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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사
 
 
 
카페 게시글
무진당 조정육의 그림과 인생 스크랩 『좋은 생각』2011년 6월호-한 그루의 나무가 되기까지
무진당 추천 0 조회 119 11.06.17 08:27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좋은 그림 좋은 생각2-①정선, <부자묘노회>

 

 

<한 그루의 나무가 되기까지>

 

 

 

"엄마 속상하실까 봐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요."

아들이 수업료 지불한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감 시간이 다 될 때쯤 해서 어떤 아저씨가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더니 하는 말이, 자기가 사장하고 친한 사람인데 단국대학교 옆에 있는 술집에 백 만원이 든 가방을 놓고 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당장 급하게 쓸 데가 있으니까 돈을 좀 빌려 달라고 하더라고요. 내일 와서 바로 갚겠다고 하면서요. 워낙 다급하게 말하기에 택시비 하라고 만 원만 주려고 했더니 십 만원만 주래요. 그래서 계산대에서 꺼내서 줬어요. 사장하고 이미 얘기가 다 됐다고 하고 또 워낙 급해보이기도 하구요. 근데 다음 날이 되고 그 다음 주가 되어도 안나타나는 거예요."

아들은 수업이 없는 주말에 죽전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토, 일요일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근무하는 주말 아르바이트였다. 그런데 한달 전, 토요일 어느 날 그런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래서 너는 확인도 해보지 않고 주었니? 아무리 사장하고 친하다고 해도 그렇지, 사장 어머니라고 해도 직접 사장한테 전화해보고 확인했어야지. 그리고 거기서 단국대까지라면 걸어가도 되는 거리인데 무슨 10만원이나 필요해? 조금만 생각해도 금새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어떻게 그 생각을 못하니?"

"그날 제가 감기약을 먹어서 정신이 몽롱한데다 몸이 너무 아프니까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들은 드디어 세상을 배우기 위해 학교가 아닌 사회라는 곳에 수업료를 내고 있다. 아들은 사회라는 학교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 지에 대해 생생하게 배울 것이다.

 

정선, <부자묘노회(공자사당의 늙은 전나무)>, 비단에 연한 색, 29.5?23.5cm, 왜관수도원

 

정선(鄭?:1676-1759)이 그린 <부자묘노회(夫子廟老檜)>는 중앙의 전나무가 매우 강조된 작품이다. ‘부자(夫子)’는 ‘공 선생님’이란 뜻으로 공자(孔子:BC 551-BC479)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이 그림은 유교의 시조인 공자의 묘를 그린 풍경인데 작가는 공자에는 관심이 없고 그 앞에 서 있는 전나무가 더 중요하다는 듯 화면의 중심에 그려 넣었다. 아마 다른 작가라면 구도를 잡는 위치를 바꾸어서 대성전 전체 모습을 화면의 중심에 앉혔을 것이다. 그런데 공자의 생애를 아는 사람이라면 왜 작가가 딴전을 피우듯 대성전보다 늙은 전나무를 부각시켰는 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세사표’로 불리우는 공자는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다.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공자는 생활고 때문에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했다. 51세 때 대사구(법무부장관)라는 직책을 맡았지만 4년 남짓 근무했을 뿐 그를 견책하는 대부들에게 밀려 55세 때 유랑길에 오른다. 그 때부터 14년 동안 주변나라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뜻을 알아줄만한 군주를 찾아봤지만 실패했다.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객을 반가이 맞아주기보다는 무시하고 멸시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가 떠날 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그를 가르켜 ‘안될 줄 알면서 행하는 자’라면서 수근거렸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도 많았다. 대표적인 사건이 <송인벌목(宋人伐木)>이다. 공자가 조(曹)나라로 가는 도중에 송(宋)나라를 지나게 되었다.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큰 나무 아래에서 예(禮)를 익히고 있었다. 그 때 송나라 사람 환퇴(桓?)가 공자를 죽이려고 사람을 시켜 나무를 베어버리게 했다. 깜짝 놀란 제자들이 공자에게 빨리 몸을 피하라고 아뢰었다. 그 때 공자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다.

“하늘이 나에게 크나큰 덕을 내려주었는데, 환퇴 따위가 감히 나를 어찌할 수 있겠는가?”

 

김진여, <송인벌목>, 1700년, 비단에 색,32?57cm, 국립중앙박물관

 

인(仁)과 예(禮)에 대한 신념이 투철했던 공자였지만 69세 때 다시 고국으로 오기까지 그의 생애가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짐작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한 그루 나무가 자라 거목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풍상의 세월을 견뎌야 한다. 수명을 다한 듯 늙은 전나무는 그 나무가 견뎌온 고난의 시간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만약 정선이 우람한 대성전을 주제로 그렸다면 공자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드러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전나무는 70평생을 풍찬노숙하며 꿋꿋하게 신념을 지킨 공자를 의미한다.

한 그루 나무가 고목이 될 때까지 수많은 세월을 시련을 견디듯 아들 또한 그럴 것이다. 부모 품안에서 걸어 나가 노인이 되어 되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인생은 매순간 누군가에게 수업료를 지불하며 배워야하는 공부인지도 모른다.(조정육)

 

양희은 - 상록수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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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6.17 17:25

    첫댓글 비싼 월사금을 주었는데도 마음이 예뻐 보입니다 ㅎㅎ 그렇게 하나 둘 물 들으며 살아가는 것...

  • 11.06.17 19:45

    *^^* 속세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드님께 깊은 감동(!)을~
    요즈음 세상에 닳고 닳은 어른처럼 행동하는 대학생들을 보고 가슴이 아팠는데...
    황당하고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때론 분노하고, 때론 상처로 고통을 하소연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어짐과 동시에~ 결국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지혜롭고 따뜻한
    시선만이 댓가를 지불한 고통의 열매가 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아드님께 응원의 화이팅을
    보내며, 청춘만이 아닌 연륜이 깊은 어른들도 강도 높은 고통의 시험 속에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
    세월속에^^
    전문가처럼 넘어지고, 전문가처럼 일어나는 예술(ㅎㅎ)을 닦는 과정이 삶이라고 토닥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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