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에 촘스키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MIT)의 조교수가 되었다. 현재 MIT는 촘스키가 그곳에 있다는 이유로만으로 전세계에서 언어학 연구의 허브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촘스키가 그 대학에 자리잡기 전까지 MIT에는 언어학 강의가 전혀 없었다. 촘스키는 32세에 MIT의 정교수가 되었다. 당연한 승진처럼 보이지만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시 촘스키의 언어 이론은 다른 모든 언어학자들의 접근방식과 무척 달랐다. 촘스키의 표현대로라면, 언어학과 전혀 관계 없는 이론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촘스키는 당시 상황을 특유의 어투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내가 MIT에서 가르치는 이유는 … 언어학과 약간이라도 관계가 있는 대학에는 내가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 내 연구 방향이 언어학과 전혀 관계 없는 것이란 견해가 팽배했었다. … 따라서 나는 전자공학 실험실에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나는 복잡한 기계를 조작할 줄 모른다. 녹음기가 고작이다. 심지어 녹음기조차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전자공학 실험실에 근무한 지 벌서 30년이 흘렀다.
-≪촘스키를 읽는다≫, 1988,p.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