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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쉬쉬하는 비밀
이번 글은 '제트엔진'에 대해서입니다. 이 제트엔진이 미국이 어떻게 돼먹은 나라인지 설명해줄 것 같습니다.
1994년 10월 경에 저는 드레스덴에 갔습니다. 거기 있는 공장 한 곳에서 몇 개월 전 부도가 났으므로, 계속 사업을 할 수 있는 지를 물어보려고 갔던 것이었습니다. 그 곳의 생산품목은 공장플랜트에 들어가는 모터 구동장치 필수품인 트랜스미션 또는 유압커플링입니다. 그 갔을 때 그 공장장인지 사장이, 부도난 것을 인수한, 제게 그 회사에 대해 설명해준 내용이 있습니다.
원래 제트기 엔진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만들던 회사였습니다. 그 회사 연혁에도 그렇게 쓰여 있고, 그런데 2차 대전 종전되며 침략군인 소련이 와서 그 제트엔진 생산설비를 일체 전부 뜯어 갔다고 하였습니다. 제트엔진을 더 만들 수 없게 되므로, 하이드롤릭 트랜스미션 개발과 생산으로 공장을 다시 시작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에 와 생각하면 그들은 한국인이 남기고 몸만 떠났던 그 장소를 다시 와서 차지한 사람들이면서, 그 공장종사자들은 그렇게 그 곳에서 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 추정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들던 제트엔진을 훔쳐갔다는 소련군의 도둑짓은 1945년 또는 1952년 경일 것입니다. 드레스덴이 불에 태워진 해가 1952년 2월이고 그 중간에 한국전쟁에 의하면 우리국토는 전부 쫓겨서 낙동강 하구까지 도달했었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파리까지 쫓겨갔다는 것인데, 이 내용은 앞의 글에 썼던 그 유명정치 예언가 지리노프스키씨의 발언에 우리(러시아)가 파리까지 들어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이 레닌시대인지 또는 한국전쟁 2차 대전 때인지 1차대전인지 는 불명확합니다. 레닌도 파리에서 한동안 살았던 기록, 구 한국신문, 이 있습니다.
제트엔진을 찾아보았더니, 러시아위키피디아에 그 생산지로 페름이 나옵니다. 페름에 유명 제트엔진 제조업체가 있습니다.
페름 지역은?
앞서 올린 글에 인용, 노보로시스크 지역에 있던 처칠의 군대가 철수했던 내용이 일본위키피디아에 나왔었습니다. 년도는 1920년도
아, 철수가 아니고, 아래 러시아어 원문을 영문으로 다시 봤더니, 흑해지역의 오데사를 향해 진군했다 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처칠의 올 유니온 소셜리스트(유니언 ; 영국 국기 잭) 소셜리스트(사회주의) 리그(연맹;분파들의 동지)의 노보로시스크 지역까지 침략온 군대(영미일본)가 그 다음은 오데사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러 떠났다 출발했다(2월 7일 젤 아래: All-Union Socialist League의 Novorossiysk노보로씨스크지역의 군대는 오데사를...) 는 뜻이 됩니다.
저 2월 7일 윗줄에서 2월 6일에 붉은 군대가 진입했다는 크라스노보드스크는 카스피해(세운 반달형태 큰 호수) 동쪽 해안이며 노보-지역보다 아래 쪽 지도상 2천7백 킬로미터 위치해 있습니다. 붉은 동그라미(좌측 흑해)는 오데사 항입니다. 단 하루 만에 삼천 킬로미터 진격했다는 것은, 날자 변조 가능성도 있겠지만, 쿠웨이트 '폭풍의작전' 침략전 때 유프라테스 강 이서(이동의 반대)를 하루밤에 일만팔천 톤 열탄소이탄 퍼붓는 폭격으로 불지르고 침략했던 뱀들 이동실력으로는 불가능한 침략속도 아닙니다. 즉, 예니세이강 하류에 있는 노보로시스크(위구르 신장성과 약 일천 킬로 거리) 로 침략한 다음 크라스노보드스크(카스피해 동쪽)으로 가고 그 다음 오데사 우크라이나로 가는 것입니다. 침략의 순서는 동에서 서쪽입니다. 군대 명칭만 바꾼 것입니다.
아래 지도: 오른쪽 위 노란화살: 노보로시스크, 아래 붉은 포인트: 크라스노보드스크 ** 수정하며 보니, 진격의 날자는 뒤바꿔져 있습니다. 아래 붉은 포인트의 크라스노보드스크가 2월 6일, 위 노란 포인트가 노보로시스크 2월7일 --
그렇게 서구 뱀들은 오데사를 향해 갔고, 그 우크라이나 로 진격하는 영미 뱀들 사진은 이삼년 전에 글에 게시하였었습니다.
