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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X-sdnrLGrec&t=2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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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Rockets는 목표가 있었다.
백투백 우승.
2연속 우승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Rockets의 별명은 Choke City에서 Clutch City가 되었다.
Rudy Tomjanovich 감독의 공격은 올스타였던 Hakeem Olajuwon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Olajuwon은 빠르게 움직이며 수비수들을 농락했고, 더블팀이나 트리플팀을 당했을 때는 와이드 오픈이 된 동료들을 찾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Olajuwon은 여러 옵션이 있었다.
운동능력이 좋았던 Robert Horry, 거친 플레이를 즐겼던 Vernon Maxwell 그리고 꾸준했던 Kenny Smith까지.
유망주 Sam Cassell과 다재다능한 Mario Elie도 벤치에서 출격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각각의 선수들이 모두 조화를 이루며 함께 뛰었다.
진정한 팀이었기 때문에 Rockets는 더 대단했다.
그리고 1995년 중반, Rockets는 또 다른 스타 Clyde Drexler를 영입했다.
첫 번째 우승에 굶주렸던 Drexler는 Houston이 6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Finals까지 가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 과정에서 Rockets는 무려 5번의 엘리미네이션 경기를 했다.
Charles Barkley는 당시 Rockets의 끈질긴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Rockets는 큰 Texas 바퀴벌레 같았죠. 발로 밟으면 부서지는 소리가 납니다. 그럼 죽었다고 생각하죠. 근데 발을 들면 살아서 도망가는 바퀴벌레를 볼 수 있어요."
Finals에서 Houston은 Orlando Magic을 4승 무패로 꺾고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선수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Tomjanovic 감독은 Rockets의 우승을 의심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하나만 얘기하겠습니다. 결코 챔피언의 심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구요."
절대 안 돼?
좀 공격적인거 같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던 Rockets는 94-95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1995년 2월 Vernon Maxwell은 팬을 때렸다.
Maxwell은 그 때 팬들이 유산됐던 자신의 딸에 대해 야유를 보냈기 때문에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리그 사무국은 Maxwell에게 10경기 출장정지의 징계를 주었다.
그 때 Rockets는 Clyde Drexler를 데려와서 주전 슈팅가드의 공백을 메웠다. 하지만 Maxwell의 출장정지 징계가 끝났을 때도 주전 슈팅가드는 Drelxer의 몫이었다.
Maxwell은 그 상황이 기쁘지 않았다.
Utah Jazz와의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는 햄스트링 부상을 핑계로 Maxwell은 코트 대신 집에 있었다.
Finals이 끝나고 몇 주 후, Houston은 Maxwell을 방출했다.
그래서 Houston은 95-96시즌 Vernon Maxwell 없이 시즌을 치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때 Houston은 완전히 새로운 팀이었다.
마치 끔찍했던 Rockets의 유니폼보다는 우리가 낫다는듯이, Rockets 선수들은 시작부터 달렸다. 11월이 끝났을 때 Rockets의 성적은 11승 4패였다.
그런데 그리고 나서 모두가 다쳤다.
Houston은 48승 34패로 시즌을 마쳤고, 서부 컨퍼런스에서 5번 시드를 얻었다.
근데 지난 시즌에는 6번 시드였다. 어쨌든 Houston은 언더독 정신이 있었다.
거기에 플레이오프 무렵에는 부상당한 선수들이 모두 돌아왔다. 해 볼만 했다.
Rockets는 LA Lakers를 상대로 업셋을 했다.
정말 다시 우승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2라운드 1차전에서는 33점 차이로 대패했다.
다음 두 경기에서는 분전해서 그나마 한 자리 수 점수차로 졌다.
4차전에서는 4쿼터 세 방의 3점슛을 성공시키며 연장까지 끌고 갔지만, 연장에서 또 졌다. 그렇게 Seattle Supersonics가 승리했다.
직전 시즌 우승팀이자,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Rockets가 스윕을 당해버렸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거라면, Gary Payton이 너무 힘들어서 스윕한 것 같지 않다는 인터뷰를 했다는 것?
그리고 이제 Rockets를 두고 더 이상 바퀴벌레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 장족의 발전이었다. 대신 사람들은 Rockets를 뱀파이어라고 불렀다.
Rockets는 96-97시즌에는 다시 우승에 도전해야만 했다. 근데 어떻게??
음, Rockets는 첫 번째 우승반지를 갈망하는 노장 스타들을 선호했다. 그런 선수들을 뭐라고 부르지?
Hakeem, Barkley, Drexler가 함께 있으니, Rockets도 꽤 위협적인 팀으로 보였다.
