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러 올라가 건강 때문에 서울에서 교회를 사임하고 지방으로 내려갈 때 제게는 절망과 소망이 교차했습니다. 교회에서 사택과 생활비를 보장받고 살던 자리를 떠나 아내와 백일 갓 지난 아이를 데리고 집도 먹을 것도 보장이 없는 길을 떠난다는 것이 막막했지만 하나님이 나를 연단하실 것이라는 소망도 있었습니다. 제도가 부여하는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은 울리는 꽹과리가 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저는 기질이 혁명적이진 못하고 굴레를 벗어날 용기가 없는 범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길로 이끄시기 위함이라는 희미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출산 후 채 회복이 안 된 몸을 가지고 학원 강사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고 저는 사람들이 “요즘 뭐하냐?”라고 묻는 것이 싫어서 점점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자라 두 살 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어린이 집 선생님이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면서 애들이 다 우리 아빠 약사, 우리 아빤 영어선생님… 하고 얘기하는데 우리 애는 아빠가 뭐하는 사람인지 몰라 멍 하게 서 있더라는 것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빠 직업란에 뭐라고 써야 할텐데... “무직”…ㅠㅠ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일이 작은 도화선이 되어 조그만 학원을 인수해 운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원을 키울 꿈을 가지고 제 건강 상태는 잊고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마음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갈등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선교단체 일을 할 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교사를 하면서 틈만 나면 캠퍼스에서 전도를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사람만 보면 모두 영혼 구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세 가지 일을 하면서 몸은 극도로 피곤하여 26살에 당뇨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대학 캠퍼스에서 너무 피곤하여 벤취에 누워 잠을 잤는데 눈을 뜨니 밤이었습니다. 캠퍼스를 나오며 “주님, 내 몸이 복음만 전하다가 이렇게 피곤하여도 좋겠습니다. 당신만을 위한 일을 하다가 몸이 망가져도 좋겠습니다. 그러나 돈도 벌고 공부도 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이런 독백 같은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뒤 신학을 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학원을 하면서 학생들이 들어올 때마다 머릿수를 세며 학원비를 곱하고 내 수입을 계산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비참했습니다. 옛날 전도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것은 내게 타락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대상인 얼굴들이 모두 돈으로 보이게 된 것입니다. 가슴 속에서 무너지는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학원은 계속 굴러가야 했습니다.
피로가 쌓여 옆구리를 붙잡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학원 선생이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보였는지 입원을 강요하였습니다.
일단 이틀을 입원해 휴식을 취하면서 검사를 하였는데 의사의 말은 지금 비장이 두 배로 부어 있는데 간경화로 진행되는 것 같으니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으로 생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의사가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간경화 초기 진단이었습니다.
이제 나이 35세… 어린 아이 둘을 두고 어찌될지 모르는 미래 앞에 서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연단하셔서 쓰실 것이라는 교과서적인 정답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캄캄함이 나를 덮었습니다.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가? 여기서 끝내려고 나를 신학을 하게하고 지금까지 살게 하셨는가? 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멘토 목사님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건강이 중요하니 몸이 힘들면 언제라도 그만 둬야지. 돈생각은 말고 힘들면 지금이라도 정리해야 되지 않겠나.” 차라리 목사를 다시 하면 어떨까요? “건강만 허락한다면 말씀 전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나. 복음만 분명하다면 무엇을 해도, 그야말로 무엇을 해도 좋다.” 제가 목사를 다시 한다면 다른 형제들이 판단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집을 지으려면 재료가 다양할수록 좋다. 벽돌은 옆에 있는 벽돌이 자기와 색깔이 같아야 편하기에 모두 자기 같기 원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형제들에게 두신 색깔이 다 그대로 드러나기를 원한다.” 차라리 미국을 가면 어떻겠습니까? “길만 열린다면 무엇이라도 해 보자. 미국의 공기 좋은 곳에서 휴식을 하든지 중국에 가서 명의를 만나든지, 건강이 좋아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뭐든 해 보자. 지금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신경 쓰지 말고 해 보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해 보자. 너는 건강해 지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라. 나는 내 인생에서 하나님이 나의 약함을 쓰셨기 때문에 주께서 너의 그 약함을 쓰실 줄 믿는다.”
너무나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뒤돌아서 나오는데 그것이 나를 위로하고 살리려는 아버지 마음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정답을 준 것이 아니라 힘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제 마음의 결론은 목사도 미국도 아니었고 더 이상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예수만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잘 기다려 왔는데 …. 점점 희망이 없어져 가는 남편을 보면서 앞이 캄캄해 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아내와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나이 35세에 앞으로 완치될 희망이 없는 건강이 되었는데… 내가 40을 넘길지 50을 넘길지 아무도 모른다… 나도 좋은 남편이 되고 싶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런 아빠도 되고 싶고 세상에 누구를 만나도 근사한 명함을 내밀고 싶다. 그렇지만 이것저것 다 신경 쓰며 우왕좌왕 하다가 언제 하나님이 내 인생에 찾으시는 열매를 준비할 수 있겠나? 이제 내게 허락된 시간 하나님이 찾으시는 열매만을 위해 살고 싶다. 당신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남겨줄 것은 이것 밖에 없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그럴 줄 알았어.” 이 말 뿐이었습니다. 아내는 자기대로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 아이들, 제게 은혜 베푸신 이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예수를 위해 살다가 죽는 길 뿐’이라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에 대해 더 이상 소망을 둘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이후 건강이든 돈이든 사람들의 판단이든 나의 문제로 요동치는 일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은 성공했다 할 것도 실패했다 할 것도, 잘했다 할 것도 못했다 할 것도 없어졌습니다. 레슬링 선수처럼 건강할 필요도 없고 공부를 많이 해 똑똑해질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내 소원이 있을 때는 항상 부족하고 늘 뭔가를 더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하고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크고 위대하고 잘나고… 그런 모든 가치들이 떠나가 버리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필요만큼 허락하실 것이고, 나는 주신만큼 사는 것이다.” 제 인생은 이렇게 정리되었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가져가시는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 것입니다.” 욥과 같이 이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
첫댓글 jasper님의 글이로군요. 진중하고 품위있는 분이셨어요. ^^
적어도 제 기억으론 그렇습니다.
글과 글쓴이에 대한 평가도 좋지만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나눠주시면 더 유익할 것 같습니다.
@스콜라 반가워서 그랬네요..ㅎㅎ
인생과 사명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게 하는 귀한 간증입니다.^^
참 유익한 글입니다.
"내 소원이 있을때는 항상 부족하고 늘 뭔가를 더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하고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내인생!
아직도 아등 바등 뭔가 해보려는 내 인생.
불쌍한 내 인생에게 들려주는 말씀,
낼 모래 18일날,
4명의 자식들을 데리고 6명의 가족이 함께
이 코로나 시국에,
베트남 으로 1년간 떠나는,
지 하고 싶은데로 하는
내 아들, 에게 꼭!!!
새겨 주고 싶은 말씀,,
아드님께서 연수나 유학을 가나봅니다.
하고싶은대로 한다지만 지나고보면 주의 이끄심이었던 경우가 많더라구요..
염려되고 불안한면이 부모로서 없을 수 없겠지만, 주의 동행을 기도하는 수 밖에..ㅎㅎ 잘 될겁니다.^^
@써니 감사 합니다!
유학 이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