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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말글 원문보기 글쓴이: 글벗
3년 전 가신 이오덕님을 오늘 만나다
아내를 통해 알게 된 그이
아내는 이오덕 선생을 사숙한다고 말했다. 얼굴 한번 뵌 적 없지만 그분께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하는 아내의 눈은 정말 반짝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이를 잘 몰랐다. 아내는 서점에서 그이 책을 보기만 하면 집어들었고, 그래서 집에는 그이 책이 많았지만 나는 그 책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내가 정말 존경하는 이 시대의 지성인’ ‘한글 사랑을 제대로 하시는 분’ ‘어린이를 목숨처럼 사랑하신 분’ 등 갖가지 치사를 마누라는 그이에게 갖다 붙였지만, 나는 웬일인지 그래 봐야 익히 보아왔던 지성 중 한 사람이겠지, 정도로 치부하고 그냥저냥 넘겨버렸다.
3년 전 그가 운명을 달리했을 때도 나는 그저 신문의 부음기사 정도로 여기고 아쉬워하지 않았다. 멀지만 문상을 가고 싶다고 가고 싶다고 속을 태우는 아내를 뜨악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쩌다 손에 책 한 권을 쥐게 되었는데, 그이의 시집 ‘고든박골 가는 길’이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단숨에 시집 한 권을 읽은 후 다소 엉뚱한 욕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시를 산문으로 풀어보자는, 어쭙잖은 글쓰기가 혹여 그이의 주옥 같은 글에 누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도 앞서지만, 그냥 오기를 부려본다. 혜량을 바라며 계속…
‘고든박골’은 그의 정신적 고향이자 천국
경북 청송이 고향인 그이가 마지막 삶을 의탁한 곳은 충북 충주시 무너미마을 고든박골이다. 그곳은 그이의 정신적 고향이자 천국이었다.
큰아이가 강원도 어디에선가 사왔다는 염소가 공장의 사료만 먹고 자란 놈이라 잘 키울 수 없어 못둑 외딴집에 맡기고 자주 그곳으로 마실을 갔던 그이는 평소 동물을 끔찍이도 좋아했다.
염소고 고양이고 닭이고 강아지고 도야지, 송아지, 토끼, 무엇이든지 짐승은 다 좋아, 사람보다 더 좋아했다. 정말이지 짐승만 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그이는 날마다 한 번씩 다리에 힘을 올리려고 지팡이 짚고 그 외딴집 앞 못둑까지 간다.
‘그래서 그 집의 그 많은 식구들을/ 다 알지는 못해도/ 거위 식구, 오리 식구들을 잘 알지./ 거기 가면 못물에 떠다니는/ 거위와 오리가/ 하늘나라에서 노는 듯해/ 나도 하늘나라에서 놀게 된다.’ -‘염소1’ 중
그이는 또 그 동물들 못지않게 자연을 사랑했다. 포장된 찻길 옆 밭둑에 산딸기가 지천으로 익어 불같이 된 그이의 동네는 새빨간 천국이다. 어디 산딸기뿐이랴. 넝쿨딸기도 천지사방에 널려 있다.
그이의 천국은 왠지 쓸쓸하다. 찾아와서 따먹어 주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나 외롭겠느냐며 오히려 산딸기 넝쿨딸기를 위로한다. 그러면서 부디 그이 같은 늙은이라도 반갑게 맞아달라고, 지팡이 짚고 간신히 찾아온 사람을 반갑게 맞아달라고 넝쿨딸기에게 읍소한다. 소박한 포부도 밝힌다.
‘나는 너를 따먹고/ 이 땅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다시 어린이로 살고 싶단다./ 어린이가 되어/ 너처럼 고운 빛깔,/ 고운 마음 가지고/ 살고 싶단다./ 새콤달콤 그 맛을 온몸에 지니고/ 이 땅에서 살고 싶단다.’ -‘넝쿨딸기 3’ 중
사는 이야기
왼손잽이였던 그이는 야구나 정구를 하면 놀림바탕이 되는 등 영 세상살이에 서툴렀다. 하지만 감자 깎고 밭 매고 풀 베는 데는 아무도 흉보는 사람이 없음을 은근히 자랑했다. 그이는 70년이 지나 누님이 저세상으로 간 뒤에야 지극했던 사랑을 깨닫는다.
