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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서 드레스덴 폭격이 2월 11일부터 14일 사이에 영미 연합군이 무려 일만 톤 가량의 폭탄을, 열폭탄 소이탄 포함, 드레스덴에 퍼부었다고 나타났습니다. 드레스덴의 넓이가 위키에 의하면 324제곱킬로미터. 1제곱킬로미터당 30 톤의 폭탄을 쏟아부은 셈입니다. 도시가 남아났지 않았을 것입니다.
허나, 구신문에는 5만발을 퍼부었다고, 광고 메시지로 남겨 놓으셨습니다. 미국당국에 의해 수일후 개봉. 중앙극장, 한국의 허리 중간지대, 紅붉을 홍挑끌어낼 도紅붉을 홍 : 피바다가 연속 끓어올랐음을 뜻합니다. 마녀와 두 악당, 영국과 미국에 의해, 도시 전역이 오만 발에 의해 검은 연기화 하고 있음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쌀이 그냥 쏟아져 내렸다라고. 했습니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폭탄, 언제 그칠까? 뜻입니다. 년도는 1952년. 한국전쟁 한참이던 때,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계엄령을 선포하고 있는 울산 밀양 양산 금해 창녕 등지로부터 들어와야 할 ..."
쌀알처럼 쏟아진 게 맞습니다.
이 폭탄비로 단 2,3일 사이 한국인 오십만명이 산 채로 불에 태워졌습니다.
2월 11일은 폭탄 퍼부은 첫날로 위키 등은 기록하지만, 첫 날에 새벽발간되는 조선일보에 도시 60%가 파괴, 불 살라졌다고 보도 남깁니다. "2월7일 현재로 주택 60%를 완성" 즉, 7일에 이미 폭탄 투하가 시작한 것입니다.
당일의 기사,
"유엔군 해안봉쇄" "2척의 영국해군선박은 8일 에리사베스 여왕의 즉위를 축북** 북이라고 써서, 불 질렀다고 읽어야 합니다--하는 21발의 축표(포가 아닌 표로 써서 이것이 암호라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서부에 있는 공산군군사시설에 지향하여 발사** 군사시설이 아니고 그 일대를 다 쏘았다 로 읽어야 하는 이유는 "지향하여" 그냥 넓은 방향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을 써서, 그 일대를 다 불살라 치움을 암시하였습니다. --
"즉 세이론 경 순양함은 진남포 서남방에서 적 점령하에 있는 일(숫자 1) 부락에(즉 드레스덴, 한국말로 대전) 6인치 포를 (15센티 포탄)를 21 발(21발 아닙니다.) 이나 발사하였다. 그런데, 그로-리 항공모함으로 떠난** 즉 저 해군선박 두 척은 항공모함 두 척, 또는 세 척, 항공모함 한 대가 십여척의 순양함과 그에 따른 수백기의 전투기를 몰고 다니는 걸 생각하면, 그 규모가 짐작이 약간은 될 것입니다. -- 영국 항공기가 알려준 공중정찰보고에 의하면 동한포** 통한의 포탄-- 사격이 행하여진 동 부락은 많은 명중탄을 받아 불타고 있었다 하며 ** 영국 항공기가 아닌, 한국 타타르 제국의 항공기가 알린 보고입니다. 목숨 걸고 영국항모를 향해 정찰비행하고 돌아온 제국 순찰기였음 -- ** 드레스덴이 이미 불에 활활 타오르는 도시 전체 모습이었음을 말합니다. -- 해주(지중해) 남방(에)서 최리리(춰칠리의) 영국구축함은 한국 반도(유라시아 ) 내부에 있는 공산군 박격포진지에 21발의 총포를 발사하였다 한다.
다음 날, 2월 12일 기사
"극동공군이 11일 일 발표(일일 전황 보고** 지금 러군 하듯)한 바에 의하면 "유엔"(영국미국)공군은 10일 (1952년2월10일) 1,057 차(일천 오십일곱 번) 라는 근래에 드문 출격을 하였다. 미 세이버 젯트기는 10목미그일대를 격추하고 2대 내지 5대를 미확인 격파하였다. 또한 서해안에서 항공모함 마제스티 호에서 52 차 출격 탄 "유엔"기는 옹진반도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였다.