Big 3라는 말이 보편화 되기 전이었다. 심지어는 사전에도 없었다.
Barkley를 영입하기 위해 Rockets는 Robert Horry, Sam Cassell, Mark Bryant, Chucky Brown을 포기해야 했다.
직전 시즌의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팀을 갈아엎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Barkley를 얻기 위해 무엇이든지 포기할 의지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로우 포스트 공격을 중시하는 팀인데 이제 너무 높이가 낮아졌다.
Barkley의 영입은 Rockets를 단숨에 우승후보로 만들었다. 이건 꽤 중요한 얘기인데 Olajuwon과 Drexler는 이미 충분히 늙었고, 계속 늙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Barkley를 영입한 것은 단기적인 대책일 뿐이었다.
Hakeem, Clydr, Barkley가 나이 때문에 힘들어지기 전에 지금 이겨야 했다. 미래? 미래는 나중에 걱정하면 됐다.
당시 Houtson은 리그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팀이었다.
아, 그래서 Hakeem의 백업 센터로 Kevin Willis를 데려왔다고 얘기했나?
그리고 Kenny Smith도 팀을 떠났다.
포인트가드 자리를 메우기 위해 Houston은 3점슛이 좋은 Brent Price와 CBA에서 뛰고 있던 Matt Maloney를 데려왔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Rockets가 제대로 된 포인트가드가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1997년의 Rockets는 부상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정말 대단했다.
Barkley는 등, 엉덩이, 발목 문제가 있어서 25경기를 빠졌다.
Drexler도 햄스트링 문제때문에 몇 주 빠졌다.
Price는 2월말에 부상으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문제는 당시 Rockets가 Derek Harper 영입을 위해 Price를 중심으로 트레이드 협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포인트가드의 보강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내보내려고 하는 선수가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한 것이었다. 큰 문제였다.
Rockets는 빠르게 움직여서 3점슛이 좋았던 Sedale Threatt을 잡았다. 그리고 저니맨이었던 장신 가드 Eddie Johnson도 영입했다. 근데 Johnson은 그 때 37세였다.
그리고 Olajuwon과 선수들은 Rockets를 서부 컨퍼런스 3번 시드에 올려놨다.
플레이오프에서 Rockets의 Big 3가 드디어 다시 뭉쳤다.
이들이 같이 뛴 정규시즌은 40경기 밖에 안 됐지만, 호흡은 잘 맞는 것처럼 보였다.
Rockets는 Minnesota Timberwolves를 스윕했고, 7차전 승부 끝에 Seattle을 잡았다. 이제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정규시즌 MVP인 Karl Malone이 있는 Utah를 만날 차례였다. 그 시즌 Utah는 64승을 거둔 팀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 때 Houtson은 Derek Harper를 데려왔어야 했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Maloney는 버텨냈지만, John Stockton은 Maloney가 수비하기엔 너무 버거운 선수였다.
Houston은 첫 두 경기를 졌다.
그리고 그 시점에 38세가 된 Eddie Johnson이 3차전 맹활약으로 승리를 이끌었고, 4차전에는 결승 버저비터도 성공시켰다.
5차전은 Jazz가 이겼다. 뭐 괜찮다. 그럼 6차전은?
Houston이 6차전을 이길거 같았다. 경기 종료 3분을 앞둔 시점에서 10점이나 앞서고 있었다.
John Stockton을 막을 수 없었고, 결국 2.8초를 남기고 동점이 됐다. 공격권은 Utah에 있었다.
Stockton은 Malone의 스크린을 받았고, Stockton을 막던 Drexler는 Malone에 걸려버렸다. 그리고 와이드 오픈 찬스를 맞은 Stockton이 3점슛을 성공시켰다.
Rockets의 시즌은 거기까지였다.
Tomjanovich는 오프 시즌에 팀을 뒤엎을만한 이유가 없었다.
여전히 Rockets는 훌륭한 팀이었고, 그냥 부상만 좀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97-98시즌의 Rockets는 부상이 지배해버렸다.
Hakeem은 무릎 부상때문에 전반기를 다 날려버렸다.
Barkley는 탈장으로 고생하면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Barkley는 "난 더 이상 훌륭한 (great) 선수는 아니지만, 여전히 좋은 (good) 선수다"고 했다.
그런데 부상보다 더 심각한 것은 Rockets가 노쇠의 또 다른 징후를 보였다는 점이다. 선수들이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완전히 지쳐버렸다.
슬프고, 또 슬픈 시즌이었다.
