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의 이틀이 지나고
벌써 귀국날짜가 가까워온다.
하루하루가 귀하게 여겨지고
가는 시간들이 아쉬워지지 시작한다.
벌써 이렇게 지났나?
남은 일정이 줄어들 수록
자꾸 소중해지는 시간들.
오늘은 택시로 스페인광장에 내려달라고 한다.
스페인광장이라!!!
영화의 한장면으로 유명해진 저 계단.
근처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밑에서 올려다보니 참 멋진 곳으로 오르는 계단이었구나.
삼위일체성당의 쌍둥이 탑이 하늘을 이고 서 있다.
우린 택시에서 내려 저 성당쪽에서 부터 걸어 내려왔다.
좀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아 여유롭다.
딸들은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복잡한 시간에 왔었다고 한다.
"나, 이 계단에서 오드리햅번놀이 실컷 할거야."
여기 쯤이 좋겠는걸~~~
엄마부터 찍어주라~~~~
실컷 요사바사 사진놀이를 하곤
"아! 이제 오드리햅번 안부럽다."
우리가 사진놀이를 하고 있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자꾸 우리 옆을 떠나지 않고 서성댄다.
소형마이크를 통해 수신기를 착용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 여기가 바로 오드리햅번이 앉아있던 그 장솝니다.
제가 서 있을 테니 이 쪽으로 올라오시기 바랍니다 "
한국인 여인은 패키지 가이드였다.
한국인 팀에게 오드리햅번이 앉아 아이스크림을 맛나게 먹던 그 장소라고 소개한다.
우리가 앉았던 그 자리가.
이쯤일 것이다 라고 생각은 했지만
많은 사람들 틈에서 그 장소를 차지하고 사진을 찍기도 쉽지 않은데
우린 참 잘도 찾아내 사진놀이 실컷 했네.
얼른 자리 양보하자.
영화 '로마의 휴일'의 한 장면
숙소를 나온 햅번이 스페인광장까지 나와 머리를 싹뚝 자르고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계단에 앉아있던 그 장면.
마치 아이스크림을 탐구하듯 열심히 먹고 있는 햅번.
저 머리스타일과 맥시길이의 편안해보이는 스커트.
햅번이 공주인 걸 알게 된 그레고리팩이
햅번을 찾아 헤매이다 이곳에서 조우한다.
아이스크림이 거의 콘만 남아갈 즈음 그녀 곁에 나타난 그레고리팩
그녀의 손엔 장미 한 송이가 들려있다.
저 까만 등 기둥에 꽂혀있는 빨간 장미(노란선 표시)가
그녀가 들고 있던 그 장미로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실제로 로마 곳곳엔 장미 한다발 씩 들고 다니며
커플로 보이는 관광객들에게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이 많다.
영화에선 햅번이 예뻐서 그냥 줬던가? 기억이 희미하다.
그런데 이 장미가 사실은
사실은.......
아침일찍 무덤에서 가져온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을 짠딸을 통해 들었다.
남의 무덤에 가서 가족들이 두고간 꽃다발을 몰래 가져다 파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후론
이 장미를 파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소오름......
당신도
저 계단에서 한 계단 한 계단씩 내려와
나에게로 다가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렇게 곁에서 웃고만 있지 말고.
'그레고리 상' 이라도 되어.
이 스페인광장 계단 밑엔 난파선이 조각되어 있는 분수가 있다.
실제 먹을 수 있는 식수라고 한다.
우리 딸들 목말랐는지 난파선 구멍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 마신다.
물 먹고 싶으면 엄마한테 사달라고 하지~~~
혹시 이뻐지는 물 아냐?
엄마한테는 마시라고 권해주지도 않던걸.
자 이제 이 스페인광장 앞으로 쫘악 펼쳐진 거리 구경하며
유명한 티라미슈를 먹으러 가자.
거리엔 명품샵들이 고급스럽게 가득 차 있다.
우린 '폼피'라는 베이커리로
사오자마자 열심히 인증샷 찍는 딸들
남편은 숟가락 들고
"빨리빨리 찍으라잉"
오물오물 맛있게도 먹는다.