‘감자를 깎으면 정말 생각나는 것이 많지./ 소죽 끓인 아궁이불에는 언제나 감자를 묻어 놓고/ 나 혼자만 먹었구나. 지금 생각하니/ 누님과 자주 싸운 까닭이 구운 감자를 나 혼자만 먹어서/ 그랬던 것이구나 깨달아진다./ 70년이 지난 뒤에야 그것을 깨닫다니!/ 그 누님을 저세상으로 보내고서야 깨닫다니!’ -‘감자를 깎는다’ 중
그이의 시에는 정우란 이름이 많이 나온다. 정우와 저녁을 먹으면서 지천으로 버려지는 살구 얘기를 하다 그만 얘기가 엉뚱한 데로 번진다. 정우 왈,
“방송이 왜 그럴까요? 그런 좋은 내용은 7시나 8시에 보여줘야지. 7시나 8시에는 뭐 코미디언들 나와서 웃기는 것 오락 프로만 보내요. 그래 저녁 시간에는 텔레비전 보고 모두 허허 하하 웃는 시간이지요.”
그이는 다시 통탄한다.
‘아, 이 나라가 어찌 될라고 이러나?/ 우리 민족이 이제 아주 홀딱 망하게 됐구나./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모든 것이 아주 망하려고 작정한 게다./ 다시 더 바라볼 것이 한 푼어치도 없는 민족이 됐다./ 한 푼어치도 바라볼 것이 없는/ 괴상한 민족이 됐구나./ 아무튼 내일 아침 일찍 가서/ 그 살구나 모두 주워 오너라.’ -‘살구’ 중
정우는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실로 많은 얘기를 주워 옮긴다.
“이래서 보리밥 두 그릇 값으로 배추 200포기를 받았대요.”
정우가 이 얘기를 하고 나서 계산했다.
“보리밥 한 그릇 4천 원, 두 그릇이면 8천 원. 8천 원을 200으로 나누면 2․2는 4라… 한 포기 40원 맞네요. 요새 배추 한 포기가 40원. 40원이라도 사 주는 사람이 없어 그냥 버려요.”
말 잘하는 정우에게 그이는 각별한 사랑을 보이는데, 정우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보면 평소 그이가 문학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다.
‘정우가 날마다 그날 어디서 무슨 일을 했다고, 무슨 일을 하다가 무슨 말을 들었다고, 무엇을 보았다고, 무슨 일을 겪었다고 하는 말을 하는데, 그 이야기는 죄다 소설이고 시고 역사다. 정우는 글을 쓸 줄 모르고, 쓰고 싶어 하지 않고 말로 한다. 본래 시고 소실이고 동화란 이렇게 말이었을 것이다. 말을 그대로 적어야 참된 문학이 된다.’
얼씨구, 그렇지 문학은 말이고 이야기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거짓이요 사기다. 옳거니.
말은 없고, 듣고 보고 겪은 사실은 없고, 머릿속 생각만을 찾아내고 뒤적이고 늘구고 바꾸고 흉내내고 짜맞추고 근사하게 꾸며서 써대고 있으니 그것을 그이가 제대로 된 문학으로 볼 리 만무하다. 그이는 지금 우리나라의 문학이란 것이 죄다 이 지경이 되어 있다고 한탄한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글줄깨나 쓴다는 글쟁이들이 그이 앞에서는 사지가 오그라들 수밖에. 실제로 그이는 기회 있을 때마다 글쟁이들을 호통쳐서 난다 긴다 하는 글쟁이들이 그이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들곤 했다.
‘전 형은 오늘 밤에도/ 자리를 친다./ 자리를 치면서/ 글 쓰는 사람을 욕한다./ “연암이 쓴 글에/ 글자가 나와서 사람이 모두/ 병들었다는 말이 있는데/ 글을 쓰지 말아야 해./ 쓰지도 말고 읽지도 말고/ 책은 다 불살라 없애야 해.”’ -‘자리를 치는 전 형’ 중
글짓기를 마다하고 굳이 글쓰기를 고집한 그이는 이런 신념 때문에 아이들을 상대로 유독 바른 글쓰기를 강조하고 또 그 일에 평생을 바친다.