Rockets는 정확히 5할 승률로 시즌을 마쳤고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사람들은 1번 시드 Jazz가 4연승으로 시리즈를 끝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간의 예상은 Rockets를 자극시키기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Houston은 1차전을 극적으로 승리했다. Mario Elie는 기자들에게 다시 한 번 Houtson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Rockets는 계속해서 비평가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질주했다. 시리즈는 2승 1패였다. 하지만 4차전 2쿼터에서 Barkley가 부상을 당했다.
4차전은 Utah의 승리.
5차전은 Barkley의 결장도 뼈아팠지만, 노쇠화로 인한 피로로 도저히 뭘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Rockets는 1차전에서 탈락했다.
Drexler는 그 시즌이 끝나고 은퇴를 선언했다.
Houston은 남은 두 명의 노장 스타가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멈출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신선한 선수들이 들어오긴 했다.
98-99시즌을 위해 Drexler의 빈자리를 올스타 6회 선정에 빛나는 Scottie Pippen으로 메웠다.
Pippen을 영입하기 위해 Rockets는 Barkley의 페이컷이 필요했다.
그런데 현금보다 더 중요한게 뭘까? 바로 보석이다.
보석의 특별한 조각들.
Mario Elie를 FA로 잃었고, 여전히 Rockets의 포인트가드는 팀의 약점이었다. 하지만 드래프트에서 Michael Dickerson과 Cuttino Mobley를 지명했다. 어쩌면 좋은 선수가 될 지도 몰랐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Pippen, Barkley, Olajuwon이 공격에 나서는데 포인트가드가 없으면 좀 어때?
단축시즌으로 치뤄진 99시즌, Rockets는 기복이 너무 심했다.
3월에는 Portland Trail Blazers에 40점차로 대패했다.
1주일 후, Phoenix Suns에게는 20점차로 이기다가 결국 14점차로 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음, Pippen은 못했다.
Pippen은 자신의 부진을 Rockets의 공격 전술탓으로 돌렸다.
골밑에서 시작되는 공격전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Pippen은 자기가 어디에 뛰어야 하는지, 어디가 맞는 옷인지도 몰랐다.
Tomjanovic 감독은 Pippen을 살리기 위해서 다른 전술을 도입했다. 심지어 Bulls의 트라이앵글 오펜스까지 도입했다. 하지만 Pippen은 "이건 진짜 트라이앵글 오펜스가 아니야"라고 했다.
결국 Tomjanovic는 좌절했고, Pippen이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Pippen은 Bulls에서도 투덜댔고, 이젠 Rockets에서도 투덜댄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근데 Pippen의 얘기에는 어느 정도 사실도 있었다.
그 해 4월, Houston은 10경기를 졌다. Houston의 공격은.... 욕이 나올 것만 같았다.
맞든 틀렸든, Houtson의 Pippen은 문제를 계속 안고 있었다. 그건 플레이오프에서도 계속 됐다. 그것도 새롭고 흥미진진하게 말이다.
LA Lakers와 맞붙었던 플레이오프 1라운드 1차전. 종료 1분 여를 남기고 Houston은 2점차로 앞서고 있었다.
Barkley가 Shaq에 파울을 했고, 예상했다시피 Shaq는 2개의 자유투 중에 1개만 넣었다.
26초를 남겨두고, Houston의 1점차 리드였다. 그런데 Pippen이 볼을 흘려 버렸다.
기회를 잡은 Lakers는 결국 승리했다.
경기 후, Pippen은 Barkley를 비난했다.
Barkley, Rockets의 팬, 그리고 그 경기를 본 모든 사람들은 모두 Pippen을 비난했다.
시즌 후에 더 많은 얘기들이 나왔지만, 사실 Pippen과 Barkley는 그렇게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LA와 Houston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시리즈에서는 노장들을 물리치는 어린 선수들을 볼 수 있었다.
Shaq는 2차전에서 Olajuwon에게 단 8점만을 허용했다. 3차전에서는 5점만 내줬다.
그렇게 4경기만에 Lakers는 Houtson을 탈락시켰다.
그 시즌이 끝나고 Pippen은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구했다.
Barkley는 그것도 문제 삼았다.
Pippen은 Barkley를 가리켜 뚱뚱하고 이기적인 선수라고 했다.
며칠이 지나고 Pippen은 트레이드 되었다.
Rockets는 Pippen을 Portland로 보내면서 벤치멤버 여러 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 중에 3명만 팀에 남겼다.
썩 잘 한 트레이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Rockets는 Pippen이 구단을 떠나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두 명의 백전노장 스타와 백코트의 약점을 가진 채 시작해야 했던 99-00시즌은 그렇게 밝아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리적인 이점때문에 Houston은 반전의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그 해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Vancouver Grizzlies는 많은 주목을 받았던 포인트가드 Steve Francis를 지명했다.
