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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t_yb5o5dM2U
-시즌1 5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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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Chicago Bulls는 다시 해냈다.
Michael Jordan의 팀은 1991년부터 1993년까지 3회 연속 우승을 기록하면서 전설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 후, Jordan은 은퇴했지만 은퇴하지 않았고 놀랍게도 다시 돌아와서 또 다른 3회 연속 우승을 Bulls와 함께 달성했다.
1996년에는 정규 시즌 72승과 Seattle Supersonics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 후에는 Utah Jazz를 2년 연속 꺾고 우승 반지를 얻었다.
Jordan의 역사에 남을만한 마지막 슛으로 시리즈가 끝이 났다.
첫 번째 3회 연속 우승과 마찬가지로, Jordan은 90년대 후반에도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했다.
모든 것을 다 해내고, 수비도 잘하지만 영원히 인정받지 못했던 스몰포워드 Scottie Pippen은 여전히 Jordan의 옆에 있었다.
Phil Jackson 감독도 여전히 Jordan 옆에 있었는데 Jackson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화법과 자존심 강한 선수들을 잘 다루는 재주가 있었다. Jackson은 멘토이자 자신의 코치였던 Tex Winter가 고안한 트라이앵글 시스템을 적용했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하면 두 번째 3연패는 새로운 인물들이 Jordan 옆에 있었다.
포인트가드를 맡았던 Ron Harper는 트라이앵글 시스템에서 Jordan에게 반드시 필요한 장신 포인트가드였다.
Dennis Rodman은 기분파에 괴짜였지만 림을 사수하는 능력만큼은 최고였다.
Rodman은 자신을 상대하는 모든 빅맨들을 괴롭혔다.
유로리그의 슈퍼스타, 토니 쿠코치는 본인의 첫번째 NBA 팀에서 세번째 공격 옵션이라는 역할을 받아들였다.
호주 출신의 Luc Longley는 부지런하고 믿을 수 있는 빅맨이었다.
Steve Kerr. 리그 역사상 가장 믿음직한 슈터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지원해준 Jerry Krause에게도 감사를 표해야 한다.
Bulls의 구단주 Jerry Reinsdorf의 뜻대로 두번째 3연속 우승을 위해서 Krause에게는 끈질긴 스카우트와 기민한 움직임이 필요했다.
어쨌든 Bulls의 선수단 구성은 최고였지만, 이 팀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사라져 버렸다.
두 번째 3연속 우승을 달성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Bulls는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정말 많이.
Bulls는 1998년 6월 14일, 구단 역사상 6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나서 약 1주일 후, 첫번째 도미노가 쓰러졌다.
사실 그건 시간문제였다.
Phil Jackson과 Jerry Krause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둘 사이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Krause는 수양딸 결혼식에 Bulls의 코칭스태프를 모두 초대했다. 심지어는 Iowa 주립대학교의 감독이었던 Tim Floyd도 초대했다. 그런데 Jackson은 초대하지 않았다.
Krause는 1997년 Jackson과의 계약을 1년 연장하면서, 우승을 차지한다 해도 1997-98시즌이 Jackson의 마지막 시즌이 되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 둘은 그런 사이였다.
만약 이런 소문들을 믿고 싶지 않다면, Jackson이 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ESPN Magazine에 기고한 칼럼을 읽어보길 권한다. 거기서 Jackson은 Krause에게 가치있는 무언가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선물도 주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아직도 믿음이 안 가나? 더 얘기해줄까?
Jackson이 기고한 칼럼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이번 플레이오프가 끝나고 나서, 내가 Bulls를 떠난다는 점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Phil Jackson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Jackson은 사임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Bulls 팬들은 Michael Jordan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
Jordan은 기자들 앞에서 Jackson을 제외한 어떤 감독 밑에서도 뛰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Jordan은 Bulls가 후임자로 점찍어둔 Tim Floyd와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었다.
Jordan은 ESPN Magazine에 기고한 칼럼에서 Krause와 전쟁을 하고 싶지 않다고, 팬들에게 얘기했다. 하지만 Bulls가 Jackson에게 신뢰를 주지 않았고, Jackson이 Bulls의 단장이 되어야 한다고도 얘기했다.
