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hsheba(1654, Louvre) - Willem Drost
성경을 읽다보면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위의 여인은 성경에 나오는, 가슴 아픈 한 살인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여인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밧세바(Bathsheba)입니다.
수많은 죽을 고비를 구사일생으로 넘기고 마침내 왕위에 오른 다윗왕은 늘 전장을 누비며 부하들과 함께 싸운 용맹스러운 영웅적인 풍모가 있는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둘로 갈라졌던 나라를 통일하고 왕권이 굳어지고 영토도 넓어지고 나라가 강력해지자 그는 더이상 직접 전장에 나가지 않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궁궐 옥상에서 우연히 어느 여염집을 넘겨다 보게 되었는데 한 아낙이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한눈에 다윗왕을 사로잡고 말 정도로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넌지시 사람을 보내서 알아보니 그녀는 전쟁터에 나가 있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라는 것입니다. 우리아는 각별하고 헌신적인 충성심을 왕에게 보이던 다윗의 용맹한 '삼십인 용사'에 속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밧세바의 미색에 홀려서 제 정신이 아닌 다윗왕은 남편이 전장에 나가 홀로 있는 밧세바를 그날밤 은밀하게 불러들여서 그녀와 동침을 합니다.
구약성경 잠언에 보면 독수리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간 자취나, 뱀이 바위 위를 지나간 자취나, 바다를 지나간 배의 자취나, 남녀가 함께 정분을 나눈 자취는 남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고 적혀있기는 하지만 왕과 그를 홀린 경국의 색을 가진 여인의 하룻밤의 일은 자취없이 비밀로 묻히지 못하고 맙니다. 밧세바가 그날밤의 일로 덜컥 왕의 아기를 갖고만 것입니다.
밧세바는 조용히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임신 사실을 알립니다. 책임지라는 이야기지요.... 이에 왕은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남편이 몇달째 전장에 나가서 싸우느라고 집을 비운 유부녀와 정을 통하여 임신을 시켜놓았으니, 시치미 떼고 있으면 자신은 아무 일없이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밧세바가 간통죄로 공개 재판에 넘겨져 군중의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혹시라도 밧세바가 아이의 아버지가 다윗왕이라는 것을 밝히기라도 한다면 정말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 수 있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던 다윗왕이 생각해 낸 해결책은 밧세바의 뱃속의 아기의 '호적상의' 아버지를 자신으로부터 전쟁터에 나가있는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로 바꿔치기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장의 우리아를 불러들여서 아내와 며칠 동침하게 만들면, 후에 아무도 그 아이의 잉태와 출산에 대해서 문제삼을 일은 없을 것이란, 실로 얇팍한 꾀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우리아에게 보내는 특별 휴가증을 소지한 전령이 전선으로 달려갔습니다.
영문을 모르고 왕의 호출 소식에 전장에서 돌아온 우리아에게 왕은 전황을 묻고 또 요압 사령관의 안부 등을 묻고는 집으로 돌아가서 쉬라며 그를 보냅니다. 아마 왕은 우리아를 집으로 보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들려온 우리아의 소식에 다윗왕은 마음이 무거워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아는 전장에서 함께 고생하던 전우들을 생각해서 자신만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만나고 편안한 잠 자리에서 잘 수 없다고 생각하여 집으로 아내를 만나러 가기는 커녕 왕궁의 병영에서 잠을 잔 것입니다. 정말로 충직한 신하이고 의리 있는 사나이입니다. 이에 왕은 우리아가 술에 취하면 혹시나 아내의 품이 그리워 집으로 가서 하룻밤을 보낼까 하여 그를 왕궁으로 불러서 함께 저녁을 들면서 계속 술을 권하여 대취하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우리아를 돌아가 쉬라고 집으로 보냅니다만 그는 역시나 '왕의 병사들이 들에서 야영을 하며 고생을 하는 이 밤에 나만 집에 돌아가 아내를 만나고 편한 잠자리에서 쉴 수 없다'며 왕궁의 병영에서 다시 하룻밤을 보냅니다.
그날밤...... 다윗왕은 깊은 고민 끝에 한 가지 결정을 내립니다. 이 결정은 다윗왕의 일생일대의 오점이 되는 결정이었고 이 시점을 기점으로 다윗의 인생에는 점차 어두운 그림자 드리우게 됩니다
다음날, 영문을 모르는 특별 휴가에 왕의 환대를 받고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는 우리아의 손에는 한 통의 밀봉된 편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바로 사령관 요압 장군에게 전해주라는 왕의 친서였죠. 그 편지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우리아를 전장에서 없애버리라는 왕의 명령이 적혀있었습니다. 자신의 아내와 간통한 왕이, 전우들을 생각하여 의리를 지킨 죄로 자신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친서를 들고 전장으로 향하는 우리아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리하여 의롭고 충직한 우리아는 전장에서 요압의 명령을 따라 위험한 곳으로 파견되었다가 동료들이 그만 홀로 두고 몰래 퇴각하는 바람에 적의 손에 죽고 맙니다. 그리고 미망인이 된 밧세바는 결국 왕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왕과의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는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병으로 잃고 말지만 그녀는 후에 솔로몬왕을 낳기도 합니다. 여자의 지나친 아름다움은 남자에게 위험한 것일 경우가 많습니다. 이 스토리에서 두 남자가 여인의 미모로 인하여 다치게 되죠. 한 사람은 목숨을 잃고, 또다른 한 사람은 전국적인 망신을 당하고 인생이 내리막길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위의 그림 속의 여인 밧세바는 비교적 이지적인 얼굴로 무표정한 모습이지만 얼굴에 그늘이 느껴집니다. 그녀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종이는 야밤에 왕궁으로 은밀히 초대하는 다윗왕의 편지입니다. 이는 그녀에게는 거절하기 힘든 유혹입니다. 자기 현시욕이 강한 여인으로 하층민이던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로 살던 밧세바에게는 당시 최고 권력자이고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젊은 왕의 초대는 어쩌면 신분의 수직상승으로 이끄는 길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자신을 사랑하던 한 남자를 저버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일말의 망설임으로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이 드리운 것처럼 보이지만 강렬하게 빛나는 노출된 아름다운 상반신은 그녀의 상류사회로의 신분 상승 욕구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윌렘 드로스트(Willem Drost)는 렘브란트의 제자였습니다. 화풍이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하여 주제를 강렬하게 표현하던 렘브란트의 그림들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윌렘 드로스트는 1633년에 암스텔담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만 작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습니다. 위의 그림은 21세에 그린 것입니다. 아쉽게도 25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