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감상평)
연꽃은 꽃이 아니다 -안준철 시집『꽃도 서성일 시간이 필요하다』를 읽고
이민숙
그의 꽃은 꽃이 아니다. 꽃에겐 미안하지만, 그가 주목한 연꽃들에선 가슴 속 응어리의 냄새가 난다. 어떤 한 인간의 깊은 사랑이며 열망이다. 때론 결핍이며 지나친 응시이다. 그 추상을 피워내는 꽃들은 하마 이천 년만큼이나 여러 인간들의 발끝에서 서성이고 있었을까? ‘꽃에게도 서성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언술은 眞, 善, 美하고 순박하다. 그러므로 간단치 않다. ‘연의 종자는 수명이 길어서/인류사에 이천 년 묵은 종자가/발아한 예도 있다고 한다’ -시 <연밥> 일부-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피고 지고... ... 그가 찾아간 연못의 연꽃들은 누천년의 인연을 이어가려고 그렇듯 염천의 한낮과 한밤을 염화미소처럼 손 흔들었을까? 나처럼 일 년 중 하루쯤 연꽃을 보러 갔는데 연을 만났다? 그런 만남과 시가 탄생하기까지 수년의 지극한 만남은 그 인연의 천착이 하늘만큼 땅 만큼 차이가 나는 일일 것도 같다. 사소하다 하더라도 사람살이에선 그렇게 하늘도 땅도 감읍할 일이 있으려니... ...
시인은 어느 날 찾아온 몸의 악성 앓음도 그 연꽃과의 사랑처럼 친해져서 요즈음은 고요하게 미소 짓게 되었을 것이라고 짐짓 생각한다. 어떤 치유과정에서는 몸을 고통스럽게도 하는 그 아픔의 씨앗과 친해져야 그때 비로소 고요해진다고 나는 믿어왔는데 그의 미소가 그런 고요를 지닌 듯하다. 깊은 연못 진흙 속의 연밥을 향해 거의 매일의 여름을 수 년 동안이나 대화했던 시인만이 알고 있으리라 그런 치유의 비법을.
그래서인지 시집의 시들은 화들짝 피어나는 순간보다 고요해지는 순간들에 대한 은유가 좀 더 빈번하다.
덕진연못 취향정에서 만나기로 한 내 다정한 벗을 십 분 먼저 와서 기다리는데 참 고요하다 내 마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리 그냥 기다리리 꽃도 못 본 체 하리 이 고요를 아끼리 --<십 분 먼저> 전문
현대인의 소요유는 고요가 힘들다. 어디서든 소음이 틈입한다. 그러나 고요해지고자 하면 고요해질 터, 고요의 깊은 샘터는 내면의 그 어디쯤일 것이기에. 내면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시는 만나지지 않는다. 시 속의 핑크 황홀빛 시어들도 저 먼 어딘가로부터 마냥 쏟아지는 게 아니다. 마음의 깊은 응어리가 개화하는 순간의 눈물 나는 웃음인 것이다. 저 아까워하며 쓰다듬었을 고요가 그러했을 것 같다. 시인은 시집 속 다른 여러 편에서도 고요를 노래한다. 그러니 그는 연꽃 피는 날부터 온갖 황홀한 꽃잎 잎이 져버린 그런 날의 애잔함을 예견했을까. ‘팔월이 되자 연못을 다 둘러봐도/연꽃 한 송이 보이지 않는다/대신, 덤으로 남은 거무스름한 연밥들이/산에서 만난 적막을 닮아 있었다’ --<적막> 부분. 막연한 예견 아닌 그만의 경험치가 녹아있다고도 보아진다.
연꽃 필 때 배롱꽃도 핀다 연꽃 질 때 배롱꽃도 진다 연꽃은 배롱꽃보다 조금 일찍 핀다 매화가 살구꽃보다 조금 일찍 피듯이 조금 일찍 핀 것뿐인데 그것이 운명을 결정짓기도 한다 매화가 봄의 첫사랑이듯이 연꽃은 여름의 첫사랑이다 사람도 아니고 꽃인데도 그것이 참 무섭다 물론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거다 꽃이 알면 웃을 일이다 --<꽃이 웃을 일> 전문
꽃이 웃을 일! 참 재밌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시인은 ‘그것이 참 무섭다’라고 고백한다. 첫사랑이란 처음 핀 연꽃인가? 배롱꽃은 어쩌라고? 하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첫사랑의 모순을 설파하고 말았을 때, 시인은 분명 무서웠겠다! 연꽃 아닌 다른 여름꽃에게 마음으로부터 젖혀버린 인간 맘의 그 좀스러운 차별을 언뜻 스케치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는 이미 저 내면의 비밀을 이 시를 통해 고백하고 말았다. 나는 어쩔 수 없으되 꽃들이여 인간들을 그저 웃지요 하며 함께 살자꾸나! 배롱꽃도 지고 있는 여름의 끝, 시인은 모조리 져버린 연꽃을 뒤로 하고 배롱꽃 핑크빛을 고요히 응시하며 첫사랑과의 작별을 하소연하고나 있지 않을까? 화엄경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알려면 응당 법계의 모든 성품은 오직 마음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을 보아야 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기록되어 있단다. 오직 마음! 시인은 꽃이 웃고 있음을 보았지만 그 이전에 먼저 그의 마음으로 파안대소하지나 않았을까... ...꽃이거나 맘이거나 사랑이거나 ‘첫’이라는 삶이려니 하는.
