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리터, 미군사전문가, 의 발언: 오뎃사항구(우크라)는 캐서린(예카테리나)대왕의 왕관에 놓인 보석
1838 노트르담, 빠리
그림속의 왼쪽문,성화걸린,이 지금의 붉은 광장 퍼레이드할 때 군사령관이 차량타고 입장하는 그 문으로 되어집니다. 그러니까 븕은광장은 저 문의 안쩍에 있는 것이고 우측의 바실리 성당은 뒤에서 본 모양입니다.
이 성벽 위로 기찻길이 달렸습니다. 전기철로입니다. 지금은 크레믈린 궁의 붉은 벽돌담. 2차 대홍수 직후 같습니다.
예카테리나의 흑해 여행 "폐허 카파 항" -위키 설명에 의하면.
아래 사진이 위의 사진들보다 이전입니다. 2차 대홍수 이전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 바실리 성당의 아래 기초가 대략 2 층 정도는 지하에 묻혀 있는 것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옆에 고가철로가 지납니다. 즉 성당의 보라색 부분은 지하에 들어갔다는 표식 같습니다.
기차선로가 교각 위에 달립니다. 그리고, 붉은 크레믈린 벽위 위가 기차선로였을 텐데, 앞으로 다니도록 해서 거기 기차선로가 지나다녔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있는 크레믈린과 붉은 광장과 성 바실리 성당 위치로 생각하면 이 그림은 좌우가 바뀌었습니다.
전차와 돌이 깔린 모스크바
키예프, 스탈린과 예카테리나 때의 수도
키예프가 스탈린의 것이었음을 말하는 스타성채 스탈린페리트 (발코니)
오뎃사에 있던 스탈린성채
모스크바, 왼쪽이 레닌(이강공비)묘역
높은 돌기둥이 둘 세워져 있고, 뒤로 기차선로가 달렸던 곳을 그림으로 나타냈던, 이강공비가 레닌묘역에 갔다는 신문 삽화인데, 기실은 이 레닌 묘역이( 신문은 대원군 능으로 표현) 이강공비 묘역임을 여자 그림을 세워서 말하였습니ㅏㄷ.
높은 석조 기둥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적거리던, 황소떼들이 몰려 들었던, 톨스토이가 객사했던, 그 저자 거리 같았던 모습. 여성들이 반나로 걸리웠던,
여성들이 끌려와 있었음을 알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신문 사진과 같은 건축물입니다. 가운데 검정 황소 상은 몰려든 황소 떼를 뜻한 것 같습니다.
저것을 올림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극동올림픽
수십 명의 여인들이 갇히어 있었다.
붉은 광장에서 연설하는 레닌, 연설이 아닌, 붉은 광장에 갇혀 있은 예카테리나.
위 사진의 설명기사: 레닌 서거 2주년
레닌 즉 예카테리나는 2년 전 금월 금일1924년 1월 21일) 오후 6시 모스크바 교외 고르끼 촌에서 자기가 개조하여 놓은 세계의 변천을 바라보면서 마지막 눈을 감고 말었다. 이 날이야말로 ...무산계급(인간류)의 한 많은 날이며 영구히 잇지 못할 날이다. ...
그녀가 영구히 바꾸어 놓은 것은 무엇인가 하면,
추위입니다. 남극과 얼어붙은 얼음을 생기게 하여, 지옥에서 나온 식인원숭이들이 다 얼어붙어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144,-000 명만 살아 남았습니다. 혹은 씨암탉 하나가 살아남아 그 낳은 새끼들의 숫자인 지도 모릅니다. 아뭏든,
남극의 빙하는 본 카페에서 일찌기 확대하고 함으로써 그것이 괴물떼들의 얼어죽은 시체더미라는 것은 밝혀 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 현상이 이번 겨울, 미국과 유럽에 닥쳤던 영하 50도 급의 강추위에 얼어죽은 괴물들 사진 덕택에....
144,000 마리의 식인원숭이가 살아 남았는데 그 중에서 지금 가자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죽어가고 있다면,
매우 희망적 혹은 터무니없는 희망 같기는 합니다만, 그래도그럴 것이라 믿는 이유가,
푸틴은 이미 "판도라"의 상자를 되 찾으셨기 때문이라서 입니다.
앞서 제가 희망의 말을 전하겠다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판도라의 상자"
실물은 나중에 보이겠습니다.
한은경 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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