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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부문 대상
지명고등학교2학년 최동희
덤장 속 비드락에 담은 사랑
“부~ 부우웅~~”
임자도에서 점암으로 들어오는 철부선의 뱃고동 울리는 소리에 깜빡 졸았던 잠에서 깼다. 눈을 떠 밖을 보니 군내버스는 이미 점암 선착장에 도착했고, 나는 서둘러 책가방을 메고 양손에는 짐 가방 하나씩을 든 채 버스에서 내렸다.
그런데 무거운 짐을 들고 안골 마을 맨 꼭대기인 우리 집까지 올라갈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되었다. 학교 기숙사에서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토요일.
그래서 다른 때보다 짐이 많았고, 반찬통이며 옷가지, 그리고 책 따위를 넣으면 짐 가방은 2개를 다 차고도 늘 넘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엄마를 볼 생각에 힘을 내서 언덕길을 올라채었다.
집에 도착하자 엄마는 나를 반겨주셨다.
“엄마~ 나 왔어.”
“아이고~우리 딸 왔는가? 일주일 동안 공부하느라 힘들었제?”
“응,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김여사는 잘 살았는가?”
“엄마도 고기 잡으러 댕기고 명심이 언니네 밭 메러 다니고 그랬제.”
“고생했소.”
엄마와 나는 이산가족상봉이라도 한 듯 서로를 오랫동안 껴안았다.
엄마품은 늘 따뜻했다.
오랜 친구 같았고 일주일의 피로를 한 번에 날려주는 비타민제와도 같았다.
나는 엄마 허리에서 손을 풀고 말했다.
“엄마! 오늘 고기 잡으러 가지?”
“응. 그라제. 어제 안 가봤응께 오늘은 가봐야제. 어째 따라 갈라고야?”
“내가 리어카라도 끌어야제. 이따 갈 때 말하소. 알았제? 응?”
엄마는 겨울 잠깐 동안 고기를 잡으러 다니신다.
봄가을은 한창 농사철이어서 못 다니셨고, 농가에 일이 없는 겨울에 잠깐 하시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엄마는 달력을 확인하시고는 오후 3시가 넘어가자 나를 부르셨다.?
“동희야, 얼렁 덤장 보러 가자잉. 빨리 옷 입어라.”
“벌써 가는 거여?”
“물 썼응께 가봐야제. 물 차기 전에 가야됭께 얼렁 옷 입고 나와라잉.”
“알았어. 잠깐만 기달려봐.”
우리 집은 남들과 다른 달력을 가지고 있다.
그냥 날짜만 표시된 것이 아니라 물때가 표시된 달력이다.
날짜 밑에는 한물 두물, 사리 때나 조금 때가 표시가 되어 있고 고조와 저조 또한 표시되어 있어 엄마는 늘 달력을 보고 고기를 잡으러 가신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덤장은 어머니의 삶 터이다.
‘덤장"이란 그물은 대나무와 그물로 성기게 엮어두고 넓게 쳐서 바닷가에 꽂아두면 밀물일 때 물고기가 멋모르고 들어왔다가 물이 빠지면서 걸려 헤어날 수 없도록 만든 우리 특유의 환경친화적 그물망이다.
이 덤장의 특징은 잡힌 물고기가 죽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쩌면 덤장이라는 그물에 어머니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식들을 위해 한 시도 쉬지 않는 어머니. 늘 말없이 묵묵히 일하시면서도 덤장 속 파닥이는 물고기처럼 어머닌 자식을 위해 몸을 아끼시지도 쉬시지도 않는다.
봄에는 논농사에, 유월이면 마늘이며 양파수확, 한 여름에 고추 작물 거두시랴 손이 노는 날엔 우리 신안 지도의 특산물인 백련초 공장의 뜨거운 수증기 속에서 백련초 발그레한 엑기스를 짜서 봉지에 담으신다.
그러면서도 항상 우리 걱정에 행여 우리가 힘들어 할까봐, 그리고 어려운 살림에 알아서 곱게 잘 커주어서 고맙다시며 웃으신다. 그 웃음 뒤에 숨은 눈물을 어느 새 커버린 연년생인 우리 3남매들이 알아차린 줄도 모르신 체.
엄마는 리어카에 붉은색 대야와 고기 망, 물옷, 노란 장갑을 챙기셨다.
그리고는 점암 선착장을 향해 리어카를 출발시키셨다.