저 위 옹진 반도의 도시는 다른 기사에서 나왔습니다. 함부르크 대폭격
"기사제목: 하노이, 하이풍의 동맥, 하이두옹 교가 북폭으로 두 동강이...///.....제 2차 대전시 드레스덴과 함부르그에 가해져던 것과 같은 대규모 탄자폭격의..."
2월 초이면 아직 겨울입니다.
1월 3일 1.3 후퇴로 인해** 아래 기사 붉은 부분 -- 많은 피난민들이 도시에 몰려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2월 8일 유럽연합군 최고사령부는 RAF와 미공군에 드레스덴이 폭격 대상목록에 포함되어 있다고 알렸다. ... 독일에서 7번째로 큰 도시인 드레스덴, ... 한 겨울에 피난민들이 서쪽으로 향하고,,, " ** 이 피난민들이 아마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갈 곳 없어진 동부지역을 떠나 서쪽, 반도의 중심지이며, 큰 역이 있었던, 대전역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래 사진은 무개화차에 올라탔던 많은 피난민들이 한꺼번에 불살라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
Illus/Hahn 1950년 12월 2일 드레스덴의 거리에서 수만 명의 죽은 사람들이 화격자 위에 높이 쌓여 불탔으며 그 중 일부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 위 위키피디아 내용에 나온,
"2월 8일 유럽연합군 최고사령부는 RAF와 미공군에 드레스덴이 폭격 대상목록에 포함되어 있다고 알렸다." 이
저 드레스덴이 1945는 가짜이며 1952년에 일어났던 큰 참극이었음을 알려주는 뒷받침해주는 구신문이 있습니다.
내용은,
- 경 고 문 -
미군 AGC부관 R. CTONES 소령으로부터 -- AGC는 소련무기들의 모델명, 그래서 이 경고는 우리 타타르제국군의 당국이 보내는 경고가 됨, R. 스톤은, 되풀이 죽지 않는 분으로부터, 즉 푸틴으로부터,
좌기와 여히, 이어지는 내용과 같이, 공군의 폭격연습을 실시하겠다(는) 통첩이 유하오니(있으니) 그 연습지(연습상대지역)린(인근, 이웃)근도(인접지역전부)의 주민과 근접수역의 소재하(아래) 선박과 조업중인 어선 또 항해하 선박은 차후당국의 별도지시가 있을 시까지 만불행지사가(일만 만)가 발생치 않도록 각별 주의할 것을 자이 (엄숙히) 경고함.
기(記기록 기)
폭격기점 거文島(글 문, 섬 도), 거:클 거,거대한 문화의 도시, 즉 대전, 북동방대 3부도 (드레스덴의 북쪽과 동쪽으로 3 각 지역 - 삼각지 전투) N E 1 E 3 4E(61도) 북위 61도 지역- 페테르부르그 동경 13 도 지역 - 드레스덴
발생일자 - " 차 수역 일대에 연합공군전투부대가 1952년 2월 10일 일출시부터 폭격또는 사격연습을 실시할 것이며, 차 훈련은 매일 일출시부터 일몰시까지 실시될 것이니..."
경고문의 발행일자 - " 단기 4285년 2월 7일" - 이 신문의 발간일자가 2월 12일 것입니다. 고로, 이 발간일자는 폭격의 시작 개시 일자라고 봐야 옳겠습니다.
지도: 페테르부르그 붉은 부분, 라도가 호수 붉은 동그라미 - 북위 61도 맞습니다. -
드레스덴 지역 동경 13도15부 지역. 동경 13 도 맞습니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 1과 3 글자를 중간에 다른 글자를 배치해 건너 쓰셨습니다. 이런 것을 발견할 때마다 눈물이 핑 돕니다. 이 한 글자 남기기 위해 그 분들은 목숨을 걸으신 것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걸리면? 그냥 죽는 게 아니고 고문 당하다 죽습니다. 아래부터 드레스덴 - 동경 13도30 - 포츠담 - 함부르크
드레스덴의 죽음이 히로시마의 숫자를 추월했다고 전하는 기사.
