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사람들은
이성적인 부분이 잘못되면 큰 일 날 것 처럼 얘기하면서도,
감정적인 부분이 이상하면 뭐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지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도 자녀와의 유대감을 쌓는데는 별다른 무리가 없습니다.
부모 역할을 충분히 해 낼 수 있단 말이죠.
반면, 감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똑똑하고 부자라한들,
자녀와의 애착 형성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결과적으로는, 가족 관계에서 많은 불혐화음을 일으키면서 살아가게 되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필수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감정지능이나 공감능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겁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고 악惡한 사람이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는 거에요.
단지,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문제가 생길 뿐,
폭력성이나 공격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비록 공감능력이 없더라도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감능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무조건 유리하지만도 않습니다.
공감능력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불편한 진실이란 과연 무엇일까?
지나치다와 뛰어나다의 차이
어느날 자공이 공자에게
사와 상은 어느 쪽이 어집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사는 지나치고 상은 미치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럼 사가 낫단 말씀이십니까? 하고 반문하자,
공자 왈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과유불급)
공감은
성격의 5대 요인인 BIG 5 중
우호성을 구성하는 하위요인으로써,
타고나는 것이며, 후천적으로 습득하기 힘든 성질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도 공감의 사전적 의미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설왕설래가 많은데,
저는 공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공감이란?
상대방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복붙'해서 그대로 나에게 옮겨 오는 것
예를 들어,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절대로 남을 해친다거나 괴롭힐 수 없습니다.
왜? 어째서??
내가 괴롭히고 있는 상대방의 감정이 나에게 오롯이 복붙되기 때문이에요.
내가 누군가의 몸에 상처를 낼 때마다 내 몸에도 동일한 상처가 생겨난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러면 나는 내가 아픈 게 싫어서라도 절대로 남을 공격하지 않겠죠.
똑같습니다.
공감능력은 상대방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낄 줄 아는 일종의 정신능력이며,
이것은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였습니다.
다름아닌 학습과 협동 측면에서,
독버섯을 먹고 고통에 진저리치는 동료에게 공감하는 것은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혐오식품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였고,
동료의 고통이 내 것처럼 느껴지기에, 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동료를 도울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던 겁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단 우리 선조들에게
높은 공감능력이란 "뛰어남"이었습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우수하게 학습할 수 있었고,
위험에 처한 동료들을 마치 내 일처럼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높은 공감능력이 현대에도 여전히 뛰어난 자질일까?
우리 선조들은 열악했지만,
단순한 그리고 주변인들이라고 해 봐야 친인척 몇 명 정도인 심플한 삶을 살았습니다.
애초에 여기저기 공감할 여지가 많은 환경이 아니었단 거죠.
하지만 현대사회는 복잡다단하고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수도
구석기 때에 비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시대입니다.
과거에는 공감할 일이 한 달에 10번 정도였고
그게 나에게 별 무리없이 효과적이었다면,
현대사회는 공감할 일이, 공감해야만 하는 일이 하루에도 10번 이상이요,
이렇게 타인의 수많은 감정들이 내 내면에 진득허니 누적되면서
결국에는 정신적, 정서적인 번아웃을 일으키게 되는 구조인 겁니다.
공감능력이 높은 현대인이 줄빠따를 맞는데 마지막 서른번째 차례라고 상상해 봅시다.
첫번째 친구부터 너무 아프게 맞는데, 마치 내가 맞은 것 같은 정신적 데미지를 입어요.
이걸 내가 물리적으로 맞게 될 때까지, 도합 29번의 정신적 데미지를 입게 되는 시스템인 겁니다.
