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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이라 짧게 붙입니다.
-예전 SB NATION 이라고 불렀던 곳에 제작한 약 15분 가랑의 '몰락 (collapse)' 시리즈입니다. 북미 스포츠 얘기가 모두 포함되어 있고 현재는 시즌2까지 나온 상황입니다. 자막을 만들어볼까 하다가 그냥 내용을 의역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한 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2019년 3월에 업로드 되었습니다.
-시즌1의 2화 뉴저지 네츠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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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서부 컨퍼런스를 오랫동안 지배하던 거인들은 약점을 보이기 시작했다.
동부 컨퍼런스 팀 가운데 서부 컨퍼런스 팀을 제압할 가장 유력한 후보는 의심의 여지 없이 바로 New Jersey Nets 였다.
Nets는 2002년 NBA Finals에서 LA Lakers에 스윕 당했지만, 다시 재정비해서 2003년 NBA Finals에 진출했다. 그 때는 San Antonio Spurs를 만났고, 거의 Spurs를 이길 뻔 했다.
만약 Dikembe Mutombo가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6차전에서 리드를 날려버리지 않았다면? 2003년 NBA 우승 트로피는 Nets가 가져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 다시 우승에 실패한 이후, 2년 연속 동부 컨퍼런스 우승을 차지한 Nets가 해야할 일은 핵심 선수들을 붙잡고, 벤치를 두텁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2004년 아니면 그 이후라도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올스타였던 Jason Kidd는 행복했을 것이고 핵심 멤버였던 Kenyon Martin, Richard Jefferson, Kerry Kittles에 식스맨이었던 Lucious Harris까지. 모든 것을 보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중 반드시 필요했던 것은 Mutombo를 대체할 빅맨의 수급이었다. 경험이 부족했던 Jason Collins가 Finals에서 Tim Duncan과 David Robinson을 상대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Nets는 Rod Thorn과 Byron Scott이라는 검증된 단장과 감독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들이 그 임무를 맡았다.
동부 컨퍼런스 팀들이 주목을 받을만한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Nets는 그 선두에 서 있는 팀이었다.
하지만 그 후, 5년동안 Nets는 핵심 인재들이 팀을 떠났고 스타급 선수들도 이적했다. 그리고 다시는 동부 컨퍼런스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박살이 났고, 결국 New Jersey를 떠났다.
대체 Nets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걸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점은, 2003년 Nets가 2년 연속 Finals에 진출한 구단이었음에도 투자에 소극적인 구단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Nets는 매각 시장에 나와 있었고, 몇몇 부자들이 Nets를 매입하기 위해 제안서를 제출했다. Bruce Ratner는 Nets를 인수해서 연고지를 Brooklyn으로 옮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John Corzine과 Charles Kushner의 제안서가 받아들여 졌다면, Nets는 그대로 New Jersey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매각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Nets는 정말 돈이 없었다. 그래서 2003년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지명했고 미래에 올스타가 되는 Kyle Korver를 Philadelphia 76ers에 바로 현금을 받고 팔아버렸다.
그리고 그 돈으로 서머리그 참가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했고, 남은 돈으로는 복사기를 샀다.
뭐라고?
복사기는 비싸니까!
그런 Nets가 아끼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슈퍼스타이자 팀 내 핵심선수였던 Jason Kidd가 자유 계약선수 신분을 얻은 것이었다. 또 다시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Kidd에게 맥시멈 계약을 안겨줘야 했다.
어쩌면 그것도 충분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Kidd는 Spurs행을 꽤 심각하게 고려했다. 바로 직전 Finals에서 자신에게 패배를 안겼던 바로 그 팀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무렵, Kidd가 Nets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물론 Kidd는 자신이 Byron Scott 감독의 해고를 원한다는 소문을 부정했다. 하지만 Finals 진출에 큰 역할을 했고, Kidd와 매우 친했던 Eddie Jordan 코치가 Washington Wizards 감독을 맡기 위해 Nets를 떠났다는 사실은 꽤 주목할만 했다.
Kidd는 7월에 Spurs와 만났고, Kidd가 만남을 끝내고 San Antonio를 떠날 무렵에는 선수와 구단측 모두 Kidd가 Duncan 옆에서 뛰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하지만 Kidd는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음을 바꿨다. 그리고 Nets의 6년 $103M 제안을 수락해서 계속 Nets의 일원이 되기로 결정했다.
Kidd의 마음을 바꾸게 한 것은 Nets가 골밑의 구멍을 채우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골밑은 최근 몇 년간 Nets의 골칫거리였다.
