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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B3WHIJqza5I
-몰락. 이번에는 Kevin Garnett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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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Minnesota Timberwolves는 마침내 NBA 우승에 도전하게 됐다. 타이밍도 완벽했다.
1995년으로 돌아가보자. Kevin McHale은 드래프트에서 유망주인 Kevin Garnett을 지명했다. 그리고 Garnett의 지도를 위해 자신의 친구 Flip Saunders를 감독 자리에 앉혔다.
이 팀의 구단주는 Glen Taylor 였다.
정말로 팀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냥 돈만 많은 사람이었다.
여튼 떠오르는 슈퍼스타와 뛰어난 코칭스태프를 가졌음에도 Wolves는 KG의 첫 8시즌 동안 플레이오프 2라운드까지 가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마침내, 2003년 KG의 기록적인 계약이 만료되기 직전, McHale은 슈퍼스타에게 잔류를 고민하게 만드는 동료들을 붙여주었다.
노쇠화 얘기가 있었지만, Sam Cassell은 우승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Cassell은 KG와 함께 한 첫 시즌, 선수 생활 최초로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30대에 접어들고 있는 Latrell Sprewell은 윙에서 KG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전히 위력적인 슬래셔였다.
Saunders 감독과 Big 3는 다른 선수들의 도움도 받았다. 슛이라면 자신있었던 Wally Szczerbiak, 무명이었지만 Troy Hudson과 Trenton Hassell 등도 괜찮은 선수들이었다.
2004년 Wolves는 부상과 선수층 문제가 있었지만, Wolves의 Big 3는 좋은 팀이 되기에 충분했다.
KG는 첫 번째 정규시즌 MVP를 차지했고, 신인 Carmelo Anthony와 Denver Nuggets를 만나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2라운드에서는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Sacramento Kings와의 시리즈에서도 이겼다.
유례없는 성공의 행렬은 LA Lakers의 발밑에서 멈춰야 했다. Lakers는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Wolves를 꺾었다.
하지만 Lakers는 곧 무너졌고, 서부 컨퍼런스는 새로운 왕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됐다.
그리고 Wolves는 그 자리를 채울 준비가 된 팀이었다. 조만간 컨퍼런스 파이널보다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준비가 끝난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KG의 Wolves가 다시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든지.
2004년 플레이오프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KG의 존재였다.
시즌이 시작하기 전, Wolves는 KG와 5년 $100M의 연장계약에 합의했다.
KG에게는 두 번째 거액 계약이었다.
첫 번째 계약은 KG의 옛 동료들을 떠나보내는데 도움이 되었다.
젊은 포인트가드 Stephon Marbury는 자신이 저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했고, Wolves에 트레이드를 요구했다.
Tom Gugliotta 역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고, FA 신분을 얻었을 때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2000년 Wolves는 FA였던 Joe Smith를 붙잡기 위해 샐러리 캡을 초과하는 금액으로 합의했다.
해당 건으로 리그 사무국에 적발된 Wolves는 드래프트 지명권을 박탈당하는 징계를 받았다.
왜 KG와 Saunders가 2004년까지 플레이오프 2라운드 진출을 못했는지 이제야 좀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어쩌면 2004년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려줄 수도 있겠다.
2004-05시즌 Wolves는 기본적으로 이전 시즌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한 선수단에서 전력 손실이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비제한적 FA였던 Troy Hudson이 오랜 협상 끝에 팀에 잔류했다.
제한적 FA인 Trenton Hassell은 Wally Szczerbiak의 부상 기간동안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Portland Trail Blazers와의 계약에 합의했다.
하지만 Hassell이 제한적 FA였기 때문에 Wolves는 Portland와 같은 계약 조건을 제시하면 Hassell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Wolves는 Hassell을 붙잡기로 결정했다.
사실 Hudson과 Hassell에게 주기로 한 금액은 벤치 선수에게는 과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Hudson과 Hassell은 단순히 슈터와 수비 전문 선수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KG와 절친이었다.
구단주 Glen Taylor는 나중에 Hudson과 Hassell이 KG와 친하다는 사실을 계약 협상에 이용했다는 점을 듣고 격노했다.
