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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과거사진실위' 발표 모습(자료사진). |
ⓒ 오마이뉴스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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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일가 간첩사건은 사건 관계자들이 안기부 밀실에서 116일간 불법 구금된 채 '무차별 온몸구타' '손바닥 등 특정부위 때리기' '물고문' '거꾸로 매달기' '고압전구 노려보기' '손가락 사이에 각목 끼우기' 같은 고문에 시달리며 조작된 반인권적 간첩조작사건이다. 심지어 안기부는 대법원 재상고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유죄판결을 유도하는 공작까지 폈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상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24일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알려진 '송씨일가 간첩사건'에 대해 정보기관의 반인권적 간첩조작사건이라고 결론냈다.
당시 안기부는 8차례나 남파돼 가족들을 포섭했다는 송창섭이 60년 남파 이후 남한에 온 적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고문과 가혹행위로 이 사건을 조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특히 사법부가 7번이나 재판을 하면서 무죄판결했던 것을 안기부의 입김에 따라 '도로 유죄' 판결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까지 벌였다는 점은 더욱 놀랍다. 따라서 향후 안기부에 놀아난 재판에 대한 '재심특별법' 제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국가보안법 특별규정으로 최장 50일까지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한 배려마저 무시한 채 고문·가혹행위를 벌여 사건관계자들에게 ▲허위진술 강요 ▲증거조작 ▲재판부에 대한 유죄판결 유도공작 등을 펼친 정부기관의 대표적인 반인륜 조작범죄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진실위의 이번 결정에 따라 84년 재재파기환송심에서 최종 유죄판결이 내려지기까지 무려 7차례나 재판이 진행될 정도로 사법사상 유래 없는 '핑퐁재판'까지 벌어졌던 '송씨일가 간첩사건'이 24년 만에 새롭게 진실을 찾게 됐다.
구분 |
①1심: 서울형사지법 (82고합800) |
②항소심: 서울고법 (83노484) |
③상고심: 대법원 (83도1578) |
④파기환송심: 서울고법 (83노2329) |
⑤재상고심: 대법원 (84도135) |
⑥재파기환송심: 서울고법 (84노1172) |
⑦재재상고심: 대법원 (84도2252) |
재판 일자 |
82.12.24 |
83.4.25 |
83.8.23 |
83.12.23 |
84.4.24 |
84.8.24 |
84.11.27 |
재판부 |
이○○ 장○○ 한○○ |
이○○ 김○○ 김○○ |
전○○ 이○○ 이○○ 이○○ |
오○○ 박○○ 김○○ |
정○○ 윤○○ 김○○ 오○○ |
김○○ 박○○ 유○○ |
이○○ 정○○ 신○○ 김○○ |
송지섭 |
사형 및 무기 (간첩) |
징25 및 자정25 (간첩) |
유죄부분 파기 - 임의성 결여로 검찰조서 증거능력 부인 |
징10년6 및 자정10년6 *일부 공소사실(일반 이적죄) 무죄 |
유죄부분 파기 |
징역7년6월 및 자정7년6월 *일부 공소사실 (일반 이적죄) 무죄 |
상고기각 |
송기준 |
사형 및 무기 (간첩) |
징25 및 자정25 (간첩) |
징10년 및 자정10 *일부 공소사실(일반 이적죄) 무죄 |
징역6 및 자정6 *일부 공소사실 (일반 이적죄) 무죄 |
송기섭 |
무기징역 (간첩) |
징15 및 자정15 (간첩) |
징7 및 자정7 *일부 공소사실 무죄 |
징4 및 자정4 |
한광수 |
징15 및 자정15 (간첩) |
징10 및 자정10 (간첩) |
징5 및 자정5 *일부 공소사실 무죄 |
징3년6월 및 자정3년6월 |
송기복 |
징10 및 자정10 (간첩) |
징2 및 자정2 *일부 공소사실 무죄 |
유죄부분 파기 |
징1년6월, 집유3 및 자정1년6월 *일부 공소사실 무죄 |
