공민왕에 의해서 정치적으로 불리한 탄압을 받았다라거나 하는 상황에 몰려야 하지만 당시 이인임은 그런 상태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 작성자 24.03.27 22:35

    당장에 공민왕에 의해서 손해를 보고 숙청이 된 친원파들이라면 기씨일당이 대표적이겠죠. 헌데 이인임을 친원파라고 분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씨일당과 같은 부류라고 볼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리고 이인임이 신진사대부와 대립적입장을 보인것도 정권을 잡고 난 후의 상황이지 공민왕시절에는 기씨일당척결 및 성균관 신진사대부육성에 공로가 있었습니다. 이런 정황을 볼적에 공민왕과 척을 지고 감정의 골을 가졌다라는 것은 납득할수가 없습니다.

  • 작성자 24.03.27 22:37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자제위는 동성애를 목적으로 한 집단이 아닌 호위무사집단으로 설령 동성애가 목적이라고는 해도 우선 표현적으로는 호위무사의 목적을 지닌것이 분명하다고 보고 이들 입장에서도 자신들이 언젠가는 김용과 신돈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가진 결과가 공민왕 암살로 나타났다라고 봅니다.

  • 24.03.29 21:13

    이인임이 공민왕에 의해 승진하여 정치적으로 부상한 것은 맞지만 그러나 우왕의 유모 장씨가 우왕 후견인으로 이인임을 견제하여 대립하려고 한 정황을 보면 우왕의 유모 장씨도 공민왕에게 발탁되어 이인임 견제용으로 쓰여졌을 가능성도 있지요 공민왕도 이인임을 100%믿지 못하여 그래서 우왕의 유모 장씨에게 후견을 부탁한게 아닙니까? 우왕의 유모 장씨가 정치에 나서서 이인임 등 거대 권력자들과 싸울수 있는 위치 자신감을 가진 것도 선왕 공민왕의 지명 부탁 때문이었지요

    장씨를 우왕의 유모로 삼은게 공민왕이니까요 유모 임명권은 국왕에게 있으니 그래서 이인임도 양다리 저울질을 한것이고
    이인임은 집권후에 공민왕 이전의 친원 외교로 회귀하려는 모습을 보여 명과 마찰을 빚었고 이인임의 친원 성향은 이인임의 당숙부 이승경이 친원파였기에 이승경의 영향을 받아 기철같은 부원파들은 아니라도 기본적으로 친원주의적 입장을 갖고 있었지요

    그리고 자제위들이 호위 무장 집단이었다면 단순히 공민왕 같은 국왕 1명만 죽이고도 끝나지 않을 문제라
    궁중을 수비하는 다른 금군들과의 전투가 불가피 하여 그 흔적이 사료에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제위 체포 당시 이들이 자신들을 체포하려

  • 24.03.29 21:19

    는 금군들과 궁중내에 피비린내 하는 전투를 벌였다는 흔적이 사료에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자제위들이 호위 군사집단이라고 보기가 어려운게 이런 점들이지요 자신들을 체포하여 처형하려는 진압군에 전투 한번 안하고 붙잡히는게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는 이야기라고 있는지요 왕을 시해한 중범죄 집단이 된 이상 눈에 뵈는게 없는 그들이 왜 진압군에게 저항한번 못해보고 쉽게 체포를 당했나요

    바로 이점이 자제위 무장설에 반대 근거로 자리매김할수밖에 없지요 또한 자제위들이 시해와 무관했다는 근거로
    작용할수 있는게 이런 부분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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