그래서 시인은 늘 ‘오늘’의 연꽃에 설렌다. 오늘 아니면 아니 그 순간의 연꽃 앞에서 아니라면 첫사랑의 연꽃은 고백하자마자 사라지고 말 테니까. 어느 뇌과학자의 말을 빌리면 인간 마음 속 무의식의 팔 할은 시각작용의 산물이라고 한다. 오늘 사라진 무의식의 정체를 궁금해하랴? 눈빛과 꽃빛은 그 순간 서로를 빛나게 하면서 또한 깊은 내면의 한 우물을 출렁이게 하였으리라. 시인의 언술은 그러므로 무척 신화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또한 오늘이다.
여름 내내 매일 아침 연꽃밭을 다녀가지만
오늘 나를 설레게 한 것은 오늘 만난 꽃이다. --<오늘> 전문
오늘도 자전거 타고 아침 연꽃 만나러 간다
칠월이 가고 팔월도 가면 나는 연꽃을 찾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일에 정신이 빠져 있겠지 그때는 그때다
오늘은 꽉 찬 마음으로 너에게 간다 --<만개> 전문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오늘’을 천 번 만 번 살아버린 시인에게, 그 오늘을 보여 달라고 하면 기꺼이 저 시들의 순간을 쉼없이 반복해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어 아닌 법어처럼 고요히 언급된 ‘오늘’은 신비로운 삶의 한 줄기 빛으로 고요히 자극적이다.
그의 연꽃밭은 또한 집이다. --‘한쪽에서는/ 꽃이 시들고 연밥이 익어가고// 한쪽에서는/ 아, 이제 막 꽃봉오리가!// 연꽃밭이 집 같다/할머니와 어린 손주가 함께 사는// 서둘러 집에 돌아와보니/아내가 아직 곤한 잠에 빠져있다//거실, 수면 위에 핀’// --<집> 부분
그의 연꽃 바라보기는 또한 어떤 얼굴일까 늘상 꽃일까 자신의 사랑일까 태어나서 피어나고 피었다가 하릴없이 떨어져 말라가는 꽃잎 같은 자연의 순환일까. 자전거를 타고 연못으로 가면서 만나는 폐지 줍는 리어카의 이웃일까... ...
연못으로 가는 길이 하나가 아니듯 연밭에 가는 이유가 꽃에게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으다
배롱나무 그늘에 앉아 바라보는 연밥의 무심(無心)에게도 있는 것 같으다
내 영혼의 솜털을 건들고 지나가는 바람의 얼굴을 본 것도 같고 --<바람의 얼굴> 전문
바람 따라 연꽃은 피지만 우리는 그 바람의 얼굴을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일렁일렁 흔들리는 덕진연못의 그 향기가 바람 따라 꽃잎 따라 서성이며 서성이며 내년 여름의 다정을 약속해주는 것 같다. 시집 『꽃도 서성일 시간이 필요하다』, ‘서성이다’라는 말이 지금 글을 쓰는 나에게는 가만히 열리려고 기다리는 ‘꽃차례’를 의미하며 탄생한 나만의 용어 ‘詩차례’에 빙의된 것처럼 기념비적인 시어가 될 줄이야. 이 바쁜 21세기, 그대에게 가 닿는 그날까지 지극히 느리게 혼도 빼놓고 춤추듯 그냥 가리라. 새벽녘 고요한 ‘꽃차례 詩차례’를 바라보듯 그런 넉넉함으로.
2023.09.25. 여수 선소대교가 바라다보이는 창가에서 |
첫댓글 연꽃은 꽃이 아니다 사랑이다. 그 사랑이 꽃에게도 흘러갔으니 미안할 이유는 없지요. 하하. 이렇게나 뜨겁고 아름다운 글, 고맙고 행복하고 사랑합니다.
사랑과 연꽃에게 미안할 글을 써서...사랑과 연꽃처럼 그리워하게 될 것 같아요. 내년엔 저도 오늘이야! 하며 시 한 편 써야겠어서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