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우리말 금강경
1.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에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는데, 큰 비구들 천이백오십인과 더불어 계시었다.
이때, 세존께서는 밥때가 되니 옷을 입으시고 바리를 지니시고 사위 큰 성으로 들어가시어 밥빌으셨다.
그 성안에서 차례로 빌으심을 마치시고, 본래의 곳으로 돌아오시어, 밥 자심을 마치시었다.
옷과 바리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심을 마치시고, 자리를 펴서 앉으시거늘.
2 선현계청분(善現啓請分)
이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한편으로 걸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손을 모아 공경하며, 부처님께 사뢰었다.
“희유하신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뭇 보살들을 잘 호념하시며,
뭇 보살들을 잘 부촉하여 주십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눋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냈으면,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좋다! 수보리야! 네가 말한 바대로, 여래는 뭇 보살들을 잘 호념하며, 뭇 보살들을 잘 부촉해 준다.
너는 이제 자세히 들으라! 반드시 너희를 위하여 이르리라. 선남자 선여인이 아눋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냈으면, 마땅히 이와 같이 살 것이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하리라.”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즐겁게 듣고자 원하옵니다.”
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뭇 보살 마하살들이 반드시 이처럼 그 마음을 항복 받을지어다.
‘존재하는 일체의 중생의 종류인, 알에서 태어난 것, 모태에서 태어난 것, 물에서 태어난 것, 갑자기 태어난 것, 형태가 있는 것, 형태가 없는 것, 지각이 있는 것, 지각이 없는 것, 지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 이것들을 내가 다 남김없이 온전한 열반으로 들게 하여 멸도하리라.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고, 가 없는 중생들을 내 멸도한다 하였으나, 실로 멸도를 얻은 중생은 아무도 없었어라.’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이나 인상이나 중생상이나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4.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보살은 법에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여야 한다.
이른바 색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고, 성ㆍ향ㆍ미ㆍ촉ㆍ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다는 것이다.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보시할 것이며, 상에 머물러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다면,
그 복덕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으리라.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동쪽의 허공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남ㆍ서ㆍ북방과 사유ㆍ상ㆍ하의 허공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것의 복덕도, 또한 이와 같이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오직 가르친 바대로 머물지니라.”
5.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몸의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몸의 형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어째서냐면, 여래께서 이르신 몸의 형상이 곧 몸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무릇 있는 바의 형상이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퍽 많은 중생이 이와 같은 말씀이나 글귀를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낼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그런 말 하지 말라. 여래가 멸한 뒤 후 오백 세에도 계율을 지키며 복을 닦는 사람이 있어, 이 글귀에 잘 믿는 마음을 낼 것이며, 이를 진실한 것으로 삼으리라.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한 부처, 두 부처, 서너 다섯 부처님께 선근을 심었을 뿐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 자리에 온갖 선근을 심었음으로, 이 글귀를 듣는 즉시 오직 일념으로 깨끗한
믿음을 내는 자라는 것을.
수보리야! 여래는 다 알고 다 보나니, 이 뭇 중생들은 이와 같이 한량없는 복덕을 얻을 수밖에 없으리라.
어째서 그러한가? 이 뭇 중생들은 다시는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
수자상이 없을 것이며, 법의 상이 없을 뿐 아니라, 법의 상이 없다는 생각조차 없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이 무릇 중생들이 만약 그 마음에 상을 취하면 곧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달라붙게 되는 것이다. 만약 법의 상을 취해도 곧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 법이 아니라고 하는 상을 취해도 곧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법을
취하지 말 것이며, 마땅히 법이 아님도 취하지 말 것이다.
이러한 뜻의 까닭으로, 여래는 항상 말하였다: ‘너희들 비구들아, 나의 설법이 뗏목의 비유와 같음을 아는 자들은, 법조차 마땅히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님에 있어서랴!’ ”
7.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가 과연 아눋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인가? 여래가 설한 바의 법이 과연 있는 것인가?”
수보리가 사뢰었다: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의 뜻을 이해하기로는, 아눋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할 정해진 법이 없으며, 여래께서 설하실 만한 정해진 법이 없습니다.