하지만 지명 당시 Francis의 표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Francis는 Vancouver에서 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Maryland에 사는 가족과 너무 멀리 떨어져야 했고, Vancouver는 너무 추웠다.
Francis는 트레이드를 요구했고, 무려 11명의 선수가 연관된 트레이드를 통해 Rockets로 이적했다. Tomjanovic는 드디어 올스타급 재능을 가진 포인트가드를 얻게 된 것이다.
거기에 FA 시장에서 Shandon Anderson도 영입했다.
99-00시즌의 공격 전술도 여전히 골밑 우선이었지만, Francis와 Anderson을 이용한 트랜지션 오펜스도 추가했다.
근데 속담 중에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빗나갈 수 있다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지난 몇 년간 Rockets를 괴롭혔던 부상 벌레들이 이번 시즌에는 아예 껍질을 깨고 부화해 버렸다.
Barkley는 12월 초, 인대 부상을 당해 선수 생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시즌 말미에 복귀해서 몇 분을 뛰고 은퇴를 선언했지만, Barkley에게 선수 생활의 마지막은 그 부상이었다.
Olajuwon은 탈장 수술을 했고 22경기에 빠졌다.
그 이후에는 호흡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기당 24분 이상을 뛸 수 없게 됐다. 결국 Olajuwon은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Hakeem이 뛸 때, 힘들어 보였지만 그건 호흡 문제때문이겠지?
아님 무릎 때문인가?
이유야 어쨌든, 이제 Olajuwon은 더 이상 훌륭한 선수가 아니었다.
Rockets는 34승 48패로 시즌을 마쳤고, 지난 15년간 두번째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는 시즌을 겪었다.
그나마 좋은 점이라면, Cuttino Mobley와 Steve Francis가 정말 좋은 선수들이었다는 점?
Francis는 올해의 신인상을 받았다. 정확히는 공동수상이었지만.
Houston은 시즌 막판에 플레이오프 팀들을 상대로 승리도 거뒀기 때문에, 어쩌면 2001년에는 좀 더 좋은 모습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확실히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Houston Rockets는 Steve Francis의 팀이었다. 더 이상 노장 Olajuwon의 팀이 아니었다.
누가 이걸 싫어했을까?
어쩌면 Olajuwon은 잦은 부상, 아파오는 발, 부어오르는 무릎, 호흡 관련된 문제 등등 때문에 짜증이 났을 수도 있다.
그런데 Olajuwon은 자신의 이런 기분 상태를 온 세상에 알려버렸다.
Olajuwon은 기자들을 만나서 Rockets의 공격 전술에서 자신의 위치를 모르겠다고 얘기해버렸다. 트레이드 시켜주거나 방출해달라고도 했다.
Tomjanovic 감독과 구단주 Les Alexander는 Olajuwon과 미팅을 가졌고, 모든 것이 잘 풀렸다.
심지어 Olajuwon은 사과를 하려고 Tomjanovic가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기까지 했다.
그 시즌 Rockets는 45승 37패로 마무리했다. 8번 시드에 겨우 2경기 뒤진 성적이었다.
두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했지만, Tomjanovic 감독은 자신감이 생겼다.
Francis와 Mobley는 괜찮은 시즌을 보냈고, Rockets는 거의 플레이오프에 나갈 뻔 했다. 기록도 지난해보다 더 좋아졌다.
그 시즌이 끝나고 Olajuwon은 자유계약 선수가 되었다.
Rockets는 Olajuwon에게 3년 $13M의 계약을 제시했지만, Olajuwon의 대답은 No 였다.
Olajuwon은 자신이 더 많은 돈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Toronto Raptors와 계약했다.
이제 더 이상 Hakeem Olajuwon은 Houston Rocket이 아니었다.
Houston은 두 번의 우승 트로피를 가져다 준 선수의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Olajuwon 없는 팀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근데 그건 Olajuwon도 아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어쩌면 그 움직임은 조금 늦었을 것 같다.
나이 많은 스타들을 이용해서 빨리 성과를 내고 미래에 대해서는 나중에 걱정하고자 했던 근시안적인 생각은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렸고, 약화된 가드진, 자존심 강한 선수들끼리의 다툼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문제들이 불거지자, Rockets는 빠르게 추락했다.
하지만 추락한 덕분에 드래프트에서 높은 순위의 지명권을 얻었고, 캐나다에서 뛰기 싫어했던 매우 재능있는 포인트가드를 얻게 됐다.