그런데 2004년의 성공은 FA 시장에서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아직 계약이 끝나지 않았던 Cassell과 Sprewell이 문제였다.
"이봐, 우린 엄청나게 잘했잖아."
"우린 KG랑 친하다고. 그리고 우리가 KG한테 실제로 도움이 되잖아."
"거액의 연장계약을 원해."
Cassell은 35세가 되었고, 고관절 부상으로 인해 수술을 막 마친 상태였다.
Wolves는 Cassell에 더 많은 연봉을 줄 생각이 없었다.
아직 계약이 2년이나 남은 Cassell이었지만, 구단이 연장 계약을 주지 않자 자신의 불만을 드러내기 위해 트레이닝 캠프에 불참을 선언했다.
Sprewell은 좀 더 시끄러웠다.
Wolves는 Sprewell에게 연장 계약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 금액은 Sprewell이 요구한 금액에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
Sprewell은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제가 왜 Wolves의 우승을 도와야 하죠?"
"구단은 저를 위해 해 준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이건 약간 오버였다. 그리고 예상처럼 언론의 반응도 같았다.
Cassell과 마찬가지로 Sprewell도 연장 계약 없이 시즌을 맞이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이전 시즌의 선수단이 그대로 모였다. 하지만 1년 전과 분위기는 달랐다.
선수단 모두가 건강해지면서 Saunders는 출장시간과 선수들의 입지도 신경써야 했다.
Szczerbiak은 세심한 관리가 필요했고, 포인트가드 Cassell과 Hudson은 둘 다 많은 출장시간을 원했다.
이전 시즌에는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있었고, 이 때문에 Saunders는 로테이션 관리가 간단했었다.
그리고 1년 뒤, Saunders는 주전 라인업을 정기적으로 바꿨다.
매번 바뀌는 주전 라인업은 선수단에 자극이 되지 못했고, 팀 수비도 문제가 됐다.
리그에서 가장 효율적인 수비 팀이었던 Wolves는 1년 만에 리그 평균 수준의 수비 팀으로 변했다.
선수단의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부진한 성적의 원인을 진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Wolves 부진의 원인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목한 것은 Cassell과 Sprewell 이었다. 이들은 시즌 내내 계약에 대해 불평하고 있었고, 1년 전보다 성적은 떨어졌다.
Hudson은 좋은 계약을 이끌어 냈지만, 부상이 있었고 불평도 있었다.
KG 주변의 빅맨 로테이션은 2004년의 플레이오프 성공에서도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사항이었다. 그리고 Eddie Griffin이 추가되었음에도 여전히 Wolves의 약점이었다.
Cassell의 부상이 장기화 되고, 연패가 몇 차례 거듭되면서 Wolves의 승률은 5할 밑으로 떨어졌다. 불과 1년 전, 58승을 거둔 팀이었다.
Wally Szczerbiak은 팀의 추락을 악몽에 비유했다.
Glen Taylor 구단주는 단장에게 팀을 쇄신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McHale은 감독을 짤랐다.
감독 경질은 추락하고 있는 팀들에게는 일반적인 일이지만, Wolves의 감독 경질은 특히 충격적이었다.
Flip Saunders는 Minnesota의 터줏대감이었다.
Saunders는 McHale과 함께 대학 생활을 했고, KG가 Wolves에 입단한 이후 KG의 멘토를 맡아온 사람이었다.
이건 큰 변화였다.
McHale은 스스로를 감독 대행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다시 승리를 거두기 시작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2004년 서부 컨퍼런스 1번 시드를 따낸 팀이 2005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KG의 옆에 있던 불만 가득한 동료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프런트 역시 같은 평가를 받았다. 선수들이 계약 관련 문제로 모두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2005년 여름은 이전과는 다른 여름이 될 것으로 보였다.
McHale은 단장과 감독직을 모두 수행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Seattle의 코치였던 Dwayne Casey를 감독으로 임명했다. Casey의 첫 NBA 감독직이었다.
그리고 간만에 받은 로터리 지명권으로 North Carolina 대학 출신의 Rashad McCants를 지명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한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Wolves가 고려할 수 있었던 옵션 중에 하나는 미래의 올스타였던 Danny Granger 였다.
