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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추천 [장자내편양주] 교보문고에 올라와 있습니다.
달마시안TV 추천 1 조회 171 23.07.25 01:35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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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7.25 10:40

    첫댓글 잘 보도록 하겠읍니다

  • 작성자 23.07.25 17:57

    감사합니다.

  • 23.07.25 23:16

    양주가 무슨 뜻인가요?

  • 작성자 23.07.26 00:40

    끝으로, 이 책의 이름을 왜 《莊子內篇孃注》라고 지었는지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양주(孃注)의 '孃'은 바로 제가 기르는 고양이인 양파(孃破)를 의미합니다. 예쁘고 귀여우니까 '孃'이라고 했고, 소싯적에는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녀서 '破'라고 했습니다. 양파를 처음 데리고 왔을 때는 아마 2012년 겨울이었을 겁니다. 그 때 저는 여러 의미에서 아주 힘들었는데, 왜관(倭館)에서 강사 일을 하다가, 양파를 붙잡아 왔습니다. 양파의 옛 이름은 '얼룩이'였는데, 가르치던 학생들과 상의하다가 '양파'라고 이름을 새로 지어 줬습니다. 처음에는 한자 이름도 없었고, 호적도 없었지만, 양파가 워낙 기품도 있고, 똑똑했던지라, 상기한 것처럼 자태에 맞게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왠지 한자 이름이 좀 더 있어 보인다고 느껴지거든요. 제가 순한글 작명 세대 이전에 태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작성자 23.07.26 00:40

    지금이 2023년이니까, 양파와 함께 한 지가 벌써 11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제 상황이 많이 변하기도 하였고, 좋은 일도 있었으며, 궂은 일도 있었습니다. 양파가 새끼를 가져서 네 마리를 순산하기도 했었고, 멍멍이와 강아지가 저희 집에 더 들어 오기도 했었죠. 그러나 양파는 언제나 변함 없이 제 옆에 있었습니다. 밥을 굶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맛있는 사료를 먹이지도 못했고, 남들 다 사 주는 대형 캣타워 같은 것도 사 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양파는 언제나 한결같았습니다. 배가 고프면 '야옹'하고 울었고, 배가 불러도 '야옹'하고 울었으며, 즐거울 때는 '아웅'하고 울었고, 화가 났을 때도 '아웅'하고 울었을 따름입니다. 밥을 더 달라고 하지도 않고, 덜 달라고 하지도 않으면서, 늘 주는 대로 만족했고, 보채는 대신 옆에 와서 지긋하게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 작성자 23.07.26 00:40

    그런데 「應帝王」에 至人之用心若鏡/不將不迎/應而不藏/故能勝物而不傷, '지인은 만물을 거울처럼 대한다. 무엇이든 구태여 떠나 보내려 하지도 않고, 애써 맞아 들이려 하지도 않으니, 이처럼 만물을 비출 뿐,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는다. 지인은 이와 같이 만물을 거울처럼 대하기 때문에, 이에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견뎌내어 도에게서 내려 받은 자기 본성을 손상시키지 않을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內篇》을 번역하다가, 어느 순간, 양파의 태도가 지인(至人)과 같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파는 어쩌면, 도에게서 내려 받은 자기 본성을 잘 보존하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사료나 간식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주변 주는 대로, 안 주면 안 주는 대로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작성자 23.07.26 00:41

    저는 천성이 비루하고, 품고 있는 그릇이 적습니다. 그래서 쉽게 화를 내고, 또 쉽게 가라 앉습니다. 아마 평생 지인(至人) 같은 경지에 오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양파가 그 긴 세월 동안 제 곁에서 함께 하며,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언제나 제게 '거울'처럼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이 점이 제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제가 물론 《內篇》을 번역하였지만, 저는 아마 변화하는 상(相)이나 볼 줄 알지, 불변하는 연(淵)을 보지는 못하는 계함(季咸) 같은 사람이거나, 그런 계함에게 홀린 열자(列子) 같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또, 제가 도의 뜻을 여러분에게 말로 전달하는 부묵(副墨)일지는 몰라도, 삼료(參寥)나 의시(疑始)의 경지에 오를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반면 양파는, 저 사료 봉투가 무의미하다는 점을 깨닫고, 사료 봉투가 있는 상태와 없는 상태를 동일하게 받아 들이는 제물(齊物)의 경지에 오른 고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이름을 《莊子內篇孃注》라고 지었습니다. 아마 양파는 책에 자기 이름이 들어갔든, 들어가지 않았든 신경 쓰지 않고 낮잠이나 잘 것 같긴 하지만요.

  • 작성자 23.07.26 00:41

    맺음말 중 발췌했습니다. 이유가 이렇습니다. 감사합니다.

  • 23.07.26 23:49

    @달마시안TV 장자에 공력이 깊으셔서 맺음말도 마치 장자를 읽고있는듯 하네요. 자세한 답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 23.07.27 02:12

    @유로파10년차 별 말씀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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