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교회가 주님이 세우신 교회의 역할을 꼭 하는 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조직 교회 안에, 또는 그 조직 교회의 장벽을 넘어 성도들은 생명으로 연결되고 진정한 교회가 숨을 쉬고 성장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도간의 교통을 통하여 주의 말씀이 더 흥왕하고 각 사람의 마음과 삶에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많은 조직된 교회에서는 그 공식적인 모임이나 행사에 이런 영적 성장과 결실의 표징이 안보입니다. 말씀의 교통이 핏줄처럼 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표징이 없을 때 조직교회에 모든 것을 맡기고 수동적으로 살거나 표징없는 조직교회의 여러가지 일에 매몰되어 일생을 성장없이 낭비하는 것은 주신 생명의 삶을 스스로 척박하게 만드는 것이며, 어떤 면에서도 미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겉으로보면 고목 같은 조직교회 내에도 살아있는 세포들은 당연히 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들은 연결(교제)을 찾으며, 찾으면 교통하고, 그것으로 생명을 나누고, 각각 끊임없는 성장의 길을 갑니다.
그러므로 약간 수사적인 표현을 하자면 교회 안의 교회를 능동적으로 만들어야 하며 교회 밖의 교회도 능동적으로 만들고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말씀이 교통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말씀의 교통은 늘 모여 성경공부를 하고 있거나 성경 귀절을 서로 보내고 격려하는 외적인 행동을 말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만나기만 하면 정해진 듯이 늘 '신앙적인' 대화만 하는 관계는 오히려 진정한 말씀 공동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삶을 가지고 들어오지 않는 말씀 공부는, 종교적 실적을 채우는 지식적 취미일 뿐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사모하는 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변화하고 말씀 안의 원리를 깊이 깨우쳐 그것으로 살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며 나를 먹어야 한다고 하신 것으로 압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말씀의 메아리입니다. 말씀이 영과 생명이라 하셨으니 우리의 삶이 말씀으로 인해 생명이 충만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 공동체는 삶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서로 길벗으로 삼아 의지하며 인생의 길을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이런 모임 안에서는 성경은 더 박식하게 알고 있는 신학자가 자신의 자녀 교육에 있어 다른 신자들에게 배우고 도움받는 경우가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말씀의 깊은 원리를 삶에서 풀어내는 것은 언어적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 이는 공학과 같습니다. 과학자는 원리에 정통해도 그 원리의 일부만을 가지고도 발명은 다른 사람이 합니다. 신학자는 아인슈타인이 되지만 삶의 역군들은 에디슨이 됩니다. 그러면 아인슈타인도 에디슨이 발명한 전등 아래 연구해서 에디슨이 발명한 전화로 연구결과를 동료에게 전달합니다. 이것이 에베소서에서 너희는 함께 지어져 가는 집이라는 이미지와 맞다고 생각됩니다.
교회는 한자대로 풀자면 '가르침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두셋이 모이면' 이라는 말씀은 '너희'에게 즉 예수님에게 가르침 받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말씀 없는 모임이 아무리 예수의 이름을 내 걸어도 교회가 아닙니다
또 말씀이 사람들의 삶을 서로 통하게 하는 모임이 아니면 아무리 말씀을 매일 공부해도, 또 아무리 서로 삶의 이야기를 나누어도 교회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안됩니다. 그것은 가르침도 배움도 아니니까요.
그러니 교회 안에서, 또 내 조직교회 밖에서 어떤 분들과 이러한 교제를 할 수 있을지 알아내고 그 분들과 어떻게 계속하여 이런 교통을 할 수 있을지 적극적으로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방법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
첫댓글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말씀의 교통은 늘 모여 성경공부를 하고 있거나
성경 귀절을 서로 보내고 격려하는 외적인 행동을 말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만나기만 하면 정해진 듯이 늘 '신앙적인' 대화만 하는 관계는
오히려 진정한 말씀 공동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삶을 가지고 들어오지 않는 말씀 공부는,
종교적 실적을 채우는 지식적 취미일 뿐입니다.'
저는 특히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런데 취미보다 자기 합리화나 정당화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이 말씀으로 인해 생명이 충만해져야 합니다."
-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맑은내님께 드리시는 감사지만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예배당에 한정된 교회론에서 벗어나야 하고
예배당과 예배당 간에 존재하는 분명한 이질적 문화(니교회 내교회 구별하는)를 벗어나야 하고
하나의 성령 안에서 지구촌 가운데 누구라도 일치감을 느낄 수 있는 교회론이 생성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일이 계시록적 숙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개 교회 간 구별은 물론이고 경쟁 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지요. 신자 수, 건물 크기, 헌금 액수 등등.
웃픈 얘기가 한 교회가 부흥회 하면 그 옆 교회도 한다고 합니다.
신자들 뺏길까 해서요.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그것을 체험하고 가꿔가는 곳이 교회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힘이 나네요 ^^ 저는 지금 온라인 상에서 교회가 시작됐고 오프라인에서 두 모임이 있는데 한모임이 약간 그 방향으로 가는것같네요^^
어쩐지...^^
저도 이 글에서 많은 용기를 받았습니다.
변변치 못한 사람의 글인데, 읽어주신 분 화답해주신 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초보 신자처럼 묵상하려 하고 있습니다.
잘 지내시죠^^?
맑은내님, 좋은 글 주시고 응답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여러 변화가 있습니다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좋은 모임 소식 반갑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예배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하는 기회가 생긴 것 같습니다.
또 교회의 본질과 "우리는 교회에서 무엇을 찾는가?" 하는 질문도 모처럼 해 보는 기회가 되고 있네요.
결론이 무엇인가 하기 이전에, 그냥 길이 난대로 땅만 보고 따라가거나 습관으로 하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이 다시 생각하여 의미를 찾는 것 자체가 우리 각자에게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