그러나,
우리말 사랑한 어린이의 친구
아이들에게 정작 학교는 지옥이나 진배없었다. 싸늘하게 얼어붙은 엄동설한의 지옥 말이다. 그이는 아이들 앞에 어서 따뜻한 봄날이 도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봄아, 오너라/ 어둔 방에 갇혀 있는 우리 아이들/ 꼬부랑말 외우는 아이들/ 동시를 외우는 아이들/ 매 맞는 아이들/ 왕따당하는 아이들/ 모두가 모두/ 닫혀 있는 문 활짝 열어제치고/ 손에 손을 잡고/ 꽃 피고 새 우는 산으로 들로/ 소리치며 달려가도록/ 봄아, 오너라/ 봄아, 오너라.’ -‘다시 봄을 부르며’ 중
학교라는 지옥에서 전생 40년을 어린이들을 살리겠다고 몸부림치며 괴로워했으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던가, 그이는 뒤늦게 후회한다.
또,
햇볕처럼 따스한 우리 겨레말, 파란 하늘처럼 고운 아리랑 나라의 말을 살리려고,
산짐승처럼 쫓겨가고 개구리처럼 물고기처럼 죽어가는 그 말을 살려 우리 겨레를 살리려고, 그이는 지난 15년 동안의 이승에서 있는 힘을 다 바쳤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던가, 역시 뒤늦게 후회한다.
그러면서 그이는 소박하디소박한 인생의 목표를 깨닫는다. 그러나 그리 만만치 않은…,
‘하느님,/ 올겨울에도 저는/ 토끼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 못 살렸습니다./ 새 한 마리 살린다는 것은/ 이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 아닙니까?
이제부터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 몸 하나 살리는 일/ 내 몸 하나 죽이지 말고/ 살려 내는 일/ 그것뿐인 줄 깨달았습니다.’ -‘내가 할 일’ 중
소박한 꿈 하나
새 한 마리 살리는 일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임을 깨달은 그이의 천국은 이제 한없이 외로워져 버린다. 외로울 뿐 아니라 신성마저 잃어버려 아연 지옥을 연상케 한다. 하얗게 눈 온 날 먹이를 구하러 마을에 내려왔다가 인간이 쳐놓은 올가미에 걸려 그만 목숨을 잃은 동물을 접하고 나서다. 그이는 경악한다. 경악하는 정도가 아니라, 숨이 넘어갈 당시의 어미토끼처럼 목에서 뜨거운 피를 토한다.
‘하느님도 똑똑히 보셨지요? 그 어미토끼가 올가미에 걸려 발버둥칠 때 하느님은 얼마나 놀라고 괴로워했습니까?/ 하느님도 그 어미토끼와 함께 몸부림치셨겠지요./ 아기토끼들을 눈앞에 두고 그것들 생각하며 몸부림치다가/ 몸부림을 치다가 피를 토하며 죽어갔겠지요./ 이제 이 몹쓸 사람들은/ 토끼고 사슴이고 너구리고 개구리고 뱀이고,/ 곰이고 멧돼지고 소고 뭐고 다 잡아먹고/ 강물 바닷물의 고기도 다 잡아먹고/ 땅속에 숨어 있는 짐승들 다 잡아먹고,/ 하느님, 당신까지 잡아먹고 나면/ 사람만 남게 되겠지요./ 그때는 뭘 먹을까요?/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는 판이 벌어지겠지요.’ -‘눈 온 날 경치’ 중
그이에게 이제 사람은 서로 잡아먹는 무서운 존재가 되고 만다. 더구나 그이가 거닐던 천국 고든박골은 온통 쓰레기 천국이 되었다.
벌겋게 된 밭둑, 섬찟하게 타 오그라든 쑥이며 한삼덩굴 위에 먹고 버린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들이 허옇게 나무젓가락들과 함께 널브러져 있다. 콩밭 골에 비닐을 덮다가 짜장면을 먹었는지 라면을 먹었는지 아니면 흰밥 도시락을 먹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일하다가 농약으로 태워 죽인 풀 위에 앉아 기분 좋게 배를 채운 뒤끝이 이 무슨 꼴인가? 이 세상에 인간보다 더 추악한 동물이 있을까, 그이는 여긴다.
