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살 때 뒷 마당에서 한컷.
애들 영주권 나왔데.
와! 너무 좋다. 아!!
정말 좋으네요오.
지금 새 애기 한테서 전화왔었서.
새 애기 말이 신랑은 아직 퇴근을 하지 않아서
기쁜 소식이기에 먼저 전화 드린다며 했데.
그래요? 정말 고맙네요.
그리고 친정에 보다 우리에게 먼져 했다네.
참으로 감사한 일이네요.
호주!
긴~~! 세월 동안을 호주를 동경하며 살았다.
인생 말년에 아들이 나의 꿈을 실현시켜 주다니.
기억의 수첩을 열고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뚜렸이 나타나는 글자체 처럼
생생하게 떠 오르는 일들이 가끔있다.
수 십 년전!
초등학교 4학년 2반 이었다.
선생님은 방학숙제 가운데 오대양 육대주를 스켓지 북에 그려 오라고 하셨다.
나름대로 열심히 그려서 개학 한 첫날 검사 할 때 보여드렸더니
잘 그렸다는 말씀은 없으시고 한가지 질문을 하셨다.
그래 네가 지금 세계 지도를 비교적 자세하게 그려 왔는데 이 지도를
그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물으시기에.
선생님 저는요.
만약에 우리 나라를 떠나서 살게 된다면 "오스트레일리아" 에
가서 살고 싶어요.
왜 그런생각을 했지.?
이 지도를 그릴 때 제가 넓은 잔디밭 에서 지도책을 펴 놓고 그렸거든요.
그런데 오스트레 일리아를 그리면서 보니까
첫째. 이 나라는 땅이 아주 넓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요. 푸른 풀 밭이 많은 것 같에요.
저는 잔디밭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것이 어린나에게는 이 나라에 가서 살고 싶으다는 이유의 전부였다.
선생님은 빙그래 우스시면서 그래 그 꿈이 꼭 이루어 지기를 바란다며
들어 가라고 하셨다.
어린 나이에 스켓지북에 오대양 육대주를 그리면서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던 꿈!
왜? 나는 그 꿈을 내 혼자 힘으로 이루지 못했을까?
세월이 흐르고 나도 커가면서 내 작은 꿈은 점점 소멸되어가는 것처럼
내 기억속에서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아니 거의 잊엊 버리고 남들 처럼 평범하게 결혼을 하고 그렇게 첫 아이를
낮고 살아 가는데 어느 날 남편이.
우리 호주로 이민 갈거예요.
서류 준비중이니 그렇게 알아요.
나에게 아무런 언질 한번 없더니 지금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왜?
나에게 의논 한마디 없느냐고 따질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나는 속으로 무조건 좋았으니까.
첫 아이를 가슴에 않고 젖을 먹이는데 얼마나 좋았던지 그 때 그 순간에
그래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그 곳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었지!
이제 그 꿈이 이루어 지는가 보다.
떨리는 가슴을 어찌 말로다 표현할 수 있었으랴!
그 나라에 가고 싶다는 말은 별로 하지 않았지만 내 의식 속에는 늘 잠재 되어있었다.
모든 절차가 끝났다.
영어는 거기가서 배우면 된다.
준비와 함께 몇달 사이에 들에는 벼들이 한참 그 이삭을 패고
꽃 밭에 칸나의 빨간 색이 8월을 불태우고
저녘노을 마저 뜨거운 여름에 걸맞게 붉게 물드리던 여름
내 가슴도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 때까지 시부모님께는 말씀 드리지 않았었다.
남편도 나도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기에...
몇일을 고민하던 남편이
아무래도 우리 호주로 가지 말아야 겠어!
왜 그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모른척 하고
왜요?
모든 준비 끝낟 잖아요.
부모님 연세가 많으신데 어떻게 우리가 멀리 떠날 수 있어.
이것은 자식으로 할 도리가 아니야.
아니~!!!
형님도 계시고.
막내가 있잖아요.
우리 말고도 자식이 여럿이 있는데.