Houston이 다시 날아오를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도 가능했지만, Rockets의 우승시대는 끝났다.
첫댓글 토론토 올라주원은 ㅜㅜ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그런데 big3 란 말은 원래 래리 버드 케빈 맥헤일 로버트 패리쉬를 지칭한 걸로 기억하는데, 아닌가요? 올라주원 있을 때면 이미 있었던 단어 같은데요 ㅎㅎ
'Big 3' 라는 용어는 80~90년대에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셀틱스 트리오', '불스 트리오', 이런 말은 간혹 사용됐지만요. 2000년대 스퍼스의 덩컨, 마누, 파커도, 팬들 사이에선 빅 3라고 불리워졌지만,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었습니다.
빅 3란 용어가 미디어에서, 언론에서,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은 2007년 보스턴에 피어스, 앨런, 가넷, 3인 조합이 결성되었을 때부터입니다.
제가 틀릴 수는 있는데... 아무튼 제가 알고 기억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Doctor J 그런가요?너무 오래된 내용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저도 좀 혼동되긴합니다. 셀틱 트리오란 단어는 좀 낯설고요... 저 3명을 부르던 단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ㅎㅎㅎ 답변 감사합니다
@캐롯 2000년대 들어서 팬들이 80년대 과거의 셀틱스 선수들을 가리켜 빅 3라 부르긴 했습니다. 하지만 80년대 당시에 그들이 통상적으로 그렇게 불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Doctor J 제 기억에도 빅3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불리기 시작한건 피어스 가넷 알렌 때부터 입니다.
제 기억에는 밀워키 벅스 글렌 로빈슨, 샘 카셀, 레이 알렌을 빅3라고 불렀던게 처음 같아요. 물론 최근 슈퍼팀에서 쓰는 빅3 같은 느낌은 아니었죠.
@YounGGunz 저도 밀워키의 트리오때 처음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제 기억도 보스턴 이전에 빅3라는 말이 사용된 적은 없었습니다. 보스턴 이후 유행처럼 너도나도 빅3라는 용어가 사용되더군요.
한국식 표현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에 루키같은 곳에선 휴스턴 3인방을 드림트리오라고 지칭하기도 했었죠(셋다 드림팀 멤버)
올라주원은 95년우승 이후 부상도 있었지만 기량이 급속하게 저하된 느낌입니다 심장질환인가 그게 문제였던건지...시카고와 멋지게 한판하는게 그렇게 보고싶었는데..
96-97시즌까지는 건재했습니다. 서부 컨파에서 유타 상대로 2승4패로 탈락했지만 하킴은 시즌 MVP인 말론보다도 훨씬 잘했어요. 케니 스미스, 카셀이 떠난 가드진이 스탁턴에게 완전히 잡아먹힌게 패인이었죠
95-96시즌은 올라주원 노쇄화가 시작된 해였고 플옵에서 미친 활약으로 기적적인 우승을 차지했던 전해에 비해서 전력 보강도 없었기에 어차피 우승 가능성이 낮은 해였다고 보고 바클리가 오고 올라주원이 마지막으로 건재했던 96- 97시즌에 무조건 우승을 했어야했죠.
백업으로 케빈 윌리스와 에디 존슨같은 노장 선수들이 잘 받쳐주어서 1번만 좀 보강되어서 매트 말로니가 백업으로 가고 2,3번 백업 한명만 더 있었으면 주전이 노장들이라해도 받쳐주는 조합들까지 포함하면 구성이 완벽했을듯한데, 유타와의 6차전 마지막 2분은 선수단 전체가 뭐에 홀린듯이 순식간에10점이상의 리드를 내주어서 뭐라 할말이 없더군요.
역시 운동 선수들에게 부상이란...ㅜ.ㅜ
티맥이 조금 더 일찍 태어나서 휴스턴에서 올라주원 하고 뛰었다면...
리그 탑 선수의 전성기에 환호하다가 후대 선수들에게 자리에서 밀리고 씁쓸해지는 말년은 글로만 읽어도 씁쓸하네요
피펜이 말이 많았네요 ㅋㅋ 잘봤습니당
토론토 ㅜㅜ
카터 무릎 부상을 보면 괜히 무릎땜에 고생하던 올라주원이 부상의 악령 데리고 온거 아닌가 하는 생각 들어서 ㅜㅜ
카터형 팬 입장에서 올라주원 영입 진짜 ㅜㅜ 괜히 좀 꺼럼직합니다
사실상 카터형 최전성기 입성 못하고 ㅜㅜ 전성기를 끝내버린 4년차 이후의 부상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