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을 읽고...
글 김 훈 | 출판 학고재
작고 초라하고 볼품없고 부끄럽고 내세우기 민망한 것일수록 말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왜 작가는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수치스러운 일을 끄집어내어 소설을 썼을까?
읽는 내내 답답하고 힘들었다. 어렵고 힘든 나라 상황과 청나라의 막강한 무력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는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기에 너무나 버거웠다. 임금과 신하들이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날들이 너무나 버겁고 힘들게 다가와 내 몸의 모든 에너지가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살다 보면 좋은 날보다는 힘들고 견뎌내야만 하는 날들이 더 많이 찾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떤 면에서는 지금의 나도 당시의 인조나 백성들처럼 견뎌내는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난 뒤 어떤 일은 ‘참 잘했어’로, 어떤 일은 ‘차라리 하지 말 것을’로 결론 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선택이 나중에 어떤 결론으로 다가올지 지금 당장은 알기 어렵기에, 후회할 줄 알면서도 해버리는 일들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인조나 당시의 조정 대신들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인조는 남한산성에 47일간 갇혀 있는 동안 어차피 오래 견디기 어렵다는 점을 알면서도 무엇이 두려워 힘들게 버티려고 했을까?
임금과 대신들은 나라의 큰일(?)만 해오시던 분들이라서 그런지 당장의 추위와 끼니 문제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져만 간다. ‘정치의 근본은 백성들 등 따시고 배부르게 하는 것에 있다’는 공자의 말씀을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도 말이다. 한겨울 강을 건너는 일, 무기를 수리하는 일, 밥을 하고 바늘을 만드는 일 등 생존에 필수적인 일에서 백성들의 희생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47일은 고사하고 일주일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평소 가볍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이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그 빛을 발하는 경우가 있다. 남한산성의 백성들처럼! 예조판서 김상헌은 대장장이 서날쇠에게 병장기 수리를 맡기면서 비로소 깨닫는다. “김상헌은 서날쇠에게서 일과 사물이 깃든 살아있는 몸을 보는 듯했다. 글은 멀고, 몸은 가깝구나…. 몸이 성안에 갇혀 있으니 글로써 성문을 열고 나가야 할진대, 창검이 어찌 글과 다르며, 몸이 어찌 창검과 다르겠느냐….” 낮은 자리에서 힘들고 핍박받는 삶을 살아가는 천민 서날쇠나 강을 건너게 해준 뱃사공의 지혜를 읽어주고 알아주는 것이 내게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책 전반을 강렬하게 감싸고도는 어둡고 절망적이고 힘든 분위기 속에서 유일한 희망의 불빛이었다.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작은 희망의 불씨를 붙잡고 있으면 살아갈, 아니 견뎌낼 힘이 생기지 않을까.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견뎌내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고, 그런 삶을 무사히 건너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어떤 이유로 힘든 시기를 느끼며 살아가야 할 때가 있다. <남한산성>은 이때 무엇을 더 얻는 데 집착하기보다는 얼마나 후회를 덜 남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게 중요함을 일깨워주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양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