그래도 아버님은 우리를 제일 좋아하시잖아.
당신도 알잖아.
부모님께 효자인 아들이 도무지 그렇게는 못 하겠다는데
내가 어쩌겠는가?
한껏 벅찻던 기대감. 부풀었던 가슴, 어떻게 가라않혔는지!
아이의 젖을 먹이면서 그 상한 마음 가라않히느라 아기 얼굴에
눈물 방울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혼자 소리 없이 울기만 했었다.
그 때만 해도 젊고 순수했던 터라 남편의 설득에 별 고집도 부리지
못하고 수십년이 흘렀다. 그 때 그 일로 울면서 젖먹이던 아들도
장성하여 결혼을 했다.
지금부터 4년전 나는 케나다에서 9개월을 있을 예정으로 5개월 정도 되었을 때
어느날!
전화가 케나다로 왔다.
엄마!
나야 아들!
응 그래 사랑하는 내 아들 몇일 전에 전화 했는데
왜? 무슨 일이야.
엄마 여기 호주야.
뭐!!!!
갑자기 왠 후주야 너 거짓말 하고 있어.
아니야 정말이야
거짓말 하지마. 아무 이야기가 없었는데 왜 갑자기 호주야.
앞으로 여기서 사업하고 여기에 살 거야.
연고지도 없는데 어떻게 거기에...
그리고 자고, 먹고, 하는 것은 어떻게?
걱정하지마. 여기서 다 해결이 되고 있어.
한국에서 하던 사업 접었서.
아빠에게 뒤 정리 다 하시라고 했서.
갑자기 이산 가족이 된것 같아 나는 즉시 한국으로 돌아 왔고 그동안의 정황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몇 달 뒤에 그렇게도 가슴 아렸던 추억들을 떠 올리며 호주행 비행기를 탓다.
30년전 내 품에 안겨서 엄마가 왜 울고 있는지도 모르던 그 아기가
다 성장하여 아름다운 청년으로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으며
내 작은 꿈을 실현시켜 주는 순간이다.
과연 내가 초등학교 때 부터 동경했던 기대 많큼 그 대륙은 나를 품에 안아 주는듯 했다.
시야가 너무 깨끗해서 수 마일 까지도 뚜렸이 보이고.
공기가 너무 맑아 한국 시골 마을의 초가을 날씨 같았으며
태고적의 바다와 하늘인가 싶을 많큼 깨끗하고 푸르렀다.
하늘을 나르며 노래하는 수 많은 예쁜 새들. 그리고 새들의 천국
잘 ~~~ 닦여진 도로
질서가 잡힌 깨끗한 도시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과 사람이 만든 건축물의 절묘한 만남.
그 어느것도 나무랄대 없었다.
"겦팍"이라는 곳에 갔을 때는 지상 천국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 약 100년전에 4년동안 살다가 본국으로 돌아 갔다는 아본데일.
그 곳은 지진도 피해 간다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시골.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의 바닷가를 거닐며
아!!
이렇게 늦게 내 꿈이 이루어 진단 말인가!!
내 인생 석양길에....!
가진 것은 없어도 아들 덕분에 호주에서도
부자 동네에서 6개월을 꿈꾸듯이 살았는데 길 가에 늘어선 집들과 수목과
꽃들은 식물원을 방불케 했다.
낙옆이 다 떨어져 지는 제 작년 11월에 스산한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1년 반...!
아들이 몇일 전 그 곳 영주권을 받았단다.
그 나라에서 집을 사고 우리를 수 달 내에 오라고 할 것이란다.
인생의 석양 길!
너무 어린나이에 걸 맞지 않은 꿈을 꾸었기에 이제서야 이루어 지는 것일까?
나는 또 다시 이 지상의 어느 나라와도 비교가 안되는 한 나라에 갈 것을 소망한다
그 곳을 향하여 희망의 끈을 결코 놓지 않으리라.
그 곳에는 행복과 기쁨이 충만할 것을 확신한다.
메신저!
Am I Wrong / Roch Vois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