어째서냐면 여래께서 설하신 바의 법은 모두 취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법도 아니며 법이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일체의 성현들은 모두 함이 없는 법으로
이루어져 범인들과는 차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8.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수보리야! 네 뜻이 어떠하뇨? 만약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얻을 복덕이 많다 하겠느냐? 그렇지 않다고 하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정말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그러냐면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이 복덕은 곧 복덕의 본성을 지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여래께서는 복덕이 많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 또한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곧 이 경중에서 사구게라도 하나 타인을 위하여 설파하는데 이른다면, 이 사람의 복이 칠보공덕의 사람의 복을 뛰어넘으리라.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일체의 모든 부처님, 그리고 모든
부처님의 아눋다라삼먁삼보리 법이 모두 이 경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이른바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닌 것이다.”
9.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수다원이 ‘나는 수다원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 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냐면 수다원을 이름하여 ‘들어간 자’라
하지만, 그는 들어감이 없습니다. 그는 형체에도, 소리에도, 냄새에도, 맛에도, 만져지는 것에도, 마음의 대상에도 들어간 적이 없기 때문에만 수다원이라 이름할 수 있습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사다함이 ‘나는 사다함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해서는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 됩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냐면 사다함을 이름하여 ‘한번 왔다 갔다 할 자’라
하지만, 그는 실제로 왔다 갔다 함이 없기 때문에 바로 사다함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아나함이 ‘나는 아나함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해서는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 됩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냐면 아나함을 이름하여 ‘이제는 다시 아니 올 자’라 하지만, 실제로 온다 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만 아나함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노라’하는 생각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 됩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냐면 실제로 아라한이라고 이름할 수 있는 법이 도무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곧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제가 무쟁삼매의 사람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됨을 얻었다고 말씀하시니, 이는 욕심을 떠난 제일의 아라한이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욕심을 떠난 아라한이라는 생각을 짓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라고 생각했다면, 세존께서는 수보리야말로 아란나의 행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수보리는 실제로 행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곧
수보리야말로 아란나의 행을 즐긴다고 이르신 것입니다.”
10.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가 옛날에 연등부처님의 곳에서, 법을 얻은 바가 있느냐? 없느냐?”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연등부처님의 곳에서 법에 얻은 바가 실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보살이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는 말이 되느냐? 안 되느냐?”
“아니 됩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냐면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는 것은 장엄하게 함이 없기 때문에, 비로소 장엄하다 이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보리야! 뭇 보살과 마하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내어야 한다. 마땅히 색에 머물러 그 마음을 내지 말 것이며, 또한 마땅히 성ㆍ향ㆍ미ㆍ촉ㆍ법에 머물러 그 마음을 내지 말 것이다. 반드시 머무는 곳이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수보리야! 비유컨데, 그 몸이 수미산처럼 큰 사람이 여기 있다고 하자. 네 뜻에 어떠하뇨? 이 몸이 크다 할 것이냐? 크지 않다고 할 것이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정말 큽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냐면 부처님께서 그 몸은 몸이 아니라 말씀하시기 때문에 비로소 이를 큰 몸이라 이름할 수 있습니다.”
11.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
“수보리야! 갠지스강에 가득한 모래알의 수만큼, 이 모래만큼의
갠지스 강들이 또 있다고 하자! 네 뜻에 어떠하뇨? 이 모든 갠지스강에 가득 찬 모래는 참으로 많다 하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참으로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모든
갠지스강이라도 너무 많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거늘,
하물며 그 모래 수이겠습니까?”
“수보리야! 내 지금 너에게 진실한 말로 이르니,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여기 있어, 칠보로써 그 모든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삼천대천세계를 채워 보시한다고 한다면, 복을 얻음이 많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정말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 등을 받아 지니게 되어, 그것을 딴 사람들에게 잘 설명해 준다면, 이 복덕은 앞서 칠보의 복덕보다 더 크리라.”
12. 존중정교분(尊重正敎分)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어디서나 이 경을 설하되, 사구게 하나라도 설하는 데 이른다면, 마땅히 알라, 바로 그곳이 일체 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가 모두 기꺼이 공양하는 부처님의 탑묘와 같은 곳이 되리라는 것을. 하물며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 전체를 수지하고 독송함에 있어서랴!
수보리야! 마땅히 알지니, 이 사람은 최상이며, 제일인 희유의 법을 성취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 경전이 있는 곳이 바로 부처님과
그의 존경스러운 제자들이 계신 곳이 된다는 것을.”
13.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이때, 수보리는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을 마땅히 무어라 이름하며, 우리들은 어떻게 이 경을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이 경을 이름하여 금강반야바라밀이라 하라. 이 이름으로써 그대는 이를 마땅히 받들어 지녀라.”
