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모두들 평안하신지요?
요즘은 이 인사를 할 때마다 정말 간절하고 애타게 느껴집니다. 코로나 감염확산과 그에 따른 경제적인 어려움에 몇 년째 점점 심해지는 기후위기까지 참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기에 더욱 하루하루의 안녕과 평안한 일상이 소중한 때입니다.
기후위기로 지난 몇 년간 계속된 물부족으로 올해는 매일 밤 단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농업용수도 부족해서 가뭄으로 밀과 보리 수확을 포기하는 이웃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력생산의 대부분을 수력발전으로 생산하는 이 나라에서 물 부족은 전력 부족을 의미합니다. 불필요한 전기사용에 대한 점검 방문이 있었고 거의 매주 하루 이틀 정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과 전기처럼 삶의 가장 필수적인 부분이 불안정한 가운데 올해 농사는 참 위태위태하게 지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두 곳의 고아원에 나눌 수확량은 유지되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지난 6 월 1 일은 이곳의 어린이 날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수확한 오이와 과일을 들고 고아원에 찾아갔는데 아이들이 그날의 주인공인데 뭔가 좀 어색해 보였습니다. 그곳을 찾아온 토크막 시장과 공무원들 그리고 후원단체들의 방문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노래부르고 춤추고 사진찍고 하느라 정작 평범한 아이들처럼 공원이나 놀이동산에 갈 수는 없었습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저녁 무렵 공원을 거니는 즐거움은 정해진 시간외에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코로나 시대의 고아원 아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받은 원장님의 허락으로 대낮에 아무도 없는 놀이동산에서 아이들과 누린 자유시간은 그래서 더 특별했습니다. 토크막 시 한복판에 있는, 세가지 놀이기구가 전부인 그곳을 처음 와보았다는 말에 참 안타까웠습니다.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을까? 누군가 사다 준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내가 직접 고르고 고른 아이스크림을 먹는 기쁨과 그늘진 공원 벤치에 혼자 떨어져 앉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여유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오래 여운을 남기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올해도 어김없이 만 18 세가 된 아이는 정든 친구들을 떠나 홀로 서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며칠전 수확한 토마토와 멜론을 들고 찾아간 날은 유라가 18 세가 되는 생일날이었습니다. 어색함을 떨쳐내려는 듯이 유라는 평소보다 더 힘있게 악수를 나눴지만 이내 자신의 생일 케잌을 받아드는 손에는 힘이 없었습니다. 거친 세상에서 이 아이들이 아버지의 은혜로 잘 견뎌가기를 응원하며 두손 모읍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아디스 형님인 울룩벡이 그동안 간경화로 투병 중이었는데 지난 7 월 25 일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과 섬기던 회사, 그리고 수화통역을 하는 아내를 남겨두고…… 지난 6 월초에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꼈는지 동생 아디스의 집에 와서 한 달을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돌아가기 전에 낚시 한번 꼭 해보고 싶다는 부탁을 했었습니다. 울룩벡은 어린 시절 고향인 카자르만에 흐르는 나른 강에서 낚시를 하며 자란 기억에 늘 낚시대를 버리지 않고 소중히 간직했었지요. 그때만 해도 아디스, 루슬란과 더불어 넷이서 아이들을 데리고 토크막 주변 저수지에서 낚시대를 드리우며 우리가 6 월말에 계획한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면 꼭 좋은 낚시터 찾아서 가보자며 약속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코로나로 고생하고 있을 때에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이 왜 누워있냐며 얼른 털고 일어나라고 저를 격려해 주었는데 그 말을 하고 채 한 주가 안되어 먼저 떠났습니다. 제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혼자서 몸을 가누기 힘든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늘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그 마음에 친근함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의사의 부주의한 처방으로 간 손상을 입었고 그로 인해 삶을 마무리해야 함에도 원망이나 분노를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려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아디스와 함께 인생의 여러 힘든 여정을 겪으며 비로소 만난 아버지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슴을 자랑하고 기뻐하는 모습에 제가 늘 부끄러워졌었지요. 그런 울룩벡을 닮은 큰 아이도 제게 먼저 다가와 아빠는 더 좋은 곳으로 떠났기 때문에 자기는 울지 않을 것이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친구였는데 그가 이 나라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태어났더라도 그렇게 떠났을까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곁에서 지켜 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떠나보내버린 그를 그리워하며 지금도 그저 눈물만 흘립니다.
6 월 말 아디스네 청년모임과 함께 계획했던 여름사역은 감염 확산으로 시기도 7 월 초로 변경하고 청년들 없이 안경사역만 하였습니다. 날마다 확진자가 증가하는 시기에 도시에서 시골지역으로 청년들이 방문하면 지역사회에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질 수 있고 청년들의 부모들도 걱정을 많이 하면서 청년들은 다음에 기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저와 아디스 둘만의 안경사역으로 카자르만, 악탈라, 나른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겨울에 안경사역으로 방문했던 지역이고 함께 갔었던 송선생님이 한국에 출장 중이라서 이번에는 그때 안경을 받은 분들 위주로 확인하고 다시 조정해드리고 왔습니다. 지난 겨울에 받은 안경으로 7 살짜리 여자아이가 표정도 밝아지고 보이는 것도 더 선명해져서 참 감사했습니다. 조금 더 알맞는 안경으로 이 멋진 세상을 더 잘 바라보고 이해하고 알아가고 참 빛을 찾기를 소망합니다.
