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역사의 가장 큰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끊임없이 정치적인 힘, 군사적인 힘, 경제적인 힘, 도덕적이고 영적인 힘 등 바로 이 힘의 시험에 굴복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말로는 자신의 신성한 힘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을 비워 우리 인간의 모습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해 왔습니다.
힘을 복음 선포의 유용한 도구로 간주하려는 유혹이 가장 큰 유혹입니다.
우리는 '힘을 갖는 것'이 하나님과 동료들의 섬기는 데 쓰여진다는 좋은 것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어 왔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말해 왔습니다. 이런 합리화 때문에 십자군도 생겨났고, 종교 재판소들이 설립되었고, 인디언들은 노예화되었습니다. 또한 큰 영향력이 미치는 자리들을 바라게 되었고, 감독들의 대저택과 현란한 교회와 화려한 신학교들이 설립되었으며, 양심에 대한 숱한 도덕적 조작이 자행되었습니다.
11세기의 교회 대분열, 16세기의 종교 개혁, 20세기의 거대한 세속화 등과 같이 교회사에 있어 큰 위기들을 볼 때마다 그런 파열의 주요 원인이 가난하고 힘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행사한 바로 그 '힘' 때문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힘에 대한 유혹이 막기 어려울 정도로 강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사랑이라는 어려운 과제에 대한 손쉬한 대체물을 힘이 제공하기 때문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하나님 되는 것이 더 쉽고, 사람들을 사랑하기보다는 사람들을 컨트롤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우리는 "당신의 나라에서 당신의 오른편에 또는 왼편에 앉을 수 있을까요?"(마 20:21절) 라고 묻습니다. 뱀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다"(창 3:5절) 라고 말한 이래로 우리는 사랑을 힘과 바꾸려는 유혹을 받아 왔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십자가까지 이 유혹을 가장 고통스런 방법으로 받는 삶을 사셨습니다. 교회 역사 중 가장 고통스러운 역사는 때때로 사랑 대신에 힘을, 십자가 대신에 지배력을, 인도받기 보다는 인도하려는 유혹을 받아 온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이런 유혹을 끝까지 이겨내어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는데, '친밀감' 을 두려워 할 때 '힘'에 대한 유혹이 극대화된다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의『예수님의 이름으로』
첫댓글 복음을 힘으로 착각하는 조용기 목사가 생생한 증거입니다..
안 믿는자들이 보면 세속적인 표현을 쓰자면 그놈이 그놈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한마디로 누워서 침 뱉는다 그 말입니다. 이리 비판할 시간에 자신의 신앙과 예수님 닮아가는 성숙된 인격을 가졌으면 합니다. 자제하세요..
샘 ! 제발 정신차리시오 ! 난 15년전 망치들고 단군 대갈 깨고 명산 돌아다니면 박살 내기를 했던 전사였다.
나를 악종으로 만든 그들을 내가 얼마나 증오하는 줄 아는가 ! 비판과 자성 끊임없는 집단은 바로 타락한다.
재력과 금력 상승의 권세에 굴복한 무리들에 대해 자각이 없고 두둔만 하려 하다니 이 어찌 .... ㅉㅉㅉㅉ
통탄 스럽도다. 악을보고 선이라 하고 선을 보고 악으로 몰아 버리는 그 무뇌를 어찌할꼬 ! 약이 없도다 약이 없어 !
gil2000님 말씀하시는거 어찌 그리 삐딱하시고 그리 부정적인지 모르겟네요. gil2000님은 남 비판하는 못된 습성부터 고치시는게 좋겠네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본적인건 지켜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무뇌?ㅎㅎ
악한 마음에서 악한게 나온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밭 길을 가다가 가려져 있는 똥 통에 빠졌다면 여러분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 나중에 오는 남이야 빠지던 말던 그냥 조용히 지나간다.
2. 표시를 해 놓아 다른 사람들이 빠지지 않게 한다.
3. 똥통을 완전히 제거해 버린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냥 1번의 삶을 살면서 그것이 조용한 성숙함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