그리고 프리시즌 동안 Krause가 "우승은 선수와 감독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구단이 이뤄내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Jordan을 화나게 했다. 물론 Krause는 해당 발언은 Jordan이 오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Jackson이 구단을 떠나자마자,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8년 NBA의 직장 폐쇄는 모두를 기다리게 했다. 그리고 나서 시작됐다.
직장 폐쇄가 끝나기 며칠 전, Jordan은 은퇴를 선언했다.
Jordan까지 팀을 떠나자, 다른 선수들의 이적도 시작됐다.
1월 21일, Bulls는 Rodman을 방출했다.
Rodman은 Finals 내내 분위기를 헤쳤고, 은퇴하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Rodman은 은퇴하지 않았다.
같은 날, Steve Kerr는 사인-앤-트레이드로 San Antonio Spurs로 이적했다.
한편 Pippen은 지난 몇 년간 트레이드 루머의 단골 손님이었다.
1997년 11월, Pippen은 기자들 앞에서 트레이드 되고 싶다고 했다. 다시는 Bulls 유니폼을 입고 뛰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하지만 Pippen은 계속 Bulls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우승 반지도 얻었다.
Kerr가 팀을 떠난 다음 날, Jordan이 은퇴를 선언한 지 겨우 1주일 만에, Bulls는 드디어 Pippen의 꿈을 실현시켰다.
Bulls는 Pippen을 내보내면서 Roy Rogers를 받아왔다.
그 다음 날에는 Longley가 팀을 떠났다.
그래서 Jordan이 은퇴한지 며칠만에, Bulls는 직전 시즌 우승한 팀의 핵심 멤버 4명을 잃었다.
이들의 대부분은 계약이 만료되는, 혹은 만료되어 가는 노장들이었지만 전혀 가치가 없는 선수들은 아니었다.
Pippen은 몇 시즌 더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Kerr는 Spurs가 우승을 차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Longley는 여전히 주전 센터로 뛸만한 기량을 갖고 있었다.
자, 이제 Bulls가 무엇을 얻었는지 살펴보자.
이 무렵 지명한 신인 가운데, 오직 1명만이 Bulls에서 무언가를 이뤄냈다.
오직 1명만이 Bulls를 위해 실제로 무언가를 해냈다.
직장 폐쇄가 끝나고, NBA 팀들은 50경기의 단축시즌을 치뤘다. 50경기 시즌이었지만, 팬들은 신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Bulls가 그 선수단으로 82경기를 치뤘다면, 아마 시즌 중에 병원에 실려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Floyd의 Bulls에서는 모든 선수들이 로테이션에 들었다.
Kukoc나 Harper 같은 롤 플레이어들이 스타가 된 팀이었다.
그동안 벤치를 벗어나기 어려웠던 Dickey Simpkins나 Randy Brown 같은 선수들도 많은 경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시즌 Bulls에 새로 입단한 선수 중 도움이 된 유일한 선수는 Miami Heat에서 건너온 Brent Barry 뿐이었다.
Barry가 Bulls로 이적했을 때, Miami의 Pat Riley 감독은 기자들의 질문에 농담만 했다.
그래서 1999년 개막전에서 Jazz를 만난 Bulls는 패배했고, 그 시즌 50경기 중에 37경기를 졌다.
37패 중에 한 번은 겨우 49점을 넣었던 경기도 있었다. 이 기록은 24초 공격 제한시간이 도입된 이후, 가장 낮은 득점 기록이었다.
Bulls의 모든 패배는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Krause는 결국 1999년 드래프트에서 환상적인 결과를 얻었다.
전체 1순위 지명권은 Duke 대학교의 스타인 Elton Brand의 몫이었다.
Longley를 내보내고 얻은 1라운드 중반 지명권으로는 세인트 존스 대학교 출신의 Ron Artest를 지명했다.
그리고 다음해까지, Krause는 1998년 우승팀의 멤버를 해체하는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1999년 9월, Bulls는 Harper를 방출했다. Harper는 곧바로 LA Lakers와 계약해 Jackson과 Winter의 트라이앵글 시스템에서 주전 포인트가드를 맡았다.
