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이 가는 곳마다 소요산(逍遙山)의 아름다운 절경이 넘쳐흐른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구나!! 부처님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아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절의 경내는 어수선하다. 뜰에는 부처님 오시면 환하게 밝힐 연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곳을 벗어나 정상을 가면 더 아름다울 것이다. 그래서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길은 위험해서인지 등산객들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필자는 까마득하게 보이는 계단을 바라보곤 하도
놀라워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계단이 얼마나 많은지 가물가물하게 올려다보인다. 저렇게 많은 계단을 지금부터 올라갈 것이다. 생각만 해도
우주보다 넓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목적 달성을 위해선 가야 한다. 한 계단 한 계단 무거운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왜 이리도 힘들까? 마치 고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힘이 들고 걷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소요산의 아름다운 절경을
샅샅이 보고 수필에 담을 것이다.
얼마쯤 걸었을 때 하도 힘이 들어 주저앉고 말았다. 몸에서는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힘은
들어도 마음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끌려가고 만다. 뾰쪽뾰쪽 솟아오른 기암괴석과 원시림이 한데 어울려 천하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 낸다. 거기다
끝이 보이지 않게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계단이 함께 조화를 이룬다. 그 가운데 필자가 사색을 즐기며 앉아 있다. 비지땀을 흘리며 난간을 잡고
잠시 앉아 자연에 취해 사색에 빠져 있을 때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필자도 대자연과 한데 어울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지금은 자연인이
아니겠는가 하며 갑자기 이런 시가 생각나서 읊어 봤다.
나옹 선사님의 청산 가이다.
참으로 자연과 같이 살다가 가라는 한 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나옹 선사는 고려말의 고승으로 혜근(惠勤)이라고도 쓴다. 성은 아(牙)씨이며 속명은
원혜(元慧)이다. 당호는 강월헌(江月軒)이다. 1320년 지금의 경북 영덕군 영일면에서 태어나, 21세 때 친구의 죽음을 맞아 무상을 느끼고,
공덕산 묘적암(妙寂庵)에 있는 요연선사(了然禪師)를 찾아가 출가한 뒤 전국의 이름난 사찰에서 두루 정진하다가 1344년(충혜왕 5년) 양주
천보산 회암사(會巖寺)에서 대오(大悟)하였다. *대오(大悟)= 크게 깨달음. 또는 번뇌에서 벗어나 진리를 크게 깨달음을 일컫는
말이다
뚜벅뚜벅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유선형으로 만들어 놓은 계단의 절반쯤 올라왔을 때다. 하도 힘이 들어 긴 숨을 토해내며 물
한 모금 마시고 있을 때였다. 40세 된 청년 셋이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힐긋 필자를 쳐다본다. 그러고는 어르신 혼자 오셨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이 험한 곳을 혼자 가시면 안 된다고 하면서 말린다. 그때 나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린다. 과연 나는 누구를 위해 이 험한
산에 위험을 무릅쓰고 올라가 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청년들의 말 한마디에 나의 마음이 흔들린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 부끄럽고
한심스러웠다. 무엇 때문에 왜 쓸데 없는 생각을 하지! 하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앞에 철쭉꽃이 빙그레 웃고 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용기를
내서 올라가라 한다. 그 말 한마디가 나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는다.
세상일은 모두 어렵고 힘들다. 그렇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80살에 들어선 필자가 지금 이 산을 오르는 것은 사명감이 있기 때문이다. 등산은 하고 싶은데 몸이 불편하거나 몸이 아파서 등산하지 못하는
분들은 이 글을 읽으면 잠시나마 글로 자연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산을 가보지 않았어도 그 산에 대한 전설 또는 역사와 그 산이 지닌
절경과 풍광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될 것이다. 또 산을 좋아하는 산 매니아들은 자기가 몰랐던 것을 알고 산행을 한다면 아마도 기쁨이 배로
증가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필자는 나의 건강을 위해 산행하는 것도 있지만 만인을 위해 산을 다니며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험한
산도 마다하지 않고 정상까지 올라간다.