"1945년 2월 동부전선에서 패주해온 ** 스탈린그라드전선에서 패주해온 -- 독일군(한국군, 즉 타타르군대)은 거의 전력을 상실한 채" - 푸틴은 백마고지에서 마지막 남은 탱크 13 대로 분전하고 있었음. 아니 11대로 정정. 여태 13대로 기억했는데 기사를 다시 확인하니 11대였습니다. 이 기록은 앞서 다른 글에 붙인 증거기록이 있습니다. 불탄 탱크 속에 홀로 숨을 쉬는 병사 하나.)
"이 때 드레스덴에는 밀물처럼 몰려드는 소련군대를 피해온 수많은 난민들이 집결해 있었다." - 동쪽에서 온 미군들의 증거자료, 앞의 글에 특히 "CCC"의 뜻을 밝히며 올린 것 있음 및 블라디보스톡에서 열차타고 시베리아로 진격하는 미군연합군대 사진 참조.--
"그 때까지 별로 공습을 받지 않던 드레스덴은 하이델베르크처럼 역사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연합국이 폭격하지 않으리란 기대감 조차 주민들 사이에는 번지고 있었다던가. " - "조차"라는 부분에서, 그리고 "다든가?" 하는 어조에서, 한국인들이 저들 뱀들 족에게 아무 기대 즉 자비심도 걸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
"그러한 기대감과 평화적(무장이 전혀 준비 안된) 피난민이 몰려있던 드레스덴의 머리 위에 (도심의 중앙에 기차역이 크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 45년 2월 13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정오까지 영미연합국공군의 무차별 파상폭격은 자행되었다. " - 45년이 아니고 52년입니다. 한국전쟁 끝나가던 무렵.
"먼저 영국공군이 15 제곱킬로미터의 도심부에 1,500 톤의 폭탄과 65만개의 소이탄을 밤새 퍼부었다. 폭탄으로 카펫을 깐다는 봄벤테피히(융단폭격)의 신조어가 이 때 생겨났다." - 어제 올린 글에 첨부한 것에는 드레스덴의 넓이를 6제곱킬로미터라고 하였으나, 중심지역 넓이만 15 제곱 킬로미터라고 합니다. 가로 세로 약 4 킬로미터 정사각형 넓이라고 보면 됩니다. 현재의 드레스덴은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닙니다. 그리고 저 물량, 저 날짜, 2월 14일이 드레스덴에 마지막 퍼부은 폭탄 물량 같습니다. 7일부터 시작해서 ㅡ
"물량공세에 있어 미군은 어느 나라에도 져본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영국이 저 만큼 퍼부었으나 미군은 훨씬 더 많이 퍼부었다 뜻입니다.
이제 대전 드레스덴에 대한 1996년 관광 안내 기사를 참고하겠습니다.
아래 보시면, "전차 투어; 전차(트램) 관광"이라고 써놓았습니다. 드레스덴 시내를 돌아보는 관광코스로는 전차와 버스 두 가지가 있다. "
전차는 우리 제국의 산물입니다. 당시에는 저 어릴 적에도, 부산, 서울에 전차가 깔려 거의 무료이다 시피했던 가격으로 다닐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국의 기억이 나게 하는 산물이므로, 대중들이 그리 애호하던 교통수단이었는데도, 야금야금 없애왔습니다.