Sprewell의 계약은 만료되었고, Wolves는 더 이상 Sprewell을 붙잡지 않기로 결정했다.
FA 자격을 얻은 Sprewell은 다른 팀들로부터 만족스러운 제안을 받지 못했고 은퇴를 결정했다. Wolves의 3년 연장 계약을 거절한 지 1년 만이었다.
Wolves 역사상 최고의 팀이었던, 그 팀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선수가 떠났고, McHale은 다른 부분에도 손을 댔다.
8월, Wolves는 Cassell과 드래프트 지명권을 LA Clippers에 건네주고 Marko Jaric를 영입했다. Jaric는 젊고 유망한 포인트가드였지만, 부상이 너무 잦았다.
Wolves에서 Jaric는 건강을 유지했지만, McHale이 기대한 다재다능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반면 Cassell은 다시 반등에 성공했고, LA Clippers의 플레이오프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Wolves는 아직도 쓸만했던 선수와 로터리 지명권을 날린 꼴이 되어 버렸다. 이 지명권은 보호 조항때문에 2012년이 되어서야 사용됐는데, 그 때까지 Wolves는 이 지명권의 존재때문에 고통을 받아야 했다.
McHale은 Cassell의 트레이드가 Wolves가 다시 반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래 걸리지 않아 다시 성공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끔찍한 트레이드였다.
이 정도면 FA 시장에서의 성공도 하나 정도는 있어야 했다. 그 무렵 Wolves가 영입한 FA 선수 중에서 가장 대어는 Nikoloz Tskitishvili였다. 드래프트 후, 밑천이 다 드러난 그 선수.
Skita가 NBA에서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믿은 사람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Wolves도 Skita가 5경기를 뛴 후에 방출해버렸다.
자, 2005-06시즌 Wolves는 최악이었다.
신인 감독, 얇은 선수층과 함께 한 때 어마어마했던 Wolves의 공격력은 가라앉은 수비력과 마찬가지로 별 볼일 없어졌다.
하지만 진짜 Wolves의 추락을 이끈,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1월 Wolves는 쓰레기 같은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KG 옆에 남은 유일한 득점원 Wally Szczerbiak을 보내고 Ricky Davis를 영입하는 트레이드를 진행한 것이었다. Davis는 Szczerbiak보다 한 단계 낮은 선수였다.
그 트레이드 이전, 5할 승률 근처에서 놀던 Wolves는 완전히 추락해버렸다.
2005-06시즌의 33승은 KG의 초창기 시절을 제외하면 최악의 성적이었다.
KG를 제외한 선수단의 모든 곳이 다 약해져 갔다.
하지만 이 패배는 Wolves에게 높은 순위의 지명권을 주었고, KG의 파트너로 초특급 유망주를 지명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음을 의미했다.
2006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6순위 지명권을 얻은 Wolves는 Brandon Roy를 지명했다. 그 해 신인왕을 차지하고, 슈퍼스타가 될 그 선수였다. KG에게도 큰 도움이 될 선수였다. 다만 Wolves가 Randy Foye를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했다.
McHale은 Roy와 Foye를 맞바꾸는데 너무 집중했다. 그래서 Portland는 Roy를 영입할 수 있었다.
Roy는 Blazers가 반등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근데 Foye는 Roy가 Portland에서 했던 것만큼, Minnesota에서 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좋은 선수였다.
다시 한 번, Wolves는 외로운 슈퍼스타를 앞세워 순조롭게 시즌을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시 한 번, 시즌 중반 이후 추락했다.
2007년 1월, 이번에는 McHale이 Casey를 해고하고 Randy Wittman 코치를 감독으로 승격시킨 것이다.
Casey의 해고 직전, Wolves는 20승 20패였다.
그런데 Wittman이 지도한 42경기에서는 겨우 12번 이겼다.
그래서 다시 로터리 지명권을 얻었다. Wolves는 DPOY를 수상하는 Joakim Noah를 지명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작고 실력이 더 떨어지는 Corey Brewer를 지명했다.
물론 Noah도 KG와 잘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Wolves의 또 다른 루징 시즌이 끝날 무렵, McHale은 KG를 트레이드할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Wolves는 한 시즌이 더 지나면 KG의 계약이 만료된다는 것을 알았고, 구단 내부에서는 구단 역사상 최고 선수를 아무 것도 받지 못한 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싹트고 있었다.