다만 다녀오고나서 제가 감염되는 바람에 이제야 안경제작을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개인적으로 만난 분들에 대해서도 서둘러야 하는데 참 미안한 마음입니다. 게다가 8 월말에 예정했던 오쉬 남쪽 국경지역 사르타쉬 마을의 안경사역도 여러 사정들로 취소가 되었습니다. 이번 사역에는 뉴욕에서 전문가가 오셔서 저희들 개인별로 현장점검과 교육을 계획했기에 기대가 컸던만큼 더 아쉽게 되었습니다.
울란, 루슬란, 징기스 선생님과 함께 하게 된 미디어 사역은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유투브에 올리면서 많은 것들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세세한 부분에 대해 미리 살피고 조정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이 사역의 대부분은 울란의 헌신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영상기획부터 편집까지 대부분의 일들에 대해 저나 루슬란은 울란이 하는 일을 조금씩 돕는 수준이지요. 그나마 루슬란은 주제별로 울란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대본을 준비하고 실제로 출연하기도 하니 저보다 훨씬 낫습니다. 때로 비쉬켁에 있는 한인 선생님의 회사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기도 하고 그 회사 미디어 사역팀의 노하우를 배우기도 하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누군가 이 영상을 보고 있다는 기쁨과 감사에 보람을 느낍니다. 게다가 울란 가정에 새생명을 주신 아버지를 찬양하며 감사드립니다.
지난번에 전해드린 저희 가정의 이사문제는 아직 진전이 없습니다. 몇몇 신문광고를 보고 집들을 둘러보기도 했는데 시골에서 임대가능성은 없고 대부분 매매인데 아직 집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여름을 보내고 나면 곧 겨울이 다가오는데 갑자기 집을 비워달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여하튼 이사를 해야 하는 건 변함이 없어보입니다.
그리고 가을에는 저희 가정이 한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저는 10 월에 다녀오고 아내와 아이들은 11 월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시골 집이라 집을 비우기도 어렵고 겨울철이라 난방도 해야해서 부득이 함께 가지는 못합니다. 제가 러시아로 떠난 이후로 부모님들의 환갑과 칠순에 늘 자리를 지키지 못했는데 올해 아버님의 팔순에는 잠시 인사라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코로나 시국에 무슨 팔순이냐고 손사래를 치시며 극구 반대하시지만 그래도 얼굴이라도 뵙고와야 평소에 자식된 도리를 못하는 마음의 짐을 좀 덜 것 같습니다.
지난 7 월에는 델타 변이로 인해 일일 확진자가 연일 최고치로 경신하며 힘겨운 한 달을 보냈습니다. 저희 마을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나마 감사한 것은 지난 7 월초를 정점으로 해서 서서히 확진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소량이지만 중국과 러시아산 백신이 들어오고 있어서 백신접종의 기회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저희 가족도 아내와 아이들이 지난 6 월말에 이 삼일씩 돌아가며 증상이 나타났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설사와 메스꺼움 정도로 가볍게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크게 아프지 않은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제가 확진된 분과의 접촉이 있었는데 저는 무증상이고 집에만 있는 가족들이 증상이 나타나서 저는 이제 면역이 생긴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7 월에 저 역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코로나 증상이라고 알려진 증상들이 거의 다 나타났지만 감사하게도 심하게 겪지는 않았습니다. 때마침 친구가 보내준 비타민이 우편으로 도착해서 꼭 필요할 때 든든한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3 주 정도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든 몸무게와 잇몸이 약해져서 뿌리채 빠져버린 어금니는 되돌릴 방법은 없지만 이제 서서히 몸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제가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에 몇몇 분들이 왜 연락을 하지 않았냐고 꾸짖기도 하는데 참 죄송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곳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검사를 받거나 치료를 받지 않습니다. 이곳에도 코로나 전담병원이 있고 격리치료센터도 있지만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집에서 각자 견뎌내고 있습니다. 제 주변의 대부분의 현지인들이 그렇게 버텨내고 지났기에 저 역시 심하지 않다면 그렇게 지나기로 했습니다. 질병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잘못된 정보들로 인해 제때 대응하지 못하거나 심각한 증상으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있는 현지인들에 비하면 저희는 전문가들의 조언과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급하면 돌아갈 곳도 있기에 오히려 미안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볍게 지날 수 있어 그저 감사하고 더 힘들고 고생하고 있는 분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그리고 저로 인해 마음이 편치 못한 분들께도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은혜 가운데 항상 평안하시길……
단기 기도제목
1. 울룩벡 가정의 미망인과 아이들이 슬픔을 이겨내고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2. 고아원을 떠난게 된 유라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3. 코로나 감염기간동안 지체된 안경사역이 안정되도록.
4. 새로 이사할 곳을 찾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중장기 기도제목
1. 안경사역팀의 구성원들의 연합과 사역의 방향성을 올바로 세워가도록.
2. 함께 농사일을 해나갈 사람을 잘 선정할 수 있도록.
3. 현지인들과 함께 하는 모임 가운데 인도하심을.
4. 더불어 사는 사람들 현지 지부와 한글 수업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5. 프로그레스의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세워가도록.
개인과 가정 기도제목
1. 첫째 지성이가 고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진로를 찾아가도록.
2. 집에서만 지내는 아이들과 아내가 건강을 잘 지키도록.
3.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의 건강을 위해.
4. 누나와 매형 가족의 인도하심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