그리고 점암 선착장을 오는 내내 엄마와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엄마, 오늘 가면 고기 많이 잡힌당가?”
“오늘이 열물인께 잡히겄제.”
“열물이 뭐당가?”
“달력에 보면 써져있드냐. 한물, 두물, 그렇게 센디 사리 지나고부터는 고기가 다른 때보다 잘 드는 시기제.”
“어째 근당가?”
“세물부터는 물쌀이 쎄져. 그렁께 사람들이 그물 입을 적게 벌려 놓제. 물쌀이 하도 쎄가꼬 그물이 그땐 터져버린께. 긍께 고기를 못잡제. 근디 아홉물부터는 물이 안쎄고 잔잔해져. 그랑께 그때부터 사람들이 고기를 잡제. 아홉물부터 초여드레까지는.”
“아~ 그런당가? 근디 초 여드레는 뭐여?”
“아따 음력으로 8일이제. 그때가 조금이여.”
“오오~ 그렇구먼.”
엄마로부터 물때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쯤 우린 점암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임자도를 들어가려고 길게 늘어선 차량과 사람들의 행렬은
오늘도 다른 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또 바람에 실려 오는 짭조름한 바다냄새도, 굽이굽이 돌아 바다를 가르는 배도,
선착장 앞 바다 고기잡이 어선도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엄마와 나는 방파제 앞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옆길로 바다를 향해 내려갔다.
지금은 물이 빠진 상태라 갯벌이 훤히 드러나 있었고 큰 바위와 자갈과 모래밭도 보였다. 모래밭에 선 엄마는 물옷을 입기 시작했다.
꼭 우리가 평소에 입던 멜빵바지처럼 생긴 물옷은 장화까지 연결이 되어있으며
고기 잡는 사람이라면 보통 이 옷을 입곤 한다.
물옷을 입고 노란 장갑도 낀 채 엄마는 고기망을 가지고
서서히 갯벌 위를 걸어 덤장으로 향하셨다.
그러는 엄마를 보고 나는 말했다.
“엄마, 고기 많이 잡아 오소.”
“많이 들었을랑가 모르것다. 거기 있어라잉.”
“알았네.”
겨울철에는 숭어가 제철이며 비드락과 운저리는
가을과 겨울사이에 가장 물이 오르는 시기이다.
운이 좋은 날에는 가끔 농어도 한 마리씩 들어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해주지만,
요즘엔 더 추워진 상태라 물고기도 잘 잡히지 않는 때이다.
그래도 나는 숭어와 비드락이 많이 잡히게 해 달라고 바랐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여전히 갯벌 위를 힘겹게 걷고 있었다.
혹시나 넘어질까 갯벌 위에 박아둔 말뚝을 잡고 몸 한쪽을 의지한 채 걸으셨다.
그야말로 발을 잡아당기는 것만 같은 갯벌 위에서 사투를 벌이고 계셨다.
멀리서 갯벌 위를 힘겹게 걷는 엄마 모습을 지켜보자니, 엄마가 살아온 날들도 갯벌 위를 걷는 것처럼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축 쳐진 어깨며 어느새 많이 굽어진 허리도, 그리고 주름살마저도.
엄마는 갯벌 위를 걸으며 무거운 짐들을 발자국으로 하나씩 벗어두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엄마가 안쓰러워 보였다.
덤장에 도착한 엄마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털어내셨다.
덤장은 물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막대를 박아 그물을 울타리처럼 쳐 놓고 물고기를 원통 안으로 몰아넣어서 잡는 그물인데, 물고기들은 밀물 때에 들어와서 물이 빠지면서 걸리게 된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다 터신 엄마는 왼쪽 그물로 가서 또 한 번 물고기를 털어내셨다.
엄마가 물고기를 타 털어내자 물이 차오기 시작했다.
서둘러 엄마는 갯벌을 빠져나오셨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엄마~ 얼마나 잡았는가?”
“아따~ 동희야, 오늘은 비드락 큰놈이 많이 잡혔시야.
숭어도 있고 운저리도 쫌 많이 잡혔따야.”
예상외로 고기가 많이 잡혔는지 엄마는 활짝 웃으셨다.
“엄마 얼릉 가꼬와봐. 봐보게.”
“비드락 요놈 봐야. 징허게 크다야.”