“그 까닭이 무엇이뇨? 수보리야! 부처가 설한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가 설한 법이 과연 있다고 생각하느냐?
수보리는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말씀하신 바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티끌이 많다 하겠느뇨?”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그 모든 티끌을 여래는 설하기를, 티끌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비로소 티끌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여래는 이 세계가 세계가 아니라고 설파한다. 그래서 비로소 세계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뇨?”
“볼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삼십이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가 없나이다. 어째서냐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삼십이상은 곧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삼십이상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보리야! 만약 여기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갠지스강의 모래수와 같은 많은 목숨을 다 바쳐 보시했다 하더라도, 또한 다시 여기 한 사람이 있어 이 경 중의 사구게 하나만이라도 받아지녀 딴 사람에게 설하였다 한다면 이 사람의 복이 더 많으리라.”
14.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이때, 수보리가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
의취를 깊게 깨달아 눈물 흘려 흐느끼며, 부처님께 사뢰었다 “정말 드문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깊고 깊은 경전을 설하신다는 것은! 저는 예로부터 얻은 바의 혜안으로도 얻어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여기 다시 한 사람이 있어 이 경을 얻어듣고,
그 믿는 마음이 깨끗하면 곧 참된 모습을 깨달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제일의 희유한 공덕을 성취할 것임을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참된 모습이라고 하는 것은 곧 어떤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참된 모습이라 이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와 같은 경전을 얻어듣고, 믿어 깨닫고 이를 받아지니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없지만, 만약 먼 훗날 후 오백 세에 어떤 중생이 있어 이 경을 얻어듣고, 믿어 깨달아 이를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제일 희유한 사람이라 하겠나이다.
어째서냐면 이 사람은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아상은 곧 상이 아니며, 따라서 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도 곧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그러합니까?
일체의 모든 상을 떠난 자를 곧 이름하여 부처님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그렇다! 그렇다!”
만약 또 한 사람이 있어 이 경을 얻어듣고, 놀라지도 않고 떨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마땅히 알지니, 이 사람이야말로 심히 희유의 사람이라는 것을.
어째서냐면 수보리야! 여래는 제일바라밀은 제일바라밀이 아니라고 설하였다. 그래서 비로소 제일바라밀이라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야! 인욕바라밀은, 여래가 설하기를,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어째서냐면 수보리야! 그것은 내가 옛날에 가리왕에게 신체가 낱낱이 버힘을 당한 것과도 같다. 나는 그때 아상이 없었고, 인상이 없었고, 중생상도 없었고, 수자상도 없었다. 어째서냐면 그 옛날에
마디마디 잘림을 당했던 그때, 내가 만약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
수자상이 있었더라면, 나는 분명코 분노와 미움을 냈으리라.
수보리야! 나는 또 과거 오백세 동 안에 인욕선인이었던 것을 또렷이 기억하노니, 그때의 세상에서도 나는 아상도 없었고, 인상도 없었고, 중생상도 없었고,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상을 떠나, 아눋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할지어다.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 지며, 또한 성ㆍ향ㆍ미ㆍ촉ㆍ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 지다. 마땅히 머무는바 없는 그 마음을 낼 지어다.
만약 그 마음에 머무는 바가 있다면, 그 머묾이 머묾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는 항상 보살이라면 그 마음이 색에 머묾이 없이 보시해야 한다고 설했던 것이다. 수보리야! 보살은
일체중생을 이익케하기 위하여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해야 하느니라.
여래는 일체의 뭇 상들이 곧 상이 아니라고 하였다. 여래는 또 일체의 중생이 곧 중생이 아니라고 설하였다.
수보리야! 여래는 참말을 하는 자며, 살아있는 말을 하는 자며, 있는 그대로 말하는 자며, 허황된 말을 하지 않는 자며,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자다. 수보리야! 여래가 깨달은 바의 법은 실하지도 허하지도 아니하다.
수보리야! 만약 보살의 마음이 법에 머물러 보시를 행하면, 그것은 마치 사람이 캄캄한 어둠에 들어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고, 만약 보살의 마음이 법에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눈이 또렷하고 찬란한 햇빛이 온갖 형체를 비추고 있는 것과도 같다.