2002년 Finals에서 Todd MacCulloch는 Shaq를 상대로 고전했다. 그래서 Nets는 MacCulloch과 Keith Van Horn을 묶어서 올스타 Dikembe Mutombo를 데려왔다. 하지만 Mutombo는 고질적인 손목 부상이 있었고, Scott의 지도방식에 불만을 표했다. 그래서 정작 Mutombo를 가장 필요로 했던 플레이오프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그 자리는 어린 Jason Collins의 몫이 되었다.
만약 Nets가 우승을 위해 세번째 도전을 한다면, 무조건 골밑의 보강이 필요했다. 그래서 Nets가 선택한 선수는, 바로 Mutombo와 같은 대학 출신인 Alonzo Mourning 이었다.
Mourning은 신장 질환때문에 이전 몇 시즌간 많은 것을 놓쳤다. 하지만 Nets와 4년 계약에 합의했고, 이 계약은 Kidd를 설득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시즌을 앞두고 열린 트레이닝 캠프에서 Mourning은 정말 건강해보였다. 그래서 Nets는 Mourning을 대신할 수 있었던 선수를 포기했다. Mutombo는 트레이드로 Nets에 합류한지 1년만에 방출되고 말았다.
새로워진 Nets는 인건비 절감에 만족하지 않았고 Mourning에 대한 분위기는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Nets는 새로운 시즌의 시작을 패배와 함께 하고 있었다. Mourning의 경기력은 좋지 않았고, 동료들은 Mourning이 모든 상황에 대해 너무 태평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Mourning은 발목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하던 Kenyon Martin을 비난했고, Martin은 Mourning의 신장 질환을 언급하며 조롱했다.
두 사람이 멱살을 잡고 싸우기 전에 둘을 떨어뜨려 놓을 필요가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둘을 떨어뜨릴지에 대해 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일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말다툼이 있은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Mourning은 신장 질환 관련 합병증으로 신장 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Mourning은 은퇴를 결심했다.
이 시점이 Nets가 미래를 걸어볼만한 빅맨을 가졌다고 얘기하기에 적절한 시간으로 보인다. Nets는 2002년 드래프트에서 세르비아 출신의 유망주 Nenad Krstic를 지명했다.
그리고 Krstic는 당장 미국으로 건너와 NBA 무대를 밟고 싶어했다. 하지만 세르비아의 소속팀은 Krstic의 계약이 만료되기 전에는 절대 Krstic를 미국으로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자, 그래서 다시 Jason Collins의 시간이 왔다.
예전 라인업으로 다시 돌아가면, Nets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Nets는 새해까지 승률 5할 근처를 맴돌았고, 2004년 1월말이 되었을 때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마침내 Nets는 Ratner에게 팀을 매각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곧 연고지를 Brooklyn으로 옮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Ratner는 새로운 경기장을 짓기 위해 주거지를 밀어붙이고 엄청난 돈을 퍼부었다.
그리고 완전히 놀라운 사실은 아니었지만, Byron Scott은 새로운 구단주와 함께하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됐다. Nets의 22승 20패라는 기록은 쓰레기 같은 Atlantic Division에서는 충분한 기록이었다. 이 소문을 들은 Kidd는 인터뷰를 통해 Scott이 계속 감독을 맡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4년 1월 26일 Scott은 해고되었다.
Lawrence Frank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게 됐다.
보통 시즌 도중에 감독이 짤리면, 결과가 좋지 않은데 이번엔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났다.
Frank의 Nets는 13연승을 거뒀는데, 이 기록은 Luke Walton이 Golden State Warriors의 임시 감독이 되기 전까지 신인 감독이 거둔 최다 연승이었다.
그리고 이 기간동안 Nets는 어려운 승리를 거두지도 않았다. 거의 모든 승리가 10점차 이상을 기록했다.
Nets의 믿을 수 없는 2월은 Nets가 Dwyane Wade와 Miami Heat가 Atlantic Division 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막는데 충분한 47승 35패를 기록하게 했더.
그로 인해 Nets는 동부 컨퍼런스 2번 시드로 플레이오프를 맞이했다. 그리고 1라운드에서는 New York Knicks를 만났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Knicks의 Tim Thomas와 Kenyon Martin 사이에 마찰이 있었고, Collins는 Thomas를 병원으로 보내버렸다. 결국 Nets는 4승 무패로 Knicks를 꺾고 2라운드로 갔다.
Nets는 2라운드에서 Detroit Pistons를 만났다. 2003년 Finals에 진출할 때, 4승 무패로 이겼던 그 팀이었다.
그런데 2004년에는 좀 더 복잡해졌다.
1차전에서 Nets는 56점에 그쳤고, 2차전에서도 패배했다. 그리고 두 팀은 2승 2패인 상태로 5차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정말 처절한 경기가 이어졌던 이 시리즈에서, 5차전은 NBA 플레이오프 역사상 가장 거친 경기 중 하나가 됐다.