정말 비드락도 컸고 숭어와 운저리도 오늘은 많이 잡혔다.
비드락은 가을과 겨울사이에 많이 잡히는 생선인데
등쪽은 금속광택을 띤 회흑색에 배쪽 부분은 연한 색을 가졌다.
옆구리에는 세로로 그려진 가늘고 불분명한 선이 있고 빗 모양처럼 생긴 비닐로 덮어져 있다. 그리고 원래 감성돔의 새끼를 말하는 비드락은 지역별로 다르게 부른다.
강원도에서는 남정바리라 하고 경북에서는 뺑철이라 하며
우리 전라도에서는 비돔, 비드락이라고 말한다.
운저리 또한 많이 드는 생선 중 하나인데 원래는
문절망둑이라는 본명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운저리로 더 유명한 녀석이다.
등쪽은 연한 갈색을 띄고 배쪽은 하얀색을 가졌다.
맛 또한 좋아 말려서 구워 먹으면 술안주로는 아주 일품인 생선이었다.
예상 외의 많이 든 고기 때문인지 엄마는 발걸음을 빨리 움직였다.
“동희야, 요거 갖다 팔아야 쓰겄다.”
“어디다 팔라고에?”
“횟집에도 팔고 고기 좋아하는 사람한티 팔아야제. 얼렁 가자야!”
“알았네. 얼른 갑시다. 물 찬다.”
엄마와 나는 방파제 옆길을 올라와 리어카에 오늘 잡은 생선을 실었다.
그리고 잠깐 숨을 골랐다. 방파제에서 내려다 본 바다는 꽤 물이 많이 찼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갯벌이 훤히 보였는데 그것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끊임없이 육지를 향해 밀려오는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새 파도는 엄마가 남기고 간 갯벌 위의 발자국마다 고여있는
강팍한 삶의 이야기를 지우고 또 지웠다.
그러는 사이 저쪽에서 숭어와 비드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고기를 사기 위해 걸어왔다.
“으따~ 아줌 많이 잡았소잉. 숭어 2만원어치랑 비드락 1만원어치 쫌 줘 보쑈.”
“둘, 넷, 여섯, 여덟, 열....... 어쑈 아저씨, 여기 있소.”
엄마는 바로 고기 마리 수를 세어 손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이지만 손님을 부르는 엄마와 흥정을 하는 손님들로 인해
점암 선착장 방파제에서는 가벼운 활기를 띠었다.
그때 또 한명의 사람이 고기를 사기 위해 걸어왔다.
“아짐, 숭어 1만원어치만 주쑈야. 저 비드락은 안판다요?”
“예. 요것은 안파요.”
“그러지말고 그냥 다 줘 부쑈. 뭐더러 안파요?”
“아따, 요것은 우리 새끼들 갖다 줘야 됭께 안 팔제라잉. 자, 어쑈. 가져가쑈.”
“아따 참말로. 거 다 팔아벌제는.”
“아따 거참. 그아저씨. 안된당께요.
우리 아그들 오늘 집에 왔는디 비드락이라도 구워주고 좀 해야제라잉.”
몇 분 동안의 입씨름을 하던 엄마와 손님인 아저씨는 결국 엄마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땅거미가 밀려올 때쯤 집으로 왔다.
그리고 엄마는 오자마자 비드락과 숭어를 손질했고
그 녀석들은 오늘도 우리 집 저녁 반찬으로 올랐다.
나도 그냥 팔아버리라고 옆에서 부추겼지만
일주일 만에 집에 온 자식들 주려고 안 판다는 그 비드락 몇 마리.
오늘도 그 녀석은 상 한가운데에 한자리를 차지했다.
이제까지 비린내만 풍기던 그 녀석이 싱싱한 냄새로 다가온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처음 알았다.
여태 저녁 반찬에 오르던 덤장 속 비드락과 숭어 두세 마리는
우리 3남매와 같은 자식이었고, 곧 그것은 엄마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일주일 만에 집에 온 자식들한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엄마는 비록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일지라도
비드락과 숭어 몇 마리에 모두 담았다는 것을.
그리고 어머니 당신이야말로 자식을 위해서라면 덤장 속 비드락처럼
늘 퍼덕이며 힘차게 튀어 오르신다는 것을.
첫댓글 참으로 감동적인 글입니다. 중간중간에 섞인 특유의 사투리가 더 구수하게 느껴집니다. 타지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