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逍遙山)이 날 오라 하네
(소요산 제1편)
루수/김상화
그토록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으려고 노력한 사월이 자기가 할 일을 다 했다고 떠나려 한다. 머지않아 계절의 여왕
오월이 온다. 그녀가 오면 금수강산을 더욱더 화려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그 준비를 끝내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4월이 이
땅을 떠나기 전 소요산(逍遙山)은 필자가 보고 싶다 오라하네! 필자 역시 몇 년 전부터 얼마나 가보고 싶었던 산이었던가!! 마침 가보고 싶었던
그곳에서 초대를 받았으니 오늘은 꼭 가야 한다. 소요산(逍遙山) 정상엔 사랑하는 임이 수십 년 동안 필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기다리는 임이
그곳에 있는데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혼자서 심산유곡(深山幽谷)을 걸으며 기다리고 있는 임의 표정도 그려보고 싶다. 얼마나 예쁠까? 빙그레
웃으며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살짝 보조개가 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을까? 어떠한 표정을 짓던 세상에서 가장 예쁠 것이라는
생각에 허구의 아름다운 세계로 빠져든다.
*심산유곡(深山幽谷)=깊은 산속의 으슥한 골짜기를 말함
소요산(逍遙山)은 경기도
동두천시와 포천시 신북면에 걸쳐 있으며, 서울에서 북쪽으로 약 42km 지점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587.5m이고, 산세가
석영반암(石英班岩)의 대 암맥이 능선에 병풍처럼 노출되어 성벽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산은 동두천시 소요동에 있으며 한수 이북 최고의 명산으로
경기 소금강(京畿小金剛)이라고 할 만큼 아름답다.
서화담(徐花潭), 양봉래(梁鳳來)와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이 자주 거닐던 산이라
하여 소요산(逍遙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과 폭포, 가을에는 오색 단풍이 절정을 이루어
경관이 빼어나 휴양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인적이 뜸한 겨울 정취도 낭만이 그윽하다고 한다. 소요산은 규모는 작지만,
산세가 특이하다. 하백운대(下白雲臺:440m), 중백운대(中白雲臺:510m), 상백운대(上白雲臺:559m), 나한대(羅漢帶:571m),
의상대(義湘臺:587m), 공주봉(公主峰:526m)의 여섯 봉우리가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주봉은
상백운대(上白雲臺:559m)이다.
*석영반암(石英班岩)= 화강암과 성분이 비슷한 미정질(微晶質)의 석기와 정장석, 사장석, 운모 등의
반점이 있어 다양한 색깔을 띠고 있는 암석을 말함
*미정질(微晶質)= 아주 작고 고운 알갱이로 된 물질을 말함
아침 8시에
잠실에서 전철을 타고 10시경 소요산(逍遙山)역에 도착했다. 소요산(逍遙山) 전철역이 생기고 처음 가는 곳이다. 많은 등산객이 전철에서 내린다.
이분들만 따라가면 될 것 같은 안이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함께 갈 길동무가 생겼다. 부천에 거주한다는 이문창이라는 산객이다. 그분과 함께
대화하며 꼬불꼬불한 마을을 거처 소요산 진입로에 도착했다. 진입로는 잘 다듬어 놓았다. 바닥은 폭신폭신한 자료를 깔아놓아 마치 양탄자를 밟고
가는 느낌이다. 가로수가 하늘을 덮었다. 입구서부터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렇게 아름답게 꾸며놓은 등산 입구 길이 약 1km 정도 되는 것 같다.
등산을 못 하는 분들은 이 길만 걸어도 힐링이 될 것 같다.
걷다 보니 요석공원(搖石公園)이 나타난다. 요석공원(搖石公園)은
신라의 고승(高僧) 원효대사(서기 617~686년)의 부인이었던 요석공주(搖石公主)와 인연이 깊은 데서 이름하였다. 요석공주는 신라 제29대
왕인 무열왕(武烈王)의 딸로서 일찍이 홀로 된 몸으로 요석궁(搖石宮)에 머물러 있었다. 이때 약 30대 나이의 원효라는 스님이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면서 "그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주겠는가? 나는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으리라"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당시
임금이었던 무열왕이 이 노래를 듣고는 "이 스님이 필경 귀부인을 얻어서 귀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큰 현인(賢人)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하면서 요석궁에 홀로 있던 요석공주와 짝을 이루게 하여 후에 대유학자(大儒學者)가 된 설총(薛聰)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은 후 원효는 파계승(破戒僧)이 되어 속인(俗人)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큰 표주박을 두드리며 수많은
마을을 돌아다녔다. 노래도 하고 춤을 추면서 교화(敎化)를 하던 중 이곳 소요산(逍遙山)에 원효대사는 머물렀다. 그리고 다시 수행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이때 요석공주는 아들 설총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조그만 별궁(別宮)을 짓고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원효가 수도하는 원효 대를 향해서 예배를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 봉우리가 공주 봉이며, 공주가 살던 별궁터는 요석 궁터(搖石宮址)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요석 공원이 자리하고 있는 소요산에는 원효대사를 비롯하여 원효폭포, 원효정, 공주봉, 요석궁터, 백운암, 자재암 등이 있다. 이 외에
의상대, 나한대, 금송굴, 선녀탕, 선녀폭포, 청량폭포 등이 있어 경관을 더욱 아름답다.