수보리야! 앞으로 오는 세상에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열심히 읽고 외우면, 여래는 깨달은 자의 지혜로써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나니, 이 모든 이들이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공덕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
15.경을 지니는 공덕
“수보리야! 여기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아침나절에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바쳐 보시하고, 또 점심때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바쳐 보시하고, 다시 또 저녁때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바쳐 보시한다고 하자! 그리고 또 이와 같이 매일 매일 헤아릴 수 없는 백천만 억겁의 시간 동안을 몸 바쳐 보시한다고
하더라도,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이 우러나와 거슬리지 않는다면, 바로 이 사람의 복이 저 사람의 복을 이기리니. 하물며 이 경을 베껴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남에게 설해주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랴!
수보리야! 요약하여 말하건대, 이 경은 가히 생각할 수도 없고
가히 헤아릴 수도 없는 가없는 공덕을 지니고 있으니, 여래는 이를 대승에 발심한 자를 위하여 설하고, 최상승에 발심한자를 위하여 설하느니라.
여기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외워,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이를 설한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나니,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고 가없는 불가사의 공덕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 이와 같은 사람들은 여래가 깨달은
아눋다라삼먁삼보리를 스스로 깨닫게 되리라.
어째서냐면 수보리야! 작은 법에 만족하는 자들은 아견ㆍ인견ㆍ
중생견ㆍ수자견에 집착하게 되므로, 이 경을 들어 자기 것으로
하지도 못하고, 읽고 외워 남을 위하여 해설하지도 못하게 되느니라.
수보리야! 어느 곳에든지 이 경이 있게 되면 바로 그곳이 일체
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가 기꺼이 공양하는 곳이라. 마땅히 알지니라! 이곳이 곧 탑이라는 것을! 모두가 기꺼이 공양하는 마음으로 절을 드리고 주위를 돌면서 온갖 꽃의 향기로써 그곳에 흩으리라.”
16.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이제 다름으로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울 때 이에 따라 사람들에게 경시당하고 핍박을 받는다면 이는 전생에 지은, 지옥에 떨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죄업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지금 세상의 사람들이 이 사람을 경시하고
핍박하기 때문에 곧 전생의 죄업이 소멸할 것이요, 그래서 반드시 아눋다라삼먁삼보리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수보리야! 내 돌이켜 생각해 보니, 과거의 헤아릴 수도 없는 아승기의 겁의 기나긴 시간 동안에, 연등부처님을 뵈옵기 전에도 이미 팔백 사천만 억 나유타 수의 많은 부처님을 뵐 수 있었고, 또 이분들을 공양하고 섬김에 조금도 헛된 세월이 없었다.
여기 또 한 사람이 있어, 오는 말세에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공덕을 쌓는다면, 그 공덕에는 내가 과거세에서 그 많은
부처님들을 공양했던 그런 공덕이 그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천만 억 분의 일 내지 어떠한 숫자의 비유로도 그에 미치지 못하리라.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법이 쇠퇴한 먼 훗날에도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울지니, 그때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공덕을 내가 만약 자세히 다 말한다면,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듣고 마음이 미쳐 흐트러지거나, 반신반의하여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수보리야! 마땅히 알지라! 이 경의 뜻은 불가사의하며 그 과보 또한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17.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이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눋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냈으면, 어떻게 마땅히 살아야 할 것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선남자 선여인으로 아눋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하는 자는 반드시 이와 같은 마음을 낼지어다: ‘나는
일체중생을 멸도한다 하였으나 일체중생을 다 멸도하고 보니 실로 멸도를 한 중생이 아무도 없었다’라고.
어째서냐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이나 인상이나 중생상이나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까닭이 무엇이뇨? 수보리야! 아눋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한다고 하는 법이 실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가 연등부처님의 곳에서 아눋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만한 법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있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의 뜻을 이해하기로는, 부처님께서 연등부처님의 곳에서 아눋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만한 법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렇다! 그렇다! 수보리야! 여래가
아눋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그런 법이 도무지 있지 않은 것이다.
수보리야! 만약 여래가 아눋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그런 법이 있다고 한다면,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를 내리시면서, 너는 내세에 반드시 석가모니라 이름하는 훌륭한 부처가 되리라고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진실로 아눋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를 내리시면서, 너는 내세에 반드시 석가모니라 이름하는 훌륭한 부처가 되리라고, 이런 귀한 말씀을 해주신 것이다.
어째서냐면 여래라고 하는 것은 모든 법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일 뿐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여래가 아눋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말한다면, 수보리야! 실로 깨달은 자가
아눋다라삼먁삼보리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그러한 법이 있지 아니한 것이다.