난 두어숟가락 떠 먹어보곤 너무 달아서 포기.
맛은 있더만.
여행 중엔 이렇게 소셜포지션도 다 포기하게 된다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걷고,
테이크아웃 해온 티라미슈도 아무데나 서서 먹고
누가 6개월 전에 교사신분이었던가?
바른생활을 보여줘야하는 ....
"아빠, 그렇게 크게 떠가면 어떻게 해요."
하는 표정으로 숟가락이 넘치도록 퍼나르는 아빠를 쳐다보는 큰 딸.
나도 크게 떠야지 하며 티라미슈를 뭉치고 있는 짠딸
"얘들아 하나 더 사줄까?"
"아뇨, 이제 조말론 향수 사러 가야해요."
"응? 으응!"
아빠가 지갑 점검을 할 시간.
짠딸이 너무 많은 수고를 했다고, 조말론향수 1개 가지곤 안되겠다 생각했는지
아빠는 벌써부터 하나 더 사준다는 약속을 해놓은 터.
큰딸도 베니스부터 수고가 많으니 하나씩 사주고 싶었나보다.
짠딸은 벌써 이 근처의 조말론 매장을 검색해 놓은 듯
아주 익숙하게 우릴 이끈다.
조말론 샵 앞에서 썬그래스까지 벗어던지며
신나게 들어서는 짠딸.
아주 본격적으로 쇼핑에 나설 참인가보다.
음~~
들어서면서부터 아주 좋은 향기가~~~
요거주세요!
신중하게 고르더니 하나를 골라내는 짠딸.
큰 딸은 향수를 많이 가지고 있다면서 사양지심 발휘한다.
아빠는 사주고 싶어하는데......
카드 꺼내들고 흐믓한 미소를 보이고 있는 딸바보 아빠를 보세요
잘했어요 짝짝짝!
남편은 계산을 하더니
영국에서 살 때보다 좀 비싸다고 한다.
조말론이 영국제품이라
이태리는 수입국이니 관세가 붙어 좀 비싸진거구나.
짠딸이 고른 향수가 은은하고 좋군.
향을 즐기는 짠딸.
향수를 사고 좀 더 걸어나가니
포폴로광장이 나온다.
영화 천사와 악마 중
추기경 1명이 지하 흙속에 갇혀......
그러고 보니 이 로마는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구나.
앞으로 천사와 악마의 장면을 더 만나게 될 것 같다.
판테온도 그렇고, 나보나광장의 분수도 그렇고.....
광장엔 역시 비누방울놀이가 빠질 수 없지.
대형 비누방울을 만들어내는 아저씨와
신나서 뛰어다니는 아이.
가까이서 사진을 찍으면 돈을 내야하는 게 함정.
솔이결이가 저리 뛰어놀지 않은게 다행이지.
우리 딸들 이쁘네 하고 방울방울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오백원"
하며 손을 내밀지도
얘들아, 아빠 피곤하신가 본데 우리 카페에서 좀 쉬자.
네, 좋지요.
근처엔 작가 괴테가 자주 찾던 아주 오래된 카페가 있다고 우릴 데려간다.
'안티코 카페 그레꼬'
서서 마시면 2유로 테이블에 앉으면 10유로까지 한다.
그렇다고 호로록 스타일이 아닌 우린
안쪽 깊숙이 편안한 테이블로 안내받고 앉는다.
유럽의 건물들은
입구는 좁은데 안으로 안으로 길게 이어진 공간이 입을 벌리게 한다.
이렇게 넓은 집이었어? 하며
여행 중 이렇게 비싼 커피는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네스프레소 카페' 이후 처음이다.
보통 카페에서는 2 유로정도면 커피 오케이!
이렇게 정장을 차려입은 종업원한테 서빙을 받으니
기분이 좋다
커피맛이 더 좋다.
그래 10유로도 아깝지 않다.
이런 기분파같으니라구~~~
메뉴판에 있는 그림과 여전히 같은 복장으로 커피 서빙을 하는게 신기하다.
분위기가 아주 엔티크하다.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것은 뭔지모를 구수함이 있다.
