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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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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당 조정육의 그림과 인생 스크랩 ⑥낙상한 남편, 맨발로 뛰쳐나온 아내, 사랑은 이런 것-김득신,<파적도>
무진당 추천 0 조회 316 11.06.16 05:50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조정육의 『동양화가 말을 걸다』⑥김득신- <파적도>

 

 

                      "낙상한 남편, 맨발로 뛰쳐나온 아내, 사랑은 이런 것"

 

 

 

우리 사회에서 잘 나가는 축에 속하는 사람과 부부동반으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남편과 친분이 있다 보니 덩달아 나까지 알게 된 사람이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것에 반해 그는 매우 소탈했다. 적절하게 유머를 섞어 가며 분위기를 살리는 재주도 뛰어났다. 역시 어느 조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부창부수라고 하더니 부인도 선선해 보였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식사는 행복하다. 나는 이 행복한 자리에 초대해 준 부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새로 출간한 책을 꺼내 싸인을 해 주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타났다. 벌써 몇 번째 책을 내시는 거예요? 여기까지는 좋았다. 내 책을 받아 든 남자가 갑자기 자기 곁에 있는 부인에 대해 마구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누구는 말이야. 이렇게 책도 여러 권 써서 노년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는데 누구는 평생 밥만 축내니 세상 참 불공평해. 인세 팍팍 들어오겠다, 평생 정년 없겠다, 김 이사는 지금 당장 회사 그만 둬도 되겠어. 정말 부러워요 부러워. 옆에서 말이야. 이렇게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도와줘도 살 둥 말 둥한 세상에서 나 혼자 버티려니 내가 흰 머리가 안나게 생겼냐 이 말이야."  끊임없이 혼자 투덜거리는 남편을, 그의 아내는 여러 번 겪어봤다는 듯 그저 철없는 아이 바라보듯 보면서 웃었다. 그러나 그 속이 오죽하랴. 곤혹스런 남편이 한마디 거들었다.

“집에 들어가시면 어떻게 뒷감당을 하시려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남편 말에 눈치 빠른 그가 너무 내질렀다 싶었던지 얼른 분위기를 수습했다.

“현관 들어가자마자 바로 손들고 서 있어야지, 뭐.”  

김득신, <파적도>, 화첩, 종이에 연한 색, 22.5×27.2cm, 간송미술관

 

 

고요한 정적을 깬 고양이

김득신(金得臣:1754~1822)의 <파적도(破寂圖)>는 한가로운 봄날, 한 농가에서 일어난 소동을 그린 작품이다. 흐뭇한 바람이 불던 어느 날에 한 남정네가 마루에 앉아 자리를 짜고 있었다. 마당에서는 암탉이 모이를 주어먹고 있었고, 어미닭을 따라 병아리 몇 마리가 종종걸음을 하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구구구구 병아리를 챙기는 어미닭 소리에 삐약삐약 화답하는 병아리의 화음은, 그 어떤 음악소리보다 아름다운 조화였다. 조화로운 소리를 들으며 일하는 남정네의 손길은 조화로움으로 가득했다.

 갑자기 암탉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디에 숨어 있었던 지 여지껏 보이지 않던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병아리를 물고 잽싸게 달아나고 있었다. 새끼가 물려가는 것을 본 어미닭은 애간장이 녹은 듯 고래고래 악을 쓰며 고양이를 쫓아가고 있고, 혼비백산한 병아리들은 부딪치고 넘어지면서도 도망가느라 바쁘다.

“이놈의 고양이새끼!”

사태를 즉각적으로 파악한 남정네가 담뱃대를 집어 들었다. 후다닥 일어나 고양이를 향해 힘껏 내려쳤다. 아, 그런데 마음이 너무 급했던 탓인가. 고양이는 잡지 못하고 자리틀과 함께 마루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머리에 쓴 탕건도 날아갔다. 남편이 낙상하는 것을 본 아낙네가 맨발로 뛰쳐나와 잡아보려 했지만 상황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아 보인다. 고양이 한 마리의 등장으로 고요한 평화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당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이 작품은 책마다 조금씩 다른 제목이 붙어 있다. 그런데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치다’라는 뜻의 <야묘도추(野猫盜雛)>보다는, ‘정적을 깨다’ 는 의미의 <파적도(破寂圖)>가 더 적절해보인다. 사건의 발단은 고양이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부부간의 애틋함이기 때문이다. 마당에 떨어져 자칫 허리가 다칠 지도 모르는 남편을 보는 아내의 마음이야말로 정말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든 ‘파적(破寂)’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순간적인 상황을 생동감있게 포착한 작품이면서 해학적인 표현미가 돋보인다.

긍재(兢齋) 김득신은 김홍도(金弘道)의 뒤를 이어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풍속화가다. 그의 아버지 응리(應履)와 큰아버지 응환(應煥)이 모두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이었고, 동생 석신(碩臣)과 아들 건종(建鍾), 하종(夏鍾)까지 화원인 대표적인 화원집안이었다. 그의 풍속화는 깔끔하게 주제만 표현한 김홍도의 작품과 달리 꼼꼼하게 배경 묘사에 정성을 들이는 것이 특징이다. <파적도>도 예외가 아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 모든 사태가 파악될 정도로 상황묘사가 친절하다. 감상자에게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붓끝으로 직접 시시콜콜 설명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김득신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자상하다 못해 부담스럽기까지 한 그의 성격이 짐작되어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덕분에 <파적도>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의 남편에 대한 마음이 절절이 배여 있어 차마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되고 만다.