아래 사진: 우크라이나 키에프(현 수도) 하리프스키 거리에 붙은 플래카드 :
"СРСР Англн,США - 스루스루(빨리빨리 오세요) 앤글린이(영국), 스챠(USA; 미국)"
그리고 이 사진도 참조할 여지가 있어서 올립니다.
아래 사진: 스탈린에 의한 1944년 우크라이나 해방. 나치 침략군대로부터.
자막: "나찌 침략자들에게서 우크라이나 오른쪽 제방은 해방되었다."
아래 사진: 스탈린 동상이 1961년까지 스탈린 공원에 세워져 있었다고 설명하는 주민. 1961년에 해체 ㅡ
동독주민들에게 늘상 스탈린 신뢰가 함께 했는데 베를린장벽이 해체된 후 그런 마음들이 대부분 무너졌다는 설명.
금장(금칠)까지 되어 있었습니다.
자막: "금색에다 미터가 넘는 동상이었으니, 역으로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서독인들은) "
자막: "오프터슈방크"에도 스페인전쟁이 있었습니다. (독일어 자막 nicht beliebt deswegen kam es auch zu einem ) not popular that's why there was one 흔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거기 스탈린동상이 존재했던 이유입니다.
스탈린 동상이 1961년까지 서 있었다는 저 지역 오프터슈방크는 독일남부바바리아지역
유니언 잭 처칠 군대가 진격한 오뎃사 항구부터 드레스덴, 위에 설명한 그 제트기 엔진을 지구 최초로 개발 생산한 공장 소재지, 까지 거리는 1,355 킬로미터이며, ** 드레스덴은 포츠담 회담 장소와 바로 근접-- 아래 지도 오른쪽 바다는 흑해와 오뎃사 항이고, 지금 러시아군이 점령하는 중, 왼쪽바다는 그리스 발칸반도와 이탈리아 사이 지중해
아래는 그 엔진공장있던 드레스덴, 구 동독, 로부터 위 스탈린동상이 세워 있었다는, 오프터슈방크, 이탈리아와 알프스산맥 위쪽, 까지는 5백 킬로미터. 아래 두 바다컬러가 지중해이고 가운데는 이탈리아반도입니다.
그래서 위에 스페인전쟁이 알프스 위쪽 오프터슈방크에서도 있었다 는 저 발언과 위의 나온 내용들을 연결하면, 처칠과 일본여자천황과 미국의 유니언 해적대는 시베리아 중부를 약탈하고 카스피해를 약탈하고 우크라이나를 약탈하고 독일을 휩쓸고 다녔다는 것이 명칭만 다르게 매겼을 뿐, 똑같은 침략도둑떼들 해적떼들 악귀 떼들 이었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그 드레스덴공장에서 소련군이 언제 제트기엔진 생산설비를 전부 뜯어갔는 지는 년도는 기억 못 합니다. 그저 히틀러(무솔리니) 죽은 그 해 일 것입니다. ** 무솔리니 죽은 것이 4월 말 경 1945년 --
그리고 스탈린이 우크라이나를 해방했다고 하는, 나찌침략자로부터, 년도 1944년은 그전 해가 되나, 이것은 틀린 변경된 년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러시아 위키피디아에 러시아의 제트엔진 생산공장이 있습니다.
번역이 정말 나쁩니다. 파마가 아니고 페름입니다. 페름시에 있습니다. 페름모터도 아니고 페름제트엔진 공장입니다. 페름이 저 서구빨갱이들 군대 진격한 노보로시스크와 크라스노보드스크(카스피해) 중앙에 있습니다.
연혁을 보면 더 웃깁니다.
1934년 6월 미국회사의 싸이클론엔진의 라이센스로 최초항공기엔진 조립
1935년 1월 대량생산 시작
30년대 후반 전투기 엔진 생산 대량
1953년 가스터빈 엔진 시작, 페름사 엔진은 국내(소련?)에서 가장 안정 경제적으로 명성.
50년대 두 개의 새로운 생산 시설 조직
위에 언급된 "30년대 후반에 국내 엔진을 개발했다는 유명 디자이너라는 아르카디 쉬베트소부 이력을 맞춰 보겠습니다. 1952년까지 항공기 엔진을 생산했다고 하였습니다. 1946 이후 소비에트의 대리인이 되고 1953년 죽습니다.
