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폐기론자들의 주장에 반박하며
성경은 단순한 텍스트가 아닙니다. 소설을 예로 들자면 그 목적이 하나로 귀결이 되어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으로 쓰여진 책이기에 이중. 삼중의 의미가 들어갑니다. 구약의 선지서를 예로 든다면 삼중.사중예언으로 되어 있어 당대에 성취, 후대에 성취, 초림에 성취, 재림에 성취되는 놀라운 상황을 볼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율법과 복음의 관계도 그와 같습니다. 율법으로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죄를 깨달은 후 회개하고 믿음으로 칭의를 받고 다시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려가는 신앙을 하는 것 쯤은 아실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정치적 시민의 용도입니다. 세상이 더이상 악해지는 것을 방지합니다.
둘째, 죄를 깨닫게 하는 용도입니다.
셋째, 중생한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지켜가기를 갈망하며 성화의 도구로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율법폐기론자들이 제시하는 에베소서2장과 사도행전 2장의 기능은 두번째 기능을 바울사도가 설파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기능으로서는 율법이 폐하여져야 맞습니다. 왜냐면 율법은 표면적으로 행위로써 완전한 의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면적으로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의지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신자는 율법에 비춰 회개하고 믿음으로 칭의를 받아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루터와 칼빈이 주장한 것이 맞습니다.
다음으로 세번째 기능에 대해서 설명을 하겠습니다.
야고보와 바울이 싸운다고 생각하십니까? 야고보는 행함을 강조하였습니다. 님과 같이 생각하면 바울은 믿음만 강조하였습니다. 야고보가 주장하는 대상자가 누구인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믿음에 열심이 있는 자들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에베소서2:14)]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7)]
바울이 전하는 대상자들은 누구인가 보시기 바랍니다. 이방인들로 이제 입문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율법관에 대해서 예수님이 가장 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계명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태복음5:17-19)]
더불어 바울사도와 요한사도가 변증을 하며 계시록도 증언을 합니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로마서7:12)]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한1서 2:4,4)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바 말씀이거니와 (요한1서 2:7) ]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요한2서 1:4)]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요한2서 1:6)]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계시록 14:12)]
결과적으로 율법폐기론자들은 루터와 같이 율법의 두가지 기능에 대해서 머무른 것입니다. 칼빈은 세번째 기능에 대해서 더 강조를 한 것입니다. 율법은 이제 신자에게 정죄의 기능을 상실합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의를 덧입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율법은 산상보훈적으로 재해석을 해야합니다. 의문에서 영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기능을 따르려는 자는 중생한 자요 거듭난 자로 본 것입니다. 율법은 중생한 자에게는 기쁘게 즐거이 순종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가는 귀한 도구가 되는 것이지만, 중생하지 못한 자에게는 무겁고 찌르는 역할을 여전히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중생하지 못한자를 죄인임을 드러내게 만드는 것입니다.
퍼온글
첫댓글 여기 율법 페기론자들의 활동보면 죄를 회개할필요 없으니 교묘한 방법으로 남을 할퀴고 물어 뜯어도 거듭났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아도 되니 자기편 사람이 아니면 위장한 양털로 날카로운 발톱 숨기고 기회를 엿보아 엎퍼커트 잽싸게 날려도 양심에 가책이란거 전혀 없습니다. 양심에 가책이 있다면 자신 스스로 더러운 비양심 형성해가며 활동하겠습니까?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2)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또는 교묘하게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독립침례교는 성자 하나님됨을 부인)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그러게 말입니다. 거듭난 예수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예수의 성품인 사랑이 넉넉히 흘러 나올 법 한데, 예수님은 나오지 않고, 자신의 지식자랑이나 옹리만 부리고 있으니, 이것 또한 자기의 의가 아니겠습니까? 성경을 좀더 폭넓게 상고하며, 신앙의 선배들이 정리해둔 글들을 폭넓게 접해보고 살핀다면, 율법폐기되었다는 등, 헛소리하지 않을것인데, 너무 배타적이며, 성경몰이해와 옹리부리는 모습이 참 안타까울뿐입니다.
