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송사

나흘 전쯤일런가, 여기저기 인터넷 자료를 찾다가 재미있는 걸 봤지요. 말글사랑방에 올라와 있는 제 글을 누가 그대로 퍼다가 논문 자료로 올려놓은 거였습니다. 올려놓은 사이트는 해피캠퍼스. 그러니까 대학교 논문자료를 올려서 돈 받고 파는 곳이었지요. 올해 3월달에 올려놓았는데, 다운로드 건당 800원짜리, 두 건을 다운로드했습니다. 이것 봐라! 하면서 당장 해피캠퍼스 신고센터에 전화했지요. 누가 내 논문을 도용했다며, 당사자 전화번호를 알려달라, 그 사람 큰 범죄를 저질렀다며 엄포를 놨습니다. 최근 우리 회사가 비슷한 송사에 휘말려 제가 대표 진술자로 나서기로 하고 경찰에 두 번이나 출두한 경험이 있는데, 이것과 하나 다를 바 없는 것이었습니다. 회사가 송사를 해결하자면 기백만원에서 천만원 이상 물어줘야 할 판이지요. 해피캠퍼스 쪽에서, 도용한 원본을 확인할 수 있겠냐기에 우리 사이트를 알려주고 확인해보라고 했더니, 확인한 후에 곧바로 해당 논문을 삭제했습니다. 그리고는, 당사자에게 연락해서 사과하도록 하겠다고 하길래, 사과는 무슨 사과. 가만있지 않겠다, 남의 글을 훔치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 지 정확히 보여주겠다며 기고만장했지요.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 마눌한테 이 사실을 직보했지요. 잘 하면 당신 옷 한벌 해주는 것은 문제가 안 될 거라며 모처럼 의기양양. 이럴 때 제대로 남편 평가를 받아봐야징! 그랬더니 마눌 왈, "기껏 1600원밖에 팔지 못하는 상품을 만들어놓고 남 등쳐서 수천배로 돈 뜯어내겠다는 심사냐. 정신 똑바로 차려 이사람아" "무슨 소리! 요즘은 오이 밭에서 갓끈만 고쳐 매도 기백만원을 물어내야 하는 판인데, 그냥 '다음엔 갓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다녀라'하고 고이 보내준단 말이야?" "당신은 빈말이라도 큰소리 칠 만한 위인이 못되잖아. 그런 짓도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밴댕이 속이 말은 그럴싸 해요." "아니 뭐시라? 당신은 그러니까 평생 남편한테 옷 한번 못 얻어입을 팔자야! 본전도 못 찾고 열만 받고 돌아누워버렸지요. 집구석에만 틀어박혀서 세상 변한 걸 그리도 모르는 마누라가 한심해라. 이틀 훈가, 문자가 왔습니다. """전화를 했는데 안 받으시더군요. 시간 나시면 전화 주세요.*^*""" 옳다꾸나 드뎌 왔누나! 근데 뒤에 있는 이모티콘을 보니까 더욱 확신이 섭니다. 살살거리는 웃음, 그 뒤엔 '제가 잘못했습니다. 근데 잘좀 봐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겁니다. 그래 너 잘 걸렸다. 윙크 한번으로 넘어가보자고? 어림없는 소리. 내가 이 기회에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너한테 확실히 뜯어낼테니까. 보아하니 글을 팔아먹는 사람이라면 수준은 좀 될테고, 그렇다면 형사 입건되는 것보다야 조용히 돈으로 막는 게 훨씬 낫다고 판단하겠지. 암, 그렇다면 이건 최소 3백만원이다. 흐흐~~. 근데, 가만있자. 괜히 너무 심하게 요구했다가, 저쪽에서 해코지를 하면 어떡하나. 우리 회사 사장한테 전화해서 뭐 그런 파렴치한 놈을 직원으로 데리고 있냐고 찔러대면 어쩌나. 백만원으로 줄일까? 하이고 간단치 않네... 머리가 복잡했지만, 전화는 걸어야죠. 속으론 '절대 약해져선 안된다'고 다짐을 하면서... 이튿날. "여보세요. 해피캠퍼스 신고한 사람인데요" "아 그러세요. 제가 글 올린 사람인데요." 아니, 이런, 당연히 우락부락해야 하는데, 낭랑한 여자 목소리라니. 옆에 있는 전화를 대신 받은 거 아니야? "댁이 직접 올렸다고요?" "네 제가 올렸어요" "직업이 뭐요?" "학생인데요" "어디 몇학년?" "대구 K대 교육학과 3학년입니다" '뭐시라. 아니야. 내가 지금 엉뚱한 사람과 통화하고 있는 게지. 내가 통화하는 사람은 남자에다, 인터넷에서 남의 글을 훔쳐다가 논문으로 팔아먹는 전문 꾼이이어야 한단 말이야.' "다시 묻겠는데. 학생이 직접 내 글을 복사해서 올렸단 말이지?" "예" "왜 그랬나?" "1학년때부터 리포트 쓴 거가 컴터에 열개 쯤 남아 있어서 다 올린 겁니다. 우리 친구들도 다들 자기 리포트를 해피캠퍼스에 올려요. 다 제 힘으로 작성한 건데, 우연히 1학년 교양과목 수강하다 인터넷에서 베낀 리포트까지 섞여 들어갔나봐요. 죄송해요." "학생, 이게 범죄행위라는 건 알지? 내가 학생만 아니고, 여자만 아니었으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야. 특별히 봐주는데, 혹시 다른 내용도 남의 거 베낀 흔적이 있으면 빨리 삭제해. 세상에는 나처럼 좋은 아저씨만 있는 게 아니거든. 흉한 사람 만나면 수갑 차고 기백만원 날리는 엄청난 행위라고. "예, 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안녕히!" 환상은 그렇게 순간을 못 버티고 깨졌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