수보리야! 여래가 깨달은 바 아눋다라삼먁삼보리, 바로 그 속에는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나니, 그러하므로 여래는 설하기를, 일체의 법이 모두 부처님의 법일 뿐이라 한 것이다.
수보리야! 내가 말한바 일체의 법이라 하는 것도 곧 일체의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일체의 법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야! 비유컨대 사람의 몸이 장대한 것과도 같다.”
수보리가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곧, 그 장대한 몸이 장대한 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장대한 몸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보리야! 보살 또한 이와 같다. 보살이 만약 ‘나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중생을 멸도하리라.’하고, 이와 같은 말을 하면 그를 보살이라 이름할 수 없느니라. 어째서냐면 수보리야! 진실로 이름하여 보살이라 할 수 있는 법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는 말하느니라. 일체의 법이 아도 없고, 인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다라고.”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나는 반드시 불토를 장엄케 하리라고 이런 말을 한다면, 그를 보살이라 이름할 수 없느니라. 어째서냐면 여래가 불토를 장엄케 한다고 말한 것은 즉 장엄케 함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장엄케 한다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무아의 법에 통달하면, 여래는 비로소 그를 참으로 보살이라 이름할 수 있다고 설하느니라.”
18.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육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육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천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천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혜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혜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법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법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불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불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저 갠지스강에 있는 저 모래를 부처가 말한 적이 있느냐? 없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그 모래를 말하신 적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하나의 갠지스강에 있는 모든 모래, 그만큼의 갠지스 강들이 있고, 이 갠지스 강들에 가득한 모래 수만큼의 부처님 세계가 있다면, 이는 많다고 하겠느냐? 많지 않다고 하겠느냐?” “너무도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그 많은 부처님 나라에 살고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을 여래는 다 아느니, 어째서냐면 여래가 설한 갖가지 마음이 모두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로소
마음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이 무엇이뇨? 수보리야!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
19.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는 칠보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얻는 복이 많다 하겠느냐? 많지 않다 하겠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얻는 복은 정말 많습니다.”
“수보리야! 만약 복덕이라고 하는 실제 모습이 있다고 한다면,
여래는 결코 복덕을 얻음이 많다고 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복덕이 없는 까닭에 여래는 복덕을 얻음이 많다고 설한 것이다.”
20.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부처가 색신을 구족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색신을 구족하신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어째서냐면 여래께서는 ‘색신을 구족했다하는 것은 곧 색신을 구족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색신을 구족했다고 이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가 뭇 상을 구족한 것으로 볼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뭇 상을 구족하신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어째서냐면 여래께서 ‘뭇 상이 구족 되었다 하는 것은 곧 구족된 것이 아니다’라고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뭇 상이 구족되었다고 이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21.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수보리야! 너는 여래가 ‘나는 마땅히 설할 법을 가지고 있노라’라고, 이 같은 생각을 했다고 말하지 말라. 이 같은 생각을 지어서는
안 된다. 어째서냐면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가 설할 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곧 부처를 비방하는 자라. 내가 설한 바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 수보리야! 법을 설한다 해도, 설할 법이 아무것도 없나니, 그래서 비로소 법을 설한다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퍽 많은
중생이 미래의 세상에서 이 법이 설하여지는 것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아니 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그들을 중생이라 해서도 안 되고 중생이 아니라고 해서도 안 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중생, 중생이라 하는 것은 곧 중생이 중생이 아님을 여래가 설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중생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22.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눋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심은 곧 얻음이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다! 그렇다! 수보리야! 내가 아눋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에, 조그만큼의 법이라도 얻을 바가 있지
아니함에 이르렀음으로 비로소 아눋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23.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이 법은 평등하고 높고 낮음이 있지
않으니, 그래서 이를 이름하여 아눋다라삼먁삼보리라 한 것이다.
아도 없고, 인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는 것으로써 일체의 선한 법을 닦으면, 곧 아눋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수보리야! 이른바 선한 법이라 하는 것은 선한 법이 아니라고 여래가 설하였으니 이를 이름하여 선한 법이라 한 것이다.”
24.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수미산들만큼 쌓인 칠보더미를 가져다가 보시한다 해도, 또 어떤 이가 있어 반야바라밀경 내지 그 사구게 하나를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타인에게 설한다면, 앞의 칠보복덕은 이에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백천만 억 분의 일 내지 어떠한 숫자의 비유로도 이에
미치지 못하리라.”