시즌 중에는 Kukoc도 트레이드로 보내버렸다.
Krause는 불과 1년 6개월만에 Bulls의 우승 멤버를 모두 날려버렸다.
사실 Jordan을 제외한 선수들은 모두 Krause가 Bulls의 유니폼을 입혔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Krause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 Krause는 자신이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Jordan 곁에 훌륭한 선수들을 배치했던, 그 작업을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젊고 원석에 가까운 재능들과 함께 Bulls를 다시 재건하는 것이 Krause의 목표였다.
하지만 그 계획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2000년 여름, Bulls는 자유계약 시장에서 Tracy McGrady와 Eddit Jones를 영입하고 싶어했다.
그 해 여름, T-Mac이 Chicago를 방문했을 때 공항에는 Bulls의 마스코트와 치어리더들이 출동해서 T-Mac을 환영해주었다.
그러나 T-Mac과 Jones는 모두 Bulls를 선택하는 대신, 고향인 Florida에 있는 팀으로의 이적을 결정했다. 그래서 Chicago는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Bulls는 2000년 NBA 드래프트를 통해 얻은 유망주를 중심으로 팀을 재건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그 날 밤, Krause는 정말 바빴다.
Krause는 Elton Brand와 같은 포지션임을 알았지만, Folyd의 제자였던 Marcus Fizer를 지명했다.
그리고 나서 Kukoc를 트레이드하면서 얻어낸 지명권으로 Michgan 대학교 출신의 Jamal Crawford를 선택했다.
Crawford는 꽤 오랜 기간동안 NBA에서 선수 생활을 했지만, 그게 Bulls에서만은 아니었다.
Fizer는 더 별로였다.
Fizer는 괜찮은 시즌을 몇 번 보냈지만,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결국 리그에서 사라졌고, 선수생활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다.
어쨌든 젊어진 Bulls는 계속 형편없었다.
Brand와 함께 한 첫 해 17승을 거둔 Bulls는 그 다음 시즌에는 15승을 거뒀다.
2001년 Bulls가 1순위 지명권을 얻을 확률은 리그 내 어떤 팀보다 높았다. 하지만 Bulls는 4순위 지명권을 손에 쥐었다.
그 땐 Michael Jordan이 구단주로 있었던 Washington Wizards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져 갔었다.
Krause는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였고, 떠오르는 스타였던 Brand를 과감하게 트레이드했다. Brand를 Clippers로 보내면서 받아온 선수는, 그 해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지명된 Tyson Chandler였다.
그리고 4순위에서는 지역 스타였던 Eddy Curry를 선택했다.
두 선수 모두 빅맨이었고, 모두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NBA에 뛰어든 선수였다.
Bulls의 골밑을 지킬 새로운 유망주들이 하루만에 구성된 것이었다.
Chandler와 Curry는 2002년 신인왕이었던 Pau Gasol을 건너 뛰고 지명한 선수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두 선수 모두 유망해보였다.
근데 진짜 이 때 Bulls는 어린 팀이었다.
심지어 Krause는 FA 시장에서 데려오는 선수들도 나이 어린 선수들만 고르는 경향이 있었다.
Brad Miller, Ron Mercer, Eddie Robinson 같은 선수들이었다.
Bulls는 여전히 형편없었고, 유망주 위주의 정책도 그 색을 서서히 잃어갔다.
신인 선수들은 실제로 충분히 뛰지 못했고, Krause는 2002년 2월 Arters, Miller, Mercer를 모두 Pacers로 보내고 Jalen Rose를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Rose는 21승을 거둔 이 팀에서 1옵션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 Krause는 Jordan 이후의 구단 운영에 대해 비판을 받고 있었다. 그 외에도 몇 년간 구단이 성장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그랬다.
하지만 우승했을 때에도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Krause는 자신의 전략을 믿었다.
어쨌든 Bulls는 2002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 지명권을 얻었다. Yao Ming을 아쉽게 놓친 것이다.