또 그 아래 설명된 가스터빈엔진을 만들었다는 파벨 알렉산드로비치 솔로뷰브의 이력입니다.
1940년에 페름시에 있는 같은 회사인데 설명이 각기 다르게 나온, 페름 항공엔진사에 근무했고
1948년에 부디자이너, 1953년에 수석 디자이너 1981년에 총 디자이너
1960년에 그의 지도하에 소련 최초 제트엔진이 개발되었습니다.
1987년 그의 마지막 디자인 D-90 나옴.
일단, 위의 세 개 내용들이 불일치합니다. 허나 공통점은 대략 1950년대 이후에 제트엔진 생산이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즉, 한국전쟁 이 후 에 !!!
위에 나온 페름시의 항공기엔진 사의 같은 항공제트엔진 제작사인데 또 다르게 설명된 페이지도 보겠습니다.
1947년 모모 엔진이 만들어지고
1950년에 다시 민간용 엔진을 만들고 등등 터보 엔진도 실험적 개발되고
그 이후로 그들 엔진은 30년 이상 운용 쓰여지고 있다 고 하고
그런데, 그 개발을 이끌은 것이 아래 노란줄 "뛰어난 항공기 설계자인 아르카디 드미트리에비치 수베트소브"입니다.
"아르카디"라는 이름이 위의 "아르카디 쉬베스토브-1953 사망"와 같은 넘입니다. 아르카디 앞의 넘이 1953년 사망했다는데, 이 한 가지로서, 이 구글에 나온 이 모든 설명은 가짜 날조라는 것이 입체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추가, 부언하자면, 아르카디 라고 하니, 그 유명한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가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반사작용입니다.
"아버지가 만든 날개를 달고 크레타 섬을 탈출하다 떨어져 죽었다." 고 하였습니다. 1953년쯤에 스탈린 아닌 푸틴에게서 탈출하다, 여자천황이 만들어준, 제트기 아닌 뱅기 타고 도주하다 떨어져 죽었음을 이로써 직감합니다.
이제 구 한국신문에서 "제트엔진" 최초로 어떻게 나오는 지 년도는? 등을 살펴보겠습니다.
제트엔진에 대한 첫번째 기사입니다.
"일제 제트 엔진 기계 대호(대 호주:호주로) 수출 절충 중" - 1952. 7. 11. "영국회에서 제트기 엔진을 생산하기 위하여 일본기계를 구입하는 방도가 절충 중에 있다. 일본대표 드레이크 씨는 동경으로부터 9일 당지(공장생산지)에 도착하였으며 이 취인은 영국재무부의 승인여하에 있다고 말하였다."
저것을 해석하면, 풀이하면, 저 나름식으로, 이렇습니다. 이렇게 읽어야 정답입니다.
"1952년 7월에 예수회에서 제트기와 엔진을 생산하기 위해 한국기계를 뜯어가는 방법을 절취 중에 있다. 영국대표 드레이크(드라큐라) 씨는 동경으로부터 9일 ** 기사 나온 11일보다 이미 삼일 전에 -- 당지 (독일 드레스덴 생산공장)에 도착했으며, 이 도둑질은 영국재무부의 승인 하에 즉 유태인들의 은행금고를 엄청나게 배불릴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저 기사가 신문 일면에 있습니다. 중대하니까 ㅡ
하단 광고가 이렇습니다.
"문화전구" - "이학송 의원" "성냥기술자 급모" - 제트기와 엔진에 관한 기술자를 급모집한다는 뜻이겠습니다.
"세광화학공업사" - 세계 곳곳에 불지르는 공업사 에서,
"용암선생" - 뱀들과 돌속에서 튀어나온 요괴떼들
"이학송 선생" - 소나무 집단 ** 실제 각자 집에 갖고 있는 소나무들 같이 찍힌 사진 있으면 한번 관찰들 해보시길. 놀랄 것입니다. 저는 진짜로 놀랐습니다. --
기계설비 뜯어간 지 3년 뒤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하늘을 날으는 잠수함" - 1955.11.28. "미국 국방부가 저번에 발표한 하늘을 날으는 잠수함의 예상도는 이러하다. 수중에서는 보통 선박용의 엔진을 사용하고 공중에서는 제트 엔진을 추진력으로 사용하여 최대한으로 은밀기동성을 발휘한다. 그리고 육지를 떠나서 거나 물위를 뜰 때에는 사진에서 보듯이 물 위의 스키이로 행한다. 유.피. 통신 "
사진 아니 그림이 말합니다. 제트기라는 것을.