등산길 오른쪽엔 독립유공자 추모비도
세워놓았다. 매표소를 지나 얼마 안 가니 소요산 자재암 일주문이 있다. 일주문을 막 지나니 자재암으로 가는 길과 선녀탕으로 가는 길로 나뉜다.
한참을 망설였다. 어느 쪽으로 가야 소요산을 많이 보고 배워 왔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좀 더 많이 보고 싶어 산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길을 택했다. 그래서 자재암 쪽으로 걸었다. 그때 아름답게도 세차게 물을 떨어트리는 폭포가 보인다. 이 폭포를 원효 폭포라 하는가
보다.
자재암(自在庵)의 연혁(沿革)을 알아본다. 자재암(自在庵)은 신라 선덕여왕 14년(AD645)경에 원효대사께서 산 이름을
소요(逍遙), 절 이름을 자재암(自在庵)이라 하고 수행을 쌓던 도량이다.
그 후 고려 광종 때와 조선조 고종 때에 각각 중창한 적이 있고
이때 사명(寺名)이 영원사(靈源寺)로 개칭(改稱)되었으나 곧 다시 자재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6.25의 전란을 입어 지금의 건물들은 그 후
복원된 것이며 1981년에 사찰 경내에 있던 옛 상가 촌을 지금의 상가 지역으로 이전시키고 일주문을 신축하는 등 환경을 일신하여 청정한 수도
도량으로 면모를 갖추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이 깃든 소요산의 명소다. 이곳엔 원효폭포 원효굴이
있다. 원효굴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굴 안의 가운데는 부처님을 모셔놓았다. 옆에는 약 10m 정도 높이에서 쉴새 없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가 아름답다. 아마도 이 폭포는 깊은 산속의 고요한 적막(寂寞)을 깨면서 조잘대는 새를 비롯해 산짐승들에게 물이 여기 있다고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물이 없다면 모든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물은 삶의 근원이다. 신은 우주 만물을 만들 때 이것까지 생각해
폭포를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자재암(自在庵)은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다. 자재암(自在庵)은 원효 성사께서 요석공주와의 인연이 있고 난
뒤 오로지 수행 일념으로 인적이 두절된 심산유곡(深山幽谷)을 찾아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아름다운 이곳에 이르러 초막을 짖고
용맹정진(勇猛情進)하여 높은 수행을 쌓았다.
*산자수명(山紫水明)= 산은 자줏빛이며 물은 깨끗하다는 뜻으로, 경치가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심야에 약초를 캐다가 길을 잃은 아녀자로 화현(化現)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께서 원효 스님에게 하룻밤
쉬어 가기를 원했고 중생구제(衆生救濟)의 구실을 붙여 수도 일념의 심지(心地)를 시험하였으니 원효대사 이르기를
[심생칙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이요 [심멸칙종종법멸(心滅則種種法滅)]이라 마음이 생한즉 옳고 그르고, 크고 작고, 깨끗하고 더럽고, 있고
없는 가지가지 모든 법이 생기는 것이요, 마음이 멸한즉 상대적 시비의 가지가지 법이 없어지는 것이니, 나 원효에게는 자재무애(自在無碍)의 참된
수행의 힘이 있노라, 하는 법문(法門)에 그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사라졌다. 원효 대사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임을 알았고 그 후 지극한
정진으로 더욱더 깊은 수행을 쌓았으며 후학을 교계(敎誡)할 생각으로 정사(精舍)를 지었다.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정사를 이름하여 자재암이라 했다고 한다.
*자재무애(自在無碍)= 수행에 정진하던 어느 날 관세음보살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하여 그를 유혹하였다. 설법으로 유혹을 물리친 원효는 그 여인이 관세음보살이었음을 깨닫는다. 이에 원효는 자재무애(自在無碍)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암자를 짓고 이를 자재암(自在庵)이라고 했다 한다.
소요산(逍遙山) 1편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2편에서는
소요산(逍遙山)의 아름다움을 더욱더 예쁘게 그려낼 것이다.
2020년 4월 25일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전 자재암까지만 올라가고 하산했습니다.
소요산은 갈적마다 풍경은 절경이지요~
!
감사합니다. 김재원 시인님
소요산을 다녀 오셧군요
매우 아름다운 산입니다
가을 단풍철에 가면 정말 멋질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운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