징1, 집유2 및 자정1 |
송기홍 |
징5년6월 및 자정5년6월 (간첩) |
징4년6월 및 자정4년6월 |
파기 |
징역1, 집유3 및 자정1 *일부 공소사실 무죄 |
유죄부분 파기 |
징1, 집유2 및 자정1 |
상고기각 |
송기수 |
징5년6월 및 자정5년6월 |
징4년6월 및 자정4년6월 |
징4 및 자정4년6월 |
파기 |
징6월, 집유2 및 자정1 *일부 공소사실 무죄 |
한용수 |
징3, 집유5 및 자정3 (편의제공) |
항소기각 |
징1년6월, 집유3 및 자정1년6월 |
징1, 집유2 및 자정1 |
송오섭 |
징1년6월, 집유3 및 자정1년6월 (회합) |
항소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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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섭 |
징1, 집유2 및 자정1 (회합) |
김춘순 |
징1, 집유2 및 자정1 (회합) |
항소기각 |
상고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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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희 |
징1, 집유2 및 자정1 (편의제공) |
무죄와 유죄, 7차례의 '핑퐁재판' 이 사건은 82년 안전기획부(안기부)가 6·25때 충북도 인민위원회 상공부장으로 활동하다 월북한 후 남파된 송창섭에게 포섭돼 서울·충북을 거점으로 25년간 간첩활동을 해온 그의 아내와 자식들을 포함, 28명의 간첩단을 적발했다고 발표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이 발표에 따르면, 재북간첩 송창섭은 1957년~77년까지 8차례에 걸쳐 남파, 북괴 노동당 연락부 부부장으로 승진했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던 간첩 처 한경희, 6촌 아우 송지섭, 5촌 조카 송기준, 6촌 아우 송기섭, 4촌 처남 한광수, 장녀 송기복, 장남 송기홍, 2남 송기수, 처남 한용수, 6촌 아우 송오섭 등 16명을 포섭했으며, 이들은 각각 ▲광고회사 ▲암달러상 ▲운수업 등 위장업체를 설립해 운영했고 지하 망을 구축했다는 것이 핵심내용이었다.
안기부는 4개 대학에 재학 중인 자녀들까지 간첩조직에 끌어들여 학원동향을 수집하고, 악성 유언비어를 날조, 학생들을 선동했다고 밝혔다. 이 간첩일당은 82년 체포될 때까지 사회혼란을 목적으로 종친계, 88회, 성우회 등 불순단체를 조직해 부마·광주 등 중요 사건 때마다 대정부 투쟁을 벌이는 등 25년간 장기 암약한 고정간첩단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안기부의 불법 장기구금과 고문, 검찰·법원의 묵인, 공모에 의한 조작이라는 의혹이 늘 따라다녔다. 국정원 진실위는 8가지로 의혹사항들을 정리했다.
첫째, 법적 수사기간을 훨씬 뛰어넘는 116일간의 장기 불법 구금 상태에서 고문과 가혹행위가 없었는가 하는 점. 둘째, 재북간첩 송창섭은 1960년 당시 남파사실이 드러나 61년 대대적으로 보도됐던 인물인데 8차례나 남파될 수 있었겠느냐는 점. 셋째, A-3 지령수신 여부, 넷째 대법원의 무죄 파기환송 이후 검찰이 보강해 제출한 증거와 증언의 조작여부, 다섯째 7심까지 이어진 재판에서 결국 유죄가 선고된 것은 당시 안기부가 재판부에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 아니냐는 의혹 등이다.
안기부 고문... 피 묻은 로프, 입 막은 개 끌려가는 소리
국정원 진실위는 이번 조사를 통해 안기부의 불법 구금과 고문, 가혹행위 등의 진실을 가려냈다. 특히 이들은 "안기부가 각종 수사서류의 일시를 사실과 다르게 기재해 검찰에 송치했는데도 피의자들의 인지 동행보고는 연행 일에 관계없이 일제히 82년 6월 15일로 기재돼 있다"며 "이것은 장기불법구금 사실을 은폐해 안기부에서 작성한 피의자들의 진술의 임의성을 담보하기 위한 명백한 조작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안기부 수사관들이 피의자들을 불법 장기구금하고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 것 등의 위법행위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천명했다. 고문과 가혹행위에 대한 구체적 단서도 파악했다.