이 기사 같은 지면에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파란 실선 부분: "명예란 존귀한 것... 공중의 누각 같은 것... 외견은 아름다우나 무이며 무일푼... 구루마에다 짐을 잔뜩 실은 사람이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다가 못 올라가고....나는 가진 것이라고는 무일푼 ㅡ 힘을 다해 밀어주었다."
해석을 하면, 위 공중 나는 잠수함과 연결된 기사입니다. 제트엔진을 훔쳐간 놈들이 시제품을 만들어서 타고 나르다가 프랑스 아파트 위로 떨어졌다 무일푼되었다. 즉 꼴로 뒈졌다 는 뜻입니다. 힘을 다해 밀어주었다ㅡ 공중에서 뚝 떨어지라고 힘을 다해 빌어주었다. 입니다.
저 요괴넘 실체를 찾았습니다. 위의 아르카디사진으로 닮은 꼴 검색하니, 아르네 다-그핀 달, 나토 부사령관. - 아르-카-달 맞는군요 아르카디!
위의 사진 1945년이 아니라 1955년이겠습니다. 첫 제트엔진기 시험비행 전에 기분 좋은 만찬. 왜 저 사진을 하필 남겨 놓았을까. 입니다. 위의 동아일보 기사, 명예에는 덕이 따라야 한다. 고 한, 그 날짜 년도가 1955년 11월(동아일보 신문일자)입니다. 위의 사진, 7월일 수 없는 이유가 제일 좌측의 사람 복장이 겨울 옷입니다. 잠바를 겹쳐 입었어요.
그래서, 본론 아니 제목의 본질로 돌아가겠습니다. "미국이 쉬쉬하는 비밀"
미국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냐? 2차 대전의 본질은? 그리고 우리의 본질은?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때, 앞의 글 1946년 베이브 루스의 죽음으로 드러난, 전미 대륙에 있던 인간들을 전부 몰살하여 남북미 대륙을 점거 후 알래스카를 건너 블라디보스톡으로 들어와서, ** 블라디보스톡 행진 사진 참조 -- 기차를 타고, 및 배를 타고, 무르만스크와 남쪽에서 전방위 포위하는 식으로 타타르 제국 유라시아 대륙 전 지역을 침공 ** 참조: 영불미체코군대 무르만스크 진격 사진들https://cafe.daum.net/paaranhome/R8uU/837 "영국과 미국의 군대가 점령 센쿠르스크"
우리는 파리까지 밀려갔으며, ** 이 부분은 지리노프스키의 발언에서 입증, 러시아는 파리까지 갔다고 -- 세느강이 낙동강 전선이었구나 는 생각이 들지만, 라인강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위 독일 바바리안지방, 아우터슈방크, 도 스페인전쟁이 있었다 했고 그 뱀들이 그 곳까지 점령했고 그것을 스탈린이 몰아냈습니다.
제트엔진을 예수회가 호주 수출한다고 뜯어간 그 해가 1952년이었다는 기사에서, 중대한 힌트를 받은 셈입니다. 제트엔진 최초 생산공장이 지구에서 그 드레스덴이었다는 것은 우리 한국인의 수준이 당시 최고우위에 있었음도 말해줍니다. 스탈린이 세운 공장일 것입니다.
부언 설명하자면,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강종은 우선 강철의 품질이 최고여야 그 열을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스탈린이 거대 제철소를 건설했던 것과 거대 정유공장들을 우선 지은 일은 탁월한 기획임을 알게 합니다.
제트엔진의 진짜 개발자는 누구였을까, 이 부분은 나중에 드러날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1950년대 후반부터 페름에서 최초 제트엔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저 구글위키피디아의 설명을 보건대, 시베리아 중부지역은 미국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시베리아 우랄산맥부터 극동까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단서가 키신저(브레제진스키로 정정함)의 말에서 이미 나왔습니다. 러시아 땅에는 우물과 광산에서 일할 일천 오백만 명만 필요하다고. 나머지는 다 죽이겠다는 말이나 같았고 실제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또 다른 단서는 솔제니친이 써서 유명해진, "수용소 군도" 입니다. 시베리아 강제노동 수용소의 현실을 그렸다는데, ** 저는 안 읽었음 -- 지금 찾아보니 1963년이라고 노벨상 수상이 1970년이라는데, 거짓 같습니다. 제 기억에 이십대 이전에는 솔제니친이든지 강제수용소 같은 책류를 접한 적이 없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1970년대의 후반 심지어는 1980년 쯤입니다.