그래서 여기 앉아있는 이 시간이 또 향기롭다.
꼭 커피때문이 아니라도.
괴테는 어느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메모를 하며 글을 썼을까?
나는, 괴테하면
'파우스트' 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먼저 떠올린다.
마치 성녀처럼 그린 베아뜨리체보다
평범한 롯데(로테)에게 더 마음이 간다.
약혼자가 있는 롯데(로테)를 사랑하는 베르테르.
그녀에게 바치는 수많은 편지를 읽으면서
마치 내가 사랑받는 것 같은 행복을 느꼈었다.
때론 그 절절함에 눈물도 많이 흘리며 읽었던 책이다.
가끔 혼자일 때는
"롯데에게~~~ "
로 시작하는 편지를 목소리 가다듬어 낭송하기까지 하면서.
유치한 이야기지만
그 시절 한참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두 제과회사
'롯데' 와 '해태' 중에
롯데제품에 먼저 손이 갔던 건 순전히 베르테르 때문이 아니었을까싶다. 후후
이 남자
이 엔티크한 카페에 제법 잘 어울린다.
약간 중세의 신사느낌도 나고.
카페 벽면과 조화로운 의상도 산뜻하시네요
무엇보다 본인 얼굴이 하얗게 나왔다고 엄청 좋아할 듯하다.
당장 카카오톡 프사 만들겠다고 할지도.
자 이제 점심 먹으러 갈까요?
고은아 가이드가 가르쳐준 맛집으로 가 볼까
Da Francesco
블로거들의 소개 맛집 보다는
로마 생활자가 알려주는 맛집이 더 맛있겠지.
소꼬리 스튜는 생각보다 양이 적어 당황
그런데 맛은 엄청 좋다.
입가에 스튜 소스를 잔뜩 묻힌 얼굴로 접시를 들이대며
"더주세요 !"
할 수도 없고 참.
그래도 파스타의 면이 제법 쫄깃한 식감을 주어
한국의 국수를 먹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치킨요리도 소스가 단순해서 먹기 좋았고.
오후에 다시 들러본 스페인광장의 계단은
벌써 그늘이 져있고
계단 위에 있는 삼위일체성당이 석양을 받기 시작해
더 신비롭게 보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촘촘히 계단을 메우고 있다.
쌍둥이 종탑 사이로 보이는 오벨리스크는 좀 거슬리지만.
우린 이 곳에 해가 질 때 까지 앉아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계단에서 많은 사람들이 젤라또를 먹다 흘려놓아
계단에 얼룩이 많이 생기고 지저분 해졌나보다.
당연히 청소하는 일이 골치덩이였을것 같다.
그래서 이 계단에서는 어떤 음식물도 먹을 수 없게 통제를 한다.
누가 통제하냐구요?
아래 사진을 보세요.
계단엔 4-5 명의 경찰이 정복을 착용하고
수시로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순시를 하고 있다.
음식물 금지법을 모르는 관광객
근처에 널려있는 젤라또를 사 들고 올라오다가 제지를 받고
얼른 내려가기도 하고.
운좋게 경찰 눈에 안 띄게 올라온 연인들은
거의 다 먹어갈 즈음 경찰의 눈에 띄어 제지를 받고는
"어, 그래요?"
하면서 남은 젤라또를 얼른 입안으로 구겨넣기도 한다.
사과를 베어물고 계단을 오르던 멋진 여인은
제지를 받자마자 깜짝 놀라며
얼른 가방 안에 사과를 던지듯 넣는다.
어어~~~
저 사과 과즙이 가방 여기저기를 끈적이게 할텐데.
참 바른생활 여인이네요.
우리 가이드가 오늘도 열일하고 있네요
엄마아빠 사진 멋지게 찍어주느라 고생이 많다.
그리고 고맙다 짠딸!
큰딸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인가요?
스페인광장을 실컷 즐긴 우리는
이제 트레비분수 야경을 보기 위해 일어선다.
낮에도 실컷 보았지만
트레비분수는 밤에도 꼭 보고 싶단다.
그래 야경은 어디나 이쁘지.
이 유럽은 어디나 이쁘다 특히 야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