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했던 두 교회
쁘라사탐교회에서 청소년 다섯 명의 입교식이 있었습니다. 담임목회자를 닮아 그런걸까요? 노회에 기쁜 일이고, 힘든 일이고 뭐든 생기기만 하면 가장 먼저 달려왔던 아이들입니다. 피라펀 전도사님한테서 연락이 왔길래 만사 제치고 참석한다고 그랬습니다. 설교를 맡기시더군요. 입교 서약을 외워 또박또박 대답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축복하는 제 언어의 한계가 너무 아쉬웠습니다.
주일이면 아무래도 담임목회자가 없는 교회를 주로 다니다보니 쿤나누쿤교회에 올 일이 별로 없었으나, 그날은 노회 간사님이 자기네 교회에 오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이 교회는 쏨킷 원로목사님이 계셔서 저희가 참 좋아합니다. 예배 전, 목사님이 짧게 기도회를 인도하시는데 구구절절 성도들을 향한 깊은 사랑이 느껴집니다. 선교사가 태국어로 설교를 하면 얼마나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예배 후, 목사님이 최고였다고 엄지척을 해주시니 부끄럽지만 참으로 힘이 되었습니다.
6월, 태국 전역에 코비드 3차 유행이 번졌습니다. 하루에도 3천에서 5천명의 신규 확진자가 생기고, 오늘까지 누적 환자수가 무려 22만명에 다다랐습니다. 지역 간 이동은 당연히 통제가 이뤄지고, 지역 내 단체 모임에도 상당한 규제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예배는 물론이거니와 장례식과 각종 회의조차 쉽지 않습니다.
현재 제가 KGAM 팀대표와 태국북부 3지부장을 맡고 있는데요. 어쨌거나 조직이 있으면 당연히 따라오는게 회의 아니겠습니까. 온라인미팅, 말이야 쉽지. 저는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대면을 하지 않으니 돈은 아낄 수 있을지 몰라도, 모임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오히려 더 들어갑니다.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밥도 같이 먹어야 오해도 풀리고 정도 생기고 사람사는 것 같지, 온라인 이거 꽤 피곤하네요.
메싸난에서
끝내 메싸난마을에까지 코비드 확진자가 대거 생기고 말았습니다. 공산당이 맨 마지막까지 머물렀고, 한때 탈북자들의 이동 통로로까지 사용되던 깊은 동네입니다. 태국에서 그 흔한 절마저 없는 이곳에 6년 전에는 메싸난비전교회가 세워지기도 했죠. 산골에 사시는 분들이라 워낙 면역이 약한데다 평소 정부의 간섭과 통제도 적잖은 곳이어서 예상은 했지만, 바로 마을 봉쇄조치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루벌어 하루사는 주민들을 위해 무슨 대책이라도 마련을 해줘야지, 그야말로 어떻게 생으로 보름을 버티라는 겁니까. 그곳 209가구 중에 10가정이 성도입니다.
난노회의 여러 교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저도 메싸난의 성도들만 생각했다가, 어려움에 처한건 매 한가지인데 거기 마을 사람들을 나몰라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파송교회 좋다는게 뭡니까. 연락을 드렸죠. 기꺼이 그리고 적잖게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좋은 일은 알려야죠. 더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이에 동참을 하였고 성금과 구호물품을 맡겨 왔습니다. 노회 목회자들이 주축이 되어 커다란 봉투에 물품을 나눴습니다. 쌀, 달걀, 절인생선, 라면, 기름, 소금, 통조림, 물, 의약품 등을 푸짐하게 담았습니다. 어렵사리 출입허가를 받고 들어가서는 마치 무슨 작전이라도 벌이듯 순식간에 이백여 개의 꾸러미를 날랐습니다.
나중에 동네 이장님이 하신 말씀이 뇌리에 깊이 남았는데요. “크리스챤 뿐만아니라 우리 모두를 생각해주어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대로 밥값하고 온 듯 했습니다.
목회자 지침서
총회에서 ‘목회자지침서’가 새로 나왔습니다. 신임 부서장님이 각 노회를 다니며 설명회를 하시네요. 부디 바라기는 요즘 여러가지 일로 힘들어하는 우리 목회자들에게 살이 되고 위로가 되는 내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제목>
코비드로 여러 교회에 출석인원과 헌금수입이 많이 줄었습니다.
노회 목회자들의 몸과 마음이 보다 건강하고 탄탄해지기를 바랍니다.
지혜와 실력이 더해지고 인내심이 깊어지고 인격이 좀더 성숙해지기를.
2021. 6. 28. 이준호 조선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