주님은 율법을 폐기하러 오신 분이 아니요 완전케 하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뜻을 이루셨지요.. 율법이 완전케 되었다면.. 더이상 그림자를 섬기는 자가 되어선 않되며 온전케 된 그 무엇을 좇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을.. 로마서는 믿음을 강조했다는 것은 전혀 로마서를 오해한 것이며 로마서의 진수가 아직 덜 열렸다는 의미를 가진다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는 야고보서보다 더 생명을 다루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라는것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듯이 자기를 하나님께 드리는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하나님께 드렸듯이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께 바침이 되는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믿는다는것은 예수님이 행하셨던 그 삶을 살아가는것을 의미하는것입니다. 예수님이 완성하셨다는것은 예수님의 길을 따르면 그길이 곳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길을 왜 성경에서는 좁은길이라고 표현했을까요? 그저 예수님만 믿으면? 다되는것이라고 말하는것은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었으면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지요.
신재연님께서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에 대하여 오해하신듯 싶습니다.. 믿음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먹는 것이랍니다.. 믿음의 의미가 풀리지 않으면.. 이 성경이 이해가 되기 쉽지 않으리라 봅니다.. 요한복음의 그 말씀들을 관련해서 잘 연구해보시길 조언드려봅니다.
성경은 영을 좇으라 했지.. 율법을 좇으라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주목하지 말고 생명나무를 주목하라고 하시는데... 율법폐기론자나 율법유용론자나 둘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아래에 머물러서.. 생명나무를 보지 못하니..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 할 수 있겠는지요.. 로마서와 야고보서를 자세히 보시면.. 둘다 동일한 무엇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생명나무입니다.. 율법의 완성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완성, 율법의 완전에 대한 정답을 말씀드리면.. 그것은 생명이요 생명나무입니다.. 율법유용이든 율법폐기 주장이든 생명나무를 벗어난 무엇도 답이 될수 없다는.....
성경을 쫓는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길을 쫓는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범이 되셔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산상수훈에 잘 나와있지요. 그 길을 가는것이 바로 성령을 쫓는 것입니다. 율법을 쫓는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성령의 법이 바로 온전한 율법이고 그 온전한 율법을 예수그리스도께서 행하셨으니 우리가 그 분이 행하신 그대로 우리가 가면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신길을 따라가는것이기 때문에 그 짐이 가벼운것입니다. 모르는 길이 아니라 아는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관해서는 예수님이 가장 잘 말씀하셨습니다.--->잘 알려주셨습니다로 바꿔야지 않나요?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ㅡ.ㅡ;;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가장 잘 말했습니다->가장 잘 알려줬습니다가 맞는 표현이죠 ㅎ....이런거랑 같죠..ㅜㅡ 암튼 잘 읽었고 알아먹었습니다. ^^*
또하나.. 본문의 글에서 야고보서는 믿음에 장성한자.. 로마서는 믿음에 초보적인자.. 라고 오해하셨는데.. 로마서와 야고보서를 이해 못하신 말씀이십니다.. 오히려 거꾸로 알고 계십니다.. 로마서는 장성한 분량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한 것이며.. 그야말로 야고보서는 오히려 로마서보다는 한참은 초보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한 것이랍니다..
───.─^ 로마서가 야고보서보다 위라고요? 무엇이? 수준이?... 서신서에 쓰고자한 저자의 어떤 목적이 다른것 아닐까요? 그럼 요한계시록은 성경중 최고 수준이겠네요? 아니지..창세기일까? 야보곳서가 초보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라고요? 성경66권에 대한 등급제도 있습니까?
넵~! 요즘 예민해서 인지...제대로 이해수준이 한참 떨어지는듯 합니다. 하도 진흙탕 싸움을 하다보니...제가 오해한듯 합니다.
오해이셨다니.. 다행스럽습니다. 그래서 제댓글도 삭제했답니다.. 저는 야고보서도 로마서도 너무나 소중한 복음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답니다.. 다만, 로마서는 로마서의 관점과 중요성이 있고 야고보서는 야고보서의 관점과 중요성이 있으며... 다양한 관점에서 주님의 어떠하심과 우리의 어떠함을 설명해주고 교육시켜 주시는 것으로 본답니다. 결코 야고보서는 모자라고 로마서는 않모자라고의 관점이 아니랍니다.. 루터는 야고보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요.. 카톨리즘의 행위구원론에 넘 반발되다보니.. 야고보서의 중심을 오해한 것이기도 해서.......
지성방 답게 오해한것은 사과를 하고 사과를 받아주시고...^^ 또 견해에 대한 차이는 복음의진리를 훼손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성경안에서 대화로 나아갈수 있을것입니다. 진정한 개혁은 진리안에서 서로를 존중해줄때...그리고 비진리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할때...^^ 실례했습니다(전 제 댓글 안지우겠습니다. 그래야 제 스스로 망아지처럼 안날뛸테니...^^)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해야하나요? ㅎㅎ 응...ㅅ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