송창섭의 6촌 아우 송지섭의 증언을 빌어 "안기부 밀실에서 부인할 때마다 발가벗기고 두드르기, 손과 다리를 모아 묶고 그 사이에 침대봉을 끼워 공중에 매달고 물 먹이기, 고광도 조명을 눈앞에 들이대고 잠을 안 재우는 고문을 당해 서울 필동 중대부속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다"는 사실을 기재했다. 또한 고문의 증거로 병원기록을 들어 "환자(송지섭)의 과거 병력은 없고, 음낭이 심하게 붓고 피멍이 있다"는 기록도 덧붙였다.
송창섭의 장녀 송기복의 경우에는 진실위와의 면담과정에서 나눈 대화 일체를 그대로 옮겨놓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손을 뒤로하고) 묶여 있는데 그 남자가(강○○ 수사관) 들어오더니 자기 옷을 다 벗어요...(그래서)이게 성폭행인가 보다 생각하고...눈을 못 뜨고 있는데... 자기 허리띠를 풀더니 있는대로 욕을 하면서 여기서부터(머리) 밑에까지 그렇게 후려치는데..."하면서 당시의 공포가 떠오르는지 몸을 떨며 통곡하여 한동안 얘기를 잇지 못했다.
이밖에도 국정원 진실위는 인면수심의 수준까지 치달은 안기부의 고문과 가혹행위 사실을 폭로했다. 안기부 연행 당시 중풍 후유증으로 몸이 부자유스러웠던 송창섭의 6촌 아우 송기섭을 무차별 폭행했으며 ▲연행 당시 70세였던 4촌 처남 한광수도 그의 아내와 함께 안기부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6촌 아우 송오섭의 경우에는 고문후유증으로 석방된 지 1년 만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송오섭의 고문 사실을 전한 송창섭의 2남 송기수의 진술을 전하기도 했다.
"피 붙은 로프, 그걸 내 침대 밑에다 놓는데... 화장실을 지나가면서 그 개 끌어가는 소리를 들었거든. 입을 틀어막아 놓고 하는 소리, 비명소리 우~ 우~. (중략) 형사들이 와서 그 밧줄 놓으면서 새끼 꼭 개 끌려가는 소리를 하는데, 아 그거구나, 피가 그거야. 결국 그 양반, 나와서 죽었잖아요."
안기부 흑룡공작철 그리고 '남산 42호'의 비밀
국정원 진실위는 이번 조사에서 안기부가 주장한 송창섭의 8차례 남파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 이들은 조사보고서에 "송창섭이 8차례나 남파됐다는 사실은 1960년 남파된 사실을 제외하고는 입증되지 않았다"며 "특히 송씨일가 간첩단 사건 발표 후에 작성된 흑룡공작철에는 송창섭의 1, 2차 남파만 기록돼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에 보관된 '흑룡공작철'에 따르면, 송창섭은 1968년 '김일성의 지시'로 탄광으로 좌천됐다. 따라서 적어도 1968년 이후에는 송창섭이 남파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국정원 진실위가 정리한 안기부의 흑룡공작철 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송창섭은 1968년 남한혁명지도부 구성을 위해 소위 1970년대 남한정세대비 공작원 교육 중 '왜 우리만 남한혁명을 해야 하느냐'는 등 불평을 토로한 것이 발고되어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탄광으로 좌천됐다. 북한 정권의 속성상 김일성의 지시로 숙청된 인물이 김일성의 지시가 없이 다시 남파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제 국정원 진실위는 "부부장급의 거물 공작원이라는 송창섭이 6번이나 남북을 오갔다면 남쪽의 물샐 틈 없는 방대한 방첩조직의 역량을 고려할 때 송씨일가 이외의 다른 목격자나 증거 또는 조직망의 흔적이 잡혔어야 했는데 전혀 없었다"고 "안기부가 송창섭의 남파를 입증하기 위해 여러 참고인의 진술을 확보해 송치했으나 입증된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또한 당시 안기부는 '송충건'이라는 공작명을 가진 충북 출신의 월북자가 남파됐다는 제보 하나로 이를 송창섭으로 지칭하고 사건을 만들어나갔지만, 정작 사건의 단서가 된 송충건의 실체와 충북지역의 지하당 건설 공작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진실위는 "한 사람이 고문을 받아 시인하면 다른 사람에게 '이 사람은 시인했는데 왜 너는 시인하지 않느냐'는 방식으로 강제 자백을 받는 식이었다"며 "고문을 통한 강제 자백 이외에 다른 그 어떤 증거도 제출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허위진술을 통한 안기부의 조작사건이라는 것이다.