그리고 또 한권의 책이 있습니다. "얼어붙은 눈물"이라고 폴란드인이 2차 대전 후 시베리아로 끌려가 강제수용소에서 노동하다가 탈출 히말라야와 타클라마 사막을 넘어 인도까지 탈출한 여정을 그린 책이 있습니다.
즉,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들은 스탈린 사후에 생긴 것이며, 1952년 한국전쟁과 맞물립니다.
추가:참조글: https://cafe.daum.net/paaranhome/RA2p/228 강제수용소의 실상 2018 게시: "이것은 지옥이다, 이것은 지옥이다" 구글번역
그리고 위의 페름시 제트엔진공장과 관련 있습니다.
왜냐 하면, 일 이 년 전, 푸틴의 영상 발언에서, 이런 말씀 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항공엔진을 줄창 미국에서 수입했다. 그러던 것을 비로소 러시아에서 개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라고.
그런데 필자 저장폴더에서 나온 이 사진, 소련엔진, 형태를 보았을 때 이것은 터보 제트 엔진의 잔해이므로, 앞의 설명 나온 시베리아 페름 엔진공장 연혁에 1930년대부터 항공엔진 생산했다는 년도, 와 일치합니다. 그리고 노몬한 지역은 홀스타인 지역입니다. 현재 덴마크 아래 지역, 낙농 유명.
"노몬한 사건에서 아황취(우리를 황무하게 만든 취鷲:수리(새; 즉 뱀 파충류) 군에게 격추된 소련 E15형 기"
그러므로 위의 소련 엔진은 앞의 필자 방문했던 그 드레스덴 세계최초 제트엔진 공장의 그 제작품인 것이고,
증거: 페름 엔진공장 연혁: "1934년 6월 미국회사의 싸이클론엔진의 라이센스로 최초항공기엔진 조립" -구글위키,러, ** 원래 드레스덴 공장의 제트엔진 개발과 생산 연혁이던 것을 훔쳐간 것이라 해야겠습니다. --
드레스덴의 생산설비를 다 뜯어내서 페름으로 미국이 옮겨간 것이고 시베리아 일대에 강제수용소를 지어서 그들의 수요, 선진국 행세, 소비향락적 소비재들의 공급을 맞추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베리아 중심지 페름시의 페름 엔진공장이 미국 것이었으므로 푸틴은 러시아에서 제트엔진이 없어서 미국 것을 수입해 썼다 고 그의 재임 후 개발하며 비로소 제트 항공 엔진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하였고,
그래서 지금 러시아에 러시아제 여객기 갯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미국의 제재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고,
및, 푸틴의 설명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한국신문 자료를 찾았습니다. 1991년, 미국제 엔진을 실은 소련여객기 일루신 제작 첫 생산 보도 입니다. "미제 엔진을 얹은 소련산 여객기가 올가을에 처음 선보인다."
확증입니다. 확증! 페름엔진공장과 페름시가 미국 점령에 있었다는 확증인 기사 인 셈입니다. 페름시가 미국 수중이니 시베리아와 극동은 더더욱 말할 나위 없이 그랬다는 것이 됩니다. 페름이 소련 것이었으면 위 기사는 있을 수가 없는 기사입니다.
그러면 필자가 이 삼년 전 글 쓰며, 품었던 의심, 미국 항공기들이 죄 시베리아 중심지역, 오페라 남자 가수 흐보로브토프스키의 출생지 크라스노야르스크까지 이송되었다는 기사가 나왔었던 것, 글 제목은 생각 안 남, 과도 이제 일치가 가능해졌습니다. ( 찾았습니다 - 참조글: 미군이 바바로사 전쟁에 참전한 증거
https://cafe.daum.net/paaranhome/R8uU/648 )
그렇다면,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브레즈네프는? 미국의 첩자? 또는 모스크바는 그 간 가짜 수도?
그런데 다른 중대 단서가 또 나와 있습니다. 어젯밤 건진 것입니다.
드레스덴에 세계 최초의 원자력발전소가 세워졌었습니다. 북한의 150명 김책 대학교 학생들이 드레스덴 공대에서 터빈설계 공부를 하였습니다. 하였다 라고 나옵니다. (** 이 부분은 좀 더 찾아야 합니다. 뭐가 진실일 지 아직 모르는 부분)
그 드레스덴 발전소의 원자로 마저 미국이 빼돌려서 시카고 또는 일리노이 근처에 세웠습니다. 사진 노란줄 "미국 [드레스덴] 원자력발전소 전경 - 이것은 세계 최대 원자력 발전소 규모라고 합니다.