위험한 길이기에 혼자라서 더욱 조심해 걸었다. 고생 끝에 기어이 하백운대(下白雲臺)까지
올라왔다. 이곳엔 소요산 백운대 능선의 첫 봉우리이다. 다음은 중백운대(中白雲臺)와 상백운대(上白雲臺)가 필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의상대,
공주봉(公主峰)으로 이어지는 말굽 모양의 등산로가 이어진다. 소요산은 절묘한 산세 수려한 계곡 그리고 무엇보다도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작은
금강산으로 알려져 있다. 이산에 머물며 수행하던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길 따라 계곡에 드니 봉우리마다
노을이 곱다. 험준한 산봉우리 둘러섰는데 한줄기 계곡물이 맑고 시리다.
여기서 중백운대(中白雲臺)까지의 거리는
0.4km이다. 아무도 없는 첩첩산중에 필자 혼자 서성거린다. 단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며 지나가는 소리와 새들의 노랫소리만 간혹 들려온다.
고독과 외로움도 밀려오기 시작한다. 네가 밀려오면 필자는 어찌하라는 거냐!! 아무리 고독이 괴롭히고 외로움이 닥친다 해도 나는 기어코 완주할
것이다. 이렇게 외로움과 싸우고 있을 때 젊은 부부 한 쌍이 어린 학생 자매를 데리고 올라오고 있다.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했다. 고독도
날아가고 외로움도 어디론지 사라졌다. 자매는 동생이 9세이고 언니가 12살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천사처럼 예쁘고 귀엽게 생겼다. 천사와 같은
어린 자매의 사진도 찍었다. 네 가족과 함께 걷다 보니 중백운대(中白雲臺)까지 왔다. 내가 함께 합세하면 가족의 즐거움에 방해가 될까 두려워
여기서 헤어졌다.
중백운대(中白雲臺)의 풍광이 필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빛바랜 철쭉은 애써 웃음을 보이려다 멈추고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은 평화스러워 보인다. 저만치서 두둥실 떠 있는 흰 구름은 임과 함께 속삭이며 집도 짓고 소요산보다 더 아름다운 산도
만들어 놓았다. 필자는 이러한 것을 감상하며 외로움을 달래려고 콧노래를 부른다. 소요산 백운대 중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중백운대(中白雲臺)는
명승지답게 주위가 아름답다. 고려말의 고 승이자 해동 불교의 법조인 태고보우선사(太古普雨禪師)는 "백운암의 노래"라 는 시에서 이곳의 절경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소요산 위의 흰 구름은 떠오른 달과 함께 노닌다. 맑은 바람 불어오니 상쾌하여라 기묘한 경치 더욱더
좋구나 이리도 아름다운 중백운대(中白雲臺)는 필자의 마음을 기쁨으로 몰아넣는다. 이젠 상백운대(上白雲臺)로 떠나자.
혼자서
흥얼거리며 상백운대(上白雲臺)를 향해 걷는다. 걷다 보니 언제 만들어 놓은 것인지는 몰라도 벙커가 있다. 아마도 6.25로 인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산세의 웅장함과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상백운대(上白雲臺)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청량한 하늘에 유유히 흐르는 흰 구름이
어우러져 작은 금강산이라고 부를 만큼 아름답다. 고요가 밀려오는데 어디선가 산새들이 노래하고 봄바람에 나뭇가지는 즐겁다는 듯 춤을 추는구나!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왕자의 난으로 실각한 이후 이곳 소요산 아래 행궁을 짓고 머물며 불교 수행에 힘썼는데 그는 자주 이곳 백운대에
올라 경치를 즐기며 자신의 어지러운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그가 백운대에 올라 지은 시를 전한다. 넝쿨을 휘어잡으며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흰 구름 가운데 암자 하나 놓였네 내 나라 산천이 눈 아래 펼쳐지고 중국 땅 강남조차 보일 듯하이 여기서 소요산(逍遙山)
2부를 끝맺고 3부에서는 칼바위를 거쳐 공주 봉과 의상대(義湘臺) 그리고 하산 장면을 그려낼 것이다.
첫댓글 항상 안전산행하시고 산행 기행문 올려 주심 고맙습니다.
요즘은 소요산 입구도 구경 못갑니다.
코로나 19때문에~!
안녕하세요. 김재원 시인님
오늘 매우 더우셨지요
이젠 뙤약볕이 쏟아지는 여름입니다
매번 댓글 감사합니다
시인님 덕분에 안전 산행을 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어가네요
행복한 꿈 꾸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