그래도 Bulls는 Duke 대학의 포인트가드 Jay Williams를 지명할 수 있었다. Williams는 괜찮은 루키 시즌을 보냈고, 그로 인해 Bulls는 30승 팀이 될 수 있었다.
다른 유망주들도 Bulls 출신인 새로운 감독 밑에서 서서히 성장하고 있었다.
Jordan의 두 번째 은퇴는 마지막이 아니었다. Jordan은 Wizards의 구단주 자리에서 선수로 보직을 바꿨다.
그 와중 Bulls는 Floyd의 자리를 Bill Cartwright로 대신했는데, Cartwright는 Krause가 Charles Oakley와 맞바꿨던 선수였다.
그 트레이드는 1988년이었다. Jordan이 Krause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서 Cartwright는 Jordan과 함께 세 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그리고 2002시즌 중반 Cartwright가 감독이 되었을 때, 감독보다 더 나이가 많았던 Oakley가 선수로 Bulls에 복귀했다.
그 때 Bulls는 정말 이상한 팀이었다.
여튼 2003 시즌의 상승세는 갑작스러운 비극을 만나 사그라들었다.
Jay Williams가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단 한 시즌만을 보낸 채 선수 생활을 마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Williams가 사고를 당했을 무렵, Krause도 팀을 떠났다.
Krause는 2003년 4월, 단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건강 문제였고, 후임자는 Bulls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John Paxson 이었다.
Krause가 만든 팀은 이제 막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몇 년 뒤, Bulls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던 핵심 선수들은 모두 Paxson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Paxson은 Krause가 영입한 선수들을 내보냈고, 스스로의 기준에 의한 선수 지명을 했다. 2006년 드래프트에서 끔직한 트레이드를 했지만, 2008년 드래프트에서는 잭 팟이 터졌고 그 시점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간의 시기를 돌이켜보면, Krause가 Bulls의 리빌딩을 위해 모은 젊은 선수들 중 일부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Fizer와 Williams는 모두 매우 불행한 선수였다.
하지만 Krause가 선수를 보는 눈은 정확했다.
Arters는 올해의 수비수, 올스타, 우승 팀의 멤버가 됐다. 물론 다른 팀에서.
Elton Brand도 꾸준히 올스타에 뽑히는 선수가 됐다. 물론 다른 팀에서.
Brand의 트레이드 파트너였던 Tyson Chandler도 우승, 올스타, 올해의 수비수를 경험했다. 물론 다른 팀에서.
심지어 Brad Miller 조차 올스타에 뽑혔다. 당연하게도 물론 다른 팀에서.
맞다. 우승 팀을 재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에이스와 최고의 감독을 동시에 잃었다면 더더욱 쉽지 않다.
아마 Bulls가 인내심이 좀 더 있었다면, 좀 더 빨리 리빌딩에 성공했을 수도 있다.
애초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소외시키지 않았다면, 더 빨라졌을 수도 있다.
대신 Bulls는 나이 많고 불만에 가득찬 우승 멤버들을 서둘러 해체시켰고, 유망주들이 전성기를 보내기 전에 팀에서 내보냈다.
Michael Jordan의 마지막 슛은 가장 인상적인 왕조의 막을 내렸다.
우승을 위해 올라야 하는 그 골짜기는 인상적이었다.
Bulls는 다른 우승 팀들처럼 깊고 빠르게 가라앉았다.
정말로 기념비적인 몰락이라 할 수 있겠다.
첫댓글 잘 봤어요
잘 읽었습니다. 조던이 뛸때도 그렇지 않을때도 늘 관심이 가는 팀이었는데 글을 읽으며 지난 세월이 주마등같이 스쳐갑니다. 개인적으로 하인릭과 고든의 백코트를 상당히 좋아했어요. 커리&챈들러 트윈타워의 2,3번 백넘버도 좋았고요. 불스에서의 뎅은 정말 완소였죠. 조던 이후에 불스는 뭔가 가성비 선수들로 가득한 느낌이었습니다.
오오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ㅎㅎ 전에 궁금해서 질문도 했던 내용인데 흥미롭게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