드레스덴이 일찌기 한국의 대전시다 고 필자가 주장했는데, 한국은 지금 대덕연구단지라고 대전지역에 세워져 있습니다. 카이스트 공대 또한 대전에 지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드는 생각이, 모스크바는 가짜 소련 즉 미국의 또 다른 수도였다,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를 감독하기 위한.
드레스덴이 진짜 소련의 수도였다. 푸틴과 인간계를 지키기 위한,
그래서 동유럽의 지속된 항쟁이, 바로 미국세력과 인간세력의 마지막 다툼이었다.
그런데, 푸틴이 페테르부르그로 건너가고, 페텔 시장 소부착의 비서로, 그 다음 모스크바로 급부상 옐친의 비서가 되었고, 그 다음 미국의 위장국 소련의 최고 총수로 올라선 기막힌 반전 드라마가 진짜의 진실인 것 같습니다.
브레즈네프 치하의 소련이 비교적 잘 살았다, 이유가, 강제수용소 공급 덕분에. 그 시대의 향수를 얘기하는 러시안들 댓글 의외로 많습니다.
같은 시대 미국이 그 간 잘 살았다. 일본과 서구 사회가,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 덕분에.
브레즈네프, 장기간 소련연방의 지도자였는데, 그는 아프간을 침략했습니다. 그 핏줄이 우크라이나 즉 유태인이란 사실 이번 우크라 작전 나온 내용들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인들의 댓글에서 건짐.
필자는 오래도록 줄곧 소련의 지도층이 후루시쵸프 이래 안티포프도, 고르비도 심지어 옐친까지 소련 스파이였다고 주장했는데, 미국이 시베리아에서 쫓겨나기 시작한 때가 브레즈네프가 아프간에서 철군했던 그 시기라 보인 것이,
이 시기에 한국과 러시아가 항공기 제작의 협업을 하기 때문이고, 보통사람의 대통령 노태우 시기에 러시아협력사업이 궤를 시작합니다. 1990년대 지나서.
소련기에 의한 무르만크스 불시착도 소련기 총질에 의한 비행기 격추도 그 지역이 미국 점령 지역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또 다른 단서가 될 것입니다.
개구리 족 머리 헷갈리기 시작. 그래서 푸틴 발탁.
그러면, 옐친이 폭스바겐 받고 알래스카를 미국에 넘겼다 한 러시안들의 댓글도 또 다른 맥락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위 클린턴의 말에 힌트가 있습니다. "대서양에서 우랄 산맥에 이르는 국경분쟁 민족분쟁지역" 이 말은 즉 우랄 산맥 저편엔 분쟁이 당시 없었다는 뜻입니다. 강제수용소 지역이므로.
미국의 비밀, 바로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를 위 댓글 인용된 브레제진스키 말대로, 운용 실제 했었고, 시베리아는 그들의 미국의 점령지역이었으며 그 확실한 증거는 페름 터보엔진 공장이며, 드레스덴 제트엔진 공장의 존재이며, 소련이 뜯어간 게 아니라 미국이 뜯어간 거였으며, 미국은 시베리아 우랄산맥 극동 캄차카까지 그들 것이었다는 팩트입니다. 드레스덴 원자력 발전소도 뜯어갔고.
그것을 전부 되찾기 까지 전투를 중단하지 않았던 러시아인들, 그리고 푸틴, 정말 감사합니다.
추서] 위의 페름시와 미국공군기지가 있었다던 크라스노야르스크가 신장 위구르와 가깝습니다. 현재 신장 위구르, 이슬람 탄압하기로 유명한, 는 과연 중국 것입니까? 아니면 비밀한 미국 것입니까?
한은경 화봉.
글값 후원: 국민 831401-01-150608
첫댓글 페름제트엔진공장의 연혁 문장에서, 연혁을 보면 더 웃깁니다고 제가 써놓고서,
그 왜 웃긴 건지 이유를 설명 안 드렸어요. 이해가 안 되셨을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제가 웃기다 한 이유는 그 페름공장에서 제트엔진 생산을 시작한 년도가 한국전쟁 끝나는 해와 맞물려 이어지는 해라서 그랬습니다.
년도를 보니까 그냥 딱 답이 나왔잖습니까. 뜯어간 그걸로 생산 시작한 것이라는 팩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