미안하게도, 전쟁 전의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번화하던 때. 1994년 필자가 저 곳을 잠시 방문했을 때, 공장 방문차 당일 치기로, 이런 높은 탑들은 안 보였습니다. 우측의 다리는 드레스덴 기차역에서 건너 시내로 들어가는 다리입니다. 강은 엘베강. 유람선은 한 개도 안 보였습니다. 저 곳에 세 네 곳 넘는 유람선 시설이 있다는 것이 1996년 사진이 아니라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1994년에 아직 그 유명한 성마리아교회라고 소개되던, 은 폭격으로 무너진 채, 검은 벽돌 잔해가 그 주변에 뒹굴고 높은 첨탑에만 가까스로 사람 한두명 비비며 올라갈 정도로 올라갔다 내려온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1994년에 그랬으니까, 전쟁 상흔에서 아직 치유도 안된, 이 사진은 전쟁 폭격 당하기 전의 우리 도성이었을 때 사진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1994년에 갔을 때 매우 낙후된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또한 독일장벽 붕괴 후 소련연방이 동독에서 철수하면서 동독지역은 경제적으로 꽤 오랫동안 매우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 이년도 안된 짧은 기간에 이렇게 번화해지게 되기는 힘들 것입니다. ** 필자의 기억이 잘못 일 수도 있습니다. --
아래는 포츠담의 내용입니다. "왕정 몰락 비운의 현장"
그리고 프레데릭 1세 빌헬름의 정체도 나옵니다. 1905년 체칠리에와 결혼한 왕자 빌헬름은...이 곳에 성을 짓기 시작했다. 완공 이듬해 1918년 11월 혁명으로 왕정은 끝나고... ** 이로써 1917년 11월 레닌공산혁명은 구라빵이라는 것도 드러나고, 및, 빌헬름은 아마도 푸틴이라는 판단입니다. 마지막 황태자, 이 당시 아직 스탈린 피터 대제가 살아 있을 때므로, 1945년 1월 이 성을 버리고 떠난다. 1945년이 1952년이었으므로, 1953년 한국인들 살아남은 사람들과 같이 한반도로 건너오게 되시었을 것 같습니다.
89만평은 약 2.78 평방 킬로미터입니다. 궁전의 넓이가, 가로,.세로 1.66 킬로미터 급입니다.
포츠담이 한국어로 "상수" 시였습니다.
기사 "상수시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상수시 궁과 아름다운 조형미로 ** 원래 이름은 아우구스투스 궁 --
아래 기사에 몇 가지 주목할 것들이 나타납니다.
"붉은 병사의 총구가 다리위에서, 감시탑위에서 길을 지켜보고 ... 서백림을 나서자..." - 이 문장 전후에서 보시듯, 그럼 탈출하는 사람에게 총을 가하는 총질은 어느 편에서 한 것이겠습니까? 바로 서쪽, 뱀들 편에 소속한 군대들 그 군인들이 하여야 하는 임무였다는 것을 이 기사 한 줄로 설명을 매우 잘 하고 있습니다.
"본래는 슬라브 족의 어촌이었던 이 보잘 것 없는 하벨강변의 작은 마을이.." - 이 문장 하나로써, 슬라브인들이 독일 중심에까지 퍼져 살았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으십니다. 및, 우리가 바로 슬라브족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우리 아이들을 보내서 같은 슬라브 형제들에게 총을 겨누게 하는 일은 절대 천륜에 어긋납니다. 문프가 졸도할 지경 까지 단식하며 한국군을 안 보내겠다고 결의하신 이유가 너무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합니다. 게다가 국민들이 아무도 모르고 있어요.
"프레드리히 빌헬름 1세가 상 수시궁을 이 곳에 지음으로써..." - 이로써 아우구스투스는 바로 우리의 황제 프레드릭 1세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에는 프레드릭 빌헬름 1세에 관한 아무 자료도 나오지 않습니다. 프레드리 1세는 덴마크 왕으로 기록이 한 개 있는데, 그것도 매우 수상한 협잡입니다. --
"계몽철학자 볼테르도 이 곳에 살았으며, 아인시타인 박사도 한 때 이 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볼테르 : 얼마나 사람을 멸시하는 지 알게 하는 놀라운 말투입니다.
아래 확대 보시면, 사람들 아무도 아인슈타인에게 눈길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약간 각도가 틀린 다른 좀 더 아래 무언가를 보며 열중하는 표정들입니다. 모든 청중이 엉뎅이를 보며 즐거워할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아인슈타인은 가짜, 앞서도 전에 제가 썼던 대로, 연기하는 연극인입니다. 머리카락 목 뒤에서 뱀이 웃고 있습니다.