타냐 싱어(신경과학자)와 매튜 리카드(생물학자)의 유명한 실험에서,
실험 참여자들은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상상하면서 그들에게 공감해보라는 지시사항을 받았고
이 과정동안 그들의 뇌를 FMRI로 스캔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① 스트레스 수준 증가
② 육체적/정신적 탈진으로 인한 번아웃 수준 증가,
③ 번아웃으로 인한 자기 통제력 수준 감소
등의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이건 뭐냐?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이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되면,
고통받는 타인들의 감정이 여과없이 나에게 복붙되면서,
내 스트레스에 플러스
다른 사람들의 스트레스와 고통까지 나를 짓누르게 되고
그 결과, 번아웃된 채로 뻥하고 폭발해 버린다는 겁니다.
(ex. 짜증 분노 폭발, 우울증 등)
공감능력이 높아서 오히려 멘탈이 붕괴되고 자기통제에 실패하게 된다는 거에요.
높은 공감능력이 현대사회에서는 과유불급이 되어 버린 셈
Q. 공감능력 쩌는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TT
우선, 이걸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공감능력은 과유불급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내 정서적 캐파의 규모를 가늠해 본 후,
와 게이지가 거의 다 찼다 싶을 때는
그냥 잠수를 타야 되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자연을 벗삼고,
들끓고 있는 나의 내면이 잠잠해질 때까지 속세의 자극들을 최대한 멀리해야만 합니다.
즉, 최상위공감능력자들에게는 관리가 필수적이라는 얘기
그리고, 최대한 좋은 사람들과, 날 웃게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부정적 감정 뿐만이 아니라
내 소중한 사람들의 긍정적 감정 또한 나에게 복붙되니까 말이죠.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저도 공감능력 투머치인편이라 ㅋㅋ 자신의 capacity를 항상 모니터링하고 필요하다싶으면 그냥 잠수를 타야합니다.. 어쩔수 없어요 ㅎㅎ
저는 공감능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라 정신적 데미지가 빨리 회복된다는 생각을 한적은 있습니다 ㅎㅎㅎ
근데 간혹 보면 공감능력이 쩐다고 착각하는 부류들도 많은듯 해요 (농알못님 저격 아님)
공감을 빌미로 혐오를 부추긴다거나 상대를 공격할 명분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예컨대 전쟁도 마찬가지 인거 같고요..
"헐 어떻게 그런 잔인한 말을 할 수가 있어? 한대 맞어! 쾅!"
아무리 봐도 저격이 맞는 것 같…ㅋㅋㅋ
@▶◀카멜로 앤쏘희
저얼대요 저희 친해요 (아닌가 ㅠ)
@빵꾸똥꾸
@농알못입니당
말씀하신대로, 자국민에 대한 공격을 언론에 퍼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피해자들에게 공감하게끔 만들어서 전쟁의 명분을 확보하는 것, 이와 같은 정치적 이용이 대표적인 공감의 역효과라고 주장하는 심리학자들도 많습니다.
@무명자
그런거 같아요
공감능력이 좋다고 착각하는 부류들이 그 이용하는 위치에 있는것도 같습니다.
@빵꾸똥꾸 올😯
감사합니다.
조국 교수님의 가족들을 보면서 내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도 같은 이치일테죠.
그래서 뉴스를 끊었,,,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공감능력을 켜고 끄는 능력도 현대인에게 필요하네요. 좋은글 잘 봤어요
공감능력과잉의 치명적 문제점은 가스라이팅 당하기 쉽다는거죠..
저도 과잉 공감능력자라... 되게 와닿습니다... ㅠ
감사합니다. 그래서 갈수록 공감 능력을 잃어버리는...
무명자님 질문있습니다. 어쩔때는 뉴스만 봐도 눈물이 핑 돌정도로 공감능력이 꽤 있다가도 어쩔때는 간혹 내가 사패기질이 있나 공감능력이 떨어지는거 아닌가 싶은것은 상황에 대한 관심의 정도의 문제로 공강능력이 발현되기 때문인가요?
말씀하신 게 공감에 대한 중요한 단면인데, 조만간 관련 글로 답변을 갈음하도록 하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