25.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너희는 여래가 ‘나는 마땅히 중생을 제도하리라’라고 이같은 생각을 지었다고 말하지 말라. 수보리야! 이같은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어째서냐면 실로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여래가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을 가지고 있음이라.
수보리야! 여래가 내가 있다고 한 것은 곧 내가 있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나 범부들은 내가 있다고 한 것에만 집착한다. 수보리야! 그러나 여래는 말한다. 범부라는 것도 범부가 아니라고.“
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느뇨?”
수보리가 사뢰었다 “그러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만약 네 말대로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전륜성왕도 곧 여래라고 해야
할 것인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제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의 뜻을 깨달아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때, 세존께서는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형체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지 말라
이는 사도를 행함이니
결단코 여래를 보지 못하리.”
27.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수보리야! 네가 만약 여래가 상을 구족한 까닭으로 아눋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은 아니다 라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수보리야! 간곡히 부탁하노니, 이와 같은 생각을 짓지 말라, 여래가 상을 구족한 까닭으로 아눋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은 아니다 라고.
수보리야! 너는 혹 이와 같이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눋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하는 자는 모든 법을 단멸해 버린 상을 설한다고.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을 짓지 말라. 어떠하냐면 아눋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한 자는 법에 있어 단멸한다는 상을 설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28.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수보리야! 만약 어떤 보살이 갠지스강의 모래만큼의 세계에 가득한 칠보로써 보시한다고 하자. 또 어떤 사람이 있어 일체의 법이 아가 없음을 알고, 인을 얻어 이루면, 이 보살의 공덕이 앞의 보살이 얻은 바의 공덕을 뛰어넘으리라.
수보리야! 뭇 보살들은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보살이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까?” “수보리야! 보살은 자기가 지은 복덕에 탐하여 집착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까닭으로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9. 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를 일컬어, 오는 듯 가는 듯, 앉는 듯 눕는 듯하다 하면, 이 사람은 내가 말한 바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여래는 어디로부터 온 바도 없으며 어디론가 가는 바도 없다. 그래서 여래라 이름하는 것이다.”
30. 일합이상분(一合理相分)
“수보리야! 만약 여기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힘껏 부셔 티끌로 만든다면, 네 뜻에 어떠하뇨, 그 티끌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정말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냐면 만약 그 티끌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부처님께서는 티끌들이라 설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 까닭은 무엇이냐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티끌들이란 티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티끌들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삼천대천세계는 곧 세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계라 이름합니다. 어째서냐면 만약 세계가 실제로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하나의 큰 전체상일 것입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의 큰 전체상은 하나의 큰 전체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큰 전체상이라 이름합니다.”
“수보리야! 하나의 큰 전체상이라 하는 것은 곧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범용한 사람들이 그것에 탐착할 뿐이다.”
31. 지견불생분 (知見不生分)
“수보리야! 누가 부처가 아견ㆍ인견ㆍ중생견ㆍ수자견을 설했다고 말한다면,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이 사람이 내가 설한 바의 뜻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느냐?”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여래께서 설하신 바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나이다. 어째서냐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아견ㆍ인견ㆍ중생견ㆍ
수자견은 곧 아견ㆍ인견ㆍ수자견ㆍ중생견이 아닙니다. 그래서 비로소 아견ㆍ인견ㆍ중생견ㆍ수자견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보리야! 아눋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사람은 일체의 법에서 마땅히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믿고 깨달을지니, 마음에 법의 상을 짓지 말라. 수보리야! 말한 바의 법의 상이라고 하는 것은 법의 상이 아니라고 여래는 곧 말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법의 상이라 이름하는 것뿐이다.”
32.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수로 헤아릴 수 없는 무량한
세계에 가득한 칠보를 가져다가 보시한다 해도, 여기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보살의 마음을 발하고, 이 경 내지 그 사구게라도 받아 지녀 읽고 외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연설한다면, 이 복이 저 칠보의
복을 뛰어넘으리라.
그러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연설한단 말인가? 상을 취하지 말라. 있는 그대로 움직이지 말라.
어째서 그러한가? 모든 지은 법이여!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네.
이슬과 같고 또 번개와 같아라. 그대들이여 이같이 볼지니.”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심을 마치시었다. 장로 수보리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와 우바이, 그리고 일체 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여, 금강반야바라밀경을 믿고 받아들이고, 받들어 행하였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
금강경 잘 읽어보겠습니다.
법안큰스님🙏감사합니다()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