아래는, 드레스덴 복원하는 성 마리아 교회에 관한 기사인데 1996년 저 위 포츠담 기사와 같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독일인들의 안내문에는 저 교회가 성 마리아의 교회라고 하였는데, 아래 기사에는 프라우엔 교회 라고 하였습니다. 아, 프라우엔의 뜻이 독일어로 마리아라고 위키에 설명하는군요.
드레스덴이 도자기로 유명하다고 나타난 기록입니다. "왕은 그를 드레스덴 외곽 알브레히트성에 숨긴 뒤 계속 연구를 하게 해 도자기 제조의 노하우를 발전시킨 것. 츠빙거 왕궁에 있는 세계최대 도자기 박물관, 4 시간마다 타종하는 40개의 도자기 편종 벽시계, 요하니움 건물의 외벽에 도자기 조각 2만5천개를 붙여 제작한 1백2미터 초대형 모자이크 벽화는 바로 그 마이센 도자기 의 산물이다"
"그러나 츠빙거 왕궁에 가면 뛰어난 전술가로서 아우구스투스왕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 왕의 진짜 이름이 나타납니다. 아우구스투스 왕. ** 아우구스투스는 짜집기 역사에서 로마의 카이사르라고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
"현재 왕궁에는 왕실이 수집한 루벤스 라파엘 렘브란트 등 거장들의 수많은 걸작품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여러 개 들어있다."
저 웅장한 벽화를 박박 다 지워 없애치웠습니다. 지금 구글어스에서 캡쳐한 사진입니다. 아래 길이. 120미터라고 같은 벽입니다. 이들은 서서히 제국의 모든 영화를 없애는 중인데, 인간제국의 기록들은 지우기 위해서 입니다. 그 그림벽화 자체가 한국인 슬라브족의 역사 증거였으니까요.
드레스덴은 엘베 강의 "플로렌스" - 라파엘의 걸작 "상시스트의 마돈나"를 비롯..
저 상시스트의 마돈나가 "시스틴의 마돈나"라고들 합니다. 교황 식스토 2세를 기리기 위해 건축한 시스티나 성당 내부 장식 제단화 라는 설명. ... 참조할 것도 못 되고.
진실은 "상시스트의 마돈나" 즉 상수 시를 세우고 거기 거처했던 아우구스투스왕의 기념화 같습니다.
그리고 대전 시는 중부 유럽의 피렌체이기도, 문예부흥, 했습니다.
바로크 예술의 보석이 우리 윗 대 한국분들의 작품이었습니다. 대전시, 드레스덴이 그 중추역할이었고, 그래서 대전발 영시 오십분이란 가창이 그리 애절한 것일 수 있고,
그것을 단 수일만의 폭탄 9천톤으로 불사르고 우리 부모세대들의 부모님들을 오십만 명 이상 학살한 그 마계 국가 미국 영국 프랑스 유태인들을 우리는 지금 가장 문명의 최고봉인 줄, 지성과 도덕의 최고봉 인 줄 알며 그런가 하고 우크라이나의 식인귀를 영웅시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아무래도, 그간 제가 내놓았던, 바이든이 젤렌스키이고 미국이 푸틴 손에 접수 상태라고 한 단언들, 너무 단언이 앞서 갔는데, 지금으로선 철회를 제가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리얼 러 뉴스를 너무 신뢰했던 것 같습니다.
뱀계들로서는 진실찾는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해서 또한 반대의 고급 쏘스를 같이 내놓고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한 것이 바로 어제 올렸던 구 교황청의 대사였다는 미국인의 글, 너무 잘 써진 탄탄하기 이를 데 없는 장문,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착각하도록 만듭니다. 자기들이 형평성을 달리는 척. 기대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위의 구신문 암호로써도 나타났습니다. 기자님들이 우리에게 간곡히 뱀들 파충류 서구 것들 절대 기대도, 아무 자비심도 없으니, 하지 말라시는 뜻입니다.
한은경 화봉.
글후원: 국민 831401=01=150608
** 만일 갑자기 문을 닫거든,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하늘이 가뭄에 단비도 아니 보내시니 말입니다. 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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