Nets는 거의 승리할 뻔 했지만, 자유투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Detroit의 Chauncey Billups가 40피트 3점슛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바라봐야만 했다. 이 득점으로 경기는 연장으로 이어졌다.
경기는 3차 연장까지 진행됐고, 양 팀 합쳐 무려 8명의 선수가 6반칙 퇴장을 당했다. 벤치멤버였던 Brian Scalabrine이 개인 통산 최다인 17점을 올리며 영웅이 됐다.
Nets는 3승 2패의 성적표를 가지고 홈으로 돌아갔고, 이 시리즈를 마무리 지을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다.
Rip Hamilton은 6차전 막판 엄청난 슛을 성공시키며, 시리즈를 7차전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다시 Detroit로 돌아갔다. 승리 역시 Pistons의 몫이었다.
7차전에서 Kidd는 무릎 부상을 안고 뛰었고, 먹었던 베이글도 토할만큼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Nets는 21점차 대패를 당했고, Nets의 시리즈는 거기서 끝났다.
2004년 Finals는 Shaq와 Kobe를 상대로 Pistons가 어마어마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Pistons의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복수심에 불타고 있던 Nets는 Pistons가 우승 트로피를 얻는 장면을 집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 해 6월말, Ratner의 구단 인수가 리그 사무국의 승인을 받았다.
Rod Thorn 단장은 새로운 구단주가 선수단의 연봉규모를 줄이라고 지시했냐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Nets는 2004년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을 Portland Trail Blazers로 넘겨버렸다. 그 댓가로 Nets가 받은 것은 현금 $3M과 예전에 자신들이 내친 Eddie Gill이었다.
이제 복사기를 엄청 많이 살 수 있게 됐다!
Kidd는 오프시즌에 엉망이 된 무릎의 회복을 위해 수술을 결정했고, 회복되는 동안 동료들이 팀을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자유계약 선수 신분을 얻은 Martin은 Nets에게서 제대로 된 계약 제안서도 받지 못했다. 결국 Martin은 드래프트 지명권을 받고 Denver Nuggets로 사인-앤-트레이드 됐다.
Thorn은 자신이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수단을 해체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인정해버렸다.
그로 부터 몇 주 후, Thorn 단장은 Kerry Kittles를 LA Clippers로 보내버렸는데 그 댓가로 받은 것은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없었다.
그 결과, Nets의 주전 파워포워드와 슈팅가드가 사라졌다. 식스맨 Lucious Harris도 팀을 떠났다.
그리고 이들을 대체하기 위해 새로 도착한 선수들은... 정말 형편 없었다.
Nets는 Ron Mercer, Eric Williams, Rodney Buford에 Kidd가 회복할 때까지 주전 포인트가드를 맡을 Jacque Vaughn 등과 소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나쁜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04년 여름, 드디어 Krstic이 세르비아에서 미국으로 올 준비를 끝냈다.
Alonzo Mourning은 은퇴를 번복하고, 남은 계약을 이행할만큼 회복했다.
그동안 많은 돈을 아꼈던 Nets는 Jefferson을 6년 $78M의 조건으로 붙잡았다. 그래서 적어도 Kidd의 선수들 중 1명은 여전히 Kidd의 곁에 있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Kidd는 계속 불만을 표했다. 우승에 도전하기 위한 전력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Nets는 Kidd의 연봉을 덜어낼 트레이드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트레이드는 이뤄지지 않았다.
무릎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선수를 트레이드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약화된 선수단을 데리고서는 Frank도 별 수 없었다. 시즌 초반 계속 패배했고, 12월에 Kidd가 돌아왔지만 패배는 계속 됐다.
Nets가 탱킹의 벼랑에 서 있게 되자, 다시 트레이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 반전이 일어났다.
Toronto Raptors와 Toronto의 슈퍼스타 Vince Carter가 완전히 갈라선 것이었다. Raptors는 트레이드에 적극적이었다.
짠돌이 Ratner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Thorn 단장과 프런트진은 이 트레이드를 성공시켜 전력을 강화시키고자 했다. 몇 장의 드래프트 지명권과 Mourning을 포함한 몇 명의 선수가 Carter를 위해 Nets를 떠났다.
갑자기 Nets는 다시 경쟁력 있는 선수단을 보유하게 됐다.
Kidd는 더 이상 불평할 수 없게 됐다.
이제 탱킹은 접고, 다시 플레이오프에 도전해야 할 시간이 됐다.
그런데 골밑은 여전히 Jason Collins와 신인 Krstic가 지켜야 한다면?
