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인들 가운데 십일조 온전히 지키는 사람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물질적인 십일조 수치에서도 그렇겠지만 義와 仁과 信의 정신을 위반 하지 않고 지킬 사람은 없습니다.
곧 십일조 드리려다가 시험에 들지 않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드리면서도 아까운 마음, 물질을 더 풍성히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과 거래하는 마음, 때로는 마지못해 억지로 드리는 마음, 아깝지는 않으나 의무적으로 하는 마음, 반 의무적인 마음, 반 자율적인 마음 기타 등등으로 이미 그 마음에 시험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온전히 지키지도 못할 십일조의 법을 예수님께서 신약 복음에서도 지켜야 할 법으로 제정하여 가르쳤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십일조를 비롯 모든 율법을 온전히 다 지킬 사람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렇게 근본적으로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쓴다는 것은 자기의 의를 쌓으려는 것이므로 결국은 선행주의로 빠집니다.
따라서 십일조 역시 선행주의에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율법이 인간에게 가입한 것은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인간 속에 있는 죄를 더욱 죄 되게 드러냄이 율법입니다.
따라서 모든 율법은 인간을 죄 아래 가두는 것입니다.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 때문에 이 율법에 의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드러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율법 아래서 죽임을 당하고 하나님의 의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영이 살림을 받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여전히 율법 아래에 놓여 죽임을 당한 상태로인 것이 그리스도인의 입장입니다.
이 죽임을 당한 나의 육체의 그 모든 소욕을 영으로 제어(control)를 하며 잘 이끌고 가는 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제 그 영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은 더 이상 율법을 지키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반드시 죽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율법을 다 준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 아래서 죽고 하나님의 의로 인하여 다신 산 우리가 또 다시 율법 준수에 얽매인다는 것은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다시 죽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을 지키려는 것은 복음을 배도하는 행위가 됩니다.
복음 안에 든 우리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이 율법의 요구란 만가지 율법 준수가 아닙니다.
율법의 요구란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며 이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만가지 율법 준수를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우리들에게 주시고 받은 그 사랑 그대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라는 사랑의 새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원래 만가지 율법도 그 근본 정신은 바로 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율법 아래 매여 있을 당시는 이 사랑을 알면서도 전적으로 행할 수 있는 능이 나에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 능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나의 영에게 전달이 되어 졌기 때문에 나의 영이 그 능을 행사 할 수 있고 또 행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행사로 오는 그 모든 것이 바로 믿음의 열매가 됩니다.
따라서 복음 안에 든 우리에게는 더 이상 율법을 준수하므로 열매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말해 율법이 말하는 도덕과 윤리를 준수한다고해서 그것이 나의 열매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쉽게 예를 들면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고 한 율법을 준수 하였는데 내 마음에 이웃과 물질과 명예와 그 어떤 탐심이 생겼다면 그 순간 모든 율법을 어긴 것이므로 율법 준수로는 더 이상 나의 열매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의 열매는 도덕과 윤리의 율법 준수에 있는 그것이 아니라 주의 그 사랑을 행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 사랑은 남을 나 보다 더 낫게 여기며 타인을 위하여 나를 스스로 낮추며 종이 되어 섬기는 이러한 것이 나의 열매가 되는데 이는 곧 주의 사랑을 받은 자가 그 사랑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성령의 열매요 빛의 열매요 믿음의 열매라고 성경은 그 열매의 내용에 대하여 지식적으로 그 조항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곧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됨과 희락과 화평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덕과 지식과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 등등의 조항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거듭난 나의 새 사람의 인격이 익혀서 나에게 있게 하는 전인적인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그 모든 항목들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함의 그 모든 것을 맺게 하는 행함을 믿음에 열매요,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율법의 도덕과 윤리 실천을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개신교가 바로 이런 식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지나치게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에 치우친 나머지 율법의 도덕과 윤리적인 면의 실천 강화를 위한 교육의 약화로 인하여 열매를 맺지 못한 결과 오늘에 이르러 사회로부터 크나 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반성 회개하고 이제라도 율법의 도덕과 윤리 강화로 이 위기를 탈출하여 열매 맺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가 또 바로 이러한 것을 지칭하여 [율법의 요구]라는 정의를 내리며 성경을 오해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개신교가 주장하는 십일조도 율법의 한 조항 입니다.
이 율법에 한 조항을 지키기 위한 십일조 준수가 결국은 십일조의 의에도 이르지도 못하고 도리어 율법 아래서 자기의 의를 쌓는 것이 되어 새삼스럽게 어처구니 없는 율법 아래로 돌아가 죽는 길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마침]
삭제된 댓글 입니다.
구약 때에도 율법의 정신 이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사랑이 제사의 제물안에 담아져 있었죠.
곧 그 제물에 실체가 실체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신앙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물의 핵심인 메시야적인 사랑을 상실하고 이스라엘이 율법주의라는 유대교로 전락한 것입니다.
오늘도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실하고 개신교라는 종교로 전락하여 기복주의와 율법도덕주의로 전락한 상태에 있습니다.
예레미야 8장에 너무나 정확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이 돌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결론으로 맺으신 본글에 깊이 공감하며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특히 <율법의 요구>를 설명해주신 부분이 참으로 깊이 와 닿습니다..
사랑도 율법이라 하는 분들도 있으니.....안타깝지요..
샬롬^^ 캐나다로 계시는 형제의 자녀(조카) 결혼문제로 멀리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지금은 없어야 할 옛율법의 잔재인 십일조관련 결론글까지 마무리를 주셨네요......
그간 수고를 감사드립니다. ^^
그렇습니다. 모든 율법이나 율법의 요구나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이나, 진리의 영 성령의 권함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영으로 거듭나 사는 '진리에서 난 사랑으로 하나님과 동행'을 말씀하십니다.
연재로 주신 말씀들을 통하여 이 말씀을 대한 모든 형제자매님께서
진리로 좇아 진리로 신앙하여 진리의 사랑을 받아 마침내 참에 이르기를
간절히 소원드립니다. 다시금 감사와 평강을 소원드립니다. 샬롬^^
안타깝게도 구약으로 가는 교회가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은 신약 시대인데 성경을 발전하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언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낡은 법아래에서 맹신 하고 있으니 목사님도 목사님 이지만 성도 들이 참 불쌍합니다. 아들 관계가 아니라 모세의 종으로 살고 있으니 눈물이 나네요 아 아버지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소서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