‘정말이고 정말이지 사람이/ 개나 돼지만큼이라도 된다면/ 그보다 더 나아간 역사가 없을 것이다./ 사람이 개나 돼지만큼 된다면/ 어디 이런 꼴을 보이겠나?/ 전쟁도 없을 테고 통일도/ 벌써 오래전에 다 됐을 테지./ 사람이 개돼지 짐승만큼 된다면!’ -‘고든박골 가는 길 2’ 중
이것은 차라리 저주다. 이들이 어떻게 과학이나 역사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설령 발전을 이룩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과연 누구를 이롭게 할 것인가?
하늘나라에서 만난 친구들
그이가 마지막으로 본 천국, 미래가 보이지 않는 고든박골의 정경은 차마 처참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감자알이 굵어 갈 때, 그이는 절규한다.
‘아, 그날도 오늘 같아 산은 푸르고, 오늘도 그날 같아 새소리 저리 맑건만, 이제 저 하늘 저토록 흐려 푸른 산들 보이지 않고, 논밭에 김매는 사람 하나 없고 개골물도 죽어서 가재고 버들붕어 뿍주구리들 다 어디로 사라지고, 나는 이렇게 허리 꼬부라진 늙은이 되어 지팡이 짚고 나와 먼지 날리는 길 달려가는 사료 배달 차를 피해 우두커니 섰구나. 내가 잠시라도 쉬어서 갈 수 있는 무덤가 잔디밭이라도 있는가. 찾고 있구나. 내가 묻힐 땅이라도 있는가 찾고 있구나. 이 숨막히는 유월에. 보리밭도 안 보이고 이초강 매미도 없는 이 어무찬 세월에.’ -‘감자알이 굵어 갈 때’ 중
그렇게 그이는 죽음을 보았던가. 그러면서 생전에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 지인들을 하나씩 주위에 불러 모은다.
‘아, 임 선생!/ 그토록 홍시를 좋아하던 길택 선생!/ 살아서는 저 방에서/ 그 가을에/ 홍시를 그렇게 맛있게 잘도 먹더니/ 지금쯤 어느 하늘에서/ 우리들 홍시 먹는 것/ 보고 있나요./ 그런데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감나무 밑에 갈 때마다/ 감나무 위에서 찌찌 찌찌 하고/ 날아다니는 새/ 길택 선생은 그 새가 되어 날아온 것/ 아닌가요?’ -‘임길택 선생의 홍시’ 중
이승과 하직을 고한 오늘, 25일이 가까워올수록 그리운 이들의 얼굴은 그이의 눈앞에 더욱 아른거리며 천국의 상봉을 재촉한다.
‘우리는 그 호두를 까먹으면서/ 가을 산 이야기를 했지/ 밤 이야기, 홍시 이야기, 대추 이야기……/ 그 강 선생은 그 뒤 몇 달 안 되어/ 그 젊은 나이에 그만 저세상으로 가 버렸구나./ 그 엄청난 일을 해내고/ 이 세상을 번개같이 왔다가 가 버린 사람/ 지금 강 선생은 내 머리 위 어느 하늘에서/ 대추를 줍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거야/ 틀림없이 보고 있을 거야. -‘대추를 털면서’ 중
8월 20일 새벽엔 정우에게, 현우 연우에게 실로 간절한 부탁을 한다. 돌아가시기 꼭 닷새 전이다. 이건 차라리 유언이다.
‘정우야,/ 김매고 보리밥에 풋고추 된장에 찍어 먹는/ 너는 알겠지. 하늘과 땅이 없어진 것을/ 무지개와 노을이 사라지고/ 빛과 물이 없어져 간다는 것을./ 그러나 현우야, 연우야/ 너희들이 걱정이구나./ 그래서 정우야 부탁한다./ 앞으로 다가올 끔찍한 재난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라./ 미쳐서 무섭게 날뛰는 사람의 거리를 멀리 떠나/ 아무도 살지 않는 깊은 산골에서/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 산나물 산딸기 따먹으며/ 살아라.’ -‘노아의 방주’ 중
그렇게 가신 지 3년, 바로 오늘 25일입니다.
오늘 반가운 마음으로 임을 만납니다.
그곳 천국은 어떠신가요? 길택님도 만나시고, 강 선생도 만나보셨는지요?
어디 살 만하신가요?
여기요?
아무래도 더 큰 방주를 하나 지어야 할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