2007년 드래프트가 진행되던 날, McHale은 트레이드 협상을 위해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KG가 자신이 선호하지 않는 팀으로 트레이드 될 경우에는 연장 계약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상황이었다.
당시 KG는 Phoenix Suns로 이적하는 것을 가장 선호했다. 재능있는 선수들도 많았고 날씨도 Minnesota보다 훨씬 더 좋았기 때문이었다.
핵심 선수가 불만을 토로한 LA Lakers로 KG 트레이드에 관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McHale은 KG를 서부 컨퍼런스 팀으로 트레이드 할 생각이 없었다. 특히 Boston Celtics 출신인 McHale은 Lakers로 KG를 보낼 생각이 더욱 없었다.
McHale은 Celtics와의 협상에서 가장 큰 진전을 이끌어냈는데, Celtics에는 자신의 옛 동료 Danny Ainge가 있었다.
Ainge는 KG를 위해 Celtics의 유망주 모두를 포기할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McHale은 Celtics와의 트레이드에 집중했다. 그렇지만, KG는 그렇지 않았다.
드래프트가 시작하기 전에 KG의 에이전트 Andy Miller는 Celtics로 KG가 이적할 경우, 연장 계약을 하지 않을거라는 의지를 구단 측에 전달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Celtics가 트레이드로 Ray Allen을 영입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KG는 우승을 원했다. 그리고 Allen, Paul Pierce와 함께 라면 곧 우승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7월 말, KG는 Celtics와 장기 계약에 합의했다. Boston의 유망주들과 만기 계약자였던 KG가 유니폼을 바꿔 입은 것이다.
이 엄청난 유망주 군단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McHale은 Hudson을 방출했고 Hassell을 트레이드했다. 두 선수 모두 2003-04 시즌을 경험했던 선수들이었다. 이제 2003-04 시즌의 성공을 경험한 선수는 Wolves에 없었다.
글쎄, 아직 Mark Madsen이 있었다.
대형 트레이드가 일어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KG는 NBA 우승을 차지했다.
대형 트레이드가 일어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Wolves는 최근 10년을 통틀어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었다.
KG를 내주고 얻은 유망주 가운데, 단 한 명도 구단의 기대대로 성장한 선수가 없었다.
Al Jefferson은 부상 당하기 전에는 꽤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 외에도 몇몇 선수들은 괜찮았다. 하지만, 이 선수들로 팀의 중심을 삼을 수는 없었다.
Wolves는 그 후 10년 동안 로터리 지명을 하면서 엇갈린 성적표를 받았다.
2008년 McHale은 영리한 트레이드로 Kevin Love를 얻었다.
그 시즌 말에 McHale은 다시 스스로 감독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단장직을 내려놓았다.
2009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McHale은 오랜 기간동안 몸담았던 Wolves를 떠났다.
그리고 새로운 단장인 Davis Kahn은 2009년 드래프트에서 Love의 조력자를 영입할 기회를 날려버렸다.
그 실수 이후에도 Wolves는 충분한 로터리 지명권을 얻었고 2004년에 그랬던 것처럼 FA와 트레이드를 통해 다시 제 궤도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Wolves는 그러지 못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여튼 2004년의 그 순간은 구단 역사상 최전성기였다.
Wolves가 10년 넘게 실패를 거듭하는 동안 아직 리빌딩 중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경쟁력 있는 선수단을 확보했고, 좋은 성적도 거두었다. 그러나 그 선수단을 해체하면서 짧은 전성기도 끝나버렸다.
이것이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이후 세대가 그 이전 세대와 닮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다들 그렇게 몰락해간다.
첫댓글 사실 스미스 부정계약 사건이 너무 치명적이었죠 스몰마켓에겐 생명줄인 드랩지명권을 장기간 박탈당했으니...
가넷 로이 노아였으면
진짜.......
부정게약으로 드랩 못한게 가장 컷죠.. 구단 삽질에 kg도 커리어 날렷으니 보스톤 이적해도 욕하는 사람 별로 없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