1월 말, Jefferson이 Chauncey Billups와 부딪혀 손목을 다친다면?
젠장, Chauncey.
그런데 Dwyane Wade와 Heat는 언제부터 그렇게 잘했나?
그리고 Wade는 언제부터 Shaq와 친구였을까?
Alonzo도??
The Heat는 Nets를 너무나도 쉽게 이겨버렸다.
그래서 이제 뭘 해야하지?
Nets는 리빌딩을 하고 있었지만, Kidd와 Carter가 있었기 때문에 승리를 위해 다시 노력해야 했다.
그 해 여름, Nets는 새로운 주전 파워포워드를 위해 사인-앤-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Shareef Abdur-Rahim. 2005년 오프시즌 Nets가 심혈을 기울인 영입이었다.
그런데 Abdur-Rahim의 무릎은 그렇게 건강하지 못했다. 결국 Abdur-Rahim은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Nets는 Abdur-Rahim과의 계약 조건을 다시 협상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해 영입을 취소하고 말았다.
그래서 빠르게 좀 더 큰 선수를 데려왔다. Marc Jackson이었다. Marc 였다. 왜냐하면 Trade Exception을 사용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비록 대형 선수 영입에는 실패했지만, 다음 시즌 Nets는 이상하게 더 나은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검소했기 때문에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앞두고 Jackson을 내보내면서 사치세도 내지 않게 됐다.
음, 플레이오프에서 Shaq 같은 선수를 만났을 때 유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Jackson의 방출은 약간 아쉬웠다.
Cliff Robinson은 약물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플레이오프 도중에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실제로 Nets는 Miami에서 열린 1차전에선 경기를 지배했지만, Heat와 Wade가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우승으로 가는 동안 나머지 경기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Nets는 2006-07시즌 동부 컨퍼런스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Nets는 다시 단단하게 뭉치는 것이 필요했다. 새로운 빅맨을 찾아야 했고, 건강을 유지해야 했지만.
2006년 12월 Krstic는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고, 수술을 해야 했다.
Jefferson의 발목도 망가졌고, 또 수술이 필요했다.
여튼 Nets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1라운드에서는 Carter의 친정팀을 업셋하기도 했다. 하지만 LeBron의 팀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LeBron James는 동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압도적이었고, Cavs는 LeBron의 첫번째 NBA Finals를 향해 나아갔다.
그 시리즈의 6차전은 New Jersey에서 열리는 마지막 플레이오프 게임이 될 것처럼 보였다. Nets는 곧 항해를 시작해야 할 때임을 깨달았고, Nets의 배는 더 젊어질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2007-08시즌을 보내는 동안, Nets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월의 서부 원정에서 바닥을 쳤다. 그 이후, Nets는 행동에 나섰다.
Collins는 Grizzlies로, Kidd는 Mavericks로 팀을 옮겼다. Kidd는 Mavericks에서 결국 우승을 경험했다.
그리고 나서 2008년에는 Jefferson을 보냈고, 2009년에는 Carter를 보냈다. 그 와중에 제한적 FA였던 Krstic를 잡는 것을 포기했다.
Ratner는 러시아의 Mikhail Prokhorov에게 구단을 매각했다. Prokhorov는 Nets가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Thorn 단장이 사임하는 것을 앉아서 지켜봐야 했다. Prokhorov는 다음 시즌 연고지를 Brooklyn으로 옮기고 새로운 Barclays Center에서 Billy King이 새로운 단장이 되어 팀을 변신시키는 것을 기대했다.
그래서 이 Nets들은 어떻게 되었나?
2년 연속 Finals 진출에 실패하면서, Nets는 자신들이 갖고 있던 가장 좋은 기회를 놓쳐 버렸다.
새로운 구단주들은 팀을 갈라 놓았지만 구단은 다시 플레이오프에 도전했다. 하지만 불운과 부상 그리고 새롭게 부상하는 젊은 구단들에게 밀렸다.
Nets가 최고였을 때는 진짜 누구도 막을 팀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의 전성기는 너무 일렀다.
2000년대 중반 동부 컨퍼런스가 다시 리그 우승 트로피를 가져왔지만, 최고의 팀이었던 Nets는 그 때부터 이미 몰락하고 있었다.
첫댓글 Collapse시리즈 꿀잼이죠 ㅎㅎ
오...재밌게 정말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ㅋㅋ 03년도 제가 느바 본 시점이네요. ㅋㅋ 저의 첫응원팀 현재도 응원팀 넷츠 롤러코스터 타고있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모닝.. 토론토서 태업을하게 되며 큰 오점을 남기죠. 넷츠 시절 키드는 어마어마했었는데 결국 달라스서 우승을하게 되는데ㅎㅎ
잘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