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눈을 들어 바라보라
(창 13:10-18, 약 4:13-17, 마 6:25-34)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 바라보라 ..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창세기 13 : 10-12, 14, 18)
1. 여기 두 신앙인의 선택이 있습니다.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의 선택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은 물론 그의 조카 롯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실 앞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같은 신앙인이면서도 각기 다른 기준에 의해 선택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기근이 들어 피난 갔던 애굽에서 돌아온 아브람과 롯은 살림살이의 규모가 커져서 더 이상 함께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창13:6).
작은아버지와 조카 사이였던 아브람과 롯의 균열은 드러나지 않고 잠복해 있었는데, 그들의 아래 사람인 가축을 치는 목자들에 의해 그 갈등이 표면화되었습니다. 주인들의 내면 깊숙이에 있는 분열을 일꾼들이 읽어내고 충돌한 것입니다.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창13:7).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아브람은 더 이상의 동행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조카 롯에게 혈육 간에 다투기보다 차라리 갈라서자고 제안합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창13:8)
그러면서 우선 적인 선택권을 조카가 가지도록 어른답게 배려합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9).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작은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성장해온 조카 롯이 이제는 노인이 된 아브람에게 이번에는 좀 양보해도 좋으련만, 젊은 롯은 여전히 철저하게 자기의 유익을 기준으로 선택을 합니다.
2. 롯은 ‘눈을 들어’ 눈 앞에 펼쳐진 지역의 형편을 살펴봅니다.
당연히 공간적인 의미에서만 눈길을 준 것이 아니라, 자기 앞에 펼쳐질 미래의 불안과 염려에 대처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장이 주어진 가능성에 시선을 보냅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창13:10a)
롯은 경제적인 기준, 도시 문명이 가져다주는 생활의 안락함 등 세상 적이고 물질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그런데 그의 기준에는 소돔과 고모라를 향한 하나님의 미래는 고려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13:10b).
적어도 신앙인인지라 선택의 기준이 육신의 정욕, 인간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 2:16)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인생, 장래를 위해 용의주도하게 따져보고 계산하고 예측할 뿐 미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약4:13-15)
롯도 믿는 사람이니 자신이 최대한으로 계산하고 판단해서 결정해 놓고는 ‘하나님, 앞으로 새 거처에서 잘 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에는 이미 인간적인/세상적인 기준에 의해 스스로 결정을 내린 후, 자신이 내린 결정의 결과에 대해 축복해 달라고 조르는 그 정도의 믿음만이 놓여 있을 뿐입니다. 결정 그 자체를 믿음의 기준, 말씀의 기준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통해 한다는 믿음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하였습니다.
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사방을 바라보라’(13:14)
아브람은 선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기 전 그 진행 과정에서부터 하나님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봅니다.
아브람의 시선은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기준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명하시는 방향을 향합니다.
미래를 향한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향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방향으로 우리의 시선이 향하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뜻과 같은 방향이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1-33)
4. 너 있는 곳에서(창13:14)
너 있는 곳, 아브람이 지금 있는 곳은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의 아픔이 배어있는 자리입니다.
믿음 없이 사는 사람 같으면 ‘내가 자기를 이제껏 어떻게 키우고 돌봐왔는데 나를 버리고 떠날 수 있지!’ 은혜를 저버린 배은망덕한 조카 롯에게 서운한 마음과 배신의 감정이 들었을 자리입니다.
프로토 르네상스(Proto-Renaissance) 시기의 시인 단테(Dante Alighieri,c.1265-1321)는 그의 작품 신곡(神曲) 지옥 편에서 가장 지독한 악마 루시퍼가 지배하는 지옥의 영역에 배신자들이 머무는 것으로 표현할 만큼 은혜를 저버린 배신감에서 오는 서운한 감정은 인간에게 큰 아픔을 가져다 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바로 그 아픔의 자리에서 ‘너는 눈을 들어 바라보라’ 말씀하십니다.
너 있는 곳, 아브람이 지금 있는 곳은 인간적인 눈, 세상적인 안목으로 바라볼 때 롯이 선택한 도시들(13:12)에 비해 모든 면에서 부족한 곳입니다. 그곳은 고대근동세계(ANE)의 도시들이 지닌 물질 문명의 풍요로움과 안락함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이 지금 있는 이곳은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입니다.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13:4)
그곳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시절의 기도가 쌓여 있는 곳이며, 은혜받은 곳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람의 믿음의 기억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곳을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한 하나님의 계획과 설계의 자리, 축복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창12:7)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13:15)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이라는 이 영적인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롯은 그저 세상적인 기준, 인간의 안목, 육신적인 눈으로 보이는 현실만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결정이었다고 착각합니다.
5. “이에”(창13:18)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 미래가 있는 곳은 현재는 소박하고 척박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땅과 자손을 약속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아브람은 다시금 살아갈 힘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창13:18)
6.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창13:18)
그가 옮겨간 곳은 롯이 선택한 도시들과 달리 상수리 수풀이 우거진 곳이었지만 거기서도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처음 가나안 땅에 들어와 그가 하나님을 예배하며 이주한 곳에서의 삶을 시작하였듯이(창12:8) 새로운 거주지 헤브론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드리는 이 예배도 새로게 시작할 수 있는 힘과 능이 주어지는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브라함과 롯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났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3년 펜데믹으로 인한 어려운 시기를 살아오면서, 겉으로는 고요한 것 같지만 내실은 우리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선택과 결정에 직면하는 격변의 상황이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영적인 축복의 땅을 선택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023년 4월 23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 주일예배)
https://www.youtube.com/watch?v=BxtDpTHyB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