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수(石手)의 아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1세기 당시 건축의 재료들은 대부분 돌이었습니다.
또 이스라엘 산은 대부분 암반으로 된 돌산입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 지방은 집을 지을 만큼 나무가 나는 곳이 아닙니다.
겨우 조각목이나 구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목수(木手)로 번역된 헬라어 테크톤(tekton)은
집뿐만 아니라 그릇 항아리 등 여러 가지를 만드는 기술자를 말하는데
그 재료들이 주로 돌이었기 때문에 석수(石手)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목수(carpenter)라고 번역된 것은
번역된 시대와 지역에는 집을 주로 나무로 지었기 때문이겠지요.
돌로 된 항아리,
돌로 지은 성전.
건축자들이 버린 돌,
모퉁이 머릿돌,
반석 위의 집,
베드로(돌, 헬라어, 게바는 아람어),
그리고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 있다는 등
성경의 건축 비유는 모두 돌이었습니다.
널려져 있는 것이 돌이었으니까
하나님 나라의 건축은 널려져 있는 재료들로 세워진다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는 기술학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기술은 대부분 아버지에게서 전수받았습니다.
탈무드에는 “아버지가 자식에게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당연 예수님도 아버지에게 석수의 일을 배웠을 것이며,
당시의 랍비들은 제사장들과 달리 직업을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석수의 일은 당시 근로자 계층을 대표하는 일이었습니다.
또 재료인 돌은 대부분 산에서 따와야 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가장 힘든 3D 업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말씀이
산에서 돌을 캐서 짐 지고 내려오는 사람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씀했습니다.
율법의 짐을 짊어지고 종교의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은
무거운 돌을 짊어지고 수고하는 자들 보다 더 곤고한 인생일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다면
율법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의로우려 애쓰고,
교리라는 컨테이너 속에서 하나님을 규정지으려 하고
돌로 만든 집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했을 것입니다.
“주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편11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