 

 

‘부인, 밤이 먹고 싶으면 내게 먼저 말하시오’

부부간의 사랑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퇴계 이황(李滉:1501-1570)이다. 퇴계는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후, 권질의 여식을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그런데 권씨 부인은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서 겪은 여러 차례의 사화(士禍)를 지켜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고 난 후 딸의 장래가 걱정되었던 권질은 퇴계가 문안인사를 왔을 때 자신의 유일한 혈육을 거둬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퇴계는 그러마고 승낙한 후 그녀에게 정식으로 새장가를 들었다.

정상이 아니었던 권씨 부인은 일마다 말썽이었다. 한번은 친척들이 다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제사상에 올린 밤을 가져다 먹었다. 이를 본 퇴계는 밤을 한 움큼 집어서 부인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인, 앞으로는 밤이 먹고 싶으면 내게 먼저 말하시오.”

그러면서 기겁을 하는 사람들에게 태연히 말했다.

“아마 조상님들께서도 당신께서 드시는 것보다 후손이 맛있게 먹는 걸 더 좋아하실 것이오.”

이런 일화는 몇 가지가 더 전해지는데 퇴계는 한 번도 권씨 부인의 모자란 행동을 나무라거나 야단치지 않았다. 한 번은 문상을 가야 하는데 도포자락이 헤어진 것을 알고 부인에게 꿰메 달라고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빨간색 천을 덧대어서 꿰메 왔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난리가 났겠지만 퇴계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도포를 입고 문상을 갔다.

부부간의 불화를 겪고 있던 제자가 있었다. 그는 10년 간이나 부인과 각방을 쓸 정도로 부부간의 사이가 골이 깊었다. 그는 부인의 얼굴이 못생긴 점도 눈에 거슬렸고, 품위 없는 행동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퇴계는 어느 날 고향으로 떠난다는 제자를 아침 식사에 초대했다. 스승님 내외와 겸상을 하게 된 제자는 여러 차례 놀랐다. 명성이 자자한 스승의 초라한 밥상을 보고 놀랐고, 온전치 못한 스승 사모님의 못생긴 얼굴을 보고 놀랐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예절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부인을 스승이 한결같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었다. 제자는 느끼는 바가 많았다. 아침 식사 후 떠나는 제자에게 퇴계는 슬며시 편지 한 통을 건네주며 나중에 뜯어보라고 말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결혼은 하늘의 질서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만약 네가 너의 아내를 지금처럼 학대하고 너 스스로를 훈련 할 수 없다면 무엇을 배우려느냐?’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일제 강점기 때 활동했던 일본의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가 쓴 『미의 법문』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선인(善人)도 왕생(往生)하는데 하물며 악인(惡人)이야.’

처음에는 번역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악인이 왕생한다면 당연히 선인도 왕생한다는 표현을 착각했으리라 짐작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일본 정토종을 개창한 호넨(法然:1133-1212)스님과 신란스님(親鸞:1173~1263)이 남긴 유명한 이 말은, 불보살(佛菩薩)의 위대한 자비심을 압축해서 표현한 것이다. 부처가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중생이 구제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격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구제한다는 뜻이다. 모든 위대한 성인(聖人)들의 자비는 계산적인 중생이 상상하는 그 한계 너머에 있다. 그분들의 아량은 남보다 뛰어난 미모, 든든한 재력, 탁월한 능력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중생들의 옹졸함을 무색하게 한다. 종교적인 계율, 경전의 가르침, 한 사회를 지배하는 관습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것을 부처는 자비(慈悲)로 보여주었고, 공자는 인(仁)으로 행하였으며, 퇴계는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실천했다. 자비, 인, 측은지심 같은 마음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남편이 다칠까 봐 맨발로 뛰어가는 마음, 모자란 부인을 존경심을 다해 감싸주는 마음.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현관문에 들어서면 손들고 서 있겠다고 한 사람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조정육)

 

 

Yolanda Be Cool & DCup - We No Speak Americano (Original Mix)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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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6.16 09:43

    첫댓글 부부: 한마디로 가깝고도 먼 사이 ㅎㅎ
    보살: 선인도 왕생하는데 하물며 악인이랴()()()

  • 11.06.17 01:13

    "현관 들어가자마자 바로 손들고 서있어야지 뭐" ㅎㅎ
    <파적도>에선 여러 소리들이 ... 음향효과로 들릴 것 같은 생생화면(^^)~
    소박하기에 쾌활한 ~ 평민의 일상과 생명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 퇴계 이황의 모자란 부인에 대한 참된 사랑은 화엄의 이사무애를 일상에서
    그대로 실천하신 도인의 풍모가...대승보살의 아름답고 뭉클한 자비행이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패밀리~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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