특히 안기부는 사건 발생 5년 전인 1977년 이미 사망한 사람도 간첩으로 엮어 넣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송창섭의 아내 한경희의 경우다. 안기부는 당시 사건을 발표하면서 한경희의 A3 통신 호출부호가 '남산 42호'라고 적시했지만, 실제 진실위가 확인한 바는 사실과 달랐다.
국정원 진실위는 "송치서류에는 포함되지 않은 안기부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남산 42호'는 한경희가 아니라 2남 송지섭의 호출부호"라며 "이 보고서에 의하면 송지섭은 양정중학교 30회 졸업생으로 숭인동 12번지에 살고 있기 때문에 30과 12를 더한 42를 호출부호로 삼았다고 자세히 기록돼 있다"고 전했다.
한경희는 안기부의 수사를 받기 훨씬 전에 이미 사망해 자신의 호출부호에 대해 진술한 바도 없을뿐더러, 현재 남아 있는 이 사건에 관한 안기부 내부자료나 수사기록 어디에도 '남산 42호'가 한경희의 호출부호라고 단정할만한 단서는 전혀 찾을 수 없다는 게 국정원 진실위의 결론이다.
안기부 허위자백 강요 위해 '쪽지 돌리기' 치졸한 수단도 동원
무엇보다 국정원 진실위는 이번 조사를 통해 안기부가 허위자백을 강요하기 위해 온갖 치졸한 수단까지 동원했던 흔적도 찾아냈다. 대표적인 것은 ▲쪽지 돌리기를 통한 진술 맞추기 ▲타 피의자의 허위진술 보여주며 강요하기 등이다. 초등학생 식의 유치한 방법과 고문, 구타 등을 통해 진술을 받아내고도 공식기록에는 삭제하는 어이없는 행동도 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의 무죄 판결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확실한 물증은 전혀 없고 오직 정황증거에 불과한 여러 수사보고서와 피의자들의 자백 진술에 의존해 조작됐다. 그런데도 검찰 수사와 재판과정에서도 안기부의 불법적인 개입으로 인해 진실의 왜곡을 낳았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국정원 진실위는 "검찰수사과정에서 검사는 이 사건이 안기부 수사기록상으로도 명백하게 장기간의 불법구금이 기록돼 있는데도 공소제기와 유지의 의무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해야 할 검찰이 본연의 임무를 방기했다"며 "검찰수사마저 밀실 성격이 강한 구치소에서 진행됐으며 검찰 신문 전후로 안기부 수사관들이 피의자들을 면담했다는 사실마저 드러났다"고 전했다.
이뿐 아니라 국정원 진실위는 당시 대법원이 이 사건에 대한 재상고심에서 무죄판결을 내리자 안기부가 법원의 상층부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유죄판결을 유도'하기 위해 판사들을 조직적으로 접촉해 영향력을 행사한 단서도 잡아냈다. 이 같은 활동은 1984년 6월 29일부터 8월 15일까지 모두 7차례 벌어졌으며 ▲간첩수사의 애로점 설명과 유죄판결 유도 ▲공판대책협의 ▲공판대책자료 등을 제출했다. 이를 위해 판사의 자택을 직접 방문하는 것은 물론 중식을 제공하거나 골프접대 등을 하기도 했다.
국정원 진실위는 이번 송씨일가 간첩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서울중앙지검의 사건 수사 및 재판기록, 기무사의 박종덕(전향간첩) 관련자료, 흑룡공작철, 사건 수사초기 안기부 청주분실에서 작성했던 수사보고서와 안기부 본부에서 작성한 수사보고서 등 모두 20만여쪽에 달하는 자료를 입수해 분석했다.
또한 송창섭의 작고한 아내 한경희의 장녀 송기복과 당시 증인으로 한경희가 간첩이라는 혐의를 입증하는데 동원됐던 박종덕 등 사건 관계자와 증인 등 모두 1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면담 조사했다. |